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20 17:19 (금)
AI와 인간이 우정을 나누려면
AI와 인간이 우정을 나누려면
  • 장흥배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상임연구원
  • 승인 2019.05.31 17:5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특정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특화형 AI에서 범용 AI 개발로 발전 중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 효과가 크지 않더라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어
AI가 인간의 친구일지, 일자리 경쟁상대일지는 사회적이고 정치적인 문제

[커버스토리③ - AI와 인간 어떤 길을 갈 것인가? - 인공지능의 발전과 일자리의 미래]

기술 변화가 일자리 상실로 이어진다는 주장은 데이비드 리카도나 토머스 맬서스 같은 19세기 고전학파 경제학자들까지 소급되는 역사를 가지고 있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0년 <우리 후손들의 경제적 가능성>이라는 수필에서 “기술혁신으로 노동의존도를 줄일 수 있는 수단의 채택이 노동의 새로운 활용을 찾는 속도를 앞서기 때문에” 발생하는 실업을 기술적 실업(technological unemployment)으로 정의했다.

하지만 케인스는 이런 현상이 일시적일 것이라고 보았다. 마크르스 계열 사회학자들은 마르크스의 산업예비군(industrial reserve army of labor) 개념을 가지고 자본주의에서 실업이 구조적임을 주장해왔다. 이들을 제외하고 주류에 속한 경제학자들이 기술적 실업을 대단치 않은 문제로 간주한 이유는 앞선 산업혁명의 경험이 큰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예를 들어 1차 산업혁명 기간 도입된 방적기는 노동자 한 명이 면화 1파운드에서 실을 뽑는 데 걸리는 시간을 500시간에서 3시간으로 극적으로 줄었지만, 직물 수요 증가로 인해 노동력 수요는 전혀 줄지 않았다.

최근 기술적 실업이 사회적·경제적 중심 이슈로 부상한 배경에 정보기술이 추동하는 소위 ‘4차 산업혁명’이 있다. 첨단의 정보기술이 인간의 일자리를 대체하는 경험이 여기저기서 관찰되고, 그 영향에 대한 주장이 전과는 다른 설득력을 가지고 대중에게 전파되고 있다. 그리고 정보기술 중에서 일자리 파괴의 주연을 맡은 기술 동인은 단연 인공지능(AI)다.

AI와 일자리의 미래에 관한 주제에서 흔히 갖기 쉬운 오류는 AI가 주식, 의료, 법률, 교육 등 주로 인지(cognitive) 노동 분야의 일자리만을 위협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하지만 AI는 로봇공학과 결합하여 산업로봇과 같이 제조업 분야의 일자리까지 대체할 수 있는 범용 기술이다. 정보기술이 일자리에 미치는 영향에서 AI는 중심적인 지위에 있다.

학습하는 기계의 등장과 발전 과정

AI 전문가 이노우에 도모히로는 <2030 고용절벽이 온다>는 저서에서 2030년 경 ‘범용’ AI의 출현을 예상한다. 범용 AI는 인간이 상식과 직관으로 할 수 있는 지적인 활동을 대체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AI이다. 이 정의로부터 범용 AI가 인간 일자리의 상당 부분을 대체할 가능성이 자연스럽게 도출된다.

AI 개발이 첫 궤도에 오른 1950년대에 개발 방법론은 크게 2가지 길을 걷게 되었다. 규칙 기반(또는 상징적) AI와 확률·통계적 패턴 인식 기반 AI가 그것이다. 전자는 성인이 규칙과 문법을 숙지하고 단어를 암기하는 방법으로 외국어를 배우는 방법에 비유할 수 있다면, 후자는 어린 아이가 모국어를 배우는 방식에 비유할 수 있다. 초창기에 우세했던 규칙 기반 접근법은 언어 인지와 번역, 이미지 분류 등의 영역에서 수십 년의 연구에도 불구하고 성과가 더뎠고 결국 1980년대 말에 이르러 ‘AI 겨울’을 맞고 말았다. 이는 기계에 모든 규칙과 패턴을 입력하고 이를 기계가 제대로 사용하게 만드는 것이 너무 어려웠기 때문이다. 언어 번역을 예로 들면 규칙 기반 접근은 프로그래머에게 해당 언어의 모든 문법 규칙, 어휘, 숙어의 기원 등을 입력할 것을 요구한다. 그런데 단어는 사전적(辭典的) 정의로 축소될 수 없고 문법 규칙에는 수많은 예외가 존재한다. 확률·통계적 패턴 인식 기반 AI 개발은 결과적으로 현재의 AI 개발의 주된 방법론이 되었지만, 당시에는 이를 뒷받침할 저렴한 컴퓨팅 연산 능력과 AI를 훈련시킬 빅데이터의 부족으로 인해 역시 진보하기 어려웠다.

21세기 AI 개발의 주류가 된 기계 학습(machine learning)은 바로 규칙 기반 접근법의 실패를 교훈삼아 등장했다. 기계 학습은 컴퓨터가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한 뒤 파악한 통계적 관계를 바탕으로 스스로 프로그램을 작성하는 기법이다. 기계 학습의 중심에는 인간 두뇌의 신경망을 본뜬 인공 신경망 기법이 있다. 인공 신경망은 층(layer)으로 이뤄져 있고, 데이터는 입력층(input layer)을 통해 인공 신경망으로 들어간다. 그 다음 정보가 처리되는 은닉층(hidden layer)이 작동하여 최종적으로 출력층(output layer)에서 결과가 산출된다. 망의 각 신경(뉴런)은 입력과 출력 모두 다른 신경들과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그 연결의 강도는 동등하지 않다. 이 연결에는 가중치(weightness)가 주어진다. 은닉층이 많은 신경망은 이 연결에 다양한 가중치가 적용되고 그 결과를 다음 층에 전달하여 신호를 결합하고 분류하고 분할할 수 있다. 연결 가중치의 수정으로 인한 산출값의 변화는 기계의 학습 능력을 가리킨다.

심층 학습(deep learning)은 영국 출신의 AI 연구자 제프리 힌튼이 2006년에 고안한 방법으로, deep이라는 용어는 신경망의 레이어가 몇 층으로 깊어진 상태를 가리킨다. 심층 학습은 분류상 기계 학습의 일종이지만, 현재 첨단 AI 개발의 중심에 심층 학습이 놓이면서 기계 학습과 심층 학습이 대립되는 알고리즘 아키텍처로 인식되기도 한다.

인공지능이 물류창고의 물품을 분류한다고 가정하고, 인공지능의 발전 단계에 따라 물품 분류의 진화 상태를 대응시킨 일본의 AI 전문가 마쓰오 유타카 교수의 설명은 기계 학습과 심층 학습의 구분에 도움을 준다. 1단계 AI는 물품의 크기를 가로, 세로, 높이 계산에 따른 크기로 대, 중, 소로 분류하는 기준을 갖고 물품을 분류한다. 일반적으로 세탁기나 청소기 등 전자제품에 탑재된 단순 제어 프로그램이다. 2단계 AI는 가로, 세로, 높이 정보에 따라 분류한 크기만이 아니라 무게에 따른 특별한 취급사항, 취급주의 라벨이 붙은 최급 기준도 물품 분류에 적용할 수 있다.

3단계에서 AI는 학습을 통해 스스로 대, 중, 소를 판단하고 분류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샘플들과 이 샘플들이 분류 기준상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정보가 초기에 입력된다. 이는 AI가 추론의 구조나 지식을 데이터를 이용한 학습을 통해 스스로 수립하는 것으로, 기계 학습이 전형적으로 여기에 해당한다. 마지막으로 4단계 AI는 샘플이 대, 중, 소 어디에 속하는지에 대한 인간의 정보 입력 없이 샘플만 제공받으면 학습을 통해 스스로 분류 기준을 수립한다. 이는 분류 기준 자체를 학습하는 인공지능으로, 심층 학습이 이에 해당한다.

심층 학습의 대표적인 사례로 구글이 2014년 인수한 AI 개발업체 딥마인드(DeepMind)가 개발한 게임 프로그램 DQN이 있다. DQN에서 인간은 게임의 규칙이나 전략을 전혀 설명하지 않고 그저 게임 화면을 입력하고 게임의 점수를 AI가 최대화해야 할 값으로 설정하기만 하면 DQN은 게임의 플레이 방법을 스스로 터득한다. DQN은 49가지 게임의 절반 이상에서 인간 전문가보다 더 높은 점수를 얻었다. DQN은 산업에도 활용되었는데, 딥마인드는 구글 데이터센터에 관한 수년의 데이터를 모은 뒤 그 정보를 가용 냉각 장비를 조절하는 인공 신경망을 훈련시키는 데 사용했다. DQN은 데이터센터 냉각 장치의 에너지 소모를 약 40퍼센트, 간접비를 약 15퍼센트 줄였다. 2016년 세기의 바둑 대국에서 이세돌을 이긴 인공지능 알파고 역시 딥마인드가 개발한 심층 학습 AI이다.

범용성을 높여라

최근의 AI 개발 트렌드를 하나만 꼽으라면 범용 AI 개발 경쟁을 들 수 있다. 현재까지 유명해졌거나 산업에 적용되고 있는 AI는 아이폰의 시리, IBM의 딥블루(1997년 체스 챔피언에게 승리한 프로그램), 바둑 인공지능 프로그램 알파고, 주식분석 인공지능 등 특정 분야에서만 두각을 나타내는 특화형 AI이다. 그러나 심층 학습의 출현, 컴퓨팅 능력의 증가, 뇌 과학의 발전에 힘입어 범용 AI 개발이 탄력을 받고 있다.

인간의 뇌를 본 뜬 인공 신경망 기법 자체가 범용 AI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지만, 최근에는 범용성을 높이려는 알고리즘 기법들이 더욱 가파르게 진행되고 있다. 전이 학습(transfer learning)이 대표적이다. 기존의 인공지능 알고리즘은 특정 분야에 맞게 학습시킨 결과를 다른 분야에 재사용하는 것이 어려웠다. 전이 학습은 기계가 학습한 내용을 인간의 상식이나 직관이 갖는 유연성과 적응력을 갖고 다양한 분야에 적용될 수 있도록 하자는 문제의식에서 나왔다. 전이 학습은 이미 질병 진단에서 전문의 수준에 준하는 정확도를 보였고, 인공위성 촬영 데이터를 이용해 아프리카 국가들의 빈곤지도를 생성하기도 하였다.

컴퓨터가 결과를 도출한 알고리즘을 인간이 얻을 수 없는 기존 심층 학습의 단점은 AI를 실생활에 적용했을 때 생길 수 있는 법적, 사회적 문제와 관련해 범용성을 제약하는 요소이다. 자율주행을 예로 들면, 인간의 개입이 전혀 필요 없는 단계까지 갔을 때 사고에 따른 법적 분쟁의 처리 문제가 중요한 이슈가 될 것이다. 이 때 자율주행 AI가 어떤 메커니즘, 어떤 판단에 근거해 특정한 판단을 내렸는지가 중요해질 수 있다. 설명가능 AI(Explainable AI; XAI) 개발 노력은 이에 대한 대응이다. XAI는 실용화 단계까지는 기술적 난관이 예상되지만, AI의 범용성을 높이기 위해서는 중요한 방법으로 인식되고 있고 현재 개발 노력이 이어지고 있다.

로봇공학은 청소, 물건 나르기 등 과거 저숙련 저임금 노동이 수행해왔던 업무까지 대신할 수 있는 로봇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패턴 인식과 자연어 처리 능력에서 범용 AI 개발 수준은 과거 인간의 감정 노동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서비스 업종에서도 인간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위키피디아
로봇공학은 청소, 물건 나르기 등 과거 저숙련 저임금 노동이 수행해왔던 업무까지 대신할 수 있는 로봇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패턴 인식과 자연어 처리 능력에서 범용 AI 개발 수준은 과거 인간의 감정 노동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서비스 업종에서도 인간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사진=위키피디아

대체 효과와 생산성 효과의 경합

AI가 일자리에서 인간을 대체할 것이라는 전망에 반대하는 의견들 다수의 공통점은 AI에 의해 사라지는 일자리만큼 혹은 그 이상의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날 것이라는 예측이다. 마차를 대신한 자동차 제조업으로 기존 마차 관련 일자리는 없어졌지만 마차 생산 인력보다 더 많은 자동차 생산 노동자가 필요해지고, 여기에 더해 운전자를 위한 음식업과 숙박 등 서비스 일자리도 많이 생겨났다는 것이다.

새로운 기술에 의한 일자리 상실을 대체 효과(displacement effects)라고 하고 새로운 일자리가 생겨나는 효과를 생산성 효과(productivity effects)라고 한다. 앞선 산업혁명의 경험은 중장기적 시간 지평에서 대체 효과보다 생산성 효과가 우세한 결과 일자리의 총량에서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AI를 둘러싼 일자리 논쟁은 지금도 대체 효과와 생산성 효과 중에서 어느 것이 우세할 것인가에 대한 분석을 중심으로 전개되고 있다. 그런데 우리가 비관적 전망에 조금 더 무게를 실어야 하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일자리 총량과 관련해 이러한 이유들 각각은 독자적이 아니라 총체적으로 비관적 전망에 기여한다.

첫째, AI에 의한 일자리 대체 효과가 비관론자들이 주장하는 만큼 크지 않더라도 상당한 충격을 줄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 직업의 47%가 10~20년 안에 자동화로 인해 사라질 것이라는 프레이와 오스본의 2017년 주장을 비판하는 의견 중에는 그들이 직무(tasks)가 아닌 직업(occupations)을 분석 대상으로 삼아 자동화 위험을 과대평가했다는 것이 있다. 이런 비판에 입각한 낙관적 전망도 결국 9%의 일자리는 자동화 위험에 놓였다고 분석한다.

실제로 AI가 인간을 대체하는 과정은 어느 순간 인간을 완전히 대체하기보다는 특정 분야의 노동력을 점진적으로 줄여나가는 과정으로 전개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이 인간의 개입을 완전히 없애는 단계까지는 기술적·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대체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성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미국의 벤처투자 기업가 앤드루 양은 미국에서 승용차에 앞서 화물트럭 자율주행이 2020년부터 개막될 것으로 전망한다. 미국에서 화물트럭 기사는 350만 명, 이들에게 숙박과 음식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 이들은 500만 명에 달한다. 앤드루가 화물트럭 자율주행에 따른 엄청난 사회적 혼란을 전망할 때 AI가 트럭기사 전체를 대체한다고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그는 10%의 트럭기사만 일자리를 잃어도 그 혼란은 대단할 것으로 전망한다. 판례를 검색하고 소송 방식을 알려주는 법률 AI나 의사보다 정확하게 환자의 병명을 진단하는 의료 AI가 지금보다 더 보편화되더라도 변호사나 의사는 여전히 필요할 것이다. 그러나 필요한 변호사와 의사의 숫자는 줄어들 것으로 전망하는 것이 합리적이다.

둘째, AI가 노동 능력에서 오랫동안, 적어도 한동안은 인간보다 열위일 것이라는 주장은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반드시 인간과 동등하거나 더 우수한 노동력을 보유할 필요는 없다는 점을 간과한다. 지나친 비관에 빠지지 않으려는 접근 중에는 적어도 상당 기간은 인간을 당해낼 수 없는 AI의 한계를 논거로 제시하는 흐름이 있다. 여기서 한계로 거론되는 것이 창조성이나 추상 능력 같은 것이다. 이노우에는 2030년 경 범용 AI가 출현하더라도 AI가 인간의 지성을 뛰어넘을 수 없는 ‘생명의 벽’을 거론한다. 그는 “우리의 지성은 우리가 지닌 무수한 욕망 또는 감성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인간의 마음속에 숨어 있는 욕망이나 감성을 전부 추출하는 것은 현재의 기술로는 불가능하다”고 한다. 특히 AI가 시각 정보나 청각 정보 등의 감각 데이터로부터 직접 끌어올 수 없는 자유, 권리, 소유, 시장 같은 추상 개념을 인간과 같은 수준으로 이해할 수 있을지에 대해 그는 약간 부정적인 입장에 선다.

<로봇의 부상>을 쓴 마틴 포드는 이노우에가 아직 머뭇거리는 AI의 창조성에 대해 다른 관점을 제시한다. “...뇌 자체도 진화의 산물임을 잊어서는 안 된다. ...컴퓨터 알고리즘은 기본적으로 유전자 프로그래밍을 이용하여 다윈이 말한 자연선택의 과정을 거쳐 스스로를 설계해 나간다. ...컴퓨터의 능력이 언젠가 창의력의 영역까지 도달하리라 생각할 수 있다.”

물론 AI의 창조성에 대해 다소간 회의적인 이노우에는 그럼에도 2030년 경 ‘고용절벽’을 경고한다. AI가 인간을 대체하기 위해 반드시 인간과 동등한 능력을 보유할 필요는 없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인간과 AI의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하는 브린욜프슨과 맥아피조차도 <제2의 기계시대>에서 인간의 창조성 우위를 낙관할 수 없다는 관점을 피력한다. “인간 특유의 창의성과 기계의 능력을 나누는 경계선은 계속 바뀌고 있다. ...때로 인간의 창의성은 기계의 강력한 분석력과 동일해질 수 있다.”

셋째, AI의 일자리 위협이 생산성 효과에 의해 상쇄될 것이라는 주장은 생산성 효과로 새로 생길 일자리 역시 자동화의 위협에 놓인다는 점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고 있다. 자율주행차의 몸체로서 전기차는 생산에서 화석연료 자동차보다 더 적은 인력을 필요로 하지만, 전기차 생산량과 배터리 등 주요 부품 생산량이 늘어난다면 현재의 생산 인력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전기차의 조립 공정 전체를 100% 자동화하려는 테슬라의 시도에서 보듯, 배터리 등 주요 부품 생산도 자동화될 가능성은 결코 가볍게 볼 일이 아니다.

특별히 주목해야 할 점은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의 AI 개발이 ‘범용성’을 갖추기 위해 경주를 벌이고 있다는 것이다. 로봇공학은 청소, 물건 나르기 등 과거 저숙련 저임금 노동이 수행해왔던 업무까지 대신할 수 있는 로봇 개발로 나아가고 있다. 또한 패턴 인식과 자연어 처리 능력에서 범용 AI 개발 수준은 과거 인간의 감정 노동이 아니면 처리하기 힘든 서비스 업종에서도 인간을 위협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매킨지글로벌연구소는 AI가 가져올 사회적 충격이 18세기와 19세기 초 산업혁명보다 속도에서 10배 빠르고 규모에서 300배 더 크다고 분석한다. 이 때문에 그 충격은 앞선 산업혁명보다 3,000배 더 크다. 충격의 계량에 관한 이 연구소의 분석을 그대로 신뢰할 필요는 없지만, 충격의 속도와 규모가 이보다 훨씬 더 낮더라도 생산성 효과와의 경합에서 대체 효과의 손을 들어주기에는 충분하다.

마지막으로, 생산성 효과를 일자리 개수의 증감이 아니라 총노동시간의 증감이나 소득 효과의 관점에서 바라볼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미국 노동통계국(BLS)의 조사에 따르면, 모든 미국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합산한 총노동시간은 2013년 1,940억 시간이다. 이는 1998년의 총노동시간과 동일한데, 2013년 미국 인구는 1998년에 비해 4,000만 명이 증가했다. 같은 기간 인플레이션 조정을 거친 생산량(output)은 42%가 성장했다. 일자리의 크기를 총노동시간으로 측정한다면 이 기간 동안 미국 일자리는 현저히 줄어든 것이다.

BLS가 보고서에서 밝히지 않은 이 통계의 함의는 정보기술로 인해 새로 생기는 일자리의 대다수가 전일제 정규직 노동보다 시간제 불안정 일자리라는 기왕의 많은 연구를 지지한다. 정보기술 혁명의 일자리 효과를 총노동시간으로 측정했을 때 생산성 효과보다 대체 효과가 우세할 것임을 알 수 있는 대목이다.

AI와 인간의 관계는 정치적 차원

BLS 통계가 대다수 사람들이 적게 일하고도 생산성 향상에 따른 소득 증가분을 고르게 나눠가질 수 있는 경제의 도래를 의미한다면, AI로 대표되는 정보기술 혁명의 일자리 대체 효과에 대한 걱정은 그만큼 줄어들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운 축적체계로 부를 수 있는 플랫폼 자본주의가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소득 양극화의 기제라는 것에는 폭넓은 합의가 존재한다. 긱(gig) 노동, 크라우드(crowd) 노동, 주문형(on-demand) 노동 등은 AI 플랫폼 경제의 생산성 효과로 새로 생겨난 일자리의 성격을 보여주는 용어들이다.

플랫폼 노동은 승자독식 플랫폼 경제의 노동소득분배율 하락과 소득 양극화 기제의 일부일 뿐이다. 네트워크 효과를 비즈니스 모델로 삼아 목적의식적으로 추구하는 플랫폼은 태생적으로 독점 지향적이며, 이 독점에 대한 반독점 정책 개입을 어렵게 만든다. 글로벌 독점 플랫폼 기업들은 기업의 생산성이 다수의 소득으로 분해되는 가장 전형적인 메커니즘으로서 일자리와 세금 기여도에서도 최악의 실적을 보여주고 있다. 1962년 전성기의 AT&T는 56만4000명, 엑손 15만 명, GM 60만5,000명의 임금노동자를 두었다. 반면 구글과 페이스북의 직접 고용인력은 각각 6만 명, 12만 명이다. 이들의 납세 실적도 심각하다. 이는 이들 기업들이 물리적 고정사업장 없이 IT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디지털 비즈니스의 기술적 성격을 적극적인 조세회피 전략으로 활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국제적 과세 대응은 더디고 앞으로도 성공을 낙관하기 어렵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가 ‘변곡점’을 지났다고 말한 정보기술의 변화무쌍한 발전을 고려할 때 확실성을 가지고 미래를 예상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특히 기술이 그 자체로 미래를 결정하는 힘은 상당히 제약적이다. 예를 들어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은 정보기술 혁명 이전에도 충분한 기술적 가능성을 가졌지만 정치·사회적으로 수용되지 못했다. 신자유주의에서 기술 혁신은 풍요와 자유보다는 실업과 불평등의 추진력이 되었다.

브린욜프슨과 맥아피는 인간과 AI의 관계에서 경쟁보다 우정이 더 높은 생산성을 도출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본다. 하지만 그들의 진단은 몇몇 사례들에 대한 기술적 분석에서 온 것이다. AI를 인간의 친구로 삼을 것이냐 일자리 경쟁의 적으로 삼을 것인가 라는 질문은 근원에서 사회적이고 정치적이다. 노동시간의 획기적 단축과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지급하는 기본소득이 현재로서는 AI를 친구로 맞이하는 사회적·정치적 화답일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55호(2019년 5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예를 들어 자율주행이 인간의 개입을 완전히 없애는 단계까지는 기술적·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대체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성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글 자율주행차. 사진=위키피디아
예를 들어 자율주행이 인간의 개입을 완전히 없애는 단계까지는 기술적·사회적인 이유로 인해 앞으로도 상당한 시일이 걸릴 것이다. 그러나 특정 분야에서 AI가 인간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대체하지 않는다고 해서 심각성도 완전히 또는 상당히 많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구글 자율주행차. 사진=위키피디아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