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주장 “러시아 협정 준수 위반, 중국 INF 협정 적용대상 포함해야”
미국의 중거리핵전력(INF) 협정 탈퇴가 8월2일 이뤄진다. 트럼프 행정부가 올해 2월2일 6개월 뒤부터 협정에 따른 미국의 의무를 유예하고 협정에서 탈퇴할 것이라고 발표한 데 따른 것이다. 이 협정은 올해 2월1일 시효가 만료됐었다.
칼라 글리슨 미국 국방부 대변인은 지난달 31일 “러시아는 중거리핵전력 협정 의무사항의 검증 가능한 준수로 돌아가려는 어떠한 의미 있는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며 “조약이 8월2일 종료되면 미국은 더 이상 이 협정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고 밝혔다.
미국 국무부는 협정 탈퇴에 앞서 ‘중거리핵전력 신화 깨기’라는 자료를 내고 협정 탈퇴의 정당성을 주장했다. 이 자료에서 국무부는 ‘러시아가 조약 관련 협상 의지가 있는데 미국은 없다’는 지적에 대해 “미국은 6년간 러시아에 조약 불이행 문제 해결을 위한 협상을 벌여 왔고 30회 이상 문제를 제기해왔다”며 러시아와의 6년간 논의 기록을 담았다.
이 협정은 냉전이 한창이던 1987년 12월 로널드 레이건 미국 대통령과 미하일 고르바초프 소련 공산당 서기장이 체결해 이듬해 6월 발효했다. 사정거리 500∼5500km의 중·단거리 핵미사일을 없애고 개발․배치하지 않는다는 내용이다. 이에 따라 그동안 미국과 러시아 두 나라는 2692기의 지상발사 핵미사일과 순항미사일을 제거하는 성과를 거뒀다.
하지만 2000년대 들어 미국이 유럽에 미사일방어(MD) 체계를 구축하고, 러시아도 단거리 탄도미사일을 개발하면서 금이 가기 시작했다. 2017년 러시아가 9M729 미사일을 실전 배치하자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협정 위반이라며 지난해 10월20일 탈퇴를 공식 선언했다. 러시아는 9M729의 사거리가 500㎞를 밑돌아 협정 금지 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 왔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도 지난 7월3일 미국이 협정을 탈퇴하면 러시아도 탈퇴한다는 협정 참여 중단 법령에 서명했다.
지난해 10월 협정 탈퇴를 밝힐 당시 존 볼튼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은 “중국이 협정의 바깥에서 꾸준히 중거리핵전력을 구축하고 있다”며 중거리핵전력 협정이 중국을 포함하는 쪽으로 확장될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후 중국은 지난 7월31일 외교부 대변인 명의로 중거리핵전력 협정의 확장에 반대한다는 뜻을 거듭 확인하는 등 시종일관 반대해 왔다.
중거리핵전력 협정이 대안 없이 파기되면 새로운 군비경쟁이 가속화할 것이라는 우려가 지속적으로 제기돼 왔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 회원국 등 유럽 국가들은 이 협정의 준수․유지를 촉구해 왔다. 옌스 스톨텐베르그 나토 사무총장은 7월31일 “우리는 중거리핵전력 협정의 지속을 위해 러시아의 조약 준수를 촉구한다”고 밝혔다.
미국이 이 협정을 탈퇴하는 주요한 이유가 러시아의 협정 준수 위반, 중국의 협정 미포함이라는 점에 비춰보면, 미국이 동북아시아에서 중국을 겨냥한 중거리 미사일을 배치할 가능성도 점점 높아질 수도 있다. 특히 ‘핵시설 폐기와 검증, 핵탄두 제거 등 북한의 비핵화’와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과 제재 해제, 경제개발 지원, 평화협정 체결’의 동시적․병행적 추진이라는 한반도 비핵화 과정이 지지부진할 경우 더 문제다. 북한이 대륙간탄도탄을 제외한 중거리 핵미사일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높아질 경우 어떠한 식으로든 균형을 맞춰야 한다는 여론이 높아질 수밖에 없어서다. 한국의 지상에 미사일이 배치되면 ‘제2의 사드’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관측도 나오는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존 볼튼은 2021년 만료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New START)도 갱신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을 최근 내비치기도 했다. 그는 7월30일 전략 핵탄두와 장거리 핵탄두를 제한하는 신전략무기감축협정은 “처음부터 결함이 있었던” 것으로 2021년 시효가 만료할 경우 갱신될 “가능성이 낮다”며 “어떤 협정을 갖고 있다고 그저 말하기 위해 결함이 있는 시스템을 연장할 이유가 무엇인가?”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