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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재무부 환율조작 보고서에 담긴 '이중 잣대'
미국 재무부 환율조작 보고서에 담긴 '이중 잣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5.30 17:4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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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 미국은 없고, 다른 나라들은 있다!

어떤 상황에 동일한 기준을 일관되게 적용하지 않을 때 이중 잣대, 고무줄 잣대, ‘이현령 비현령’(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위선이라고 부른다. 지난 5월28일 미국 재무부가 발표한 ‘주요 교역국의 거시정책과 환율정책 보고서’를 읽다 보면, 이 표현을 자연스레 떠올리게 된다. 미국에 우호적인 생각을 지닌 사람이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 부분과 관련해서다. 몇 가지만 예를 들어보자.

“어떤 구조적 요인들이 싱가포르의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하고 있는 상황에서, 싱가포르는 높은 저출률을 낮추고 낮은 국내소비를 진작하는 개혁에 착수해야 한다.”(7쪽)

“(미국 재무부는)…가계소비 증진, 높은 저축률 하향 조정, 투자에 치우친 경제의 재균형을 위한 거시경제 개혁 실행(을 중국에 촉구한다).”(21쪽)

“(국내총생산의 7.4%에 이르는 독일의 경상수지 흑자는) 독일의 경제정책들이 높은 국내저축, 낮은 소비와 투자로부터 비롯하는 대외불균형을 시정하지 못해 왔음을 시사한다.”(28쪽)

“말레이시아의 총저축률은 2008년 국내총생산의 38%에서 2018년 26%로 하락했다 … 효율적이고 제대로 겨냥한 사회지출을 계속 늘리는 것이 과도한 수준의 예방적 저축을 피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33~34쪽)

미국 GDP 대비 총저축률 추이(단위; %)
미국 GDP 대비 총저축률 추이(단위; %)

이번에 새로 명단에 이름을 올린 싱가포르와 말레이시아를 포함해 네 나라 모두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이다. 이들 나라의 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이 높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어떤 경우에는 경상수지 흑자에 기여하는 구조적인 요인으로까지 높은 저축률이 언급된다. 참고로, 국내총생산 대비 중국의 2018년 국내 총저축률은 45%(2008년 52%), 독일의 2019년 1분기 국내 총저축률은 29%(전년 동기 25.9%), 2011년 이후 싱가포르의 평균 국내 총저축률은 46%이다.

그럼 문제는 미국의 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이나 상관관계는 없느냐는 것이다. 미국이 무역적자를 기록하는 나라는 2018년에만 102개국에 이른다. 교역하는 거의 모든 나라를 상대로 적자를 본 것이다. 하지만 트럼프 행정부 아래에서 들려오는 건 이번 보고서가 상징하는 ‘환율조작을 하는’ 남들 탓이라는 얘기뿐이다.

하지만 이 보고서에서 다른 나라에 적용한 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이라는 잣대는 미국 자신에게도 적용되는 것이 옳다. 2018년 미국의 국내 총저축률은 17.5%다. 34.8%인 우리나라의 절반 수준으로 낮다. 최근 40년 동안 가장 높았던 1981년의 경우에도 23.2% 정도였다. 문제는 트럼프 행정부 들어 국내 총저축률이 더 떨어졌다는 점이다. 오바마 행정부 두 번째 임기 때 평균 18.3%이던 게 2017년과 2018년 평균 17.5%로 하락했다. 0.8%포인트가 하락한 것이다. 2017년 19조4천억달러인 국내총생산을 기준으로 0.8%를 환산하면 약 1550억달러(약 294조8800억원)이다.

국내 총저축률 하락의 장본인은 2017년 말 트럼프 행정부가 시행한 대규모 감세가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는 이 감세를 통해 미국 경제가 여전히 3%를 웃도는 성장을 하고 있다고 내세운다. 지금 미국 재무부 홈페이지 대문에 들어가면 이를 홍보하는 내용으로 가득하다. 하지만 거의 바닥 수준에 있는 미국의 국내 순저축률은 이 기간 동안 3%에서 2.8%로 더 쪼그라들었다. 경제가 성장을 하면 세수가 느는 게 보통인데, 국내 순저축률이 줄었다는 건 세수 증가분을 상쇄하고도 남을 만큼 감세 규모가 컸다는 얘기다. 0.2%포인트를 환산하면 약 388억달러(약 77조1천억원)이다.

미국이 다른 나라들에 하는 것처럼 경상수지와 저축률의 연관성을 미국에 적용하면 부정할 수 없는 한 가지 사실이 나온다. 미국은 ‘과잉소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미국은 환율조작 관찰대상국들의 ‘과잉저축’이 과도한 경상수지 흑자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환율을 조작하지 말고 소비를 진작해서 저축률을 낮추는 정책을 취하라고 권고한다.

그 역은 바로 미국에게 적용된다. ‘과잉소비가’과 과도한 경상수지 적자와 연관성이 있기 때문에 미국은 소비를 낮춰서 저축률을 높이는 정책을 취해야 한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그렇지 않고 환율 조작을 구실로 삼아 미국의 경상수지 악화에 대해 죄다 남들 탓을 하고 있다. 1980년대 레이건 행정부 때도 그랬다. 제 논의 들보를 함께 봐야 남에 대한 ‘지적질’이 설득력이 높아진다는 건 국가 사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이번 재무부 환율조작 관련 보고서가 이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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