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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은행의 ‘정무적 금리 인하’
한국은행의 ‘정무적 금리 인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19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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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켜보는 ‘통화정책’이었어야 했다!
기준금리 내리면 투자․소비가 늘어나나?
문제는 엉성한 ‘본전치기’ 추경의 전면 재편성

한국은행이 7월18일 기준금리를 1.75%에서 1.5%로 0.25%포인트 내렸다. 오는 7월30~31일 열리는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 공개시장위원회 회의결과를 보면서 다음달 정도에 인하 여부를 결정하지 않겠느냐는 예상을 깼다는 평가가 많다. ‘조기금리 인하’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가 밝힌 금리 인하 명분은 “통화정책을 통해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겠다”는 것이다. “상반기 중 수출과 투자가 예상보다 부진했고 앞으로 여건도 낙관하지 어려운 상황”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지난 4월 2.5%에서 2.2%로 낮추며 금리 인하 결정을 뒷받침했다. 이날 공개된 금융통화위원회 결정문에는 “성장세가 둔화한 것으로 판단된다”는 문구가 새로 들어왔다. 이전까지 결정문에서 단골처럼 등장한 “성장세가 잠재성장률 수준에 부합한다”는 문구가 삭제된 것이다.

한국은행이 7월18일 "경기회복 뒷받침"을 명분으로 금리를 내렸다. 사진: 한국은행
한국은행이 7월18일 "경기회복 뒷받침"을 명분으로 금리를 내렸다. 사진: 한국은행

이런 근거에도 의문은 가시지 않는다. 지금 금리를 내린다고, 그것도 1회성으로 0.25%포인트 내린다고 투자와 민간소비가 늘어나는지 말이다. 인하 수준이 적어도 0.5%포인트였다면 충격 효과가 있었을지는 모르지만, 1회성 0.25%포인트로 투자와 민간소비가 늘어나기를 바란다면 당혹스럽다는 말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물론 1회성이 아닐지도 모른다. 이미 올해 4분기에 한 차례, 내년 초에 한 차례 금리를 내리지 않겠느냐는 예측이 나오고 있다. 이는 1회성 금리 인하로는 경기 회복을 뒷받침하는 효과가 없다고 보는 시각이 많음을 보여주는 것에 해당한다. 하지만 한국은행이 내놓은 내년 성장률 전망치는 2.5%다. 올해 4월의 2.6%에서 0.1%포인트 낮아지긴 했지만, 올해 성장률 전망치 2.2%보다 높은 수준이다. 올해보다 높은 성장률을 전망하면서 추가 금리 인하에 나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이번 금리 인하가 1회성에 그치기 쉽다고 보는 이유다.

경기 회복 뒷받침 명분이라면 지난 4월 금리 내렸어야

금리 인하의 명분이 “경기 회복 뒷받침”이라면, 한국은행은 늦어도 한참을 늦었다. 조기 금리인하가 아니라 늑장 금리인하라고 부르는 게 맞다. 경기회복 뒷받침을 이유로 내려야 했다면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두 번째로 수정하던 지난 4월에 했어야 했다. 한은은 지난해 10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2.7%로 내놨는데, 올해 1월 2.6%로, 지난 4월 2.5%로 두 차례에 걸쳐 하향 조정했다.

0.25%포인트를 내렸으니 기업과 가계의 이자부담이 줄어들기는 할 것이다. 이를 부정할 수는 없다. 하지만 투자와 소비 증가로 이어지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어지간한 금리 인하로는 해외수요(수출) 둔화와 소비․투자 둔화라는 상황을 헤쳐 나가기 어렵다는 진단은 국내․외에서 수없이 많았다.

금리 인하가 다급했던 것도 아니다. 지난 7월5일 미국 노동통계국이 발표한 6월 비농업 부문 임금근로 일자리 증가폭은 전월 대비 22만4천개였다. 예상치였던 16만개를 훨씬 웃돈 것이다. 이에 따라 6월18~19일 연방공개시장위원회에서 금리 인하를 강하게 내비쳤던 연준이 인하 시점을 저울질할 가능성은 그만큼 커졌다. 한은으로서는 상황을 지켜보며 판단해도 늦지 않았다.

일본과 겪고 있는 통상마찰도 금리 인하의 명분으로는 부적합하다. 일본의 수출규제 강화로 부품과 소재가 부족해져서 겪는 어려움이랑 금리는 그다지 관련이 없기 때문이다. 게다가 기업의 자금조달 여건이 악화하는 조짐도 없었다. 실질금리는 이미 충분히 낮은 수준이다. 또한 장기채권 금리가 단기채권 금리보다 낮은 장․단기 금리의 역전의 해소도 금리 인하 명분이 되기는 어렵다. 이로 인한 자본시장 왜곡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장․단기 금리의 역전은 지난 4월부터 일어났는데, 이는 한은이 기준금리를 조만간 계속 내릴 것이라고 보는 채권 투자자들이 많아졌다는 뜻이다. 기준금리를 계속 내리면 단기금리가 낮아질 테니까 당분간 단기금리보다 낮은 장기채권 금리를 감수하고 있다는 얘기다. 해소하는 길은 두 가지다. 한은이 기준금리를 내리지 않고 계속 동결하거나, 장기채권 투자자들의 기대에 맞게 금리를 잇따라 내리면 된다.

결국 이번 금리 인하는 한은의 ‘정치’(politics)의 성격을 강하게 지닌 것처럼 보인다. 그 효과는 정부부채의 이자부담을 덜어주는 것이다. 한은은 올해 소비자물가 상승률 전망치를 1.1%에서 0.7%로 낮췄다. 올해 상반기 6개월 연속 0%대에 머물고 있는 물가가 하반기에도 그대로 갈 것으로 본 것이다. 이는 한은의 물가관리 목표(2%)를 한참 밑도는 수준이다. 이렇게 물가가 하락하면 실질금리가 높아지고 이는 부채를 조달하는 정부와 기업에 부담이다. 금리를 내리면 실질금리가 낮아지고 부담이 줄어든다. 하지만 실질금리가 낮아진다고 기업이 투자에 나서는 것은 아니다. 다만 정부 재정정책의 여력은 그만큼 커진다.

고등학교 의무교육 동시․전면 시행 예산 2조원을 추경에 반영해라!

하지만 한은의 ‘정치’는 번지수를 잘못 짚었다. 민첩하다기보다 성급하고 약삭빨랐다고 보는 게 맞다. 문제는 이자부담 줄여줘서 재정정책 여력을 높여주는 게 아니라 재정정책 그 자체에 있기 때문이다. 6조7천억원의 추가경정예산(추경)의 국회 통과가 시급하다는 얘기를 하는 게 아니다. 이번 추경은 엉성하기 짝이 없다. 본예산조차 제대로 쓰지 못하면서 관료들이 미리 예산을 확보하는 차원에서 이곳저곳에 끼워 넣은 게 수두룩하다. 기껏해야 본예산 불용액을 상쇄하는 본전치기 추경이고, 경기부양 효과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리는 아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515).

필요한 것은 제대로 된 추경이다. 차라리 고등학교 의무교육을 올해 2학기부터 단계적으로 실시할 게 아니라 모든 학년을 대상으로 동시에 시행하는 쪽으로 현재 추경안을 왕창 뜯어고치는 게 훨씬 낫다. 입학금·수업료·학교운영지원비·교과서대금 등 고등학생 1인당 교육비는 연 평균 158만원 정도다. 1․2․3학년 동시에 시행하면 여기에 필요한 재원은 약 2조원이다. 가정에서 이 돈의 30%를 저축한다고 해도 정부지출 2조원에 더해 가계의 1조4천억원의 소비수요가 창출된다. ‘경기가 어려우니 추경 통과해 달라’고 떼쓰는 대신에 경기부양 효과는 거의 없는 엉성한 본전치기 추경을 이런 식의 알짜 추경으로 완전히 대체하는 게 시급하다. 그랬다면 “경기 회복 뒷받침” 하겠다며 듣기 좋은 말을 쏟아내며 금리를 내리는 한은의 약삭빠른 ‘정치’ 대신에, 지켜보는 통화정책을 볼 수 있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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