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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노 다로(일본 외무상)가 안쓰럽다!
고노 다로(일본 외무상)가 안쓰럽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26 17:1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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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에 왕따 당한 뒤 ‘양심’ 저버렸을까?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관계는 ‘굿 캅’(좋은 경찰)‑‘배드 캅’(나쁜 경찰)이라고 한다. 볼튼이 악역을 맡고 트럼프가 이를 수습하는 관계라는 얘기다. 트럼프가 볼튼을 해고하려 한다는 설이 지난 5월 나돌았지만, 트럼프의 볼튼에 대한 기본 인식은 ‘협상에서 유리한 위치를 갖게 하는 존재’라는 게 백악관에서 흘러나오는 소식이다. 볼튼의 호전적인 태도가 외국과 협상에서 유리하게 작용한다고 본다는 것이다.

때때로 역할을 바꾼다고도 한다. 이를테면 이런 식이다. 지난 7월18일 네덜란드 총리 마르크 뤼터와 양자회담을 하면서 트럼프는 네덜란드를 포함한 유럽 국가들이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에 충분한 방위비를 지출하지 않고 있다고 볼멘 소리를 하다가 자신의 오른쪽에 앉아 있던 볼튼에 이렇게 물었다. “존, 당신은 나토를 사랑하죠, 맞죠?” 그러자 볼튼은 나토를 옹호하는 짤막한 방어론을 펼쳤고, 이어서 트럼프가 나토 방위비 분담과 관련한 유럽 국가들에 대한 실망감을 줄창 이어갔다.

볼튼을 해고하라는 수많은 조언에도 트럼프가 볼튼을 곁에 두는 이유가 이렇다면 볼튼이 당분간 해고될 가능성은 없을 듯하다. 벌써 세 번째인 볼튼을 자르면 임기 3년도 안 돼 안보보좌관이 네 번이나 바뀌는 모양새도 그리 좋지 않기에 볼튼 카드가 계속 갈 가능성은 더 높다.

‘왕따’당한 고노는 왜 외무상 자리에 계속 있을까?

위안부 강젝동원 인정과 사과를 담은 1993년 8월4일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장넘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사진: 나무위키
위안부 강젝동원 인정과 사과를 담은
1993년 8월4일 고노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관방장관의 장넘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
사진: 나무위키

그럼 일본 총리 아베 신조와 외무상 고노 다로의 관계는 어떨까? 아베가 한국을 향해 반도체 3품목 수출규제 강화방안을 7월1일 공개한 것에 대해 고노 다로나 아시아대양주 국장 가나스기 겐지 등 외무성 핵심 라인들이 신문 보고 알았다는 게 정설이다. 이는 아베가 경제산업성과 한 통속을 이뤄 외무성을 ‘왕따’시키고 일을 저질렀다는 뜻이다. 여기서 추정해 보면 불신 관계가 기본이다. 고노 다로가 자발적으로 관둬주기를 바라거나, 아니면 그만두지 않으려면 ‘충견’이 돼라는 게 아베의 속내일 수 있다는 얘기다.

엄청난 마찰이 일어날 게 불 보듯 함에도 고노 다로를 제쳐버린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가장 유력하게는 어떠한 이유를 대서든 한국을 손보기로 아베가 작심한 상황에서 외무성은 기본적으로 신중론을 펼칠 테니 아예 제쳐두기로 판단했을 가능성을 꼽을 수 있다. 초장부터 세게 나가야 하는데 단계적으로 강도를 높여가자는 식의 점진론을 외무성이 펼쳤다면 이게 마음에 안 들었을 수도 있다.

여기에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면 고노가 기본적으로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생산할 만큼 양심을 철책에 가두는 부류는 아닐 가능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그는 2018년 11월14일 중의원 외무위원회에서 고노는 신일철주금(현 일본제철) 징용 피해자 4명에 대한 배상을 명령한 한국 대법원 판결과 관련한 한 의원의 물음에 대해 “개인의 청구권이 소멸했다고 말씀드리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1965년 한일 청구권협정에 의해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한 것은 아니라고 인정한 것이다.

고노의 이런 태도는 “강제징용 문제는 한일 청구권협정으로 종지부를 찍었다”는 아베의 인식과는 딴판이다. 오히려 일본 최고재판소가 2007년 4월27일 결정과 같다. 중국인 강제징용 피해자가 일본 기업 니시마쓰건설에 대해 배상을 청구한 사건의 판결에서 배상 관계 등에 대한 외교보호권(국가가 나서 외국 정부를 상대로 개인들의 피해를 챙겨줄 권리)은 포기됐지만 피해자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소멸됐다는 게 결정 내용이다. 문제의 2018년 12월 한국 대법원 판결 내용과도 같음은 물론이다.

고노의 집안 배경을 보면 충분히 그럴 수 있다. 그는 미야자와 기이치 내각 당시 1년8개월의 조사를 거쳐 위안부 강제동원 인정과 사과 내용을 담은 1993년 8월4일 고노 담화를 발표한 고노 요헤이 당시 관방장관의 장남이다.

그렇다고 개인의 배상청구권에 대한 고노의 발언이 언제나 일관됐던 것은 아니다. 이번 수출규제 강화 사태 이전에도 그의 입에서는 상황에 따라 아베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이 여러 차례 나온 바도 있다. 그럼에도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소멸했다’는 가짜뉴스를 조직적으로 유포할 만큼 양심에 못을 박는 태도를 보이진 않아 왔다.

‘왕따’의 수모를 당한 뒤에도 고노는 여전히 외무상 직을 수행하고 있다. 트럼프가 재무장관 스티브 므누신을 핀잔주는 방식이 고노 다로에게 통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트럼프는 참모들과 회의하는 와중에 “‘스티브, 당신은 너무 약해 빠졌어. 너무 약해. 너무 약해”라고 면박을 준다고 한다. 그러면 그 뒤 그의 태도가 달라지는 모양이다. 아베의 ‘왕따’가 “고노, 당신은 너무 약해 빠졌어. 너무 약해. 너무 약해”라는 메시지고, 이에 ‘충견’으로 반응하기 위해 외무상에 계속 있는 것일 수 있다는 얘기다. 아니면 ‘전쟁 중에서 장수가 전쟁터를 떠나서는 안 된다’는 나름의 실천윤리에 충실하기 때문인지, ‘수습을 위해 언젠가 외무성이 나설 수밖에 없다’는 대기론에 따른 사명감 때문일지도 모르지만 정확한 이유는 알 길이 없다.

향후 한일관계의 정상화를 위해 첫 번째 추정이 맞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하지만 고노의 행태를 보면 첫 번째 추정이 맞다는 쪽에 무게가 실린다. 그는 지난 7월19일 남관표 주일한국대사를 초치한 자리에서 남 대사 말을 끊고 보도진 앞에 “매우 무례하다”고 힐난하는 ‘듣보잡’ 대응을 했다.

아베는 ‘한국이 자꾸 골대를 옮긴다’고 주장한다. ‘자꾸’가 몇 번을 일컫는 것인지 모르지만 한국은 골대를 두 번 옮겼다. 한 번은 궤도 이탈이었고, 다른 한 번 궤도 복귀였다.

2005년 1월 한일협정 문서 공개, 두 번의 골대 이동, 그리고 새로운 경로

한일 청구권협정 문서 공개는 2005년 1월 이뤄졌다. 2004년 2월 서울행정법원은 개인의 배상청구권과 관련한 행정소송에서 한일 청구권협정 문서를 공개하라고 판결했고, 항소심에서도 같은 판결이 나올 것으로 예상되자 정부가 먼저 공개하고 나선 것이다. 그 뒤 민관공동위원회로 구성된 ‘국무총리실 한일수교회담 문서공개등 대책기획단’이 7개월 간 활동하며 백서를 냈다. 여기서 광범위한 검토를 거쳐 “국가권력이 개입한 반인도적 불법행위(군위안부, 생체실험, 강제동원 중범죄행위 등)는 일본정부가 일제하 반도인적 불법행위 사실 자체를 부인하였고, 해방 전 일본 헌법상 개인은 국가를 상대로 손해배상을 청구할 권리를 인정하지 않았기 때문에 청구권협정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음”이라고 밝혔다.

문서공개에 대해 정부는 징병․징용 피해자들의 배상청구권 행사의 새로운 전기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고 공개적으로 이런 태도를 밝혔다. 특별법을 만들어 강제 징용․징병 피해자들에게 위로금․지원금을 지급하는 사업도 벌였다. 2015년까지 1만2631명에게 6184억원이 지급됐다. 기본 배경은 그동안 정부가 피해자 구제에 사용한 보상과 배상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무상자금 3억달러 중에서 피해자 구제에 쓰인 규모가 1975년과 1977년 2년 동안 사망자 8552명에게 지급한 25억6560만원이 거의 전부였다.

한 번의 골대 이동은 양승태 대법원장의 사법거래 정황에서 드러났다. 2012년 5월24일 대법원이 강제징용 피해자들이 밴 손해배상소송에서 일본의 기업의 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판결을 내리자 일본 기업의 재상고로 다시 대법원에 계류된 2건의 사건들이 있었다. 대법원의 최종선고를 앞두고 외교부는 2016년 11월 “한일 관계가 파국으로 치닫고 대외신인도가 손상될 것”이라는 의견서를 대법원에 제출한다. 이게 박근혜 정부에서 일어난 한 번의 골대 이동이다. 한국 정부도 개인의 배상청구권에 대해 소극적으로 생각한다는 식의 인식을 일본에 준 것이다. 그렇게 옮겨진 골대는 2018년 12월 대법원 판결로 다시 제자리로 돌아왔다.

고노는 2017년 8월부터 외무상을 맡고 있다. 예상하건대 한국에서 궤도 복귀의 과정은 잘 알 것이다. ‘개인의 배상청구권은 소멸된 게 아니다’는 양심을 갖고 있다면 그에게 필요한 것은 2005년 1월부터 2016년 11월까지 피해자에 대한 외면․냉대의 과거와 단절하는 새로운 궤도의 설정, 이 궤도에서 이탈하려는 조짐들에 대한 이해다. 한 쪽에 치우쳐 있던 골대를 한 가운데로 가져왔는데 이걸 다시 옛날 자리로 옮기려다가 좌절된 것, 이게 2005년 1월 한일 청구권협정 문서 공개 이후 소사다.

고노에 필요한 것은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하지 않는 과거와 ‘사요나라’(이별)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제된다면, 한국기업과 일본기업, 한국정부와 일본정부가 자발적으로 함께 하는 피해자 배상기금을 만들지 못할 이유가 무엇이겠는가? 한국 정부가 제안한 ‘1+1’(한국기업+일본기업)이 가장 낫지만, 일본 정부가 지한파 학자들의 입을 통해 흘리는 ‘1+1+1’(한국기업+한국정부+일본기업)은 난센스다. 배상 책임이 일본 정부에는 없다는 주장을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히려 일본 정부까지 들어오는 ‘1+1+1+1’ 또는 ‘2+2’가 타당하다.

이게 가능하려면 한반도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는 게 밑바탕에 깔려야 한다. 그러면서 ‘2+2’로 가는 기금을 조성하는 한편, 그동안 있었던 일본의 모든 금전 조치들에 배상금 성격을 부여하고 더 이상의 배상을 요구하지 않으면 된다. 아마도 2005년 1월 한일 청구권협정 문서 공개를 시작으로 형성되기 시작한 ‘경로의존성’은 바로 이게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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