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19-07-23 21:53 (화)
아베, 황당한 수출규제 강화 근거 대야
아베, 황당한 수출규제 강화 근거 대야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02 13:02
  • 댓글 1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일본, 대한민국에 대한 세 가지 품목 수출규제의 함의
미국 화웨이 제재와 일본 수출규제 차이점…명분․증거 전무한 ‘짝퉁’ 모방

국제 외교통상 관계에서 명분과 근거는 매우 중요하다. 특히 다른 나라에 어떤 경제적 제재를 가하는 경우 특히 그렇다. 예를 들어 미국의 화웨이에 대한 제재 명분과 증거를 간략히 요약해 보자. 명분은 국가안보에 대한 우려다. 화웨이의 통신장비에 비인가 접속을 통해 데이터를 추출하는 ‘백도어 프로그램’(backdoor program)이 설치될 무시하지 못할 위험성이 상존한다는 것이다.

미국 화웨이 제재의 명분과 증거

증거는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중국의 관련 법률들로 일종의 사실증거에 해당한다. 2017년 7월 제정된 국가정보법 제7조는 “어떠한 조직과 시민도 법에 따라 국가정보 작업에 대해 지지하고 지원을 제공하고 협조한다. 그리고 알고 있는 어떤 국가정보 작업의 비밀을 지킨다. 국가는 국가정보 작업에서 지지, 협조, 협력하는 개인과 조직을 보호한다”고 돼 있다. 2014년 제정된 반간첩법 제22조는 반간첩 조사가 이뤄지는 동안 ‘관련 조직과 개인’은 정보를 진실로 제공하고 거부해서는 안 되며, 거부할 경우 국가안보 기관들이 반간첩 작업 과제를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는 것으로 처벌 대상이 된다.

참고로 우리나라 국가정보원법 제15조는 “(국가정보)원장은 이 법에서 정하는 직무를 수행할 때 필요한 협조와 지원을 관계 국가기관 및 공공단체의 장에게 요청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중국 법률처럼 ‘모든 조직과 개인’으로 돼 있지 않다. 사소한 차이가 매우 중요한 차이다.

G20 의장국인 일본 아베 총리가 6월28~29일 오사카 정상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국을 향해 수출규제 강화를 빼들었다. 사진: G20
G20 의장국인 일본 아베 총리가
6월28~29일 오사카 정상회의가 끝나기가 무섭게
한국을 향해 수출규제 강화를 빼들었다. 사진: G20

다른 하나는 중국공산당‐국가가 화웨이와 같은 테크 기업들과 맺고 있는 관계로서 일종의 정황증거다. 서방 언론들의 표현으로 이 관계는 ‘모호하지만 긴밀한’ 성격을 지닌다. 사실상 중국공산당이 국가 그 자체인 구조, 이로 인해 ‘법의 통치’(rule of law)가 아니라 ‘법에 의한 통치’(rule by law)라는 형태로 중국공산당의 ‘인치’(人治)가 물질화하는 구조적 가능성, 중국제조2025에 따라 중국 챔피언을 키운다는 산업정책 등은 이런 정황증거의 배경을 이룬다.

미국이 제기하는 또는 서방에서 보는 화웨이 제재의 명분과 증거는 대충 이렇다. 이에 대해 제재 대상인 화웨이는 중국 법에 대한 오해나 협소한 해석이라고 반발하며 지금까지 정보 작업에 관여하라는 어떠한 요청도 받은 바 없고, 그런 요청을 받는다면 차라리 회사 문을 닫겠다고 반발해 왔다. 이런 해명이 받아들여지는 정도는 나라마다 차이가 있는 듯하다. 그럼에도 명분과 증거의 ‘그럴 듯함’(plausibility)은 좀처럼 사라지지 않고 있음은 부정하기 어렵다.

그럼, 일본 정부가 7월1일 발표한 수출규제 강화가 갖는 명분과 증거는 어느 정도의 ‘그럴 듯함’이 있을까? 일본 경제산업성은 ‘대한국 수출관리 운용 개정에 관하여’라는 보도자료에서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제조공정에 사용되는 핵심 소재 3가지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공식화시켰다. 품목은 텔레비전과 스마트폰 디스플레이 패널을 구성하는 유기발광다이오드(OLED)용 소재인 플루오린 폴리이미드, 반도체 원판 위에 회로를 인쇄할 때 쓰이는 감광재인 리지스트, 반도체 제조공정에서 회로 모양대로 깎아내는 식각(에칭) 공정에 사용되는 소재인 불산이 그것이다.

이들 품목의 세계시장에서 일본 업체들이 차지하는 점유율은 70~90%에 이른다고 한다. 폴리이미드의 경우 이를 대체할 수 있는 국내 기업(코오롱인더스트리, 에스케이시 등)이 있기는 하지만, 불산과 리지스트는 여의치 않다는 게 증권가 애널리스트들의 분석이다. 불산은 일본의 스텔라와 모리타 등이 전체 시장의 90%를 차지하고, 리지스트도 도쿄일렉트론, 제에스알(JSR) 등이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는 것이다.

세 가지 품목의 수출이 WMD 개발․제조․이용․보관에 이용될 가능성 있다고?

일본 정부는 7월4일부터 이들 품목에 대한 수출규제를 강화시킨다. 핵심은 ‘포괄적 수출 허가(general bulk export license, white country bulk license)’를 ‘개별 수출 허가(individual export license)’로 수출통관절차를 바꾸는 것이다. 개별 수출 허가는 건건이 수출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90일의 시간이 걸리고, 심사를 통과하지 못할 가능성이 발생한다. 일본 경제산업성이 수출규제를 이렇게 강화시키며 내건 공식 명분은 “양국 간 신뢰관계가 현저히 훼손됐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신뢰관계의 현저한 훼손’은 그 자체로 명분이 되기 어렵다. 미국의 화웨이 제재처럼 ‘국가안보 위험’이 우려된다거나, 이와 비슷한 다른 근거가 있어야 한다. 일본의수출규제 제도의 핵심에도 바로 이것이 있기 때문이다.

일본 비영리 비정부기구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가 2012년 발간한 '일본수출통제개관'
일본 비영리 비정부기구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가
2012년 발간한 '일본수출통제개관'

 

1989년 4월 설립된 비영리 비정부기구인 일본 안전보장무역정보센터(Center for Information on Security Trade Control)가 발행한 ‘일본 수출통제 개관’(3판, 2012년)을 보면, ‘백색국가 수출 허가’로 불리는 ‘포괄적 수출 허가’는 지금까지 한국을 포함해 미국, 영국, 프랑스, 체코, 헝가리 등 27개 ‘백색국가’들을 대상으로 발행됐다. 유효기간은 발행일로부터 3년이고, 신청을 통해 3년마다 갱신된다. 우리나라는 2004년부터 백색국가로 지정돼 왔다.

백색국가의 의미는 “(일본에서 수출되는) 관련 품목들이 (향하는 목적지가) 대량살상무기(WMD)의 개발․제조․이용․보관을 위해 이용되는” 것과 무관한 나라들이다. 하지만 백색국가라고 해도 특정한 거래에서 해당 수출품목이 대량살상무기 관련 용도로 이용되리라는 것을 일본 수출업자가 아는 경우에는 이 거래에 적용되지 않는다. 이 경우에 일본 수출업자는 ‘개별 수출 허가’를 신청해야 한다.

문제는 바로 이것이다. 세 가지 품목에 대한 개별 수출 허가는 바로 이런 맥락에 있다는 얘기다. 세 가지 품목이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제조․이용․보관을 위해 이용될 것이라는 점을 일본 수출업자가 안다’는 전제가 깔려 있다는 것이다. 이는 ‘한국 대법원의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 배상 판결 이후 일본 정부가 한국에 해결 방안을 제시해 달라고 요구했지만 한국 정부가 받아들이지 않아 대응(보복)에 나선 것’(교도통신)이라는 것과는 전혀 별개의 문제다. 대응보복을 하더라도 이들 세 가지 품목이 ‘대량살상무기 개발․제조․이용․보관을 위해 이용될 우려’를 제기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는 두 가지 의미 중 하나다. 하나는 한국이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제조․이용․보관에 이들 품목을 이용한다는 뜻이다. 아무리 일본이 경제보복을 가하고 싶어도 이런 식의 터무니없는 논리를 들이밀 정도로 막무가내는 아닐 것이다. 남는 건 결국 이들 세 가지 품목을 수입해 만드는 한국의 반도체와 텔레비전 등이 수출되는 나라들 중에 대량살상무기 개발․제조․이용․보관에 이를 이용하는 곳이 있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대응, 무고에 가까운 일본 정부 주장에 대해 국제무대에서 강력한 공개 질의해야

수출품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이용 가능성이 없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백색국가 수출 허가' 제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25쪽). 자료: CISTEC
수출품의 대량살상무기 관련 이용 가능성이
없는 나라들을 대상으로 발행되는
'백색국가 수출 허가' 제도의 의미를
설명하는 부분(25쪽). 자료: CISTEC

대응 지점은 바로 여기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현재 나오고 있는 주장은 대부분이 번지수를 잘못 짚은 얘기들이다. 기존에 적용해 오던 수출통관 우대조치를 낮추는 것이기 때문에 세계무역기구 협정 위반까지는 해당되지 않는다, 그러니 비위반 제소(non‐violation complaints)에 해당된다, 비위반 제소는 구속력이 없기 때문에 실효성이 없다는 것도 여기에 해당한다. 명백한 수출 제한 조치에 해당돼 WTO협정에 위배된다, 하지만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하면 패널(1심), 상소기구(2심)를 거치는 데 최소 2~3년이 걸리기 때문에 당장의 대응이 어렵다는 주장도 마찬가지다. 수출허가 방식이 바뀌는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수입이 줄어들 것이라는 것은 추정일 뿐 아직 현실화하지는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개연성만을 이유로 WTO 분쟁해결기구에 제소하는 것은 어렵다는 얘기다. 제소한다 해도 그 시점은 수출 허가 거부 등 실제 피해가 나타나는 때일 것이다.

한국 정부는 세 가지를 국제무대에서 일본 정부와 일본 수출업자를 향해 공개 질의를 해야 한다. 첫째, 세 가지 품목을 ‘백색국가 수출 허가’에서 ‘개별 수출 허가’로 전환하는 일본 정부의 법적 근거는 무엇인가? 둘째, 세 가지 품목을 수출하면 대한민국에서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제조․이용․보관에 이용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 근거는 무엇인가? 셋째, 세 가지 품목을 이용한 한국의 수출품을 수입하는 나라들 중 어느 나라가 대량살상무기의 개발․제조․이용․보관에 이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보는가? 한국산 반도체를 대량 수입하는 중국인가? 아니면 한국산 텔레비전과 반도체가 들어가는 러시아인가? 아니면 한국이 미국의 대이란 제재를 위반해 몰래 이란으로 반도체를 수출하기라도 하고 있다는 것인가?

일본의 수출규제 제도에서 입증 책임은 일본 정부와 일본 수출업자에게 있다. 일본 정부가 백색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할지에 대해 한 달간 의견수렴에 들어갔다는 말은 핑계일 가능성이 높다. 이미 7월1일 일본 경제산업성의 발표는 세 가지 품목의 한국 수출을 대량살상무기와 관련이 있다는 행태를 보인 것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필요하다면 관련 유엔 기관을 통해 공식적으로 문제를 삼는 방안도 검토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아베 신조 총리는 트럼프 대통령의 화웨이 제재를 모방하기는 했다. 하지만 무늬는 같을지 몰라도 수준이 한참 떨어지는 ‘짝퉁’이다. 명분과 증거가 ‘그럴 듯함’을 갖추기는커녕 황당하기 그지없기 때문이다. 수출규제 강화의 명분과 증거가‘그럴 듯함’을 갖췄다면 인내와 시간, 대화가 해법일 테지만, 아무래도 이번 경우는 아닐 듯하다. 거의 한국 정부와 기업들을 향해 무고에 가까운 혐의를 뒤집어씌운 아베 정부는 반드시 대가를 치르지 않을까 싶다. 아니 치르게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당분간 기자가 일본을 가는 일은 없을 듯하다. 아마도 많은 한국인들이 그렇게 하지 않을까 싶은 생각이 든다. 그렇지 않았으면 싶어도 워낙 황당하고 터무니없는 수출규제의 명분과 증거에 할 말을 잃게 된다. 일본은 한국에게 ‘가깝고도 먼’ 나라다. 당분간 아주 ‘멀고 먼’ 나라가 되지 않을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1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YOO, CHULHO 2019-07-02 17:28:54
조준상 기자의 심층기사에서 아베정부의 세가지 대한 수출금지 품목에 대한 명쾌한 해설과 CISTEC분석을 근거로 한 대응방안 제시는 일품 기사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