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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화 가치 방어, 외통수에 몰린 중국
위안화 가치 방어, 외통수에 몰린 중국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27 13:4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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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0월과 올해 5월이 다른 점
그때 있던 연준 금리 인상, 지금은 없다!

윌버 로스 미국 상무부 장관이 지난 5월23일 이른바 ‘통화 보조금’에 대해 밤덩핑․상계관세를 부과하는 방안을 이른 시일 안에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화에 대해 자국 통화 환율을 낮게 유지해 경쟁 우위를 누리려는 행위에 대해 관세 인상 카드를 다시 꺼내든 것이다. 여기에는 그동안 트럼프 행정부가 내비쳐온 환율조작국 정의 완화가 포함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동안은 절대 규모로 대미 무역흑자가 200억 달러를 넘고 상대 규모로 경상수지 흑자폭이 국내총생산의 3%를 넘고 지속적인 외환시장 개입을 통해 자국 통화의 가치를 낮게 유지하는 행위 3가지를 모두 만족할 때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했다. 3가지 모두에 해당하지 않으면 관찰대상국으로 지정했다. 완화의 방향은 크게 두 가지다. 어느 한 가지에만 해당해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식으로 완화시키는 게 하나요, 무역흑자폭과 경상수지 흑자폭의 절대 규모와 상대 규모를 낮추는 게 다른 하나다.

관세전쟁 수단으로 등장한 미국의 환율조작과 ‘통화 보조금’ 프레임

트럼프가 시진핑을 외통수로 모는, 관세전쟁 효과 배가의 환율전쟁 카드를 빼들었다.
트럼프가 시진핑을 외통수로 모는, 관세전쟁 효과 배가의 환율전쟁 카드를 빼들었다.

이른바 ‘통화 보조금’에 대한 관세 부과 계획 발표에 가슴을 쓸어내리는 나라들은 미국을 상대로 상당한 무역흑자를 기록하고 있는 중국, 독일, 일본, 네덜란드, 한국 등을 꼽을 수 있다. 물론 미‐중 무역전쟁이 고조되고 있다는 사정을 감안하면, 이번 발표의 칼끝이 주로 중국을 겨냥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그렇다고 해도 다른 나라들도 단지 ‘좌불안석’의 정도 차이만 있다고 봐야 할 듯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2016년 대통령선거에서 ‘중국이 환율조작을 통해 미국 제조업의 일자리를 지난 10여년 간 빼앗아 왔다’라는 선거운동을 통해 집권했다. 다른 나라에 의한 ‘환율 조작’은 트럼프 행정부의 간판이었다. 트럼프 행정부 출범과 함께 지속가능한 국제통화․환율체제 구축에 대한 기대가 있었던 이유도 이런 배경에서였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의 간판이었던 환율조작 구호는 일방적 ‘관세 부과’에 자리를 내줬고, 관세 전쟁 와중에서 보조적인 축으로 자리를 잡았다. 환율조작국 정의 완화 움직임, 이번에 발표된 ‘통화 보조금’ 프레임과 이에 기초한 반덤핑․상계관세 부과 계획 발표가 이런 맥락에 있다.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우는 식의 환율조작국 정의와 ‘통화 보조금’ 프레임의 정당성은 상당히 취약하다. 무엇보다 미국은 앞서 언급한 나라들과만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2018년에만 102개국에 이른다. 교역하는 거의 모든 나라들과 무역적자를 기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인위적인 환율 조작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뭔가 다른 구조적인 설명이 있어야 한다. 그 중의 하나는 미국이 소득에 비해 너무 많이 소비하고, 이에 따라 국내 저축이 심각하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이른바 ‘제국의 과소비’다. 이는 미국의 정부부채 증가로 나타난다. 2017년 12월 통과된 트럼프 행정부의 감세안이 이를 더 악화시켰다는 건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거의 모든 나라와 무역적자 기록하는 미국, 환율조작만으로 설명 안 돼

달리 말하면, 미국의 무역적자 누적에는 미국 자신의 책임도 상당 부분 작용한다는 것이다. 이걸 바로잡지 않은 채 환율조작 프레임만을 가동하는 것은 힘의 논리에 따라 다른 나라에 모든 책임을 떠넘기는 행위에 해당한다. 무역적자국과 무역흑자국이 동등하게 글로벌 불균형을 해소하는 책임을 나눠지는 방향과는 거리가 한참 멀다는 얘기다.

중국과 관련해서 환율조작국과 통화 보조금 프레임의 정당성은 한층 더 애매모호해진다. 중국이 2001년 12월 세계무역기구 가입과 함께 대미 무역흑자가 급증했음은 분명하다. 문제는 중국의 대미 수출품 중 줄잡아 35~40%가 중국 이외의 나라에서 만들어진 부품이 중국에서 조립돼 미국으로 수출되는 것들이라는 점이다. 중국에 조립해 수출하는 기업들에는 보잉이나 애플 등과 같은 미국 기업들도 수두룩하다. 트럼프 정부가 말하는 ‘통화 보조금’을 누리는 기업들은 중국 기업들만이 아니라 미국 기업들도 상당수 포함된다는 얘기다.

실상은 이렇게 복잡하다. 하지만 중국 정부가 위안화 환율을 전략적으로 관리하며 경쟁우위를 누려 왔다는 데에는 일종의 합의가 형성돼 있다. 이런 주장에 중국 쪽은 반발하지만 약발은 그리 잘 먹히지 않는다. 달러화에 고정된 고정환율제에서 벗어나 2015년 달러를 포함한 13개 통화로 구성되는 통화바스켓, 2016년 통화바스켓 구성을 24개 통화로 늘리는 등 변동환율제로 전환하는 외형적 변화에도, 위안화 연동의 핵심 축은 여전히 달러화라는 의혹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떨쳐지지 않는 의혹, 여전히 달러화에 연동된 중국 위안화 가치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 추이(자료: 한국은행)
달러화 대비 위안화 환율 추이(자료: 한국은행)

실제로 한국은행이 5월26일 발표한 ‘최근 미국의 대중국 관세율 인상이 중국 수출에 미치는 영향’을 보면, 미국이 2천억 달러 어치 상당의 품목에 관세 10% 관세가 발효한 직후인 10월 달러화 대비 위안화 가치는 전년 동기 대비 5%가 하락했다. 그만큼 위안화 환율이 오르면서 관세 인상분을 흡수하는 효과를 누린 것이다. 이미 이때에 월스트리트저널 등 미국 언론들은 관세 부과의 부작용을 흡수하기 위해 중국이 200억달러 규모 이상의 외환시장 개입이 있었다고 보도했다. 개입의 배경으로는 2천억 달러 관세 부과 품목에서 소비재가 차지하는 비중이 21%나 된다는 점이 꼽혔다. 이전에 25% 관세가 부과된 500억 달러 어치 품목에서 소비재 비중은 5%에 불과했다. 관세 부과 충격을 감당하지 못하는 중국 소비재 수출기업들의 보호를 위해 위안화 가치를 낮춰줬다는 것이다.

그때 중국의 외환시장 개입은 정당화시킬 수 있는 상당한 근거가 있었다. 대표적인 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의 금리 인상 랠리였다. 연준은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3월, 6월, 9월 세 차례나 기준금리를 0.25%포인트씩 올렸다. 연준이 양적 완화를 종료하고 통화정책의 정상화를 위해 금리를 올려나가는 이런 모습은 달러 가치 상승을 불렀다. 위안화 가치가 하락 압력을 받게 되는 것은 물론이다. 위안화 가치 하락은 중국이 아니라 미국의 금리 인상 탓이라는 방어가 가능했던 것이다.

문제는 지금은 지난해 10월이 아니라는 점이다. 연준은 올해 초부터 기존의 금리 인상 계획을 수정하겠다는 뜻을 일찌감치 발표했다. 미‐중 무역전쟁의 상황을 지켜보며 연준이 금리를 내릴 가능성까지 있다는 관측도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미‐중 무역전쟁과 이에 따른 직․간접적 영향을 제외하면 달러화 가치가 상승하거나 위안화 가치가 하락할 이유는 없다는 얘기다.

트럼프, 중국에 대해 ‘관세율 인상 효과 배가-외환보유액 낭비’ 일석이조 효과

이런 측면에서 궈수칭 은행보험감독관리위원회 주석 겸 중국인민은행 당서기가 25일 ‘칭화 PBCSF 글로벌 금융 포럼’ 개막사에서 “이달 들어 위안화 가치가 급락한 것은 미국이 무역 마찰을 부추겨 시장 심리에 영향을 줬기 때문”이라는 반박을 따져보자. 실상 아무런 내용도 없다. 미국 때문에 위안화 가치가 하락한 것이지 중국이 외환시장에 개입해 위안화 가치를 내린 게 아니라는 얘기를 하는 것일 테지만, 이는 합의 분위기가 무르익던 판을 누가 깼냐는 물음과 떼려야 뗄 수가 없다. 미국 경제가 여전히 견실하고 중국이 무역협상 타결의 순간에 선회를 했다는 인식이 퍼져 있는 상황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직․간접적 영향’은 중국 외환당국이 위안화 가치 하락을 용인하는 게 아니냐는 쪽으로 무게가 쏠리게 된다는 얘기다.

미국이 5월23일 발표한 환율조작국 지정과 통화 보조금 프레임 가동 계획은 바로 중국이 놓인 이런 상황을 정확히 겨눈 것에 해당한다. 소비재가 21%나 포함돼 있는 2천억 달러 어치 품목의 관세가 10%에서 25%로 높아질 경우, 중국 소비재 수출기업들은 상당한 타격을 받는다. 수출은 줄어들고 이윤마진은 쪼그라들게 된다. 위안화 가치가 절하되면 지난해 10월 때처럼 기업들이 받을 충격의 일부를 흡수하게 된다. 중국 정부는 ‘달러당 7위안’ 이상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향을 줄곧 내비쳐 왔다. 외환시장 세력은 이달 들어 위안화 가치 하락에 베팅을 해 왔다. 이걸 방어하는 데 그동안 상당한 외환보유액을 사용했을 것이다. 결국 중국 인민은행은 5월27일 위안화 전 거래일보다 0.1%(0.0069위안) 내린 달러당 6.8924위안으로 환율을 고시했다. 앞으로 이걸 방어하는 데 중국 외환당국은 상당한 외환보유액을 사용할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관세율 인상의 효과가 배가됨과 동시에 중국의 외환보유액이 줄어드는 ‘일석이조’ 효과를 거두고 있는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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