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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의 새로움과 위험성
페이스북 암호화폐 ‘리브라’의 새로움과 위험성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6.2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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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급․결제 기능 전면화-지급준비자산 10억달러, 법정통화와 태환 보장 약속
지급․결제 통화의 본질적 숙명, 지급불능 대처할 수 있나?
위기시 각국 정부․중앙은행 유동성 지원에 내몰릴 수 있어

지금까지 암호화폐의 ‘화폐적 지위’는 확고하지 못했다. 법정통화에 대한 가치의 극심한 불안정으로 인해 계산단위로나 유용한 계산의 매개체로나 가치의 저장수단으로나 턱없이 모자랐다. 통화나 화폐로서보다 투자자산 성격이 강했다. ‘암호자산’(crypto-asset)으로 부르는 게 적절하다는 지적은 이런 맥락에 놓여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728). (물론 그렇다고 해도 한국 정부가 암호자산에 대해 자본시장법 등 기존 증권 관련 제도에 따라 다른 나라들처럼 사례별 검토를 통한 ‘기술중립적’ 규제가 가능함에도 제도권 밖에 방치하는 직무유기를 저질러 왔다는 사실은 바뀌지 않는다.) 하지만 페이스북 회장 마크 저커버그가 6월18일 공개한 ‘리브라(Libra)’ 기획을 보면 암호자산에 대한 이런 통념의 수정이 불가피해진다. 가치의 안정성을 기반으로 전면적인 지급결제 수단으로 리브라를 상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비트코인 블록체인과 리브라 블록체인의 차이점

리브라의 가치는 달러화를 포함해 각국 정부들이 발행한 법정통화들의 묶음인 ‘통화 바스켓’에 고정되고, 바스켓을 구성하는 법정통화들과 언제 어디서든 태환할 수 있는 것으로 돼 있다. 환율로 치면 고정환율제(peg), 통화로 치면 국제통화기금(IMF)가 1970년 도입한 세계화폐 특별인출권(SDR)을 떠올리게 한다. ‘종이금’(paper gold)이라고 불리는 특별인출권은 달러화,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 위안화 등 5대 통화가 일정한 비율로 바스켓에 편입되는 방식으로 가치가 결정된다. 이렇게 결정되는 하나의 가치에 고정시키겠다는 게 리브라 계획의 핵심이다. ‘이게 어떻게 가능해?’라는 물음이 나올 법하다. 이 문제를 따지기 전에 리브라의 전체 얼개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분산원장기술(DLT)에 기반한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는 여러 버전이 있지만, 적어도 네 가지 특징은 공통된다. 통제의 분산(탈중앙화), 데이터의 분산(거래원장의 분산 보관), 암호화기법의 이용(거래의 인증과 서명에 암호화 적용), 스마트 계약(인간의 개입이 필요없는 계약의 자동 실행)이 그것이다. 다만 블록체인 버전에 따라 이들 특징에 정도의 차이가 상당히 존재한다. 리브라도 이런 공통된 특징을 공유한다. 암호화폐의 원조이자 상징인 비트코인과는 불특정 다수에 의한 ‘채굴(mining)’이라는 게 없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어떤 거래가 유효한지를 인증하는 컴퓨터 계산인 ‘작업증명’(PoW; proof of work)을 먼저 성취하는 사람에게 비트코인이 제공되는 방식이 아니라는 것이다. 대신에 리브라를 얻고 싶으면 법정통화를 주고 리브라를 거래소에 구입하면 된다. 따라서 논리적으로 리브라의 공급은 법정통화로 리브라를 사고자 하는 수요에 좌우된다.

리브라가 기반하는 블록체인의 거래 확인과 인증은 ‘작업증명’이 아니라 일종의 ‘지분증명'(PoS; proof of stake) 방식으로 이뤄진다. 이는 '노드(node)’라 불리는, 투표를 통해 어떤 거래가 유효하다고 인정하는 지분을 갖는 주체를 사전에 확정하는 방식이다. 페이스북과 서비스 운영을 위해 설립하는 자회사인 칼리브라, 협력업체 98곳 등 100개 기업이 가입해 결성하는 ‘리브라 어소시에이션(Libra Association)’이 서비스 운영을 통할하는 거버넌스 기구이다. 통상적인 기업으로 치면 일종의 이사회다. 이들 100개 기업이나 단체는 거래 확인과 인증에 필요한 동등한 투표권을 갖는다. 총 100표라고 볼 때 페이스북은 자회사와 함께 2표를 갖는 셈이다. 거래를 기록한 분산원장의 원본과 복사본은 이들 100곳 분산 보관된다고 보면 된다. 서비스 운영업체인 칼리브라는 소비자가 대면하는 ‘디지털 지갑’과 다양한 리브라 플러그인과 앱들을 제공한다.

지급준비자산 10억달러, 고정환율제-법정통화 태환 보장에 충분할까?

해외의 한 블록체인 관련 토론회 장면. 사진: 위키피디아
해외의 한 블록체인 관련 토론회 장면. 사진: 위키피디아

이제 리브라 가치가 다른 암호화폐들과 달리 법정통화에 대해 안정적일 수 있는지를 따져보자. 이 가능성을 뒷받침하기 위해 페이스북이 일단 동원하는 포석은 꽤 유명한 협력업체들을 리브라 어소시에이션에 가입시키는 것이다. 100곳 이상을 모집할 계획인데 6월18일 발표에는 27곳을 이미 모집했다고 한다. 글로벌 카드기업인 마스터카드 비자, 글로벌 차량공유기업 우버, 미국에서 우버와 1, 2위를 다투는 미국내 차량공유기업 라이프트, 음악스트리밍 플랫폼기업 스포티파이, 글로벌 전자상거래업체 이베이, 그리고 벤처업계의 큰 손 유니온 스퀘어벤처와 안드레센 호로위츠 등이 대표적이다.

둘째, 리브라 가치의 안정을 위해 페이스북은 일종의 ‘지급준비자산’을 도입하려고 한다. 이들 협력업체 1곳당 1천만달러씩을 가입비로 받아 10억달러를 실물자산 준비금을 갖춘다는 것이다. 물론 이 돈의 성격은 복합적이다. 일단 사업 운영자금 성격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페이스북이 리브라를 이용한 첫 서비스로 계획하고 있는 것이 해외송금서비스나 계좌이체서비스다. 서비스 운영을 맡는 칼리브라는, 고객이 송금이나 이체를 요청한 상대방에게 먼저 돈을 보내고 나중에 고객의 계좌에서 돈을 인출해야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10억달러는 여기에 쓰이거나 칼리브라 임․직원의 인건비 등으로 쓰일 것이다. 미국 핀테크기업 벤모(Venmo)가 모바일 송금서비스와 소셜 서비스를 결합한 서비스인 ‘벤모’와 비교하면, 이 서비스의 운영업체인 이베이의 자회사 브레인트리가 자체 자금에서 먼저 송금하고 나중에 고객의 계좌에서 인출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페이스북이 계획하는 이런 첫 서비스는 기존 은행권의 송금서비스나 계좌이체서비스에 붙는 수수료가 너무 높다는 점에 착안한 것이다. 리브라 기획은 “소득이 적은 이들이 금융서비스 이용에 더 많은 돈을 내고 있다”며 이 서비스를 “금융적 포용”(finanacial inclusion)의 수단으로 내세운다. 26억명에 이르는 페이스북의 이용자 기반, 협력업체의 알아주는 신뢰도 높은 브랜드를 결합하면 리브라를 통해 글로벌한 규모로 수수료를 무료로 또는 훨씬 값싸게 할 수 있다는 얘기다. 서비스 대상은 기존 은행권에 대한 접근 문턱이 높은 발전도상국들이다. 은행권에 접근하기가 어려운 발전국의 저소득 시민들도 서비스 대상으로 삼는 걸로 돼 있다.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나라나 암호자산을 금지하고 있는 나라들은 열외가 될 가능성이 높다. 전자는 중국, 북한, 이란일 테고, 후자는 인도일 것이다.

정부․중앙은행에 요청하는 협조, 정부 인증 신분증명서(ID)가 갖는 함의

하지만 10억달러의 근저를 이루는 가장 중요한 성격은 역시 ‘지급준비금’이다. 고정환율제로 법정통화들과 교환하려면 ‘지급준비금’이 없으면 불가능하다. 기존 은행으로 치면 중앙은행에 예치하는 지급준비금이고, 한 나라로 치면 일종의 외환보유고에 해당한다. 10억달러가 상징하는 지급준비금은 상황에 따라 늘릴 수도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블록체인업계에서 지급준비금 개념은 페이스북에서 처음 나온은 것은 아니다. 네드 스콧이 창업한 블록체인 기반 미디어인 ‘스팀잇’의 사업모델에서 처음 등장했다. 스팀잇은 법정화폐 투입만이 아니라 댓글과 기고 등을 통해 사업의 부가가치를 높이는 노동 투입도 자본 개념으로 인정해 암호화폐를 부여하는 혁신성으로 상당한 주목을 받아 왔다. 또한 암호화폐 스팀의 보유기간, 노동 투입의 자본 환산 등을 감안해 사업모델 내부에 적정 자본준비금 개념을 반영했다. 물론 적정한 운영자금 확보와 법정통화와 태환되는 스팀의 가치 안정을 위해서다.

문제는 페이스북의 리브라를 이용한 지급․결제 서비스 제공 규모가 스팀에 비할 바가 아니라는 데 있다. 26억명의 이용자 중에서 중국, 인도, 이란, 북한 등을 제외하고 발전국 이용자를 상당수 제외한다고 해도, 적게는 수천 만 명, 많게는 수억 명에 이른다고 봐야 할 것이다. 어떤 충격으로 인해 한꺼번에 고객들이 리브라를 법정통화로 교환하려는 쏠림이 발생할 경우 기존의 지급준비금으로 감당할 수 없는 일종의 ‘지급불능’ 사태가 발생할 수 있다. 은행으로 치면 일종의 ‘뱅크런’이 일어나는 것이다. 페이스북을 포함한 100곳에서 지급준비급을 늘려 감당할 수 있거나, 아니면 파산하는 수밖에 없다. 리브라는 사적 주체들이 발행하는 ‘사적 통화’를 본질로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 중앙은행이나 국가가 끼어들 수밖에 없는 고리가 형성되면 심각한 상황이 벌어진다. 이는 국가나 중앙은행이 페이스북의 사적 통화에 기반한 ‘리브라 기획’에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얘기가 되기 때문이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당사자 간의 합의에 의해 형성되는 사적 통화를 법적으로 금지할 수는 없다는 것과, 우세하거나 지배적인 사적 통화에 국가가 구제금융을 제공한다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국가나 중앙은행이 은행에 구제금융을 제공하는 식으로 리브라에 구제금융을 제공할 수는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리브라 기획에는 이런 가능성을 함축하는 ‘고리’가 포함돼 있다. 마크 저커버그는 페이스북의 리브라 기획을 위해 상업은행들과는 가급적 거리를 두면서 여러 정부들과 중앙은행들의 협조를 구하고 있다. 협조의 구체적 내용은 정확히 알려져 있지 않다. 현재로서는 두 가지를 예상해 볼 수 있다. 리브라 계획에서 송금․계좌이체서비스 등이 실행되려면 칼리브라를 통해 고객이 법정통화 은행계좌에 가입하는 게 필요하다. 칼리브라가 운영하는 블록체인 상에 개설하는 디지털 지갑과 연계되는 법정통화 은행계좌가 있어야 한다는 얘기다. 페이스북은 정부가 이 계좌 개절에 필요한 신분증명서(ID)를 발행해줄 것을 요청하고 있다.

그렇게 요청할 수 있는 성격의 문제로 보이기도 한다. 우리나라처럼 범죄나 투기에 이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 은행계좌가 전자지갑과 연계될 경우 실명확인을 전제로 하는데 이와 비슷하다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칼리브라를 통한 계좌 개설에 대한 정부 발행 신분증명서나, 은행의 신분증명서 발급 의무화 등과 같은 조치는 우리나라 경우처럼 단지 실명확인 수준을 넘어선다. 또 다른 차원의 성격을 지닌다는 얘기다. 사적 기업체와 은행 간 거래에 정부가 개입해 계좌개설을 공인하기 때문에 이 계좌는 리브라와 안정적으로 교환되는 은행계좌임을 추인하는 효과를 갖는다는 것이다.

모든 지급․결제 통화의 본질적 위험성 ‘지급불능 사태’ 심각히 감안해야

칼리브라 웹상에 있는 문구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의 새로운 글로벌 통화를 상상하라". 사진: 칼리브라
칼리브라 웹상에 있는 문구
"새로운 글로벌 네트워크의 새로운 글로벌 통화를 상상하라".
사진: 칼리브라

여기가 심각한 문제가 발생할 수 있는 지점이다. 칼리브라를 통해 가입된 은행계좌에 송금된 리브라를 일시에 찾아 법정통화와 교환을 요구하는 일종의 뱅크런이 발생할 경우, 이 계좌를 공인한 정부들이 팔짱만 끼고 있을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2008년 9월 단기금융상품에 투자하는 머니마켓펀드(MMF)에 대한 투자자들의 인출쇄도 사태 때와 같은 일이 벌어질 수도 있다. 그때 은행계좌처럼 대우해 언제든지 현금을 인출할 수 있다는 약속이 붙은 이 펀드 가입자들은 위기가 터지자 일시에 펀드 해지를 요구하면서 은행이 지급불능 위기에 빠졌고, 미국 연준은 은행에 유동성을 공급할 수밖에 없었다. MMF 사태 때처럼 칼리브라에 은행계좌를 승인한 각국 정부와 중앙은행이 유동성 지원에 나설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릴 것이라는 게 컬럼비아대학 로스쿨 비교법학 교수인 커새리나 피스터와 같은 학자들의 시각이다. 페이스북의 이용자 규모를 감안할 때 태환쇄도 사태가 일어날 때 유동성 지원 규모는 어지간한 국민국가가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설 것이라고 그는 본다. 그래서 미국 정부를 포함한 각국 정부가 리브라 출범 자체를 막아야 한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기우로만 여기기는 어렵다. 실제로 상당한 현실화 위험성이 있어서다. 리브라와 법정통화 바스켓의 고정환율제 때문이다. 고정환율제는 충분한 외환보유고의 뒷받침이 없으면 언제든지 투기적 공격에 취약한 특성을 지닌다. 2015년 페그제를 폐지한 아르헨티나가 이런 경우다. 리브라를 이용한 서비스가 확대될 때 칼리브라의 지급준비금이 모자란다고 보는 세력이 거래소에서 리브라에 대한 투기적 공격에 나서는 일이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다. 외환보유고가 충분하지 않다면 자본통제를 통해 통화가치 안정을 보장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의 국제금융체제는 자본통제에 대한 거부 반응이 무척 심각하다. 게다가 리브라에 대해 제기되는 ‘뱅크런’의 파장은 지급․결제 기능만을 감안한 경우다. 다른 암호통화와 거래, 암호자산 성격을 이용한 파생금융상품 등을 감안하면 한층 더 복합적인 위험이 도사린다.

페이스북의 ‘사적 통화’ 리브라 기획이 발표되면서 거대한 규모의 사적 주체에 의한 ‘사적 통화’가 예상할 수 없는 위험성을 동반할 수 있다는 인식이 나오고 있다. 이미 개인정보 남용의 선례를 남긴 페이스북이 리브라 기획을 통해 확보하는 개인 금융정보를 또 다시 남용할 위험성도 그 중의 하나다. 페이스북은 이를 부정한다. 칼리브라 웹사이트에는 “(소비자 계좌 정보와 금융 데이터는 페이스북의 광고 타게팅을 개선하는 데 이용되지 않을 것”이라고 돼 있다.

하지만 이전의 거대한 비윤리적 경영의 선례에 비춰볼 때 믿기는 어렵다. 페이스북은 2004년 소셜네트워크 시장에 진입하면서 이렇게 약속했다. “우리는 이용자로부터 사적 정보를 수집하기 위해 쿠키를 이용하지 않으며 않을 것이다.” 2010년 도입된 ‘좋아요’ 단추가 감시에 이용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왔을 때도 그렇지 않을 것이라고 이용자들을 안심시켰다. 하지만 10억명 이상의 이용자를 확보한 뒤인 2014년 6월 태도가 돌변했다. 웹과 앱 상에서 이용자 행동을 트랙하고, 이렇게 확보한 데이터를 광고 타기팅 등에 이용하겠다고 선언했다. 감시를 통해 개인정보를 축적하지 않는다고 이용자들을 안심시켜놓고, 충분한 이용자가 생기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안색을 바꾼 꼴이다. 그런 일이 리브라 기획에서도 일어나지 않는다고 믿기는 어렵다.

게다가 리브라 기획은 금융시스템의 탈중앙화가 불가능하지 않다는 비트코인(과 결합한 블록체인)의 긍정적인 전망과는 다른, 새로운 차원의 문제를 제기한다. 이는 지급․결제 시스템은 언제나 본질적으로 ‘뱅크런’ 위험성을 안고 있다는 통찰과 연결되는 문제다. 사적 주체의 숙명은 ‘분수에 맞는 생활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파산이다. 사적 주체가 새로운 ‘대마불사’가 되는 건 가급적 피해야 할 일이다. 페이스북의 리브라 계획도 이 점에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리브라 출범하면 다양한 암호자산․화폐 생태계가 ‘독점화’로 치닫는 것은 아닌지도 경계해야 할 지점이다. 독점보다는 경쟁이, 경쟁에 입각한 협력이 암호자산 생태계에서 미덕이기는 마찬가지이기 때문이다.

이런 측면에서 리브라는 ‘사적 통화’ 기획이 아닐지도 모른다. 리브라 기획을 일컬어 공적 주체가 아닌 거대한 사적 주체가 새로운 중앙은행을 만들어 ‘인터넷 시대 세계통화로서 미국 달러화가 되려는 시도’라는 평가가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이다. 기억할 필요가 있다. 1971년 12월 미국이 달러화의 금태환을 일방 정지시킨 뒤 열린 서방선진10개국(G10) 재무장관관 회의에서 당시 미국 재무장관 존 코널리는 “(달러는)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is our currency, but your problem)라는 웃을 수 없는 재담을 남겼다. 국제통화로서 달러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따른 책임을 미국은 부담하지 않겠다는 뜻을 이런 식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런 미국의 태도는 요동치는 미국 달러화의 가치를 안정시키기 위한 주기적인 협정, 그러나 글로벌 위기를 낳는 결과를 낳는 실패한 협정으로 나타난다. 1978년 달러의 평가절하 방지를 위해 독일과 일본이 미국과 맺은 본(Bonn) 협정, 그 연장선에서 1980년 연준의 금리 인상과 함께 시작된 달러의 평가절상을 막고 달러 약세를 유도하기 위한 1985년 플라자합의(Plaza accord), 지나친 달러의 평가절하를 막기 위한 1995년의 역(逆)플라자합의 등이 그것이다. 이 과정에서 1982년 중남미 외채위기, 1997년 동아시아 금융위기 등이 발생했다. 브레턴우즈 체제 붕괴 이후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라는 미국의 태도는 근본에서 조금도 변화도 없는 상황이다. 리브라 기획이 이런 상황을 더 악화시킬 위험성은 없는지 진지하게 따져봐야 한다. “리브라는 우리의 통화지만 당신들의 문제”라는 식의 웃을 수 없는 재담이 또 나와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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