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8 (금)
“한국이 일본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국가인가?”
“한국이 일본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국가인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05 10:0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WTO 제소보다 국내법 위반 등 부당성 지적하는 일본언론 광고 시급
한국에 수출하면 일본 안보 위협한다는 식의 아베 인식의 문제점 지적해야

7월4일부터 시행에 들어간 아베 정부의 반도체․텔레비전 3품목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 이후 한국 정부의 태도를 보면 그리 미더워 보이지 않는다. 청와대는 뜸들이다 국민 여론이 격앙되는 걸 보고 ‘단호한 대응’으로 바뀌는가 하면, 경제부처들로부터는 허구한날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얘기만 나올 뿐이다.

차분하고 조용히 체계적으로 진행돼야 할 일들을 떠벌리는 우를 저지르는 모습도 보인다. 언제든 협박의 수단과 흉기로 돌변할 수 있는 ‘무기화한 상호의존(weaponized interdependenc)’ 상태로 기울어진 중요한 품목들에 대한 대책 수립이 그것이다. 이 대책에 해당 품목들의 자립도를 일정하게 높여나가는 것은 불가피하다.

아베 신조 총리는 의장국으로서 6월29일 끝난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 촉진'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한 지 이틀 뒤인 7월1일 일본 국내법에도 위배되는 터무니없는 근거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사진: G20
아베 신조 총리는 의장국으로서 6월29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에서
'자유무역 촉진'을 담은 공동성명을 채택한 지 이틀 뒤인 7월1일
일본 국내법에도 위배되는 근거로
한국에 대한 수출규제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사진: G20

기획재정부는 7월4일 ‘일본 수출규제 관련 부품·소재·장비 관계 차관회의’에서 일본 수출규제 대상 3개 품목과 추가 제재 가능한 품목을 선정해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자립화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하루 전 여당에서는 1조원 규모 자금지원이 이뤄지도록 하겠다는 발표도 내놨다. 아무리 총선이 코앞에 다가왔다고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동네방네 떠벌릴 성질의 사안인지 솔직히 모르겠다. ‘상호의존이 무기화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있는 분야가 없는지 차분히 점검하고 있다. 조용하면서 세심하게 방안을 세우겠다. 자세히 말씀드리지 못한다는 점 이해바란다’는 게 오히려 적당했을 듯하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패권 자랑 차원이었는지는 모르겠으나, 대놓고 떠벌리다 거대한 역풍에 흽싸인 이른바 ‘중국제조 2025’의 사례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이런 모습을 보며 떠오르는 한 장면이 있다. 지난 1월10일 국회에서 열린 제1회 동북경협력평화포럼에서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동아시아평화연구원장)는 당시 불거진 광개토함 레이더의 일본 초계기 겨냥 논란에서 한국 정부의 대응에 미숙한 점을 지적하며 이런 얘기를 했다.

“광개토함 대공무기가 일본 초계기를 겨냥하지 않았다는 일본 초계기 조종사들의 증언이 일본 방송들에 보도됐어요. 아베 정부가 주장하던 내용을 초계기를 몰던 해당 조종사들이 부정한 거예요. 그런데 한국 정부의 대응에는 이런 얘기가 전혀 없더라고요.”

지난 번 보도에서 지적한 것처럼, 아베 정부의 3품목 수출규제 강화 조치의 본질은 한국을 향해 ‘외환․외국물자법’에 따라 수출을 우대하는 ‘백색국가’(white country)에 한국이 해당하지 않는다는 기준을 적용했다는 것이다. 이는 3품목을 포함해 한국에 수출되는 여러 물자가 일본의 안보에 위협이 되는 쪽으로 이용될 위험성이 높다고 일본 정부가 판단했다는 뜻이다. 달리 말하면 대한민국을 일본 안보에 대한 위협세력으로 규정했다는 얘기다.

민변 국제통상위원회 송기호 변호사가 “한일 안보 상황에 아무런 변화가 없는데 안보 상황 변동을 이유로 수출규제 조치를 취하겠다는 것 자체가 근본적인 모순”이라고 말하는 게 정확히 바로 이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조치는 세계무역기구 조약의 한 축인 ‘관세및무역에관한일반협정’(GATT) 제11조(양적 제한 조치들의 일반적 철폐)에 당연히 위배된다. 제11조는 △수출국의 식량 부족 등과 같은 상황 △수출과 수입국의 환경 악화 등에 따른 기준의 재설정 등과 같은 예외조건을 빼곤 관세․조세․수출입허가 등 그 어떤 형태를 취하든 일체의 수출․입 제한 조치를 금지하고 있다.

이건 정부도 하는 소리다. 송 변호사는 “(아베 정부의 수출규제 강화 조치는) 안보와 실질적 관련이 없는 내용을 안보라는 법령으로 조치를 취한 것이기 때문에 일본 국내법도 위반한 것”이라며 “이 조치로 피해를 보는 일본 기업들이 자국 정부를 상대로 행정소송을 하는 것도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백색국가 수출 허가’에서 ‘개별 수출 허가’로 전환하는 일본 정부의 법적 근거가 무엇인가?”(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745)라는 물음이 중요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WTO 제소 준비작업도 중요하다. 다만 그 시기는 지금 당장은 아니다. 오히려 지금 가장 시급한 것은 일본 국민들에게 아베 정부가 얼마나 황당하고 위험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인지 최대한 널리 알리는 것이다. 핵심은 아베 정부의 조치가 일본 국내법도 위반하는 황당한 조치라는 것, 아베 정부의 조치는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많은 한국민들에게 일본이 그런 것처럼 많은 일본국민들에게도 한국은 그럴 것이다)인 한국을 ‘멀고 먼’ 이웃나라로 만들려 한다는 것, 아니 나아가 ‘가깝고도 먼’ 이웃나라인 한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세력으로 규정하고 있다는 것이다.

알리는 방법은 민간외교를 포함해 여러 수단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에는 정공법을 취하는 것이 좋다. 일본의 모든 영향력 있는 언론에 아베 정부의 이번 조치의 부당함을 알리는 광고를 예산을 이용해 집행하는 것이다. 제목은 ‘대한민국이 일본의 안보를 위협하는 적대국가입니까?’가 적당할 듯싶다. 적어도 이번만큼은 정부가 일본 언론들에 상당한 예산을 사용하는 게 시비를 거는 국민들은 별로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만큼 아베 정부의 황당하고 치졸한 조치에 대한 분노의 공감이 높다는 얘기일 것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