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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시간, 그때는 ‘창의성’의 기회, 지금은 ‘불안함’의 근원
빈 시간, 그때는 ‘창의성’의 기회, 지금은 ‘불안함’의 근원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07 14:0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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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기와 20세기 초반 ‘외로움’과 ‘지루함’ 의미, 지금과 달랐다!
책이 묻는다, ‘당신은 끊임없이 자극받고 바쁘고 적합하고자 하는가?’

지난 5월1일 메이데이에 미국에서 시의적절하고 흥미로운 책이 출판됐다. 제목은 ‘따분하고, 외롭고, 화나고, 어리석은 - 전신에서 트위터까지 기술에 대한 감정의 변화’(Bored, Lonely, Angry, Stupid - Changing Feelings about Technology, from the Telegraph to Twitter)다.

출판사의 짤막한 서평이 눈길을 끈다. “페이스북은 우릴 외롭게 만든다. 셀카는 자기도취를 배양한다. 트위터와 코멘트 보드 상에서는 적대감이 군림한다. 학자들과 심리학자들은 디지털 기술이 우리의 감정 상태를 상당히 바꾼다고 경고한다. 그러나 이 생생하고 놀라운 이 책의 설명에서 우리가 순간마다 어떻게 느끼는지에 기술이 영향을 줄 뿐 아니라, 근저에 깔린 감정 자체를 깊이 변화시킨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 책은 스마트폰이 군림하는 지금과 19~20세기 전반 사이에 인간이 지루함, 외로움, 분노, 어리석음을 느끼는 방식과 의미에 기술이 어떤 영향을 줬는지를 편지, 일기, 회고록, 인터뷰 등을 통해 기록하고 있다.
이 책은 편지, 일기, 회고록, 인터뷰 등을 통해
스마트폰이 군림하는 지금과 19세기 사이에
지루함, 외로움, 분노, 어리석음을 느끼는 방식과
이 감정들의 의미에 기술이 준 영향을 기록하고 있다.

알 듯 모를 듯하다. 미국의 정치․경제․시사 인터넷매체인 ‘복스’가 발빠르게 실은 저자들의 인터뷰 기사를 읽어봤다. “(19세기에 지루하다거나 외롭다는 것의 의미는 무엇이었나?) 지금과 매우 달랐다. “지루함”이라는 단어는 19세기 중반까지 존재하지 않았다. 비어있는 순간을 경험할 때, 사람들은 단조롭거나 둔하다고 묘사했다. 지루함은 경험의 범주가 아니었다. 그때 사람들은 비어있는 시간에 대한 경험을 기대했고, 인간적인 것의 일부로 이를 받아들였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 무딘 순간을 즐기려 했다는 뜻이 아니다. 비어있는 시간에 놀라지 않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은 신이 세상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생각했다 … 오늘날 혼자 있는 것을 ‘외로움’이라고 일반적으로 부르곤 한다. 19세기에는 ‘고독’(solitude)의 측면에서 애기하곤 했다. 좀 더 긍정적인 구원의 측면에서 간주되는 게 보통이었다. 이렇게 다른 언어를 갖는 것만으로도 ‘외로워지는’경험을 하는, 지금과는 다른 의미와 가치를 지녔다.”

책에 담긴 내용을 충분히 어림할 수 있게 됐다. 저자의 인터뷰를 좀 더 살펴보면 좀 더 뚜렷해진다. “인간 역사에서 외로움이나 지루함은 단지 인간 조건의 특징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결코 혼자일 필요가 없다. 언제나 연결될 수 있고 바로 우리 앞에 있는 것으로부터 스스로를 산만하게 할 수 있다. 이는 의식의 엄청난 이동처럼 보인다 … 스마트폰의 출현은 항상적인 교제를 분명히 뜻한다. 우리가 스마트폰을 항상 발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스마트폰은 늘 거기에 있다. 무엇인가를 수행하고 무엇인가에 흥분하는 약속의 신호를 우리에게 보낸다. 즉각적인 오락과 다양함을 약속한다 … 스마트폰은 교제와 오락에 대한 우리의 기대를 꽤 극적으로 변화시킨다. 지루함과 외로움과 같은 감정에 우리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변화를 준다. 이런 감정들을 경험하는 디지털 시대의 약속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의 선조들보다 더 놀라고 불안해한다.”

그래서 뭐 어떻게 하라는 것일까? 우리가 감정을 느끼는 방식만이 아니라 감정의 의미 자체까지 바꾸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하라는 말인가? 책에 그런 구체적인 내용까지 나오지는 않는 듯하다. 다만 방향성은 분명하다. “지금은 우리가 지루함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상황에서, 우리의 선조들은 (그런) 결정되지 않은 시간을 생산성과 창의성을 위한 기회로 바라봤다. 지금은 외로움이 병으로 나타나는 상황에서 선조들은 고독을 미덕으로 생각했다. 기술이 우리를 더 외롭게 하는지를 물을 때조차, 기술은 외로움의 의미를 변경하고 있는 것이다.”

이 책은 인간의 과거 역사에서 지금과는 다른 의미에서 ‘외로움’이 인간 조건의 일부였음을 설명한다. 페이스북과 트위터는 이런 ‘외로움’을 줄일 수 없다. 디지털 설탕처럼, 사회관계망 미디어는 순간을 만족시키는 사회적 상호작용을 할 수 있다. 하지만 만족시키지 못하는 순간이 있을 때마다 언제나 공허함을 남기기 마련이다. 이로 인해 우리는 더 외롭게 되는지도 모른다. 아마도 사회관계망 미디어가 사회적 경험의 모사만을 제공하기 때문일 것이다. 게다가 이들 미디어 자체는 사회적 경험의 편향된 사례들에 봉사하게끔 설계돼 있는 경우가 많다. 이 책의 저자들이 “우리는 끊임없이 자극받고 바쁘고 적합하고자 한다. 반면 우리의 분노와 반사적 충동은 제어되지 않을 뿐 아니라 디지털 기업에 의해 긍정된다”고 말하는 부분이 바로 이것이다.

한 번쯤 들어봤을 법한 격려의 소리가 머리를 스친다. ‘가끔씩 고개를 들어 짙푸은 하늘을 보라.’ 원로가수 조영남의 흘러간 유행가 가사도 떠오른다. ‘라디오 텔레비전도 없고/ 신문 잡지도 없고/ 전화 한 통 걸려오지 않는/ 아주 한 적한 곳에~.’ 이런 격려의 소리와 유행가 가사가 떠오르는 개인적 경험을 하는 이유는, 이 책에 담긴 ‘우리의 과거’에 대한 공부이기 때문일 것이다. 과거는 우리의 현재 삶을 살찌우는 풍부한 자양분이다. 지적으로만이 아니라 감정적인 경험의 측면에서도. 이게 이 책이 말하고자 하는 깊은 얘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기술의 노예가 아니라 이를 도우미로 삼을 수 있게 하는 삶의 지혜, 아니 사회의 지혜가 발휘돼야 한다는.

이 책은 19세기와 20세기 편지, 일기, 회고록을 검토하고 동시대 연구, 나이와 배경이 다른 미국인의 인터뷰를 살핀다. 이를 통해 우리의 감정이 기술 변화에 의해 어떻게 변형돼 왔는지를 기록한다. 저자는 미국 유타주 웨버 주립대학 웹스터 주립대학 전산학부 교수 루크 페르난데스, 같은 대학의 석좌교수 수전 J. 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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