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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갑작스런 태도 전환, 왜?
미‐중 무역협상에서 중국의 갑작스런 태도 전환, 왜?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13 13: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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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괄적 승리” 인상을 노린 트럼프 요구에 자극받았을 가능성 높아
이란산 대신 미국산 셰일석유 구매-농산물 관세의 비농산물로 이동 요구
미국에 끌려 다닌다는 중국 내 정치적 반발도 무시할 수 없어

일단 미봉으로 갈 것인가? 아니면 아예 미봉도 없이 확전으로 갈 것인가? 미‐중 무역전쟁을 둘러싼 협상이 결정적 갈림길에 섰다.

남은 기간 19일, 미봉의 가능성은?

미국 대통령 트럼프는 차기 대선을 겨냥해 '포괄적 승리'를 이뤘다는 강한 인상을 미국민들에 주려 하고 있고, 중국 주석 시진핑은 미국에 끌려 다닌다는 국내 정치적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트럼프는 차기 대선을 겨냥해 '포괄적 승리'를 거뒀다는 인상을 국내에 주려 하고,
시진핑은 미국에 끌려 다닌다는 국내 정치적 반발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다.

남은 시간은 지금부터 5월31일까지 19일이다. 미국무역대표부는 중국산 소비재 등 5700여개 품목에 대한 관세를 10%에서 25%로 올리는 방안을 5월31일 자정까지 유예한다는 내용의 수정된 연방등록고시를 곧 발표할 예정이다. 애초 발표된 5월9일 고시는 5월10일 12시 이전에 중국을 떠나 미국으로 향하는 '해상'에 있는 제품의 경우에 10%를 적용한다는 예외규정을 두었다. 수정된 고시는 항공운송 등으로 예외 범위를 더 넓히면서 명확한 마감시한을 5월31일로 확정하는 내용이다. 6월1일부터 25% 관세가 일괄 적용되는 셈이다.

시한으로 보면 6월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는 G20정상회담 이전이다. 수정된 고시는 5월 말 이전에 무역협상을 타결하고 G20 정상회담에서 서명을 하자고 트럼프 행정부가 중국에 보내는 일종의 최후통첩의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산 수입품 중 아직 관세가 부과되지 않은 품목은 53%인 3250억 달러 어치 규모다. 이에 대해 25% 관세를 부과하는 내용의 연방등록고시 절차를 밟으라는 지시도 이미 내려간 상태다.

지난 5월3일 이후 미‐중 무역협상의 분위기가 험악하게 반전됐다. 외신들은 미국 정부 소식통과 협상 관련 민간소식통들의 입을 통해 7개 장으로 이뤄진 약 150쪽 분량의 합의문 초안에서 미국의 핵심 요구 이행과 관련된 내용을 삭제했다고 보도했다. 미국 지식재산권과 무역 기밀의 절도, 강제기술이전, 경쟁정책, 금융서비스 접근, 통화가치 조작 등의 해결과 관련된 중국 국내 법률의 개정 ‘약속’을 지웠다는 것이다. 이에 트럼프는 5월5일 관세율을 5월10일부터 10%에서 25%로 올리겠다는 분노의 트윗을 날렸다는 게 정설이다.

중국, 기존 부과된 모든 관세의 철회 등 미국과 3대 이견

류허 부총리가 지난 9~10일 고위급 협상이 성과없이 끝난 뒤 밝힌 내용을 봐도, 외신들의 이런 보도내용은 실상에 상당히 가까운 것처럼 보인다. 류허는 협상을 마친 뒤 중국 관영매체들과 회견에서 미국과 3대 이견을 예외적으로 밝혔다. △합의 조건으로 기존 부과된 모든 관세의 취소 △미국산 제품의 구매 확대와 관련한 심각한 이견 △강제기술이전과 지식재산권 절도에 대한 미국 쪽 주장 수용 불가가 그것이다. “미중이 합의를 달성하려면 반드시 관세가 전부 취소돼야 한다”, “(미국산 구매 확대에 대한 견해차가) 심각하다. 쉽게 바꿀 수 없다”, “(강제기술이전에 대해서는) 양측이 스스로 원한 행위” “(지식재산권 절도에 대해서는) 국가적 절도 혐의 주장을 받아들일 수 없다”고 반박한 것이다.

그동안 협상 추이에 비춰보면, 중국의 이런 반발은 ‘의외’에 가깝다는 인상을 받게 된다.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 위원장의 지난 4월4일 언론 회견내용을 보면, 중국은 4월3~5일 고위급 협상에서 지식재산권 침해, 기술이전 강요, 미국 사이트에 대한 해킹 등을 인정함에 따라 협상이 급진전됐다. 합작사 설립을 통한 기술이전에 대해서는 지난 3월 전국인민대표자대회에서 외국인 투자와 관련된 기존 3개 법률을 통합해 새로 만든 ‘외상투자법’에서 기술이전에 대한 당사자 간 협의와 자발성 원칙, 외국인 소유지분 100% 허용 등의 내용이 포함됐다. 미국산 제품의 구매 확대와 관련한 “쉽게 바꿀 수 없는” 견해 차이도 쉽게 설명이 되지 않는다. 애초 올해부터 2024년까지 6년 간 1조 달러 어치의 미국산 제품을 더 수입하고, 이 규모를 1조2천억 달러로 늘리겠다고 먼저 제안한 것은 중국 자신이었다는 점에서다.

물론 상당한 의견 차이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합의 이행의 실효성을 보장하는 방안은 협상의 최대 난제였다. 지난 4월 3~5일 고위급협상에서도 합의 이행이 불성실할 경우 관세를 다시 부과하는 ‘스냅백’ 조항에 대해 중국이 반대했다는 소식이 있었다. 하지만 현실적인 이행강제를 위해 관세 재부과 이외에 다른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도 분명했다. 합의와 함께 중국은 이미 부과한 모든 관세의 즉각 취소를 요구한 반면, 미국은 일정한 기간이 지난 뒤 철회하자는 제안이 충돌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일정한 기간 뒤 철회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았다는 분위기가 대체로 강했다.

중국 반발 이해의 열쇠=농산물 관세의 비농산물 이동, 미국산 셰일석유 구매 확대

중국의 태도 변화를 낳은 요인으로는 미국에 너무 일방적으로 끌려 다니는 게 아니냐는 국내의 곱지 않은 눈길이 작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중국이 500억 달러 상당의 미국산 농산물에 부과한 보복관세를 비농산물로 이동해줄 것을 미국이 요청한 부분을 꼽을 수 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491). 이렇게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 배려까지 요구받는 게 협상에 저자세로 임하는 걸 보여주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중국으로서는 일종의 딜레마에 빠지게 된다. 미국산 대두 연 1천만t 추가 수입 등 농산물 수입을 늘리겠다는 약속을 지키려면 농산물 보복관세가 없어야 한다는 미국 쪽 주장을 마냥 거부하기만은 어려워서다. 여기서 벗어나는 길은 합의와 동시에 기존 부과된 관세의 전면 취소를 고수하는 것이다. 류허가 말한 합의의 조건으로서 기존 부과된 모든 관세의 취소를 말하는 게 바로 이것일 수 있다.

이미 1조2천억 달러까지 미국산 수입품을 늘리겠다고 한 마당에 “(미국산 구매 확대에 대한) 심각한” 견해 차이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이란산 원유 변수를 대입시켜보면 실마리가 잡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 4월22일 “이란의 석유 수출을 제로로 만들기” 위해 중국과 인도, 한국, 일본을 포함한 8개국에 대해 지난해 11월5일부터 올해 5월2일까지 인정한 180일 유예조치를 연장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중국의 강력한 반발이 뒤따랐다. 중국은 지난해 12월부터 이란산 원유 수입을 재개해 3월 65만 배럴, 4월 40만 배럴 등 이란 원유 수출량의 40%를 차지해 왔다. 이 상황에서 미국이 이란산 원유 대신에 미국산 셰일원유 수입량을 늘리라고 중국에 요구했고, 중국이 이를 거부했을 가능성이 있다. 셰일가스와 석유, 화석연료 에너지업계 역시 농산물 부문과 마찬가지로 트럼프의 핵심 지지기반이다.

지식재산권․기술이전 강제 등에서 중국 운신의 폭 적어

이런 두 사안에 비해 지식재산권 절도와 강제기술이전 등에서 중국이 움직일 수 있는 운신의 폭은 그리 넓지 않은 편이다. 이 사안은 미국 트럼프 행정부만의 요구가 아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과 일본 등 중국이 국제무대에서 발언권을 넓히기 위해 구애하고 있는 서방 자본주의 발전국 전체의 공통된 요구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연합, 일본 등은 국영기업을 기반으로 한 ‘사회주의 시장경제’로 불리는 중국식 경제모델의 일정한 전환을 강제하기 위해 공동 보조를 취하고 있다. 지난 5월10일 중국 외교부가 미국의 관세 인상을 반박하는 회견에서 말한 “주권”과 “존엄”을 앞세워 지식재산권 문제와 사실상의 기술이전 강제에 대해 미국과 이미 합의한 내용을 대폭 후퇴시키는 태도를 고수하기란 어려워 보인다.

지난 4월9일 유럽연합 정상회의 의장 도널드 터스크 , 집행위원장 장 클로드 융커는 중국 총리 리커창과 정상회담 뒤 채택한 공동성명에서 이런 내용을 포함시켰다.

“유럽연합과 중국은 편평한 운동장, 투명성을 보장하고 상호이익에 기반해 개방, 비차별, 공정경쟁에 관한 경제협력 구축에 헌신한다. 양측은 야심찬 ‘2020 유럽연합-중국 포괄적 투자협정’의 체결을 위해 필요한 결정적 진전, 특히 자유화 헌신과 관련된 진전을 2019년에 달성하는 데 매진한다. 높은 수준의 열망은 실질적으로 개선된 시장접근, 외국인 투자자에 영향을 주는 차별적 요건과 관행의 폐지, 균형잡힌 투자보호의 틀 확립, 투자와 지속가능 성장에 과한 조항의 포함에 반영될 것이다.”

남은 19일 동안 미‐중 무역협상이 일단 미봉의 합의를 볼 것인지, 확전으로 치달을 것인지는 차기 대선을 염두에 둔 트럼프가 절실히 얻으려는 “포괄적 승리”의 인상을 계속 챙기려고 할 것인지에 달려있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아 보인다. 미봉의 열쇠는 트럼프가 기존 부과된 모든 관세의 철회, 이란산 원유의 수입 예외 연장과 미국산 셰일석유 수입의 병행 쪽으로 한 발 물러날 수 있는지에 있다. 하지만 1분기 3%대 성장을 기록하며 미국 경제는 2009년 6월부터 시작된 경기확장 국면을 계속하고 있다. 올해 7월이면 기존 120개월 확장기록을 갈아 치운다. 자신만만한 트럼프가 확전을 해도 나쁘지 않다는 계산을 할 법하다.

그동안 협상 과정에서 중국은 국가 주도하는 자신의 경제모델을 전면 변형하는 데까지는 아니더라도 상당한 양보를 할 준비가 있음을 내비쳐 왔다. 최근 급속한 경기둔화 우려가 진정되고 지난 4월 제2회 포럼에서 일대일로 구상 참여의사를 밝힌 나라가 애초 63개에서 130여개로 늘어났다는 건 중국으로서는 매우 고무적인 일이다. 그럼에도 이에 힘입어 그동안 밝혀온 양보 의사를 전면 뒤집고 미‐중 무역전쟁의 확전으로 가려는 채비를 하기엔 성급하다. 단기적 경기둔화 우려는 가셨는지 모르겠으나, 중국 경제가 안고 있는 과잉 기업부채 위험은 더 커지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본격화한 확장적 ․통화정책으로 인해 공식적으로만 국내총생산의 160%에 이르는 비금융기업의 부채는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중국을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견제하는 정도에서 ‘중국에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미국 민주당이 트럼프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다는 사정도 확전으로 가기 어렵게 하는 요인이다. 미국 국채 매각도 행사할 수 있는 선택지가 아니다. 행사하는 순간 가격 하락으로 중국 역시 엄청난 국부의 손실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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