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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국가”까지 트럼프에게 협상의 영역일까?
“대만=국가”까지 트럼프에게 협상의 영역일까?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6.09 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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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국방부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 접근하는 법
‘트럼프 패싱’의 산물? 네오콘 장단에 맞춰 춤춘 결과?
미군의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대만방위미군사령부까지 겸하는 것일까? 사진은 1954년 12월부터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던 1979년 4월까지 대만방위미군사령부을 상징하는 배지. 사진: 위키피디아
미군 인도태평양 사령부는 대만방위사령부까지 겸하는 것일까?
1954년 12월부터 미국과 중국이 수교하던 1979년 4월까지
대만방위미군사령부을 상징하는 배지.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은 1979년 미‐중 수교 이후 중국의 정책인 ‘하나의 중국’을 인정해온 태도를 정말로 전환할 것인가? 미국이 ‘하나의 중국’ 정책을 폐기했다는 분석은 지난 6월1일 미국 국방부가 발표한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을 ‘국가(country)’ 범주에 포함시켰다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가 6월7일 보도하면서 급속히 확산되고 있다.

일단 이 신문의 분석은 정확하다. 문제의 보고서에는 “인도태평양의 민주주의 사회들로서 싱가포르, 대만, 뉴질랜드, 몽골은 미국에게 신뢰할 만하고 역량 있으며 자연스러운 동반자들이다. 이들 네 나라 모두(all four countries)는 세계 전역에 대한 미국의 사명에 기여하고 있으며, 자유롭고 개방된 국제질서를 지지하는 조치들을 적극 취하고 있다”(30쪽)는 표현이 있다. 대만이 ‘국가’ 범주에 포함돼 있는 것이다.

이런 표현은 미국이 40년간 유지해온 ‘하나의 중국’ 지지 정책을 폐기했다는 분석이 나와도 이상할 게 없게 한다. 게다가 이 보고서는 그동안 초미의 관심 대상이었다. 2017년 12월 ‘전략적 동반자’에서 ‘전략적 경쟁자’로 중국과 관계를 재설정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 우주에서 중국․러시아의 전략 미사일을 요격하는 ‘우주미사일방어구상’(스타워즈)을 부활시킨 2019년 1월 국방부 미사일 방어 검토보고서(MDR)에 이어 나오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랬던 보고서에서 ‘대만은 국가’라고 했으니 중국이 ‘일전불사’를 외치며 발칵 뒤집힐 만한 일이다.

그럼에도 정말로 미국이 ‘두 개의 중국’ 노선으로 완전히 돌아선 것인지는 지켜봐야 할 듯하다. 두 가지 시나리오가 있을 수 있다. 첫째, 트럼프가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실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협상 영역’의 일부로 접근했을 가능성이다. 지난해 12월 초 미국 법무부 요청으로 캐나다가 화웨이 재무담당 최고경영자 멍완저우 체포했을 때나, 지난 5월 화웨이와 거래를 전면 금지하는 행정명령을 내릴 때처럼 접근했다는 얘기다. 두 경우 모두 트럼프는 미‐중 무역전쟁 협상의제의 하나라는 식의 트윗을 날리고 발언했다. ‘법치’와 ‘국가안보’가 협상거리냐는 강한 반발이 뒤따랐음은 물론이다. 특히 전자의 경우 크리스티아 크릴랜드 캐나다 외무장관은 공개 기자회견을 통해 트럼프의 발언에 강한 유감을 나타내기도 했다.

둘째, 트럼프가 문제의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담겼다는 사실을 ‘몰랐을’ 가능성이다. 협상을 전후해 긴장을 격화시키기는 모습을 보이기 일쑤였지만, 대화의 문을 꽁꽁 걸어 잠그는 태도를 트럼프가 보이지는 않아 와서다. 이란과 전쟁 불사를 주도하고 북한과 대화 창구를 봉쇄하는 한편, 미수로 그친 베네수엘라 정부 전복 쿠데타를 사주한 배후의 인물로 꼽히는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을 트럼프가 경계하는 모습이 여기에 속한다. 물론, 이 시나리오는 ‘두 개의 중국’은 중국에 도발이라는 점을 트럼프가 알고 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

이번 문제의 보고서를 주도한 인물의 면면을 살펴보면, ‘트럼프 패싱’의 가능성에 상당한 무게가 실리는 것도 사실이다. 장본인으로 꼽히는 인물은 국방부 인도태평양안보 담당 차관보 랜덜 쉬리버다. 지난 1월 국방장관 대행에 임명된 패트릭 새너헌보다 실세라는 평가를 받는다. 그는 트럼프 행정부 초기 백악관 수석전략가를 지내다 일찌감치 쫓겨난 스티브 배넌의 추천으로 국방부에 들어간 인물이다. 2000년대 초 딕 체니-도널드 럼스펠드가 이끄는 네오콘(신보수) 내 아시아 담당 팀에서 일하며 ‘반중국‐친대만’을 강력히 내세웠고, 2008년 이런 정책 방향을 강력 추진하는 싱크탱크인 ‘프로젝트 2049’을 설립하고 소장을 맡기도 했다. 장관대행인 새너헌 역시 미국 항공․군수업체인 보잉에서 30년 이상 일한 인물이다. 자신과 가까운 기업인들에 각종 혜택을 은밀히 제공하는 트럼프의 스타일, 탈세 등과 관련된 트럼프의 각종 약점과 보고서를 꼼꼼하게 챙겨보지 않는 엉성한 방식 등이 맞물려 ‘트럼프 패싱’은 충분이 있을 수 있는 일이다.

부시 행정부 당시 미국 네오콘은 이라크 침공이나 테러와 전쟁 등과 같은 새로운 국방전략을 세웠다. 이 전략을 세운 네오콘인 딕 체니와 럼스펠드(둘 다 모두 조지 W 부시 행정부 당시 국방장관)의 독트린은 ‘미국에 도전하는 옛 소련과 같은 초강대국이 없다’는 암묵적인 가정을 깔고 있었다. 중국의 부상은 바로 이런 전제가 무너지는 것에 해당한다.

이번 인도태평양 전략보고서에서 ‘대만=국가’라는 표현이 함축하는 ‘두 개의 중국’은 이제 ‘신냉전’이 이미 시작됐음을 알리는 신호일 수 있다. 시진핑이 중국판 ‘유신’에 해당하는 주석임기제 폐지로 미국과 서방의 경계심에 불을 댕겼다면, 문제의 이번 보고서는 시진핑 이외의 다른 중국 공산당 지도부까지 미국과 ‘일전불사’의 길로 나서게 하는 촉매제로 작용할 여지가 충분하다.

이번 보고서가 ‘트럼프 패싱’의 산물인지, 국가안보 문제까지 협상 영역으로 접근하는 특유의 ‘트럼프 스타일’의 산물인지를 당분간 차분히 상황과 사건을 지켜보며 판단해야 할 듯하다. 후자라면 이를 수습하기 위한 징계나 문책 등 백악관의 일정한 움직임이 불가피할 것이고, 후자라면 화웨이 거래 금지조치와 비슷한 맥락에 놓인 것이다. 두 경우 어느 쪽이든 대만을 둘러싼 미국과 중국의 물리적 충돌 가능성은 관리할 수 있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 보고서가 네오콘의 장단에 맞춰 트럼프가 함께 춤을 춘 결과일 경우다. 그렇다면 두 나라의 물리적 충돌 위험성은 수교 이후 40년 만에 가장 높아졌다는 데 무게가 실린다. 끔찍하게도, 스티브 배넌은 2020년대 중반 안에 미국과 중국의 전쟁이 벌어질 것이라고 예측했다. 미국과 옛 소련도 직접 싸우지는 않았다는 역사에 의지하며 이번 보고서가 트럼프가 네오콘의 장단에 맞춰 춤춘 결과가 아니었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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