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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수소 경제인가 수소차 경제인가
이것은 수소 경제인가 수소차 경제인가
  • 오민규 노동자운동 연구공동체 ‘뿌리’ 연구원
  • 승인 2019.05.13 14: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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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르노, 수소차가 아니라 전기차에 좀 더 집중하기로
수소로 변환하기 전의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시켜 전기차를 구동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
재생에너지에서 남는 전기를 수소로 변환시켜두는 수준에서 수소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합리적

지난해 8월 13일 김동연 경제부총리 주재로 혁신성장 관계장관회의를 열고 위와 같은 「혁신성장 전략투자 방향」을 발표했을 때만 해도 문재인 정부가 뭔가 실수를 한 것이라 생각했다. 아니, 전략투자 분야에 어떻게 ‘수소경제’가 포함되었을까? 게다가 수소경제가 어떻게 ‘플랫폼 경제 구현’이야? 에이, 오타가 난 거겠지.

하지만 내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그래, 대한민국의 기획재정부가 어떤 곳인데 이런 하찮은 실수와 오타를 허용하겠는가. 5개월 뒤인 올해 1월 17일, 울산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은 다음과 같은 얘기를 하며 무려 ‘수소경제 로드맵’을 발표하게 된다.

“수소경제는 에너지원을 석탄과 석유에서 수소로 바꾸는 산업 구조의 혁명적 변환입니다. 2030년 수소차와 연료전지에서 모두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하는 것이 우리의 목표입니다.”

그 뒤로 수소차·수소경제에 대한 엄청난 논쟁들이 시작되었다. 때로는 수소차 진영과 전기차 진영으로 나뉘기도 하고, 때로는 환경주의가 쟁점이 되기도 했으며, 열역학·전(자)기공학에 대한 얘기들도 쏟아졌고, ‘수소경제’라는 담론답게 경제학적 관점에서 다뤄진 글들도 여러편 쏟아져 나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수소차이건 수소경제이건 장기적 안목을 갖고 연구와 투자가 필요하다는 점에 동의한다. 하지만 이걸 마치 3~4년 안에 모종의 성과를 내기 위해 지금부터 단거리 내지 중거리 경주를 하듯 달리는 건 매우 위험하다. 수소경제는 마라톤을 하듯 앞으로 내달릴 코스부터 점검하고 페이스와 호흡을 조절하며 장거리 레이스처럼 다뤄야 한다.

그런데 문재인 정부는 벌써부터 ‘규제 샌드박스 1호’로 수소 충전소를 선정해야 한다는 둥 앞서나가도 한참 앞질러가고 있다. 저런 페이스로 과연 얼마나 더 뛸 수 있을까? 그럴 때마다 수소차와 수소경제를 옹호하는 분들의 경력에 오버랩 되어 있는 특정 기업이 떠오르곤 한다. 그래, 대통령이 로드맵을 발표한 울산 그곳에 위치한, 수소차에 올인 하고 있는 그 기업 말이다.

우선 간단한 오해부터 풀고 갑시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알마광장 인근 수소 충전소를 방문해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인 '투싼'을 운행하는 택시기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해 10월 14일 오후(현지시간) 프랑스 파리 알마광장 인근 수소 충전소를 방문해 현대자동차의 수소전기차인 '투싼'을 운행하는 택시기사와 대화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작년 10월에 문재인 대통령이 프랑스에 방문했을 때 파리의 택시운전사(!) 한 분이 수소충전소에서 연료전지차에 충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는 위 사진은, 수소경제와 수소차 관련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자료 사진이다. 아마도 파리 도심에 설치된 충전소를 보여줌으로써 수소차·충전소의 안전성을 입증할 목적이 함께 붙어 있으리라.

그래, 일단 이 지점은 오해를 풀고 가도록 하자. 대중교통에 수소차를 도입하자는 말에 “안정성도 검증 안 된 수소차 아닌가”라는 반응도 있다. 하지만 그건 대부분 오해에서 비롯된 것이다. 수소차는 수소 핵융합이나 폭발 원리가 아니라 수소와 산소를 반응시켜 전기를 얻는 발전 원리를 사용한다. 수소를 활용한 발전 과정에 폭발이 개입될 여지는 거의 없다.

오히려 ‘폭발’은 내연기관의 특징이다. 휘발유를 연료로 하는 4행정 기관의 작동은 ‘흡입-압축-폭발-배기’, 즉 혼합가스를 흡입해 압축한 뒤 점화장치에 스파크를 일으켜 혼합가스를 폭발시키면 그 힘으로 피스톤이 상하운동을 하는 원리이다. 즉, 내연기관은 작은 규모의 폭발을 끊임없이 만들어 피스톤과 바퀴를 움직인다.

먼 미래에 태양처럼 수소 핵융합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게 될 날이 오게 될지도 모르겠지만 현재 시점에서 그건 연구단계에 불과하다. 지금 논의되는 수소경제는 물이나 메탄가스 등에 충분히 들어 있는 수소를 추출해 전기에너지의 원료로 사용하자는 취지이다.

전기차에 집중하는 프랑스 대표기업 르노

하지만 청와대의 홍보 욕심은 딱 거기까지였으면 좋을 뻔했다. 문재인 정부는 프랑스의 수소 생산기술과 한국의 연료전지차 생산을 연계시키자는 데까지 논의를 진척시킨다. 수소경제 로드맵 발표 직후인 2월 중순, 정부는 프랑스와 함께 ‘한-불 산업협력위원회’를 열어 수소경제와 스타트업 협력 확대를 논의하게 된다.

여기서 고개가 잠시 갸우뚱~ 거려진다. 프랑스 하면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들이 즐비하다. 우선 글로벌 판매량 1~2위를 다투는 르노-닛산 연합(alliance)의 핵심인 르노자동차가 있고, 최근 GM의 유럽사업부 오펠(Opel)을 인수한 PSA(푸조-시트로앵)도 있다. 특히 르노-닛산은 ‘로그(Rogue)’라는 전기차로 꽤 많은 판매량을 기록한 전기차 부문 강자이다.

그렇다면 이쯤에서 당연한 질문 하나쯤 해봐야 한다. 한국의 현대기아차가 연료전지차 생산에 엄청난 투자를 하고 있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프랑스는 무슨 이유로, 또는 어떤 능력이 있어서 수소 생산기술에 투자를 한 것일까? 그리고 프랑스에 수소 생산기술이 확보되어 있다면 프랑스의 대표적인 완성차업체들도 수소 연료전지차 생산에 열을 올려야 정상 아닐까?

하지만 현실은 정반대다. 세계 유수의 업체들이 수소차의 가능성을 타진하기 위해 (혼자 올인 하면 독박을 쓰기 쉬우니) 관련 기술을 가진 업체와 일종의 ‘수소차 동맹’ 같은 전략적 제휴를 맺곤 한다. 르노·닛산 역시 다임러·포드와 연료전지차(수소차) 동맹을 맺은 바 있는데 작년에 거기서 떨어져 나왔다. 이유는 간단하다. “전기차에 좀 더 집중하기 위해서”

르노 자본이 프랑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든 것일까? 대자본이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건 흔히 볼 수 있는 일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르노의 경우엔 그게 불가능하다. 프랑스 정부는 르노의 지분 15%를 소유한 1대 주주이다. 감히 1대 주주의 뜻에 반하는 의사결정을 하고 그걸 밀어붙인다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수소생산기술을 갖고도 수소차에 올인하지 않는 이유

프랑스 정부와 르노 자본의 특수관계를 안다면, 르노 자본이 프랑스 정부 정책에 반기를 드는 일은 쉽게 상상하기 어렵다. 르노는 수소차가 아니라 전기차에 좀 더 집중한다고 한다. 수소차에 올인하는 특정 업체가 있는 한국 정부가 갑자기 수소경제를 하겠다고 나선 것과는 사뭇 다른 태도가 아닌가.

따라서 우리가 진짜 관심을 갖고 봐야 할 점은 파리 도심에 수소충전소가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프랑스가 수소생산과 관련한 수준 높은 기술과 인프라를 갖추고도 왜 수소차에 올인 하지 않느냐 하는 점을 살펴봐야 한다.

아니, 그건 그렇다 치고 정부가 민간기업의 1대 주주가 되는 그런 일이 어떻게 가능하냐고 묻는 독자들이 있을 수도 있겠다. 그것도 르노 자동차는 폭스바겐·토요타와 글로벌 톱 1~2위를 다투는 완성차업체 아닌가.

여기에는 오래된 역사가 놓여 있다. 2차 대전 당시 르노 자본은 나찌 괴뢰정권에 부역한 죄로 전쟁 직후 프랑스 정부에 의해 무상몰수 방식으로 국유화된다. 자본주의 체제에서 무상몰수라니, 이 무슨 불경한 소리란 말인가! 하지만 사실이다. 수십 년이 지나 민영화의 길을 밟았지만 여전히 정부가 르노 자본의 1대 주주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반대로 PSA는 괴뢰정권에 저항하는 레지스탕스를 지원해 전쟁 직후 독립적인 경영권을 보장받은 바 있다. 하지만 PSA에도 프랑스 정부는 14%의 지분을 보유해 푸조 가문에 이어 2대 주주 자격으로 경영에 개입한다. 한때 중국의 둥펑 자동차가 PSA 지분을 대거 매입해 대주주가 되려 한다는 소식이 떠돌자 프랑스 정부가 지분 방어에 나서겠다고 밝힌 적도 있다.

르노는 닛산 지분의 51%를 소유한 사실상의 지배기업이다. 최근 프랑스 정부는 르노가 실질적인 닛산 경영자가 되라고 요구했다. 일본 정부와 닛산 자본은 곧바로 반발했다. 누구의 판단이 옳은가 하는 점은 논란이 될 수 있겠지만 이 과정 자체가 놀랍지 않는가? 프랑스 정부는 르노 자본의 1대 주주로서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하고 있으니 말이다.

우주의 75%가 수소? 우주 공간 대부분은 진공 상태

우리가 알고 있는 한 수소는 원소기호 1번으로 우주에 존재하는 원소 중 가장 가벼운 것이다. 가장 기초적인 원소라는 얘기인데, 수소경제를 주창하는 분들은 우주 구성물질의 75%가 수소라는 주장을 펼치기도 한다. 새로운 우주 상식을 가르쳐준 점은 고맙지만 왜 다른 상식은 알려주지 않을까? 우주 공간의 대부분은 진공 상태라는 사실을 말이다.

지구를 제외한 다른 행성들의 표면은 수소와 헬륨으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지구와 그 행성 사이는 진공 상태이기 때문에 우주 구성물질의 75%인 수소를 우주에서 구하려 하면 다른 행성까지 가야 한다. 설마 지금 우주까지 나가서 수소를 채취해 오자는 주장은 아니지 않는가?

또 한 가지 상식이 필요하다. 지구에 존재하는 대부분의 수소는 다른 원소와 결합된 형태로 존재한다. 대표적인 게 산소와 결합한 물(H2O)이나 메탄(CH4) 가스인데 바로 이게 문제다. 다른 화합물에서 수소를 추출해내야만 전기를 만들 수 있는 수소를 얻게 되는데 그 추출작업이 생각보다 비용과 에너지가 많이 들어간다는 것.

물에 전기작용을 가하면 수소가 분해되어 나오는데, 그걸 추출해서 다시 산소와 반응시켜 나오는 전기를 사용한다? 그러느니 애초에 수소 분해에 사용한 전기를 사용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게다가 산소와의 반응 과정에 촉매로 사용되는 백금(Pt) 가격은 엄청나게 비싸다. 이렇게 전기를 만든다는 건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일이다.

전기와 수소는 친환경이지만 원료는 화석연료?

효율이 떨어지더라도 그게 그린(Green) 에너지라면 생각해볼 필요가 있다. 하지만 전기분해에 사용되는 전기는 어디에서 나올까? 대부분 원자력이나 석탄·석유를 태워서 만든다. 이게 도대체 무슨 수소경제란 말인가. “전기는 국산이지만 원료는 수입입니다”라는 한국전력의 카피 문구를 떠올리게 한다. 수입되는 원료가 바로 석유 아니던가.

전기는 친환경인 것처럼 보이지만 전기를 만드는 방법이 화석연료를 태우는 것이라면 이산화탄소와 온실가스 배출은 절대 줄어들지 않는다. 수소라고 다르겠는가? 태양력·풍력·수력을 비롯한 실제 친환경 재생 에너지가 주력이 되지 않는 한, 수소경제는 탄소경제·원자력경제의 노예가 되고 말 것이다.

요즘 수소경제 전도사를 자임한 산업자원통상부 정승일 차관은 부생수소(석유 정제과정에서 발생하는 수소 등)를 사용하자는 얘기도 한다. 하지만 거기서 나오는 수소는 이미 다른 용도로 쓸모가 있어서 추출하는 것들이다. 수소차 등에 사용하고자 해도 수소를 압축해서 운반하는 과정에 불가피하게 손실이 발생한다.

천연가스나 갈탄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방법도 있으나, 추출과정에 부산물로 온실가스가 배출된다는 불편한 진실을 무시해선 안 된다. 정승일 차관은 외국에서 수소를 수입하는 방법도 있다고 얘기하는데, 이쯤 되면 저 양반에게 꼭 물어봐야 할 것 같다. 에너지 안보 쟁점은 차치하더라도 말입니다. 차관님께 중요한 건 친환경인가요, 아니면 수소인가요?

‘수소경제’ 말고 ‘수소차 경제’ 하자는 얘기?

풍력·수력·태양열 등 재생 에너지의 특징은, 필요할 때 전기를 만들고 필요 없을 땐 발전을 중단하는 시스템이 아니라는 거다. 물 들어올 때, 바람이 세차게 불 때, 햇볕이 쨍쨍 내리쬘 때 무조건 최대치의 전기를 발생시켜둬야 한다. 하지만 만들어놓은 전기를 그때그때 다 쓰진 못하므로 조금씩은 남기 마련이다.

이럴 경우 수소가 에너지 저장창고 역할을 할 수는 있다. 분해 또는 반응 과정을 통해 전기는 수소로, 수소는 다시 전기로 상호 변환이 가능하다. 남는 전기 에너지를 수소로 변환해 저장해둘 수 있다는 것은 분명한 장점이다. 화석연료나 원자력은 전기나 열에너지로 한번 만들어지고 나면, 다시는 석탄·석유 또는 우라늄으로 되돌아갈 수 없으니 말이다.

바로 이 점 때문에 이른바 ‘원전 마피아’들까지 나서서 수소경제를 옹호한다. 원자력발전소 역시 껐다 켰다 맘대로 할 수 있는 장치가 아니다보니 아무래도 전기가 남기 때문이다. 이걸 활용해서 수소를 만들자는 건데 이거야말로 ‘친환경’의 명분으로 인류를 위기로 몰아넣는 주장이다. 수소경제가 곧 친환경이라고 등치시킬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같은 이유로 ‘수소경제’와 ‘수소차 경제’를 혼동해선 안 된다. 수소경제가 (효율을 떠나) 진정한 의미를 가지려면 수소 생산과정에 재생 에너지가 쓰여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지금 주장하는 바는, 수소차 대중화를 위해 출처 묻지 말고 무조건 수소만 많이 만들면 된다고 덤비는 식이다. 이건 엄밀히 말해 수소경제가 아니라 ‘수소차 경제’에 다름 아니다.

현재 유의미하게 생산할 수 있는 수소의 양은 매우 작다. 물론 수소 생산을 지상 목표로 삼는다면 원자력과 화석연료 태워 전기 만들고 수소로 변환할 순 있겠지만 그건 누가 봐도 미친 짓 아닌가. 그럴 거면 차라리 수소로 변환하기 전의 전기로 배터리를 충전시켜 전기차를 구동시키는 게 훨씬 효율적이다. 르노가 괜히 전기차에 집중하겠다고 했을까.

인류가 이 문제를 해결할 기술을 보유하기 전까지는, 재생에너지에서 남는 전기를 수소로 변환시켜두는 수준에서 수소경제를 도입하는 것이 훨씬 합리적이다. 앞선 수소 생산기술을 보유하고도 프랑스 정부나 르노자동차가 수소차에 올인 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렇다면 수소경제를 위해 전력을 다해야 하는 부문은 수소차가 아니라 재생에너지다. 수소차를 위해 수소 수입도 불사하겠다는 한국 정부와 달리, 프랑스 정부는 재생에너지로 생산된 수소를 사용할 수소차 수십 대를 한국에서 수입한다. 문재인 정부에게도 한번 물어보자. 지금 하려고 하시는 게 수소경제인가요, 수소차 경제인가요?

수소차의 장·단점

그럼 ‘수소차’ 분야에 기술 발전과 투자를 하는 게 어리석단 얘기인가? 아니다. 앞에서 수소경제의 장점을 얘기한 것처럼, 수소차에도 분명히 장점이 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1회 충전시 주행거리 부문이다. 물론 배터리 전기차 기술의 발전으로 주행거리가 꽤 늘긴 했으나 아직 수소차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다.

이점에서 수소차의 장단점은 배터리 전기차의 장단점과 엇갈린다. 수소차도 전기차의 일종이긴 하지만 구동원리가 배터리 전기차와는 큰 차이가 있다. 배터리 전기차는 에너지를 배터리에 저장해놓고 사용하지만, 수소차는 에너지의 원료인 수소를 저장해놓고 산소와 반응해 전기를 만들어 사용한다. 즉 전기차는 배터리를, 수소차는 발전소를 싣고 다닌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다보니 전기차는 1회 충전시 주행거리를 늘리기 위해 차량 무게를 줄이는 것이 중요한 기술혁신의 과제가 된다. 대부분의 업체가 소형차를 모델로 전기차를 출시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런데 배터리 전기차만큼 작은 수소차를 본 적 있는가? 아무래도 작은 발전소를 실어야 하니 대부분의 수소차는 최소한 중대형 SUV 규모이다.

이 대목에서 전기차 전문업체인 ‘테슬라(Tesla)’는 발상의 전환을 한다. 어차피 전기차를 구매할 수 있는 소비자는 부자 아니던가. 그렇다면 차라리 대형차 밑바닥에 노트북 배터리를 대규모로 깔아놓고 주행거리를 최대한 늘리는 길을 선택한 것이다. 차량 가격이 엄청 높아지고 무게도 무거워지긴 하지만, 1회 충전시 주행거리는 오히려 소형차보다 2배 가까이 늘어났다.

그렇다면 수소차에도 발상의 전환을 시도해볼 가치가 있다. 주행거리가 길다는 장점이 있는 반면, 발전소를 싣고 다녀야 하니 차체 크기를 줄이기가 어렵다. 그럼 굳이 작은 차에 수소차 시스템을 적용하지 말고 차라리 대형차에 적용하면 어떨까? 차체 크기를 키워서 오히려 작은 발전소가 아니라 큰 발전소를 싣고 다니면 되는 게 아닌가 말이다.

대중교통에 수소차를 도입하면 교통문제도 해결

그렇다면 이런 상상력은 어떨까. 마을버스·시내버스·고속버스 등 대중교통 분야에 수소차를 적용하는 거다. 이 분야는 운행이 매우 규칙적이고 계획적이라는 장점이 있다. 특정한 노선이 정해져 있고, 노선 1회 운행거리도 일정하다. 그렇다면 상암동 수소충전소 인근에 노선버스 종점들을 만들어 놓고 운행을 마친 버스들 충전에 활용하면 매우 합리적인 대중교통 운행이 가능하다.

상암동의 경우 근처 쓰레기 매립장에서 발생하는 메탄가스(CH4)에서 수소를 추출한다. 분자식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메탄가스는 상당히 많은 수소를 품고 있다. 메탄가스를 구하는 과정 자체가 친환경적이라는 얘기다. 물론 추출과정에 전기에너지가 필요하긴 하지만, 만약 그 전기에너지를 수력·풍력·태양력 등 재생에너지로 사용할 수만 있다면?

그렇다면 일단 수소를 생산하는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 저렴한 에너지 가격은 저렴한 대중교통 가격으로 이어지는 토대를 제공해줄 것이다. 차량과 운전기사가 교대로 운행을 하는 노선버스의 특성을 활용하면 차량에게는 안정적인 수소 충전시간을, 그리고 운전기사에게는 충분한 휴게시간을 확보해줄 수 있다.

수소차를 승용차처럼 보급하려면 서울 시내에만 수백 개의 충전소를 지어야 하지만, 노선버스에만 보급하겠다고 마음먹으면 몇 군데 거점에만 설치해도 충분하다. 저렴한 에너지 가격을 토대로 버스요금을 낮추거나 무상버스 개념을 도입한다면, 지금처럼 엄청난 규모의 승용차가 거리로 쏟아지는 현상을 조금이나마 줄일 수 있다.

1회 충전시 충분한 주행거리가 나오니까 고속버스에도 적용이 어렵지 않다. 이 경우에도 충전소 숫자가 많이 필요하지 않다. 고속버스와 노선버스에만 수소차를 적용한다고 하면, 매일 필요한 수소의 양도 측정 가능하다. 그만큼의 수소를 재생에너지로 추출해 낸다는 계획은 충분히 실현 가능한 영역의 일이다.

재생 에너지로 수소를 생산함으로써 환경 문제도 해결하고 공공요금도 줄일 수 있다. 대중교통 활성화로 고용과 일자리도 늘리고, 출퇴근 시간만 되면 주차장이 되어버리는 교통정책에도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이러한 기술에 투자를 늘리지 않을 이유가 없고, 시간이 갈수록 기술 발전도 가속이 붙는 선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이게 바로 진짜 수소경제의 의미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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