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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공지능(AI)과 ‘수타’ 자장면
인공지능(AI)과 ‘수타’ 자장면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01 13: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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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강․가상현실 기술+인공지능’이 여는 노동복원 가능성에 대한 상상

‘불가능한 것을 상상’하기 위해 세계를 뒤흔든 1968년 혁명까지 굳이 거슬러 올라갈 필요는 없다. 가까운 주변을 둘러봐도 ‘상상 가능한 불가능’, 그래서 ‘불가능한 것처럼 보였던 가능’의 사례가 수두룩해서다. 자장면만 봐도 그렇다. 면발을 척척 뽑아내는 기계가 자장면 집에 도입된 지 이미 오래다. 많은 중식사업자들이 주방에 면발 자동화를 도입했다. 대기업들처럼 임시투자세액공제 혜택이 적용되지 않았음에도 그렇게 해왔다. 여러 이유가 있을 것이다. 주방 인원을 줄여서 비용을 아끼거나, 인원은 줄이지 않으면서 면발을 뽑아내는 기능은 기계에 넘기고 주방장은 소스를 비롯한 다른 요리에 전념하게 하려는 측면도 있을 것이다.

기계 면발은 ‘수타’ 면발의 대체로 이어질 걸로 예상됐다. 하지만 수타 자장면을 찾는 고객은 없어지지 않았다. 자본력이 달려 기계를 도입하지 못한 중식집들이 살아 남아서 였을 수도 있고, 소비자들의 기호가 바뀌어서 그랬을 수도 있다. 일부러 수타 자장면을 찾는 마니아층은 아니더라도 우연히 수타 자장면 집이 눈에 띠면 그곳으로 발길을 돌리는 경험은 누구에게나 있다. 오히려 대체는커녕 ‘수타’는 고객들에 강한 호소력을 지니는 강점이 됐다. 이런 수요 덕분인지 수타 자장면을 고집하는 중식집들은 이전처럼은 아니더라도 쉽게 눈에 띤다.

사람을 대체하는 자동화는 불가피한 추세 아니다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2019년 1월 펴낸 보고서 '자동화와인공지능' 의 표지. 사진: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
미국 브루킹스연구소에서 2019년 1월 펴낸 보고서
'자동화와인공지능' 의 표지. 사진: 브루킹스연구소 홈페이지

이런 수타 자장면 경험을 인공지능과 자동화와 그대로 비유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인공지능이 인간을 대체하는 자동화를 더 부추길 것이라는 통념, 여기서 비롯하는 걱정과 우려가 반드시 현실화할 이유는 없다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다. 정부의 제도와 규제가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인간을 대체하는 쪽으로가 아니라 인간을 보완하고 나아가 자동화 과정에서 산업용 로봇이 대체한 인간을 다시 생산과정에 다시 복권(reinstatement)시키는 쪽으로 방향이 재설정된다면 더욱 그렇다.

복잡한 규제를 새로 만들지 않아도 된다. ‘데이터경제’에 맞는 세제 등은 새로 만들어야 하겠지만, 기존 규제와 제도의 방향만 살짝 틀어줘도 많은 효과를 낼 수 있다. '인간대체 자동화'와 '인간보완 자동화'로 제도를 나누고, 그동안 적용해온 가속도 감가상각이나 무형자산 상각, 세액공제를 비롯한 각종 세금우대 조치 등을 인간대체 자동화와 인간보완 자동화에 차등 적용하는 게 대표적이다. 이렇게만 해도 인간대체 자동화가 불가피한 추세라는 통념은 상당 부분 흔들리게 되는 건 분명하다.

인간을 대체․지배하지 않는 인공지능을 적용할 영역은 주변에 널려 있다. 단조롭고 개성 없는 학교 교육이 아이들 개개인에 맞는 맞춤형 교육으로 탈바꿈하는 것을 도와주는 것도 여기에 속한다. 각 과목마다 필요한 사항은 아이들마다 다양하다. 인공지능에 의한 실시간 데이터 수집과 처리는 교사들이 학생들의 필요에 맞는 개별화한 교수법을 가능하게 해준다. 학교를 병원으로 바꿔보자. 인공지능은 의료진과 숙련된 간호사들이 환자에 맞는 개인화한 치료를 제공할 수 있게 한다. 학교에서는 맞춤형 학습내용을 개발하고 적용하기 위한 새로운 일자리가 필요하고, 병원에서는 간호사에 대한 추가 고용 필요성이 생겨난다.

학교나 병원에 제조업의 생산과정을 대입하는 것은 어떨까? 산업용 로봇이 인간을 대체하며 지배하고 있는 제조업의 생산과정에 새로운 직무와 일자리를 창출해 인간을 다시 복권시키는 것은 불가능한 환상인가? 결코 그렇지 않다. 현재 인공지능을 포함한 기술의 발전 정도는 이 불가능을 상상하기에 이미 충분하다. 원격의료는 초고속 광대역 통신망만으로 가능한 게 아니다. 멀리서도 환자를 가까이서 진료하는 근접성을 발휘하려면 증강․가상현실 기술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환자의 데이터를 분석해 의사에 자문하는 인공지능의 도움도 있어야 한다. 현재 원격의료가 논란이 많은 것은 메트로폴리탄의 대형병원과 다른 지역의 중소병원과 1․2․3차로 나눠진 의료체계에 줄 수 있는 영향, 인공지능의 활용범위와 관련 규제와 제도의 정비 등 사회적 해결과제가 산적해 있어서이지 기술적 어려움 때문은 아니다.

증강․가상현실 기술, 자동화 생산과정에 인간 복원 가능성 연다

인공지능과 증강․가상현실 기술은 원격의료 가능성만을 여는 게 아니다. 현실성을 극대화시킨 게임을 개발․서비스하는 게임산업에만 적용되라는 법도 없다. 이미 제조업 현장에도 이미 도입돼 있다. 다만 지금까지는 자동화 영역에서 벗어난 새로운 직무를 창출하기보다 기존 직무의 효율성, 이를 통해 생산성을 높이는 측면이 강할 뿐이다. 예를 들어 미국의 항공방위산업체인 록히드마틴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증강현실 기기인 홀로렌즈를 이용해 우주선의 조립을 검증하는 데 이용하고 있는 것이나, 세계 최대 항공기 제조업체 보잉은 비행기 내 전기부품 연결 작업에 홀로렌즈를 이용하는 게 그것이다.

이렇게 증강․가상현실 기술은 인간의 육안만으로는 달성하기 어려운 고도의 정밀한 작업에도 도입되고 있다. 시각화한 이미지를 통해 인간 육안의 한계를 보완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생산라인 상에서 기계의 자동화 작업에 대한 인간의 실시간 점검과 관리를 가능하게 한다. 당연히 인간의 노동이 추가로 필요하다. 이전에는 가능하지 않았던 자동화가 적용되지 않은 영역의 새로운 직무와 일자리가 창출될 수 있는 것이다. 인공지능과 자동화가 초래하는 산업용 로봇이 지배하는 생산과정에 인간이 다시 복권되는 가능성을 높이는 것이다. 게다가, 인공지능과 가상․증강현실 기술의 적용은 근로자의 직무만족도와 스트레스를 동시에 증가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노동시간 단축, 근로자에 대한 높은 수준의 재량권 허용 필요성을 낳는 것이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297). 생산과정에서 근로자에 대한 고용수요가 새롭게 창출되는 것이다.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3월7일 고용안정 특별협의를 하는 모습. 사진: 현대자동차노조 홈페이지
현대자동차 노사가 지난 3월7일 고용안정 특별협의를 하는 모습.
사진: 현대자동차노조 홈페이지

하지만 국내 제조업에서 이런 ‘불가능의 상상’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대기업 제조업에는, 업종에 따라 정도의 차이가 있기는 하지만, 근로자에 대한 정년 보장과 연공급 임금체계(임금총액이 근속연수에 따라 누적 증가하는 임금체계) 보장, 신규채용 최소화와 자동화 도입 등을 뼈대로 하는 생산체제가 널리 퍼져 있다. 현대자동차노동조합을 비롯한 대기업 제조업노조들은 이 생산체제의 형성에 명시적․묵시적으로 사용자와 담합했다. 하는 일은 똑같은데 상당한 임금 격차, 작업복 색깔의 차이, 나아가 이용하는 휴게실의 차이까지 있으면서 사실상 ‘신분 차별’로 흘렀던 사내하청이 만연했던 배후에는 이 생산체제가 자리하고 있었다. 몇 년 전 단체협약에 조합원 자녀의 우선채용 조항 등을 넣으려고 해 떠들썩한 고용세습 논란까지 일어난 것도 마찬가지 맥락이다. 그렇게 굳어진 이 생산체제에서 국내 제조업의 자동화 수준은 세계 최고 수준에 이르렀다.

전국에 ‘~형 일자리’가 물결치는 물꼬를 연 ‘광주형 일자리’에 대해 노조로서 응당 해야 할 문제제기를 했음에도 현대자동차노조를 바라보는 눈길이 곱지 않았던 것도 이런 생산체제와 무관하지 않다. ‘네들은 사실상 신분제로 전락한 사내하청 문제를 말끔히 해결했느냐?’는 일종의 자격 시비에 걸린 것이다. 현대차노조는 지난 2월19일 민주노총, 금속산업노조와 함께 낸 공동성명에서 전체 노동자 임금의 하향평준화를 초래하는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해 3년 간 총력투쟁하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런 생산체제가 흔들릴 조짐을 보이고 있다. 광주형 일자리 철회를 위한 총력투쟁을 선언한 지 한 달도 못돼 현대차노조는 지난 3월7일 기자회견을 열어 “지난 32년간의 낡은 관행으로는 조합원 고용을 지킬 수 없다”며 “내부의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단체협약과 노사합의 사수투쟁을 시작으로 조합원 고용안정을 최우선 목표로 삼”겠다고 선언했다. 배경은 오는 2025년까지 정년퇴직자가 1만7500명 발생하는데 회사가 정년퇴직으로 발생하는 일자리에 촉탁직을 채용하려 한다는 것이다. 줄어드는 인원을 제대로 충원하라는 싸움에 나선다는 얘기다. 광주형 일자리 철회 싸움에 대한 얘기는 찾아보기 어렵다.

명백한 ‘표변’임을 부인하기 어렵다. 이런 표변이 다행인지 불행인지는 현재로서는 불확실하다. 다만 ‘점점 줄어드는 조합원 속에서 최고 수준에 이른 공장자동화’가 그동안 회사와 명시적․묵시적으로 담합하며 유지해온 생산체제 균열을 가한 내적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점은 그나마 불행 중 다행이다. 외부의 압력에 무너진 것이 아니라 자신이 일부를 이룬 생산체제가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음을 노조 스스로 뒤늦게나마 인식한 것으로 보여서다.

뒤늦은 인식이 변화의 동력으로 바뀔지는 전적으로 현대차노조의 역량에 달려 있을 것이다. 그 역량의 중요한 일부는 자신이 일부였던 생산체제를 낱낱이 해부하는 성찰이다. 그동안 생산체제에서 생산성을 되레 저해할 만큼 ‘과잉 자동화’가 이뤄진 측면은 없는지도 꼼꼼하게 따져봐야 할 것이다. 이 과정에서 ‘증강․가상현실과 인공지능을 이용한 인간의 복원’이라는 ‘불가능한 상상’을 통해 산업용 로봇이 지배하는 세계 최고의 자동화 생산과정을 빚은 이전의 ‘동의’를 대체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면, 노동조합과 노동시장에 주는 파장은 결코 적지 않을 것이다.

자장면이라도 다 같은 자장면이 아니다. 수타 자장면을 만드는 중식집은 브랜드를 홍보하면서 ‘수타’를 강조한다. 마찬가지로 자동차라도 다 같은 자동차가 아니다. 인간대체의 생산과정이 아니라 인간보완․복원의 생산과정을 만들어진 자동차라는 표시가 붙지 말라는 법도 없다. 충북 영동의 포도, 프랑스 보르도 와인 등 기후와 풍토를 상품에 나타내는 ‘지리적 표시’(GI; geographic indication)처럼, (가칭)‘균형생산과정표시’(BPI; balanced process indication) 제도를 도입하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사용자와 자본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는 ‘역량’과 ‘개념’을 갖춘 ‘민주공화’ 정부라면 인간 복원을 위해 꼭 그려봐야 할 구상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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