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4-18 23:01 (목)
“농업부문 개도국 지위 특혜 유지” 정부 낙관 금물
“농업부문 개도국 지위 특혜 유지” 정부 낙관 금물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29 14: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트럼프, 개도국 지위 조정 요구에 지금부터 대비해야
오는 9~10월 한미FTA 공동위 소집 요구할 가능성 높아

대통령이 여름휴가를 반납했다고 한다. 반도체 3품목 수출규제 강화 결정에 이어 일본이 8월2일 백색국가 리스트에서 한국을 제외할지를 앞둔 상황, 북한의 탄도미사일 발사, 러시아 조기경보기의 독도 영공 침해 등을 앞두고 비상한 각오를 보여주는 것으로 짐작된다. 아무래도 반납한 휴가기간에 대통령은 한 가지 더 고민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트럼프가 농업부문 개발도상국 지위를 조정하자는 내용의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공동위원회 소집 서한을 보내오는 것에 대해서다.

2018년 9월24일 한미FTA 개정안 공동서명 장면. 미국은 개도국 지위 조정을 이유로 한미FTA 개정을 또 한 번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 청와대
2018년 9월24일 한미FTA 개정안 공동서명 장면.
미국은 개도국 지위 조정을 이유로 한미FTA 개정을
또 한 번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 사진: 청와대

개도국 지위는 일반특혜관세(GSP)를 비롯해 150여개의 다양한 우대 대우를 받을 수 있는데, 공산품에 대한 상대적으로 낮은 관세 감축, 상대적으로 낮은 농산품 관세․보조금 감축과 긴 감축 이행기간 등이 포함된다. GSP는 개도국으로부터 수입하는 농수산품, 공산품 제품·반제품에 대해 최혜국에 적용하는 관세율보다 낮은 관세나 무관세를 적용하는 우대조치를 말한다. 한국은 그동안 농산물시장 보호를 위해 개도국 지위에 기대어 왔다.

세계무역기구에서 무역상의 지위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 선진국(발전국), 개발도상국(발전도상국), 최빈개도국, 식량순수입개도국이 그것이다. 유엔의 기준을 그대로 적용하는 최빈개도국(36개국)과 최근 5년 중 3년 이상 식량순수입국(최빈개도국 이외 16개국)을 논외로 치면, 개도국과 선진국의 구분이 기본축이다. 문제는 개도국의 분화가 넓고 깊어지면서 개도국이라고 ‘자기선언’하면 개도국이 되고 그렇지 않으면 선진국이 되는 원칙의 정당성에 위기에 빠졌다는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미국은 지난 2월 개도국에서 배제하는 네 가지 기준을 가장 먼저 제안했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거나 가입절차를 밟고 있는 국가 △주요 20개국(G20)에 속하는 국가 △세계은행에서 ‘고소득’ 국가로 분류한 국가 △세계상품무역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0.5% 이상인 국가다.

트럼프 대통령은 7월26일 비교적 발전된 국가가 세계무역기구(WTO)에서 개발도상국 지위에 따른 혜택을 받지 못하도록 모든 수단을 강구하라고 미국무역대표부(USTR)에 지시했다. “90일 안에 실질적 진전을 이뤄내지 못하면 미국은 이들 국가에 대한 개도국 대우를 일방적으로 중단할 것”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대상국가로 언급한 나라들은 중국·홍콩·멕시코·싱가포르·아랍에미리트·브루나이·한국 등이다.

이와 관련해 주무부처인 농림축산식품부는 같은날 보도자료에서 “현재 적용되는 농산물 관세나 보조금은 차기 (다자) 농업협상 타결 때까지 그대로 유지된다”고 밝혔다. “한국의 경우 농업 부문만 개도국 혜택을 받고 있고, 쌀에 대해 매겨진 513% 관세율은 미국과 합의됐다. 한미FTA가 유효한 상황이라 트럼프 발언을 현실화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농림부 관계자의 발언도 언론에 소개됐다. 농림부 판단과 바람처럼 됐으면 좋으련만 꼭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미국이 제안한 네 가지 기준을 적용하면 한국을 포함해 현재 개도국 지위를 누리던 35개국 안팎의 나라가 이 지위에 해당하지 않는다. 트럼프가 구체적으로 언급한 대상국가들을 보면 미국이 제안한 네 가지 기준의 어느 하나에 해당된다. 미중 무역전쟁을 감안할 때 세계상품무역 비중이 1위인 중국이 포함된 것은 예상대로다. 고소득 국가에 해당하는 홍콩과 싱가포르도 포함될 가능성이 높았다. 게다가 두 나라는 지난 5월 미국 재무부의 ‘환율평가대상국’에 새로 포함됐고 싱가포르는 ‘환율조작 관찰대상국’으로도 지명됐던 터다. 세계은행의 올해 고소득 국가 기준은 2017년 1인당 국민총소득(GNI)가 1만2056달러다.

멕시코는 OECD 회원국이자 G20 국가이며 상품무역비중이 0.5%를 넘는다. 지난 6월 세 나라 중 처음으로 미국멕시코캐나다협정(USMCA; 북미자유무역협정의 개정판)을 비준했다는 사정을 감안하지 않고 미국이 조정 대상에 포함했다는 얘기다. 같은 맥락에 한국도 있다. 이미 미국과 쌀 관세율 513%를 유지하기로 미국과 합의했다(농림부)는 사정이 들어설 여지는 없다. 한국의 경우 이개호 농림부 장관이 최근 국회 업무보고에서 “2015년부터 미국·중국·오스트레이일리아·타이·베트남 5개국과 513% 쌀 관세화 검증을 진행 중”이고 “최근 국별 쿼터 배분 등 주요 사항에 대한 이견이 상당 부분 해소돼 조만간 검증이 마무리될 것”이라는 말까지 한 바 있다.

인도를 보면 더욱 뚜렷하다. 트럼프 행정부는 중국과 러시아를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하며 인도와 오스트레일리아, 베트남 등을 주요 포스트로 하는 ‘인도태평양전략’을 들고 나섰다. 그럼에도 트럼프 행정부는 이 전략의 핵심 축에 속하는 인도에 대해 개도국에 부여하는 일반특혜관세(GSP) 적용을 지난 6월부터 제외했다. 이번에 밝힌 것처럼 일방적인 중단에 들어간 것이다. 물론 같은달 16일부터 인도는 아몬드와 사과, 렌즈콩 등을 포함한 28개 미국 제품에 대한 관세를 올리는 보복에 나섰다.

‘한미 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AM) 갱신 협상 과정에서 2018년 3월 이후 미국 국무부로부터 “(한국은) 모범적인”(exemplar) 동맹국이자 친구라는 표현까지 나왔지만 결과가 어땠는지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 평택기지 이전비용 28조원은 깡그리 무시된 채 지난 2월 2018년 8억4800만달러(9602억원)에서 8억9천만달러(약 1조390억원)으로, 현정 유효기간은 5년에서 1년으로 줄어들며 ‘동맹 관계’는 지나치게 ‘상거래 관계’로 변질됐다. 조만간 또 인상 협상에 들어가야 할 판이다.

한국 주식량인 쌀시장 보호를 위한 관세와 의무수입물량은 개발도상국 지위에 기대어 왔다. 사진: 쌀연구소
한국 주식량인 쌀시장 보호를 위한 관세와 의무수입물량은
개발도상국 지위에 기대어 왔다. 사진: 쌀연구소

이런 사례들을 종합해보면, 결론은 한 가지다. 미국이 개도국 지위 조정을 위한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할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한국에 대해 쌀 관세 513%를 유지하기로 합의했다는 농림부 말도 한미 FTA 개정 협상에서 다뤄진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는 것이다. 한미 FTA 개정안에 두 나라 정상이 서명한 게 지난해 9월24일이다. 개도국 지위 조정과 관련해 트럼프가 밝힌 90일이 끝나는 시점이 올해 10월24일이다. 오는 11월18일에는 미국 자동차 기업들의 연구개발 투자 지연과 혁신의 지체를 낳는다는 이유로 유럽연합과 일본의 자동차에 대해 무역확장법 제232조에 따라 관세 25%를 부과할지 여부가 결정된다. 한국산 자동차는 면제될 것이라는 예상이 많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개인적으론 트럼프 행정부가 9월 하순이나 10월 하순 사이에 한미 FTA 개정을 요청하는 서한을 보내올 것으로 예상한다.

이에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 농산물 보호를 위해 한국이 개도국 지위에 의존해 온 만큼 개도국 지위 조정은 단지 쌀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농산물 전체와 공산품 양허에도 영향을 준다. 특히 농산물의 경우 USMCA 협상 과정에서 캐나다 낙농업 시장접근에 대한 미국의 집요한 요구와 관철에 비춰볼 때, 낙농제품(36~176%)에 대한 미국의 양허 요구가 거세게 나올 가능성이 있다. 미국의 단골메뉴인 돼지고기(관세율 22.5~25%), 소고기(관세율 18~40%) 양허 요구도 배제할 수 없다. 면세유 보조 감축 등 수산업 보조금 문제도 의제로 나올 수 있다. 재선 도전을 선언한 트럼프로서는 내세울 만한 최대한의 ‘실적’이 필요하기에 더욱 그렇다. 쌀 관세율을 513% 유지를 그냥 합의해주지는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대응의 핵심은 결국 개도국 지위에 대한 정책방향의 일관된 준비에 있을 것이다. 한국은 미국이 밝힌 개도국 배제 네 가기 기준에 유일하게 모두 해당하는 국가다. 2010년 OECD 개발원조위원회에 가입해 개발원조를 받다가 이를 공여하는 유일한 개도국이 됐다. 한국의 무역상 지위는 더 이상 개도국을 고집할 수 없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방어를 위한 소극적인 대응보다는 좀 더 적극적인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런 측면에서 브라질과 대만처럼 향후 다자 협상에서 개도국 우대를 더 이상 우대하지 않겠다고 밝히는 것을 한미 FTA 개정 협상에 동원하는 것도 적극적인 검토가 필요하다. 쌀 관세율 513%를 유지하기로 큰 틀이 합의됐다면 미국의 다른 요구에 대한 구체적인 양허안을 만들기보다 적절한 이행기간 확보에 주력하고 세심한 이행방안을 수립하는 게 더 중요하다. 그 핵심에는 감축대상보조 한도(현 1조4900억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쌀 소득보전직불제를 변동직불제(쌀 가격 변동에 따라 단위면적당 지급)에서 다른 형태로 전환해 나가는 게 자리한다. 이를테면 보조금 감축대상에 속하지 않는 고정직불제(단위 면적당 일정액 지급) 비중을 높이고 쌀 농사가구당 일정액을 기본소득 형태로 지급하는 방식을 혼합하는 것도 가능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