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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무니없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요구, 무려 6조원
터무니없는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요구, 무려 6조원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7.31 15:3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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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이렇게 나가야 한다
올해 2월 분담금 8억9천만 달러(약 1조390억원)에서 50억 달러(약 6조원)로 5배 증액 요구

지난 7월23~24일 일본을 거쳐 한국에 들어온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이 한국에 와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으로 50억 달러(약 6조원)을 내라고 한 모양이다. 최종 마지노선이고 “협상 불가(nonnegotiable)”라는 말까지 했다고 한다. 그저 놀라울 따름이다. 올해 2월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AM) 갱신 협상에서 타결된 액수가 전년 대비 8.9% 오른 8억9천만 달러(약 1조390억원)이다. 협정 유효기간도 5년에서 1년으로 줄었다. 1년새 거의 5배를 올려달라고 하고 있는 것이다.

미국은 주한미군의 위상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2014년 2월2일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가서명 장면. 사진: UNC-CFC-USFK PAO
2014년 2월2일 한미방위비분담금특별협정(SMA) 가서명 장면.
사진: UNC-CFC-USFK PAO

워낙 터무니없어서였을 것이다. 청와대는 구체적인 액수를 볼튼이 얘기하지는 않았다고 둘러댔다. 하지만 송영길 의원(민주당)은 7월31일 “‘방위비 협상팀 대사’로부터 전해 들었다”며 구체적인 액수 요구가 있었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미국 안에서도 대단히 비합리적으로 보고 있다”는 설명과 함께 “미국 협상팀도 협상 테이블에서 ‘대단히 죄송하다’는 식의 말을 했다”고 전해 들었다고 덧붙였다.

미국 협상단도 ‘미안하다’는 말을 할 법도 하다. 올해 2월 SAM 방위비 분담금을 1조390억원으로 결정한 뒤 한미 두 나라는 “주한미군 인건비를 뺀 운영비의 50% 수준에 해당하는 액수”라고 밝힌 바 있다. 주한미군 운영비가 연간 2조원 정도 된다는 얘기를 한 것이다. 이에 비춰보면 볼튼이 던진 50억 달러는 주한미군 운영비가 1년새 3배가 늘어났다는 것으로 상식적으로는 도저히 나올 수 없는 액수다. 주한미군 인건비, 괌에서 날라오는 B‐1B 전략폭격기, F/A‐22랩터 등 이른바 미국의 전략자산 운용비용 등을 몽땅 더해야 겨우 나올 수 있는 수준이라는 얘기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구체적으로 따져보자. 한국이 내는 방위비 분담금은 크게 세 가지 항목으로 이뤄진다. 첫째, 주한미군이 고용하는 한국인 고용인 약 1만1천명의 인건비(payroll)다. 분담금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39~40%다. 둘째, 44% 정도 비중을 차지하는 각종 시설 건설(construction) 비용이다. 셋째, 군수지원 등 병참(logistics) 비용으로 비중은 16~17%이다. 어느 항목 하나 급격히 늘어날 이유가 없다. 게다가 기존의 방위비 분담금을 다 쓰지도 못하고 있다. 2018년 말 기준으로 미집행 금액이 1조원이 넘는다. 이자만도 수 천억원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데 세금은 면제된다.

이것 이외의 항목은 한미주둔군지위협정(소파; SOFA)에 위배된다. 소파는 주한미군에 ‘시설과 구역만 제공한다’고 돼 있고 여기에는 드는 운영비를 SMA에서 한미 양국이 절반씩 나눠 부담하고 있다고 보면 된다. 그러니 SMA는 주한미군의 봉급, 무기와 장비 관련 비용을 포함하지 않는다. 이 비용은 미국의 국방예산으로 충당한다. 그런다고 해도 50억 달러는 나오지 않는다. 2016년 미군 병장의 기본연봉은 3만1745달러(약 3600만원) 정도다. 주한미군 2만8500명의 1인당 연봉을 3만 달러로 보고 계산해 보면, 연간 봉급은 8억6천만 달러 정도다. 인플레이션을 감안해 이걸 10억 달러로 치자. 무기와 장비 관련 비용도 10억 달러로 잡아보자. 2019년 운영비 8억9천만 달러 전액을 한국이 부담한다고 치고 모두 더하면 기껏 30억 달러 정도다. 그러니 한반도 주변으로 전략자산 운용시 발생하는 B‐1B 전략폭격기나 F/A‐22랩터 등의 감가상각비까지 모두 계산에 넣은 게 아니냐는 합리적 의심까지 나올 수밖에 없다.

예상되는 트럼프의 ‘굿캅’ 코스프레 - 전략자산 운용비 분담

50억 달러를 내민 트럼프와 볼튼의 창의적인 계산방식이 무엇인지, 얼마나 터무니없는지는 곧 드러날 것이다. 예상하건대, ‘굿 캅’으로 등장하며 트럼프가 들이내밀 분담금 인상 수준도 상당히 높을 것이다. 그가 들이밀 수 있는 카드의 하나는 미국 국방예산이 깎였으니 동맹국이 해외주둔 미군의 운영비를 더 많이 부담해야 한다는 것일 수 있다. 지난 3월 트럼프 행정부가 제출한 2020회계연도(2019년 10월~2020년 9월)에서 미국 국방예산은 7500억 달러로 직전 회계연도 대비 340억 달러(5%) 늘어난 7500억 달러였다. 그런데 7월22일 의회 지도부와 합의한 뒤 7월26일 하원을 통과한 예산안에서 국방예산은 2020회계연도 7380억 달러, 2021회계연도 7400억 달러다.

트럼프가 이렇게 얘기하면 이것은 명백한 엄살이다. 2020회계연도의 경우 애초 예산안보다 증액폭이 340억 달러에서 220억 달러로 줄어들기는 했다. 하지만 역대 두 번째로 많은 국방예산이다. 이보다 높은 적은 딱 한 번 있었다. 이라크와 아프가니스탄에 미군 18만명을 주둔시키던 2010회계연도의 경우다. 이렇게 많은 국방예산에 주한미군 인건비나 전략자산 운용예산이 포함돼 있지 않을 것이라고 보는 건 난센스다.

미국 국방예산에 대한 이런 정도의 배경지식을 깔고 트럼프와 볼튼의 ‘창의적인’ 방위비 분담비 요구에 대해 ‘창의적인’ 역발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과격한 발상이긴 하지만 “인건비까지 5조원(불용액 1조원 제외하고) 부담할 테니 주한미군 통제권을 한국에 넘겨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소파 개정과 함께 전시작전권 반환까지 한꺼번에 풀자고 요구하는 것이다. 트럼프와 볼튼의 50억 달러 요구는 결국 주한미군을 대한민국의 ‘용병’(mercenary)으로 하자는 얘기와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용병에 대한 통제권은 프랑스처럼 외인부대 용병을 고용하는 나라가 갖는 게 맞다.

인건비나 전략자산 운용비까지 달라고 한다면 주한미군은 인도 동쪽에서 미국 서태평양 연안을 제외한 태평양을 담당하는 인도태평양사령부(INDOPACOMMAND) 지상군 전력의 일부가 아니라, 사실상 한국만의 이익을 위해 주둔하는 것으로 위상을 자리매김할 필요가 있다. 터무니없는 증액요구에 대한 강력한 반발이라고 볼 수 있지만, 5조원 부담하고 이런 위상 조정을 통해 주한미군 통제권을 이참에 한국이 갖는 게 그리 나쁜 일은 아닐 듯하다.

향후 방위금 분담금 협상과정에서 좀 더 구체적인 내용이 확인되겠지만 이번 볼턴의 증액요구는 너무 상식적이지 않다. 미국의 부당한 증액요구에 대응할 수 있는 합리적이고 구체적인 협상방안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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