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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발경제 뒤에 존재하는 중국의 정신적 불안과 고뇌
개발경제 뒤에 존재하는 중국의 정신적 불안과 고뇌
  • 김창섭 뉴미디어본부장
  • 승인 2019.07.15 13:4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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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
허자오톈(賀照田) 지음, 임우경(任佑卿) 옮김

한때 중국은 대장정의 연안정신, 반봉건 사회주의 혁명, 그리고 문화혁명기에 이르기까지 이념의 과잉시대라 해도 지나치지 않는 시절이 있었다. 이런 중국의 사상적 성취는 80년대 – 소위 한국의 운동권에게 깊은 영감을 주었으며, 바디우와 같은 꽤 많은 유럽의 철학자들을 열렬한 마오주의자로 이끌었다. 그러나 현재 중국과 중국인의 모습은 이기적이고 약소국을 겁박하며 돈만 아는 이미지로 희화화 되고 있다. 특히 한국인은 사드배치로 인한 한한령과 맞물려 중국에 대한 지지도가 1%에 불과하다는 조사결과까지 발표됐다.

‘수천년간 의(義)와 이(利)를 논해온 백가쟁명의 전통과 문화혁명기 등 높은 사회주의 이상과 신념을 가진 사회였음에도 불구하고 왜 중국은 불과 수십년 만에 개인의 이익이 최우선인 삭막한 사회가 되었을까?’ 현재의 중국은 출세와 실리만 앞세우는 세태 속에 불안과 허무의 정서가 사회를 휩쓸고 있으며, 전반적인 윤리적·사상적 위기에 처해 있다.

허자오톈은 중국 사회 현실 당사자인 개인들의 경험과 역사적 맥락을 종합해 중국 당국과 지식계가 이 위기를 돌파하려고 제시한 여러 담론들을 비판적으로 분석한다. 또한 현대 중국의 정신적 위기를 타개할 자원으로 사회주의 실천의 역사를 재조명하고, 중국 지식계가 외래 사조를 수용하는 자세, 나아가 중국이 세계와 만나는 자세를 성찰한다.

‘역사-현실’에 입각한 현실인식과 함께 허자오톈이 줄기차게 강조하는 것은 사회주의 실천의 재평가다. 또한 서구에서 형성되고 승인된 정치모델을 전제한 중국분석이 모두 어긋난 전망으로 이어진 이유를 분석하면서 “사회주의는 단순한 구호가 아닌 수십년 동안 중국인들에게 영감을 불어 넣고 아래로부터의 참여를 이끌어냈던 역사적 실체다. 시장경제로의 전환과 세계경제 참여를 근거 삼아 이런 사회주의적 실천이 현대 중국 내부에 녹아 있는 함의를 무화할 수 있다는 인식은 몰역사적”이라고 말한다. 혁명과 사회주의 실천이 중국인의 삶과 정신에 미친 영향을 분명히 인식하는 것, ‘역사-현실’의 영역에 눈을 돌리는 것만이 현대 중국의 변화를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중국혁명과 사회주의 실천을 – 그 몰역사적 현실인식이 낳은 – 정신적·사상적 위기를 해결할 긍정적 자원으로 발굴하자는 이 주장은, 시장화를 추구하는 중국 현실에서 일견 의미를 상실한 것처럼 보이는 것도 사실이다. 여전히 사회주의 실현을 내세우는 중국공산당의 통치를 정당화하려는 시도로 오해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한중관계가 역사적 곡절을 겪은 탓에 현대 중국에 대한 한국의 인식에는 오랜 공백이 존재한다. 냉전 시기에는 사회주의 중국에 대한 연구가 자유롭지 않았다. 수교이후 현대 중국에 대한 연구가 양적으로 질적으로 빠르게 발전했지만, 수교 이전의 중국을 건너뛰고 바로 현재의 중국을 연구대상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다. 또한 중국의 경이로운 경제발전을 지켜보며 중국의 경제와 정치에 대한 분석이 봇물처럼 이루어졌지만 중국의 사상적, 정신적 흐름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일관된 문제의식 속에 역사적 맥락을 현실과 결합시킨 탄탄한 사유가 집약된 이 책은 정밀한 분석과 명쾌한 논리, 유연한 흐름으로 새로운 중국의 고민을 들여다 볼 수 있게 해 준다.

여기에 80~90년대 이데올로기 과잉과 그에 대한 극단적 반동의 시기를 지나온 우리 사회의 모습을 곱씹어 보며 한국의 정신적, 사상적 고민을 반추해 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현대 중국의 사상적 곤경」

허자오톈(賀照田) 지음, 임우경(任佑卿) 옮김, 창비 발간, 2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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