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9-20 17:19 (금)
‘오사카 트랙’과 ‘데이터 이동 자유’의 공허함
‘오사카 트랙’과 ‘데이터 이동 자유’의 공허함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01 14:21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TO일병 구하기’ 전자상거래 관련 ‘소다자’ 협상 지난 3월 본격화
복잡한 대립 구도 속 데이터 본질과 창출가치 공유 문제의식 실종

전자상거래(e‐commerce) 활성화를 명분으로 삼아 식물인간 상태에 빠진 세계무역기구(WTO)를 되살리고자 하는 목적을 지닌 미니라운드 성격의 ‘소다자’(plurilateral) 협상이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2020년 6월 12차 WTO 각료회의 때 체결 목표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미국, 일본, 중국 정상이 한 자리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과 협상 재개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 G20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미국, 일본, 중국 정상이
한 자리에서 미-중 무역전쟁의 휴전과 협상 재개를 발표하는 모습.
사진: G20

지난 6월28~29일 오사카에서 열린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주최국인 일본 총리 아베 신조는 이른바 ‘오사카 트랙’ 구축을 제안했다. 사생활을 침해하지 않은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과 전자상거래 규범을 만드는 게 핵심이다. 그 이전에는 2018년 12월 부에노스아이레스 열린 WTO 11차 각료회의에서 71개국(유럽연합 28개국 포함)이 전자상거래 규범 마련의 필요성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이 채택됐다. 이어 올해 1월 스위스 다보스포럼에서 전자상거래 규범 마련 협상을 시작하자는 의지를 담은 공동선언문이 76개국 명의로 발표됐다. 5개국이 추가된 것이다. 이후 3월부터 이들 76개국을 중심으로 ‘소다자’ 협상이 본격화했다. 오사카 트랙 제안은 여기에 강력한 동력을 싣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다.

‘개발을 위한 전자상거래’라는 구호를 내건 이 소다자 협상에는 미국, 유럽연합, 중국 등이 모두 참여하고 있다. 지금까지 8차례 이상 회의를 열었고, 5월부터는 주요국들이 제출한 제안들을 중심으로 조문 검토 작업에 들어간 상태다. 목표는 2020년 6월 카자흐스탄에서 열리는 WTO 제12차 각료회의에서 관련 협정을 체결한다는 것이다. 그때까지 최대한 참여국들을 늘리는 게 관건이다. 그래야 다자 협상의 겉모습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홍보 포인트로 ‘전자상거래가 발전도상국의 중소기업에 유리하다’는 메시지를 전면에 내세운 것도 이와 관련된다.

소다자 협상은 WTO 차원의 공식 ‘다자’(multilateral) 협상은 아니다. 굳이 선례를 찾자면 1996년 싱가포르에 열린 각료회의에서 주요한 컴퓨터, 통신장비, 반도체, 소프트웨어 등을 대상으로 관세를 감축해 나가기로 29개국이 체결한 정보기술협정(ITA)과 성격이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 이후 이 협정 가입국은 81개국으로 늘어났고, 2015년 7월 협정 적용대상에 자기공명촬영 장비, 위성항법 장비 등 201개 품목을 추가하기로 50여개국이 합의했다.

WTO 공식 다자협상 아닌 비공식 소다자 협상…참가국 늘려야 약발

WTO 차원의 공식 다자협상은 2001년 출범한 도하라운드 이후 현재 없다. 도하라운드는 거의 10년의 논의 끝에 결국 합의를 도출하지 못한 채 지금에 이르고 있다. 사실상 실패한 것이다. 1995년 WTO 출범과 함께 회원국이 급속히 늘어나면서 발전국과 발전도상국 사이에서 의제 확대와 심화를 둘러싼 이해관계 상충이 가장 큰 이유였다. 이에 따른 후유증은 WTO 차원의 다자 협상 재추진을 사실상 어렵게 한다. 게다가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WTO에 대한 불신이 커지면서 미국의 통상정책이 양자협정이나 지역협정 체결 쪽으로 전환됐다.

주지하다시피 여기에는 급성장하는 중국을 둘러싸고 통상분쟁과 갈등이 깊게 커져온 사정이 작용하고 있다. 2001년 12월 WTO 가입 이후 중국은 2007~2008년 미국․유럽연합 등 발전국의 심장부에서 대금융위기와 대불황이 터지는 사이에 놀라운 성장속도를 보이며 빠르게 치고 올라왔다. 덩달아 중국이 세계무역기구 협정과 가입 당시 약속한 가입협약을 제대로 지키지 않고 있다는 불만도 덩달아 높아져 왔음은 물론이다. 중국 경제 전반을 좌우하는 국영기업(SOEs)을 둘러싼 보조금 논란, 서방 기업의 중국시장 진출 시 합작투자를 통한 중국 기업으로 기술이전 유도를 일컫는 이른바 ‘강제(forced) 기술이전’ 논란이 바로 이를 상징한다.

중국은 참여, 그러나 개도국 맏형 중 하나인 인도 참여 거부

이런 복잡한 배경이 깔린 만큼 전자상거래가 상징하는 이른바 ‘디지털무역협정’(DTA)이 계획대로 2020년 6월 일부 회원국들을 중심으로 체결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하다. 발전도상국의 ‘맏형’ 중 하나인 인도가 이 협상에 참여를 거부하고 있다. 인도는 다른 10개국과 함께 각료회의를 별도로 열면서 강력한 견제와 반발을 하고 있다. 인도는 ‘소다자 협정’(plurilateral trade agreement; WTO 용어로는 복수국간무역협정)이 WTO의 근본 규범에 속하는 ‘최혜국’ 대우 원칙에 어긋난다는 근본전제를 깔고 있다. 소다자 협정에 참여하지 않는 나라는 최혜국 대우를 하지 않는 차별을 받게 된다는 이유에서다. 인도는 소다자 협상이 아니라 실패로 끝난 도하라운드를 먼저 매듭지어야 한다는 쪽이다. 아울러 이렇게 체결되는 소다자 협정이 서비스무역협정(GATS)이나 무역관련지식재산권협정(TRIPs)와 같은 부속서 형태로 WTO의 근간을 이루는 기본조약에 포함되는 것에 기본적으로 반대한다.

주요국들이 제출한 제안들의 내용을 살펴봐도 집단적 합의를 끌어내기가 상당히 어려운 구석들이 많다. 무엇보다 전자상거래에 대한 관세 부과를 금지하자는 제안이 그렇다. 유럽연합은 지난 4월26일 제출한 제안에서 어떠한 예외도 없이 “콘텐츠를 포함하는 전자적 전송”에 대한 관세 부과를 금지하고 있다. 미국도 맞장구를 치는 모습이다. 같은 날 제출된 제안은 “어느 당사국도 당사국의 개인과 다른 당사국의 개인 사이에서 전자적으로 전송되는 콘텐츠를 포함해 전자적 전송에 대한 관세를 부과하지 않는다”고 돼 있다. 하지만 이것이 무역구제 관련 미국 국내법 적용에서 전자상거래는 예외로 하겠다는 것인지가 불분명하다. 또한 트럼프 행정부가 최선의 협정이라고 추어올려온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에서 ‘협정과 일치하는 방식으로 부과할 수 있다’는 조항을 포함하고 있는 것과도 모순된다.

당연히 두 나라의 제안에 많은 발전도상국들이 반발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는 최근 연구보고서을 보면, 디지털화할 수 있는 생산물에 대한 관세 부과 금지에 따른 손실의 97%를 발전도상국이 부담할 것으로 추정된다.

전자상거래 관세부과 금지‐데이터 현지화 금지 등 이해충돌 쟁점 수두룩

기념촬영을 위해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사진: G20
기념촬영을 위해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 참석한 각국 정상들. 사진: G20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에 관한 사안도 쉽사리 조정이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는 여러 쟁점이 걸려 있다. 개인정보의 보관․처리와 관련해 국경 밖에 아닌 현지의 컴퓨터 설비와 서버 등을 이용하게 하는 데이터 현지화(localization)도 그 중의 하나다. 유럽연합은 데이터의 국경 밖 이동의 조건으로 현지 컴퓨터 설비나 네트워크 요소(서버 등)의 이용이나 현지화 의무를 내거는 일체의 행위를 금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중국이 채택하는 ‘강제 기술이전’이 전자상거래 분야에서는 발붙이지 못하게 하겠다는 강한 의도가 깔려 있다.

이 부분에서도 미국은 거의 동일한 내용으로 맞장구를 치고 있다. 다만 자의적이거나 부당한 차별이나 무역에 대한 가장된 제한이 아닌 한, 목적 달성을 위해 필요한 것보다 크지 않다는 조건을 달아 전자적 수단을 통해 개인정보를 포함한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에 대한 금지나 제한을 허용하고 있다. 이는 서비스무역협정(GATS)의 예외조항을 염두에 둔 것으로 풀이된다. 서비스무역협정은 △공중도덕 보호와 공공질서 유지 목적 △인간, 동물, 또는 식물의 생명이나 건강을 보호하기 위한 목적 △사기의 예방, 사생활의 보호, 안전을 포함한 법과 규제의 준수를 위한 목적 등을 데이터 현지화 금지의 예외로 인정하고 있다.

반면 5월13일 제출한 중국의 제안에는 “발전도상국의 특정한 우려를 규제하고 수용하는 회원국의 권리를 존중한다”는 포괄적 문구가 포함돼 있다. 이는 미국과 유럽연합의 제안에 포함된 전자상거래 대상에 대한 관세부과 금지와 데이터 현지화 제한이나 금지에 대해 인도가 거부한 것 등을 감안한 성격이 강하다.

흥미로운 점은, 유럽연합이 제기하는 의제는 미국에 비해 훨씬 더 포괄적이고 체계적이라는 점이다. 예를 들어 전자상거래의 하위 항목으로 ‘인터넷에 대한 개방된 접근’이 포함된 것이 이를 보여준다. 이 항목이 겨냥하는 대상은 중국은 물론 미국까지 복합적이다. “합리적이고 비차별적인 네트워크 운영에 따라 인터넷의 최종 이용자가 자신이 선택한 서비스나 앱에 접근하고 배포하고 이용할 수 있도록 보장한다”나 “인터넷 접속서비스 제공자의 네트워크 관리 관행에 관한 정보에 대한 접근권을 최종 이용자에게 보장한다”는 중국을, “네트워크에 해를 주지 않는 한 최종 이용자가 선택한 기기가 인터넷에 연결되는 것을 보장한다”은 미국과 중국을 동시에 겨누고 있는 성격을 갖고 있다. 중국을 중심으로 사실상 인터넷이 발칸화(파편화)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근본적 문제제기를 전자상거래에 관한 논의를 통해 거론하고 있는 셈이다.

단순화 위험을 무릅쓰고 전자상거래 규범 마련을 위한 소다자 협상의 대립 축을 나눠보면 크게 세 가지다. 하나는 아마존․구글․페이스북․알리바바 등 전자상거래를 좌우하는 ‘빅테크’를 거느린 미국․중국 등과 유럽연합을 비롯한 나머지 나라들이 대립하는 축이다. 두 번째 축은 미국․유럽연합 등 발전국과 인도․중국 등 발전도상국의 대립이다. 세 번째 축은 미국․유럽연합과 중국 사이에 대립이다. 특히 세 번째 축은 중국이 WTO 가입하며 약속한 가입협약이나 기존 WTO 조약에서 분명하지 못한 내용을 디지털무역협정(DTA)에 좀 더 정교하게 새겨 넣으려는 시도에 해당한다.

근본적인 공백=데이터의 본질과 창출되는 가치의 공유

문제는 이런 복잡한 대립구도 어디에도 ‘데이터의 주인은 누구’이고, ‘데이터가 창출하는 가치를 주인에게 어떻게 돌려줄 것인가’라는 물음은 없다는 점이다. 유럽연합의 제안에도 데이터의 국경 간 이동에서 사생활 보호를 근본적 권리로 인정하고 있을 뿐 이런 물음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그럴 수밖에 없다. 2015년 5월25일 발효한 유럽연합의 일반개인정보보호법(GDPR)은 사생활 보호 측면에서 일정한 진전을 이루고 있음에도 아마존․구글․페이스북 등 미국계 글로벌 플랫폼 기업들로부터 데이터 시장을 되찾아오겠다는 성격이 근본에 깔려 있다. 4년이 지나도록 이 법에 포함된 ‘데이터 휴대성 권리’(right to data portability)가 디지털 경제의 권력균형을 기업에서 이용자 쪽으로 변화시키는 데 거의 아무런 기여도 하고 있지 못하다는 사실은 이에 대한 방증이다.

데이어 휴대성 권리에 따라 유럽연합 시민들이 외부 기업들이 보유한 개인정보의 삭제를 요청하거나 자신의 정보에 대한 접근을 합법적으로 요청할 수 있기는 하다. 이론적으로는 기업이 보관하는 정보를 한 서비스에서 또 다른 서비스로 이동할 수 있는 권리를 갖는다. 하지만 이런 권리가 적용되는 대상은 이용자가 직접 공유하는 특정 거래에서 나오는 데이터에 그친다. 그야말로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꼬끼리 부분에 해당할 뿐이다. 기업이 보유․통제하면서 다른 목적으로 재이용할 수 있는 나머지 99.99%의 정보에는 적용되지 않는다. GDPR은 사생활 보호가 미흡한 나라로의 개인정보 이동을 금지한다. 아베가 제안한 오사카 트랙은 ‘사생활이 보호되는 데이터의 자유로운 이동’은 바로 이것을 풀어놓은 설명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확보한 데이터를 통해 기업이 창출하는 가치를 데이터의 주체들과 어떻게 공유할지는 빠져 있다. 데이터 개방성만이 전면에 등장하고 있을 뿐이다. 이런 식의 데이터 개방성은 디지털 발자국과 함께 점점 커지는 사생활 보호에 대한 우려와 제대로 화합할 수 없다. 하물며 막대한 가치를 창출하는 데이터의 제공자가 자신들임을 깨닫는 시민들이 늘어나고 있는 상황에서는 더욱 그렇다. 시민들에게 데이터에 대한 진정한 통제권을 어떻게 줄지는, 데이터가 창출하는 가치를 어떻게 공유할지에 대한 물음과 분리하기 어렵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와 ‘결합노동 산물로서 데이터가 창출하는 가치’에 대한 문제의식이 필요하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688). 그래야 데이터 개방성은 사생활 보호와 제대로 결합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를 매개로 데이터 거버넌스를 논의하면서 데이터의 본질에 대한 논의를 생략하고 있는, 소다자 협상이 낳는 근본적인 공허함은 바로 여기에 있을지도 모른다. 대립구도가 아무리 복잡하더라도 사정은 바뀌지 않는다. 발전국이라고 해서 또는 발전도상국이라고 해서 외면할 수 없는 보편적 성질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데이터를 제공하는 시민들을 데이터 거버넌스에서 제대로 대접하는 것, 어쩌면 수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WTO를 제대로 개혁하는 출발점은 바로 여기일지도 모른다. 이게 가능하게 된다면 다자무역협상에서 투자자 보호와 동등한 수준에서 노동기본권 보장․보호가 다뤄지는 것도 시간문제일 것이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5422).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