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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 소득주도성장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커버] 소득주도성장 논쟁을 어떻게 볼 것인가?
  • 윤종인 본지 편집기획위원, 백석대 교수
  • 승인 2019.07.26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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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금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은 엄연히 달라
소득주도성장은 단기적 처방을 장기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것과 같아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 수립

[커버스토리 - 문재인 정부 출범 2년, 경제정책은 성공하고 있나?]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평가 ② - 소득주소성장론>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의 특징이 소득주도성장이라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듯하다. 최저임금 인상이 논란이 되면서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이라는 상위의 개념을 설정하기도 했지만 여전히 실질적인 의미를 지니는 것은 소득주도성장이다. 포용적 성장은 국제통화기금(IMF), 세계경제포럼(WEF) 등에서도 의제가 되었던 것이므로 이를 전면에 내세우는 것에는 정치적 논란을 고려한 판단도 작용했을 것이다. 하지만 국민경제자문회의는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을 “많은 사람에게 성장의 결과가 배분되고, 두루 혜택을 누리는 성장으로 이를 구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식으로 소득주도 성장, 혁신성장, 공정경제가 있다”고 설명한다. 그러므로 현 정부의 포용적 성장에서 핵심은 여전히 소득주도성장이다.

소득주도성장은 본격적으로 도전받고 있다. 이 정책은 잠재성장률이 하락하고 고령화의 영향이 본격화되는 시기에 시도되었다. 쉽게 말해 어려운 시기에 생소한 정책이 시도된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의 실험이라고 볼 수 있는데, 불가피할지도 모르는 장기적인 경제성장률 하락 국면에서 새로운 시도는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인가? 아니면 제대로 검증된 바도 없는 이론을 위기 국면에 시도함으로써 국민 모두를 실험 대상으로 삼고 있는 것은 아닐까? 2019년은 국민 모두에게 커다란 갈림길이 될 것이다.

많은 문제가 그렇듯이 여권 지지자들은 소득주도성장을 지지하고 야권 지지자들은 이를 비판할 것이다. 이 글에서는 소득주도성장 논쟁을 평가하기 위한 기초 지식을 소개하고자 한다. 그래야만 이 논쟁을 올바로 이해하고 합리적인 판단을 내릴 수 있을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이 논쟁 역시 당파싸움으로 흘러서 한국사회는 돌이킬 수 없는 먼 길을 헤매게 될 수도 있다.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주도성장의 확장된 버전인가?

소득주도성장은 폴란드의 경제학자 칼레키(Michal Kalecki)에 근거한 개념이다. 그는 20세기 전반의 위대한 경제학자 케인즈(John M. Keynes)를 계승했다고 평가되는 여러 경제학자들 중 좌파로 분류되는 후기 케인즈학파(post-Keynesian school)의 한 사람이다. 최근 칼레키의 후계자들은 주류 경제학의 성장론을 이윤주도성장(profit-led growth)이라 비판하면서 스스로의 성장론을 임금주도성장(wage-led growth)이라고 불렀다. 하지만 주류 경제학자들은 스스로를 이윤주도성장론자라고 부르지 않는다. 마치 마르크스경제학자들이 주류 경제학을 근대경제학이라 부르지만 정작 주류 경제학자들은 근대경제학이라는 표현을 쓰지 않는 것과 같다.

임금주도성장은 우리나라에서 소득주도성장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임금주도성장이 노동자의 임금에 초점을 맞춘 것과 달리 소득주도성장은 노동자의 임금뿐만 아니라 영세자영업자 등 저소득층의 소득에도 초점을 맞추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하여간 임금주도성장에서는 노동계급의 주도성을 강조하는 계급적 관점이 명확하지만 소득주도성장에서 계급적 관점은 모호하다.

임금주도성장이 소득주도성장으로 확장된 것처럼 보이기는 하지만 임금주도성장의 이론이 소득주도성장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예들 들어 자영업자들의 소득은 부분적으로 임금소득이고 부분적으로 자본소득이다. 계급적 관점에 입각한 임금주도성장론은 임금소득과 자본소득을 충돌하는 요소로 보는 입장인데, 그렇다면 자영업자들은 다분히 이중적인 성격을 갖는다. 자영업자들은 임금주도성장정책을 좋아할 것인가 아니면 이윤주도성장정책을 좋아할 것인가? 최근 우리나라에서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인해 가장 반발하는 사람들은 소상공인들이다. 이는 임금주도성장정책이 자영업자에게 불리함을 보여주는 것은 아닐까? 조금 더 나아가서 소득주도성장이 임금주도성장의 확장된 버전이라고 주장하지만 거기에는 이미 이론적 결함이 내포되어 있는 것은 아닐까?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이 가장 먼저 답해야 할 것은 임금주도성장정책이 자영업자에게 유리한가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에 따른 피해를 줄이기 위해 작년 말 정부는 신용카드 수수료 인하를 단행했다. 신용카드 수수료율은 매출액이 3억원 이하인 경우 변동이 없었고 3억원 이상인 경우에만 인하되었으므로 영세한 소상공인에게 정말로 도움이 되었는지도 알 수 없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을 상쇄하기 위하여 신용카드시장과 같은 다른 영역에서 규제와 간섭이 증가한다는 점이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이 추구하는 임금주도성장정책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영역에 부담을 전가시키고 있는 것은 아닌가?

소득주도성장의 개념적 혼란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는 소득주도성장을 “소득분배를 개선하고, 사람에 대한 투자를 강화하여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려는 정책”이라고 정의한다. 그리고 소득주도성장의 세 가지 축은 첫째 가계소득을 높이고, 둘째 가계의 생계비를 줄여 가처분소득을 늘리며, 셋째 사회안전망과 복지를 확충해 실질적인 소득증대효과를 높이는 것이다.

이 정의에서 키워드는 결국 소득분배의 개선,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 사회안전망과 복지이다. 따라서 소득주도성장이란 소득분배 개선과 복지정책을 통한 성장정책이라고 요약할 수 있을 것이다. 작년 한국개발연구원(KDI)이 개최한 국제회의에서 소득주도성장을 옹호한 한 경제학자도 “소득주도성장론은 소득불평등의 교정 및 임금을 포함한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가를 통해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모색하는 진보적 성장론”이라고 정의한 바 있다.

그런데 같은 국제회의에서 한 경제학자는 개념의 불명확성을 지적하였다. 인용하면 다음과 같다. “오늘 우리들 사이에서 발견되는 정책 전략으로서의 임금 주도 성장론에 대한 한 가지 오해는 임금 주도 성장이 재분배 정책을 지지하는 1990년대 World Bank의 ‘Pro-poor growth’, 혹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IMF나 OECD가 제안한 포용적 성장과 어떤 점에서 차이가 있는지 불분명해졌다는 것이다.” 임금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은 다르다는 것이다. 포용적 성장의 초점은 소득의 재분배에 있지만 임금주도성장의 초점은 본원적 소득의 분배에 있기 때문이다. 즉 임금주도성장의 기본 원리는 노동 중심성에 있으며, 노동의 협상력을 키움으로써 본원적 분배에 개입하고 노동소득분배율을 끌어올리는 것이라고 말한다.

여기에서 본원적 소득분배와 소득재분배가 어떻게 다른가를 명확히 해 두기로 하자. 본원적 소득분배란 각 경제 주체들이 시장에서 경제활동을 함으로써 결과적으로 도달하게 되는 소득분배를 말한다. 반면에 소득재분배는 시장에서 이미 이루어진 본원적 소득분배에 (조세와 보조금 등을 통해) 정부가 개입함으로써 기존의 본원적 소득분배를 바꾸는 것을 말한다.

한국은행이 국민소득을 측정할 때 작성하는 국민계정에 따르면 소득분배는 3단계의 계정에서 추계된다. 우선 본원적 소득분배계정은 피용자보수, 영업잉여, 생산 및 수입세, 보조금, 재산소득으로 구분된다. 피용자보수는 임금소득이라고 볼 수 있으며, 영업잉여는 자본소득, 재산소득은 자산소득으로 볼 수 있다. 본원적 소득분배가 끝이 아닌데, 이어서 제2차 소득분배계정과 현물소득 재분배계정이 있다. 제2차 소득분배계정에서는 소득, 부 등에 대한 경상세, 사회부담금, 사회수혜금, 기타 경상이전이 추가된다. 또한 현물소득 재분배계정에서는 사회적 현물이전이 추가된다. 쉽게 말하면 제2차 소득분배계정과 현물소득 재분배계정은 소득의 재분배를 추계한다고 볼 수 있다.

임금주도성장은 본원적 소득분배에 개입하는 정책이고 포용적 성장은 소득재분배에 개입하는 정책에 보다 가깝다. 그러므로 임금주도성장에서 핵심적인 정책은 최저임금의 인상이다. 최저임금의 인상은 노동시장에서 소득이 분배되는 과정에 개입하는 정책이기 때문이다. 반면에 포용적 성장에서 강조하는 복지정책은 소득의 재분배에 개입하는 정책이라고 보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임금주도성장과 포용적 성장은 엄연히 다르다.

소득주도성장의 지지자들은 소득재분배 또는 복지정책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금주도성장론자들에게 최저임금의 인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다. 임금주도성장의 핵심정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들에게 최저임금 인상의 영향과 그것에 대한 소상공인의 반발은 매우 중요한 현상이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을 포기할 수 있을까? 만약 포기하게 된다면 소득주도성장은 임금주도성장과 결별하는 셈이다.

소득주도성장은 성장담론인가?

앞에서 소득주도성장에 대한 대통령 국민경제자문회의의 설명을 소개한 바 있다. 이에 따르면 소득주도성장정책은 엄연히 경제성장(economic growth)을 목표로 하고 있으며 성장잠재력을 회복하려는 정책이다. 한편 이를 달성하기 위한 세 가지 축은 가계의 가처분소득, 사회안전망, 복지정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목표는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것이지만 세 개의 정책 축은 아무래도 총수요를 진작시키는 것이다. 목표와 정책수단 사이에 부정합이 있어 보이는데, 소득주도성장은 정말로 성장담론인가? 세 개의 정책 축은 성장잠재력을 높일 수 있는가?

임금주도성장이든 소득주도성장이든 소비의 역할에 주목한다. 소득주도성장을 중심으로 이 문제를 살펴보자. 이에 따르면 가계의 가처분소득 증대, 사회안전망과 복지정책의 확대를 통해 저소득층의 소비를 촉진하면 이것이 경제성장을 가져오리라는 것이다.

물론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더 크다는 가정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정책들은 소득불균등 완화와 단기적인 불황대책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렇게 간단한 문제는 아니다. 최근 국내 거시경제학계의 연구에 따르면 2000년 이후 우리나라의 한계소비성향은 지속적으로 하락해왔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게다가 일부의 연구에 따르면 저소득층의 한계소비성향이 오히려 더 작다는 실증분석결과도 제시되고 있다. 그렇다면 고소득층의 소득이 늘리는 것이 소비를 진작시키는데 더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사실 성장과 소비의 관계는 성장과 투자의 관계보다 훨씬 더 멀다. 이는 쉽게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소비는 ‘현재에’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소비가 생산에 미치는 효과는 현재에 단 한 번 나타날 뿐이다. 반면에 저축은 ‘미래에’ 재화와 서비스를 구매하기 위하여 남겨둔 것이다. 즉 저축이 증가하면 현재의 소비보다는 미래의 소비가 더 커진다. 바꾸어 말하면 저축이 증가하면 현재의 생산보다 미래의 생산이 더 커지게 마련이다. 현재의 생산보다 미래의 생산이 더 커지는 것이 경제성장이 아닌가?

저축은 투자로 이어진다. 투자란 예를 들면 기업이 공장을 새로 짓는 것이다. 기업이 공장을 새로 지으면 현재에 단 한 번만 사용하고 버리지는 않는다. 감가상각이 진행되겠지만 공장은 미래에도 지속적으로 사용된다. 쉽게 말해 저축과 투자는 기업의 미래 생산능력을 확대하는 행위이다. 그렇다면 경제성장이 나타나지 않겠는가? 주류경제학의 성장이론을 보면 저축과 투자는 중요하게 다루어지지만 소비는 그렇지 않다. 소비는 현재에 단 한 번만 생산을 촉진하지만 저축과 투자는 미래에 지속적으로 생산을 촉진하기 때문이다. 즉 소비는 단기적인 효과만을 가져오지만 저축과 투자는 현재에서 시작하여 미래까지 장기적인 효과를 가져온다. 그러므로 소비를 통해 장기적인 성격의 성장을 달성할 수 있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이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케인즈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말했다. 물론 칼레키도 이 점에 착안하여 자신의 주장을 전개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케인즈의 주장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소득주도성장의 지지자들은 소득재분배 또는 복지정책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금주도성장론자들에게 최저임금의 인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다. 임금주도성장의 핵심정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17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제 8차 정책토론회 모습. 사진=청와대
소득주도성장의 지지자들은 소득재분배 또는 복지정책을 말하는 경향이 있다. 하지만 임금주도성장론자들에게 최저임금의 인상은 결코 포기할 수 없는 정책이다. 임금주도성장의 핵심정책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2018년 6월 17일 “소득주도성장특별위원회” 제 8차 정책토론회 모습. 사진=청와대

경제성장과 경기변동의 문제

우리는 경제성장률이 2%라는 표현을 자주 접한다. 예를 들어 국내총생산(GDP)이 작년에 100이었는데 금년에 102가 되었다면 금년의 경제성장률은 2%이다. 이처럼 경제성장은 국민소득의 증가를 의미하는 표현으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경제학자들은 경제성장(economic growth)과 경기변동(business cycle)을 엄격히 구분한다. 둘 다 국민소득의 변동을 나타내는 개념이지만 중요한 차이가 있다. 경제성장은 장기적인 추세(trend)를 의미하고 경기변동은 단기적인 순환(cycle)을 의미한다.

본래 국민소득은 부드럽게 증가하지 않는다. 1/4분기에는 많이 증가하고 2/4분기에는 적게 증가하다가 3/4분기에는 감소할 수도 있다. 즉 국민소득의 변동에는 순환이 있다. 순환에서 고점이 호황이고 저점이 불황인데, 이러한 순환을 경기변동이라고 말한다. 물론 이 경우에도 1/4분기의 경제성장률은 높고 3/4분기의 경제성장률은 낮다고 말한다. 하지만 성장률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더라도 이는 경제성장의 문제가 아니라 경기변동의 문제임에 주의해야 한다. 즉 불황은 경기순환에서 나타나는 단기적인 문제이고 장기적인 문제가 아니다.

상승과 하락이 반복되는 순환을 거치면서도 국민소득이 꾸준히 상승한다면 우리는 장기적인 추세가 상승세에 있음을 알게 된다. 이 장기적인 추세가 바로 경제성장이다. 물론 장기적인 추세가 가파르면 경제성장률은 높고 장기적인 추세가 완만하면 경제성장률은 낮다. 국민소득의 장기적인 추세를 다루는 것이 바로 경제성장의 이론이다. 많이 쓰이는 용어 중에 잠재성장률 또는 성장잠재력이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이 경제성장론의 핵심 개념이다. 즉 경제성장론은 단기적인 경기순환을 연구하는 것이 아니라 장기적인 추세를 연구한다.

경기변동도 중요하다. 20세기 전반에만 하더라도 경기변동은 정말로 심각한 문제였다. 그 중에서 가장 유명한 것이 대공황(Great Depression)이었는데, 그야말로 자본주의를 위기로 몰고 갔던 대사건이었다(사실 대공황이라는 표현이 널리 쓰이지만 depression을 불황이라 번역하는 오늘날의 용어법으로는 대불황이 더 적절한 번역이다). 케인즈 경제학은 이 시기에 등장했다. 그는 민간의 투자가 부진하므로 소비와 정부지출이 적극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문구도 이런 상황에서 나온 말이다.

하지만 아무리 대공황이 중요한 사건이었다고 해도 이는 어디까지나 경기변동의 문제이다. 즉 케인즈의 제안은 불황에 대처하는 방법에 관한 것이었다. 따라서 그의 총수요정책은 경기변동을 완화할 수는 있어도 잠재성장률을 올릴 수는 없다. 애초에 그런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제 이 문제를 소득주도성장에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다. 저축과 투자가 아니라 소비의 촉진을 통해 ‘단기적으로’ 불황에서 탈출하겠다는 주장은 성립할 수 있지만, 소비의 촉진을 통해 ‘장기적으로’ 잠재성장률을 높인다는 주장은 아무래도 이상한 발상이다.

장기적인 정책과 단기적인 정책

통풍을 앓은 적이 있다. 통풍은 요산이 많으면 걸리는 병이며, 증상이 심할 때는 발이 아파서 걷기조차 힘들다. 주치의는 이를 발작이라고 불렀는데, 처방전에 따라 약을 먹으면 통증이 가라앉는다. 그러면서 주치의가 반드시 하는 말이 있다. “1주일 후에 반드시 오셔야 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나중에야 알게 되었다. 발작이 있었을 때 먹는 약은 진통제이고, 발작이 가라앉고 나면 그 때부터 먹는 약이 진짜로 통풍 치료제라는 것을.

이처럼 단기적인 처방과 장기적인 처방은 엄연히 다르다. 발작이 있을 때에는 진통제를 처방해서 발작부터 가라앉혀야 한다. 이것이 단기적인 처방이다. 하지만 발작이 가라앉으면 그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통풍을 치료해야 한다. 즉 요산을 배출시키는 약물치료를 진행하는데, 이 과정은 매우 오래 걸려서 평생 동안 약을 먹는 사람도 있다. 이것이 장기적인 처방이다.

단기적인 처방이 필요할 때 장기적인 처방을 내린다면 그것도 이상하다. 발작이 일어났는데 진통제를 주지 않고 요산을 배출시키는 약을 처방하는 것이다. 하지만 더 이상한 것은 장기적인 처방이 필요할 때 단기적인 처방에 의존하는 것이다. 즉 발작이 가라앉았는데, 요산을 배출시키는 약을 처방하지 않고 진통제만 처방하는 것이다. 이는 통풍의 근본적인 원인을 치료하지 않고 엉뚱한 처방을 내리는 것과 같다. 진통제로 요산이 배출되겠는가?

소득주도성장은 단기적인 처방을 장기적인 문제에 적용하는 것과 같다. 즉 소비를 중시하는 정책은 불황에 직면해 있을 때 고려해 볼 만한 정책이므로 아무리 좋다고 해도 단기적인 처방에 불과하다. 하지만 잠재성장률의 하락과 같은 경제성장의 문제는 장기적인 문제이다. 그러므로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소비를 중시하는 단기적인 정책을 이용하여 잠재성장률의 하락이라는 장기적인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것이다. 비유하자면 진통제를 이용하여 통풍을 치료하겠다는 것과 같다. 얼마나 이상한 발상인가?

물론 단기적인 문제와 장기적인 문제가 아무런 연관이 없는 것은 아니다. 즉 단기적인 문제를 방치하면 장기적인 문제의 해결이 어려워질 수 있다. 바꾸어 말하면 다음과 같다. 불황이 장기화되면 잠재성장률이 떨어질 수도 있다. 이를 이력현상(hysteresis)이라고 하는데, 소득주도성장이 성장 담론임을 주장하기 위해 인용하는 개념이다.

이력현상을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어떤 노동자가 특정의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고 하자. 그런데 불황이 닥쳐서 실직하고 말았다. 다행히도 불황이 단기에 그쳐서 다시 취업하게 되었다면 이 노동자는 자신의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을 구하게 될 것이다. 하지만 불황이 장기간 지속되어 취업이 어려워진다면 이 노동자는 자신의 기술과는 무관한 직장을 구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치킨집을 창업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이 노동자가 보유한 인적 자본은 사라진다. 많은 시간이 흘러 경기가 회복되더라도 이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직장에 재취업하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단기적인 불황이 오랜 기간 지속되면 노동자의 인적 자본은 사라지고 그로 인해 장기적인 성장잠재력도 훼손될 것이다.

이력현상은 일리 있는 주장이다. 따라서 단기적인 불황이라고 하더라도 그냥 보고만 있어서는 안 된다. 불황이 지속되면 잠재성장률을 떨어뜨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단기적인 불황대책이 성장잠재력을 향상시키기 위한 정책이라는 뜻은 아니다. 단기적인 정책은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이고 불황의 지속이 성장잠재력을 훼손하지 않도록 하는 정책일 뿐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정책은 불황대책 이상의 것이 되어야 한다.

현재 한국경제가 직면한 문제가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하게 진단해야 한다. 만약 단기적인 경기변동의 문제, 즉 불황에 직면한 것이라면 거기에 맞는 단기적인 정책을 시행하면 된다. 하지만 잠재성장률 하락이라는 장기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다면 이야기는 다르다. 잠재성장률을 떨어드리고 있는 구조적이고 장기적인 문제를 찾아서 그것을 바로 잡아야 한다.

하향 조정되는 경제성장률

2019년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는 상반기가 끝나기도 전에 잇달아 하향 조정되고 있다. 4월의 전망치와 5월의 전망치가 다를 정도인데, 4월 IMF와 한국은행의 전망치는 각각 2.6%와 2.5%로 조금 낮아졌을 뿐이었으나 5월에 발표된 OECD와 KDI의 전망치는 또 다시 2.4%로 낮아졌다. 거기에는 그 사이에 발표된 1/4분기 실적이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한국은행의 발표에 따르면 (전 분기 대비를 기준으로) 1/4분기 경제성장률은 놀랍게도 –0.3%이었다. 그래서인지 가장 최근인 6월 초에 발표된 한국경제연구원의 연간 전망치는 2.2%였다.

이명박-박근혜 정부 시절에 전 분기 대비 경제성장률이 마이너스이었던 것은 2008년 4/4분기뿐이었다. 당시 우리나라가 마이너스 성장을 했던 이유는 초유의 미국 금융위기 때문이었다. 즉 대외적인 요인이 크게 작용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 들어 마이너스 성장은 벌써 두 번째이다. 2017년 4/4분기의 –0.2%에 이어 2019년 1/4분기에도 –0.3%를 기록하였다.

지난 5월 31일 금융통화위원회는 기준금리를 1.75%로 동결하면서 다음과 같이 경제상황을 요약하였다. “설비 및 건설투자의 조정이 지속되고 수출이 부진한 모습을 보였으나 소비가 완만하나마 증가세를 이어가면서 1/4분기의 부진에서 다소 회복되는 움직임을 나타내었다. 고용 면에서는 취업자수 증가규모가 줄어들고 실업률이 높아졌다. 앞으로 국내경제의 성장흐름은 건설투자 조정이 지속되겠으나 소비가 증가 흐름을 이어가고 수출과 설비투자도 하반기에는 점차 회복될 것으로 전망된다.”

2019년 1/4분기의 성장률이 마이너스인 이유는 수출 부진의 영향이 컸다. 투자가 부진하고 소비가 그 공백을 감당하지 못하는 상황은 2017년 이후 계속된 문제였고 이로 인해 저성장이 이어지고 있다. 여기에 한국경제를 지탱하고 있던 수출마저 부진했기 때문에 금년 1/4분기의 성장률이 마이너스가 된 것이다. 한국경제는 투자 부진과 소비의 미미한 영향 속에 미중무역전쟁, 반도체가격 등 대외적인 요인이 개선되기만을 기다리는 난감한 상황에 처해 있다.

현재의 경기상황을 불황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한 듯하다. 2019년 1/4분기의 전기 대비 성장률은 –0.3%(분기 성장률)이었고 전년 동기 대비 성장률은 1.8%(연간 성장률)이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경기를 진작시키기 위한 불황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지출의 증가 또는 금리 인하의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이다. 금리 인하는 한미금리차 역전 등의 요인으로 인해 쉽게 선택할 수 있는 정책수단이 아님을 감안하면 정부지출의 증가가 유일한 정책수단인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불황대책이지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정책은 아니다.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은 주류 경제학이 공급만을 중시한다고 비판한다. 그러면서 성장정책을 세 가지로 구분하고 있다. 첫째는 기본정책, 둘째는 보완정책, 셋째는 공급정책이다. 기본정책은 임금주도성장의 핵심요소인데, 노동의 교섭력을 직접 지원하는 노동정책과 임금정책이다. 보완정책은 경제민주화, 복지정책, 일자리정책, 총수요정책이다. 셋째 공급정책이 보통 주류 경제학에서 말하는 성장정책이다. 소득주도성장론자들도 공급정책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그래서인지 청와대가 말하는 포용적 성장에는 소득주도성장과 함께 혁신성장도 들어 있다.

경제성장이란 국민소득이 증가하는 것이고 국민소득이란 한 나라의 국민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능력이다. 따라서 경제성장이란 한 나라의 국민이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하는 능력이 향상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물론 그것을 위해서는 노동력과 자본의 투입이 증가해도 된다.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생산성의 향상이다. 즉 동일한 양의 노동력과 자본이 투입되더라도 더 많은 재화와 서비스를 생산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총요소생산성(total factor productivity)의 증가이다. 그렇다면 1인당 국민소득은 증가하게 될 것이고 이것이 잠재성장률을 높이는 결정적인 해법이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소득주도성장론자처럼 말해보겠다. 성장잠재력을 높이기 위한 기본정책은 공급정책이어야 한다. 그리고 그들이 보완정책 또는 기본정책이라고 말하는 것 중 일부는 단기적인 불황대책으로 활용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중에는 성장잠재력 향상에 역행하는 것도 꽤 있다. 그렇다면 그런 정책은 조용히 폐기되어야 한다.

OECD는 한국경제의 성장률 전망치를 낮추면서 한국 정부의 주요 과제로 노동생산성 향상을 지목했다. 한국에서 장시간 노동시간이 행해진 이유도 노동생산성이 OECD 상위 50% 국가들의 절반 수준에 불과하여 이를 보완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이제 주 52시간 제도가 도입되었으니 제조업의 절반 수준에 불과한 서비스업과 중소기업의 노동생산성을 높이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 중소기업의 활력을 증대시키는 규제 개혁에 우선순위가 부여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또한 최저임금 인상폭을 줄여야 한다고 제안했는데, 높은 생산성이 동반되지 않은 대규모의 최저임금 인상은 고용을 줄이고 기업의 경쟁력을 떨어뜨리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한 제안

잠재성장률을 높이기 위해서는 여러 가지 정책이 필요하다. 여기에서는 산업정책을 중심으로 제안하려 하는데, 문재인 정부도 산업정책의 부족을 시인한 바 있다. 뒤늦게나마 성장동력산업을 육성하겠다고 나섰는데, 제대로 된 청사진부터 그리는 것이 좋을 것이다.

중진국함정이라는 개념이 있다.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 개도국이 1인당 국민소득 1만 달러 근방까지는 성장하지만 이후에는 성장률이 정체되어 더 이상 선진국으로 발돋움하지 못하는 현상을 일컫는 개념이다. 동남아시아의 많은 나라들이 중진국함정에 빠졌다고 알려져 있는데, 이 함정에 빠지지 않은 대표적인 나라로 한국과 대만을 꼽는다.

우리나라가 중진국함정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데에는 여러 요인이 작용했을 것이다. 그 중에 하나가 다음과 같다. 우리나라가 국제적인 공급사슬(supply chain)에서 보다 상위로 올라설 수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보통 개도국은 노동집약적인 산업에 특화하여 높은 성장률을 달성한다. 태국이나 말레이시아도 그랬다. 그런데 이 나라들은 국민소득이 1만 달러에 이른 후에도 여전히 노동집약적인 산업이 중심이었다. 더 이상 도약하지 못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달랐다. 1990년대 이후 보다 상위의 산업이 발달했던 것이다. 예를 들어 휴대폰, 디스플레이, 자동차산업 등이 그러했다. 게다가 부품과 중간재 산업도 성장했다. 그래서 우리나라가 중국에 부품과 중간재를 수출하고 중국이 이를 조립하는 공급사슬이 형성되었다. 이러한 공급사슬이 형성되면 중국의 수출이 증가할 때 우리나라의 대중국 수출도 증가하게 된다. 현재 아시아 국가의 공급사슬에서 최상위를 차지하고 있는 나라는 일본이다. 따라서 한국과 중국의 수출이 증가하면 일본의 대한국 수출과 대중국 수출은 모두 증가한다.

국제적인 공급사슬에서 보다 더 상위로 올라서지 못하면 우리나라도 현재의 수준에 머물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단순한 가공 조립에서 벗어나 부품과 중간재 산업으로 이행해야 하고, 산업구조를 고도화하여 고부가가치산업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많은 일이 필요하다. 단순한 응용기술보다는 기초기술을 연구하고 개발해야 하며, 이를 담당할 수 있는 고급 인력도 양성해야 한다. 그러므로 교육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교육부는 대학입시제도만 뜯어고칠 것이 아니라 대학과 대학원교육의 질적 향상을 추진해야 한다. 4차 산업혁명이라는 구호는 요란하지만 각종 규제 때문에 이를 구현할 수 있는 산업도 형성되지 못하고 있다. 이전에는 없었던 고부가가치의 신산업이 계속해서 등장할 수 있도록 정부는 여건을 조성하고 규제를 개혁해야 하며 민간기업과 협력해야 한다.

어떤 산업을 육성할 것인가? 그것을 위해 정부는 무엇을 할 것인가? 성장동력산업의 담당자는 민간기업이 될 것인데, 그들의 활력을 높이기 위해 무엇이 필요한가? 소득주도성장이 이러한 산업을 육성하는데 얼마나 기여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최저임금을 인상한다고 해서 고부가가치의 신산업이 형성되고 우리나라가 보다 상위의 공급사슬로 올라설 수 있을까? 이러한 노력을 공급에만 치중한 정책이라고 비판하는 주장은 과연 타당한가?

단기부양책과 성장정책의 조합이 필요하다

금년 1/4분기의 경기침체에는 수출 부진의 탓이 컸다. 수출의 증가를 위해서는 대외적인 요인의 개선을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이므로 이 시점에서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것은 최근 몇 년 간 경기침체의 주요 요인이었던 투자를 촉진하는 일이다. 기업의 투자 의지를 제고하기 위해서라면 발상의 전환도 기꺼이 감수해야 한다. 투자 중에서도 건설투자의 부진이 특히 심각하다. 최근 부동산가격 상승에 대해서도 수요억제정책으로 응수했는데, 오히려 가격상승을 활용하여 조금 더 신속하게 공급증대정책으로 전환하는 것이 좋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부동산가격이 정체되면 아파트 공급증대정책도 쓰기 어렵기 때문이다.

성장률이 마이너스이었으므로 현재의 국면은 경기변동에서 침체기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불황에서 벗어나기 위한 대책이 필요하며, 정부지출을 늘려 총수요를 진작시키도록 해야 한다. 현재 정부도 추경예산을 편성하는 등 대책을 강구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제언을 덧붙이자면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전향적으로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점이다. 토목건설투자로 여겨져서 기피할지도 모르지만 이에 대해서도 실용적인 접근이 요구된다. 사회간접자본 투자의 가장 큰 수혜자는 건설노동자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이다. 장기적인 정책이기 때문에 단기적으로 효과가 나타나기는 쉽지 않다. 하지만 정말로 어려운 것은 현재가 아니라 (고령화의 영향이 본격화되는) 미래임을 알아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일본은 우리나라에게 중요한 교훈이다. 일본의 예산 중 23%는 국채의 원리금을 상환하는데 쓰인다고 한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우리나라의 고령화 속도가 일본보다 빠르다는 점을 고려하면 일본에서 벌어져 왔던 일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예정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 좋다.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성장잠재력은 앞으로도 계속 떨어질 것이다. 나중에 되돌리려면 정말로 힘든 고통을 수반할 수밖에 없으니 이런 때일수록 정책당국자들은 국민들을 잘 설득해야 한다.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겠지만 지금에라도 성장잠재력을 제고하기 위한 정책을 시작해야 한다고 말이다.

우려스러운 일은 엉뚱한 성장정책을 동원하는 것이다. 아무래도 소득주도성장은 엉뚱한 정책 같다. 통풍 걸린 환자에게 계속해서 진통제만 처방하는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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