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6-18 18:54 (화)
데이터경제, 어디로 가나
데이터경제, 어디로 가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6.12 14: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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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로서 데이터’와 ‘노동으로서 데이터’ 갈림길에서
개인정보 제공을 강제하는 현 구조는 ‘공짜 서비스, 공짜 데이터’ 프레임
데이터의 가치창출 기능 인정 → 데이터를 제공하는 개인에 보상할 의무 부담해야

[커버스토리① - AI와 인간 어떤 길을 갈 것인가? -인공지능과 사회경제]

데이터는 그것을 소유하거나 창출하는 개인에게는 그리 가치가 크지 않다. 결합될 때 가치 있게 된다. 예를 들어 ‘내게는 승용차가 1대 있다. 평일 오전 7시면 승용차를 이용해 동부간선도로를 타고 여의도로 출근을 한다’고 치자. 이 데이터는 그 자체로 유용하지 않다. 하지만 여기에 다른 데이터들이 덧붙여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중랑구청에서 조사해 봤더니 중랑구에는 승용차 보유자가 2만 명이 있고, ‘나’처럼 평일 오전 7시 전후로 동부간선도로를 이용해 출근하는 사람들이 5천명이다. 그런데 폐쇄회로 텔레비전(CCTV) 화면을 보니 평일 같은 시간대 동부간선도로 옆에 있는 동일로는 차량이 한적하다. 이들 데이터가 모이면 교통량 분산을 유도하는 데이터로 거듭 태어난다.

이렇게 홀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던 이런 데이터들이 결합되면 가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된다.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예전부터 있었다. 하지만 경제의 디지털화 속에서 사물인터넷, 플랫폼경제, 인공지능 등이 확산되면서 이전과는 견줄 수 없는 ‘질’을 띠기 시작했다. 생산․소비․여가 등 개인들이 데이터를 쏟아내는 거의 모든 창구에서 이를 수집하는 게 가능해졌다. 이전에는 엄두도 내지 못하던 방대한의 양의 데이터 분석은 컴퓨터의 연산처리능력의 기하급수적 개선과 인공지능의 힘을 빌려 가능해졌다. 덕분에 적용할 수 있는 영역도 이전에 비해 훨씬 더 확대됐다. 이것이 디지털 데이터경제의 핵심을 이룬다. 칼 마르크스의 표현을 빌리면, 디지털 데이터경제는 경제적 ‘토대’의 극적인 변화를 이룬다.

경제적 토대의 극적인 변화 - 디지털 데이터경제의 출현

이런 극적인 변화에 맞는 법과 제도의 개선이 뒤따라야 함은 물론이다. 디지털경제에서 기업을 운영하는 사업자들의 경쟁의 성패는 ‘될 수 있는 한 많은 데이터를 값싸게 확보하고 이로부터 추출․가공․분석한 데이터를 적용해 생산성을 높이고 매출을 늘려서 수익성을 높이는 것’이다. 관건은 ‘될 수 있는 한 많은 데이터를 값싸게 확보’하는 것이다. 문제는 바로 여기에 있다. 데이터를 쏟아내는 주체가 바로 하나의 인격체로서 개인들이기 때문이다. 소나 돼지, 닭과 같은 가축들이나 인간 이외의 동물들의 행동 하나하나를 면밀히 추적하면서 데이터를 확보하는 것과는 성격이 다르다는 것이다. 개인들의 데이터는 인격체의 발현의 일부라는 성격을 간직하고 있으며, ‘사생활 보호’라는 말은 이를 나타내는 상징이다. 사업자들이 개인정보 수집을 위해 ‘동의’ 절차를 두는 근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물론 개인의 ‘동의’가 필요 없는 공개된 정보도 있다. ‘조정래는 장편소설 <태백산맥>을 썼다’는 정보처럼, 이를 이용하기 위해 굳이 조씨의 동의를 얻지 않아도 되는 정보가 여기에 해당한다.

사생활 자기관리의 원칙 속에서 현재 기업들이 개인들로부터 데이터를 수집하는 현실을 보자. 앞서 언급한 ‘동의’ 절차를 통해서다. 동의는 사생활과 관련된 개인의 다양한 형태의 행위들을 할 때 수집에 동의했는지에 초점을 두는 것이다. 동의만 있으면 거의 모든 형태의 개인 데이터 수집․이용․공개가 원칙적으로 가능하다. 역설적으로 동의만 있으면 어떤 수집․이용․공개도 가능한 면죄부로 작용하는 측면까지 있다. 하지만 이렇게 결정적인 의미를 지니는 동의가 개인의 자발적 선택으로만 보기는 어렵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어떤 서비스를 이용하기 위해 회원 가입을 할 때 개인정보 활용에 ‘동의’하지 않으면 이 서비스를 아예 이용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이는 경험을 누구든지 해봤을 것이다. 사실상 선택의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것이다. 동의가 없으면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디지털 데이터경제의 구조는, 어떤 재화나 서비스를 이용할 때 돈을 내지 않으면 이용할 수 없는 것과는 전혀 다른 성질이 다르다. 돈을 낼 의향은 있지만 개인정보 수집에 동의하지 않으려는 개인은 아예 서비스를 이용할 수 없는 것이다. 서비스 이용의 대가로 개인정보 제공에 동의하는 꼴이다. 과연 이런 식의 반강제적 동의가 유효한(valid) 것으로 인정될 수 있는지부터가 심각한 의문이다.

‘석유로서의 데이터’=개인의 데이터를 천연자원으로 간주하는 기업들

서비스 이용의 대가로서 개인정보 제공을 강제하는 지금의 구조는 이른바 ‘공짜 서비스, 공짜 데이터’ 프레임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이 프레임은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비유로 상징된다. 이 프레임은 국내에서는 네이버나 카카오, 해외에서는 구글이나 페이스북과 같은 정보통신 플랫폼 기업들이 부추겨왔다. 이들의 사업모델을 단순화시키면 이런 식이다. 검색이나 이메일, 사회관계 형성 등의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면서 많은 가입자(와 가입자의 개인정보)를 확보하고 이로부터 나오는 데이터를 가공․분석한 뒤 역으로 가입자들을 상대로 광고 등을 노출시켜 수익을 확보한다. 이 사업모델에서 플랫폼 기업들이 확보하는 이용자들의 데이터는 무료로 서비스를 이용하는 대가의 성격을 지니며, 가치 창출에서 석유와 같은 기능을 한다.

그동안 여러 문제제기에도 이런 사업모델은 뿌리를 내린 것처럼 보인다. 덩달아 이런 사업모델을 추인하는 방식으로 법과 제도의 변화가 흘러가게 하는 강력한 유혹으로 작용하고 있다. 하지만 4차 산업혁명시대 ‘미래의 석유로서 데이터’라는 비유는 역으로 이런 사업모델에 부메랑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데이터가 석유처럼 그렇게 중요하다고 하는데 도대체 우리는 무슨 대가를 받고 있는가’라는 물음이 이용자들 사이에서 고개를 들기 시작한 것이다. 여기에 더해 숱하게 일어났던 개인정보 유출 사건과 규제당국의 솜방망이 처벌은 개인들의 불신을 한껏 더 키웠다. 국내로 치면 개인정보보호법은 그나마 잘 돼 있다고 하는데, 개인정보를 이용하는 플랫폼 기업들이나 악용․남용사례에 대해 추상같은 처벌과 규제에 나섰어야 할 정부가 모두 ‘개판’이었던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한층 더 강한 개인정보보호 요구가 터져 나오는 건 자연스럽기까지 하다. 데이터경제 활성화하라는 명분에는 동의해도 개인정보보호는 더 강화하라는 모순된 요구가 나오는 건 필연이라는 얘기다.

‘사생활 자기관리’는 포기할 수 없는 개인의 기본권이다.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과 정부에 몽땅 넘겨줄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데이터는 그것을 소유하거나 창출하는 개인에게는 그리 가치가 크지 않다. 결합될 때 가치 있게 된다.’ ‘사생활 자기관리’가 데이터의 결합 자체를 막는 제동장치로 화석화하는 것은 곤란하다. 어떻게 해야 할까? 인격체로서 개인이 쏟아내는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을 바꿔줄 필요가 있다.

Google 본사. 사진=위키백과
Google 본사. 사진=위키백과

‘석유로서의 데이터’ 접근법이 틀린 이유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낯익은 비유는 데이터를 일종의 천연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온갖 개인정보들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해 가공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이렇게 가공 처리된 데이터가 기업들에 많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데이터를 천연자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추출한 석유가 정제과정을 거쳐 가솔린으로 태어나면 원유보다 더 가치가 높아지는 것과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이런 비유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온 국민의 자산인 천연자원처럼, ‘석유로서의 데이터’는 데이터가 마치 온 국민의 자산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부추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다자기구에서도 ‘집단적인 국민자산’으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3월 이 기구는 2020년 회원국들에 내놓을 예정인 준비작업 성격의 보고서 ‘글로벌 경제에서의 법인 과세’에서 이런 식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비유는 틀렸다. 석유는 말을 못한다. 대신에 석유가 매장된 곳이 자신의 영토에 속하는 정부가 말을 한다. 그래서 석유는 온 국민의 자산이 된다. 정부가 석유 추출기업들에게 로얄티(사용료)를 매기는 권한을 행사하는 게 여기에 속한다. 반면 데이터경제에서 데이터는 말을 한다. 바로 데이터를 쏟아내는 개인이 그 주체(data subject)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데이터는 개인에 속하는 일종의 노동력의 일부라는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라는 시각이다. 데이터경제에서 개인의 소비행위는 더 이상 소비하는 상품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데이터를 제공함과 동시에 가치창출에 기여하는 행위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소비행위가 바로 노동력 지출의 성격을 갖는다는 얘기다.

물론 데이터와 석유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기도 하다. 공공재가 아니라는 의미에서다. 개인의 노동력의 일부를 이루는 데이터는 석유와 마찬가지로 ‘배제성'(exclusiveness)과 ‘경쟁성’(rivalry)을 지닌다.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사람이 개인의 노동력을 사용할 권리를 가질 수 없고, 개인의 노동력은 동시에 두 곳에서 사용될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낱낱으로서의 노동력과 그 고립된 지출로서 노동은 사회적 유용성이 현저히 떨어진다. 언제나 다른 노동력과 결합해야 시너지를 발휘하고 생산성을 높일 수 있다. 노동 분업을 통해 형성되는 ‘결합노동’이 바로 그것이다. 데이터 역시 마찬가지다. 홀로 떨어져선 사회적 유용성이 현저히 낮다. 결합해야 유용한 가치를 지닌다. 이런 측면에서 데이터가 노동력의 일부라는 속성을 띠는 것은 극히 자연스러울뿐더러 논리적으로도 일관된다.

‘노동으로서 데이터’로 데이터의 가치창출 기능 인정해야

‘노동으로서 데이터’는 데이터의 소유권이 개인에 있음을 인정한다. 물론 가공 처리 등을 통해 네이버나 카카오 등과 같은 기업들은 데이터의 이용권, 이용권을 부여받은 데이터에 대한 조직 내․외부로부터의 통제권, 데이터로부터 나오는 수익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노동으로서의 데이터’는 이들 기업이 데이터에 대한 개인의 통제권은 물론 수익권의 일부까지 인정할 것을 요구한다. 상업적인 목적으로 플랫폼 기능은 물론 인공지능을 이용해 데이터를 분석하는 모든 기업들은 데이터를 제공하는 개인에 보상할 의무를 반드시 부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생각해볼 수 있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플랫폼 기업이 가공 처리한 데이터의 소유자들에게 직접 보상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플랫폼 기업이 데이터를 통해 특정 개인을 파악한다는 뜻이다. 사생활 보호 위반이라는 역설이 빚어지는 것이다. 그렇기에 현실적인 해법은 국가가 기존 법인세 이외에 새로운 범주의 조세를 도입하는 게 될 수 있다. 특히 데이터 분석이 공공데이터와 연계를 통해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인 상황에서 새로운 조세 도입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미 있기도 하다. 구글이나 페이스북 등과 글로벌 기업과 역차별 방지를 위해, 고정사업장이 없어도 매출이 있는 곳에 과세한다는 새로운 흐름에 따라 유럽연합 일부 국가가 도입한 ‘디지털 서비스세’가 그것이다. 고정사업장이 있든 없든 국내에서 발생한 모든 플랫폼 기업의 매출에 대해 일정 세율을 부과할 수 있을 것이다. 아니면 글로벌 기업에 대해서는 ‘디지털 서비스세’를 도입하고, 국내 플랫폼 기업에 대해서는 부가가치세율을 올리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새로 기업공개를 하는 기업에 대해서는 일정 비율의 주식을 공공기관에 할당하는 방법을 적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디지털서비스세와 배당금을 통해 조성되는 세수로 국가는 시민들에게 ‘보편적 기본배당’(universal basic dividend)을 제공할 수 있다. 시민의 데이터가 경제의 가치창출에 기여하는 것을 사회적으로 인정하는 권리가 바로 ‘보편적 기본배당’이다.

이런 ‘노동으로서 데이터’ 시각은 사생활 자기관리 원칙과 상충관계가 아니라 보완관계에 놓이게 된다. 임금을 지급하고 기업이 노동력의 사용권을 갖는다고 해도 이 권리의 남용은 근로기준법 등을 통해 엄격히 제한된다. 하루 노동시간을 8시간으로 제한하고 초과근로시간에 상한을 둔다. 근로자의 건강한 삶과 이를 통한 노동력의 재생산을 보장하기 위해서다. 데이터도 마찬가지다. 데이터에서 이를 보장하는 원칙이 바로 ‘사생활 자기관리’ 원칙이다. 공개된 정보를 제외한 개인정보 보호와 남용 금지는 확고한 원칙이어야 한다.

‘사생활 자기관리’ 원칙과 ‘데이터경제 활성화’가 양립하려면

국내 개인정보보호법이 빅데이터 분석 활성화를 위해 일정한 개정이 필요하다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유럽연합에서 2015년 5월25일 발효한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으로부터 많은 시사점을 끌어낼 수 있다. 이 법은 개인정보의 법적 소유권이 데이터 주체인 개인에 있음을 분명히 하고 있다. 또한 개인정보 보호가 기업의 사업과정에 녹아들도록 설계돼야 하고, 디폴트(기본) 설정으로 상위 수준에 있도록 의무화시키고 있다. 개인정보 가공처리 전 과정에서 개인정보 보호를 준수해야 한다고 규정한다. 빅데이터 분석 활성화를 위해 개인정보의 익명화(anonymization)와 가명화(pseudonymization)를 인정했다. 하지만 가명정보와 추가정보를 따로 분리해 보관하도록 했다. 특정 개인과 연결하는 게 불가능한 익명정보는 비(非)개인정보의 성격을 지니며, 가명정보는 추가정보(이를테면 해독키)가 없으면 특정 개인과 결부시킬 수 없도록 가공 처리된 정보다. 이용자에게 ‘알고리즘 기반으로 이뤄진 자동화한 의사결정에 대해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권리’(he right to contest any automated decision-making that was made on a solely algorithmic basis)를 주고 있는 점도 주목된다.

‘노동으로서 데이터’ 의 남용을 막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는 두 부분으로 이뤄질 필요가 있다. 당사자들의 계약이나 신뢰, 의지, 기타 유효한 합의를 통해 수정될 수 있는 디폴트(기본) 규정이 하나요, 강제로 시행돼야 하는 의무(mandatory) 규정이 다른 하나다. 의무 규정이 수집․이용․공개에 관한 엄격한 경계를 이룬다면, 디폴트 규정은 당사자들의 편의를 감안하여 협상될 수 있는 좀 더 유연한 영역이다. 예를 들어, 빅 데이터의 ‘재식별화 불허’는 의무 규정에 해당할 것이다. 이를 위반하면 강력한 사후제재가 뒤따라야 한다. 기본규정으로는 개인정보 제공의 동의 절차를 세분화시키는 것이다. 특히 데이터의 초기 단계의 수집에만 집중돼 있는 법률의 초점을 데이터의 집적과 새로운 사용 등 후반 사용(downstream uses)에 맞춰 새로운 사용의 형태에 대한 가이드라인을 도입하는 것이다. 어떤 것은 명확히 금지하고, 어떤 것은 제한돼야 하고, 어떤 것은 새로운 동의가 있어야 하고, 어떤 것은 허용하되 동의 무효의 권리를 사람들에 부여하고, 어떤 것은 새로운 동의가 없이도 허용돼야 하는지에 대한 안내가 담겨야 한다는 것이다.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접근은 ‘디지털 데이터경제’라는 경제적 토대의 극적인 변화에 조응하는 바람직한 법과 제도의 변화를 끌어내기 어렵다. ‘사생활 자기관리’ 원칙과 양립하는 ‘데이터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노동으로서 데이터’라는 시각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못하고 ‘석유로서의 데이터’를 추진하는 방향으로 법과 제도를 끌어가려 할 때 상당한 반작용은 불가피할 것이다. ‘사생활 자기관리’가 데이터의 결합 자체를 막는 제동장치로 화석화하는 움직임도 충분히 나올 수 있다. 그때 이를 두고 ‘시대적 반동’이라고 비난하는 사람들은 왜 이런 반발이 있는지부터 차분히 따져봐야 할 것이다.

본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455호(2019년 5월)에 게재된 글입니다.

홀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던 이런 데이터들이 결합되면 가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된다. (특히) 경제의 디지털화 속에서 사물인터넷, 플랫폼경제, 인공지능 등이 확산되면서 이전과는 견줄 수 없는 ‘질’을 띠기 시작했다. 빅데이터개념도. 출처=위키백과
홀로는 그다지 쓸모가 없어 보이던 이런 데이터들이 결합되면 가치 있는 유용한 정보가 된다. (특히) 경제의 디지털화 속에서 사물인터넷, 플랫폼경제, 인공지능 등이 확산되면서 이전과는 견줄 수 없는 ‘질’을 띠기 시작했다. 빅데이터개념도. 출처=위키백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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