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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지일(知日)없는 극일(克日)없다”…중국이 일본으로부터 324억달러 털어간 비밀
[천지만리] “지일(知日)없는 극일(克日)없다”…중국이 일본으로부터 324억달러 털어간 비밀
  • 전병서 경희대 China MBA 객원교수
  • 승인 2019.08.06 20:3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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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사꾼 중국, 일본의 부채의식을 활용해 ODA자금 324억달러 뜯어

중국인의 특징을 만만디라고 하지만 중국인의 진짜 얼굴은 유태인 뺨치는 “상인종(商人種)”이다. 중국은 실리가 있으면 상대가 자신의 얼굴에 침을 뱉더라도 마를 때까지 기다리는 사람들이다.

내가 상대보다 약하고 상대가 힘 있고 돈이 있으면 마음속에 “백 번의 참을 인(百忍)”을 쓰면서 기다린다. 중국인은 체면을 중요시한다. 하지만 체면이 깎였다고 흥분한다 거나 실질적인 손해가 없는 욕이나 질책을 들었다고 해서 소란을 피우는 것은 소인배나 하는 짓이라 생각한다.

그래서 장사의 관점에서 보면 중국은 감정적으로 장사하지 않고 철저하게 계산한다. 그래서 승산이 없는 싸움에서 싸우거나 위험을 불러 일으키는 일을 절대하지 않는다. 중국말에 “돈만 있으면 귀신에도 절구통을 돌리게 할 수 있다”는 말처럼 돈을 많이 벌면 아무도 업신여기지 못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한국의 위안부문제, 징용문제에 대한 사과와 보상문제에 대해 중국은 확연히 다른 태도를 보였다. 2차대전 종전 후 패전국인 일본에 대한 대일청구권문제가 나왔고 한국은 1965년 대일청구권문제에서 무상3억달러, 장기저리 대출 2억달러 민간지원차원 1억달러로 타결을 했다. 지금 이것의 범위에 대해 한국과 일본의 해석의 차이가 나고 이것이 지금 한일간의 논쟁거리다.

일제치하 강제 노동의 보상에 불만을 가진 일본기업을 대신해 일본정부가 한국의 IT산업의 핵심소재인 OLED에 필요한 풀루오린 폴리이미드와 반도체산업에 소제인 감광제와 에칭가스 공급을 제한했다. 기술을 무기로 한국을 길들이려는 수작이다.

그러나 일본이 진정 어린 사과를 하지 않는 점은 끝까지 추궁해야 하지만 배상의 금액을 보면 한국은 중국에 비해 하수다. 10조엔도 아니고 꼴랑 10억엔 위안부 보상받고, 10조원도 아니고 10억원 일본기업 자산 압류매각 해 봤자 일본과 일본기업이 반성하지도 않을 뿐더러 일본에 푼돈 보상받아도 손상될 대로 손상된 우리 자존감 회복 안된다.

​최고의 복수는 잊지 않는 것이고 언젠가는 힘을 길러 되돌려 주는 것이다. 일본에 징징거리는 것 이젠 끝내고 일본을 이기는 전략을 내 놓고 실행해야 한다. 일본에 당한 아픈 기억을 가진 연로하신 어르신들이 노구를 이끌고 일본바닥을 시위하고 헤매게 하지 말고 한국의 젊은이들과 아이들에게 일본에 당한 우리의 치욕과 실수를 잊지 않게 가르치고 기억하게 하는 것은 어떨까?

​그리고 그 힘드신 노고에 대한 고마움과 일본의 침략을 가르쳐 주신 대가로 일본이 준다는 것보다 더 크게 국가가 보상하고 지원하면 안되나? 세계 12위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 우리가 그 정도 할 능력이 없는가? 치사하고 아니꼽게 푼돈에 한국인에 준 고통을 퉁 치려는 일본과 더는 이런 식으로 엮이지 말았으면 한다.

중국은 대일청구권문제를 어떻게 처리했을까?

한국은 1965년 대일청구권문제를 6억달러로 마무리 했지만 1972년 중국은 대일청구권문제에 대해 이를 포기했다. 1972년7월 주은래 총리는 폼 나게 논어에 나오는 “덕으로 원수를 갚는다”는 “이덕보원(以德報怨)”이라는 말로 대신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복잡한 대만과 중국 그리고 미국과의 외교가 있었다. 중국은 2차대전 전승국이었지만 1949년 국공 내전에서 패배해 대만으로 간 중화민국의 장개석은 당시 일본이 본토 중국과 손을 잡을 것을 우려해 일본의 설득에 넘어가 “관대한 아량”을 명분으로 내세우며 1952년 대일배상권을 자발적으로 포기한다고 선언했다.

1971년 7월 미국 키신저 장관의 극비 중국방문을 계기로 미중 관계가 개선되었다, 1972년 9월 다나카 수상의 방중을 계기로 중국은 중일국교정상화에 합의했고, 주은래 총리는 대일배상권 포기선언을 한다. 그러나 실제 그 이유는 다른데 있었다.

미중수교로 유엔에서 대만의 지위를 승계 받은 중국은 당시 소련과의 관계가 급격하게 악화되었다.경제적 외교적 고립을 탈피하기 위해서 중국은 세계1,2위 경제규모를 가진 미일 등 서방과 관계개선이 시급했고 따라서 일본과 국교정상화에 장애가 되는 배상문제를 포기한 것이다. 1965년 한국이 대일청구권협상 협상시기에 중국은 일본GDP의 77%수준이었고, 중일 국교정상화 시기인 1972년에는 36%선에 그쳤다.

물론 이 포기과정에서 중국 국민의 동의는 없었고, 대신 국민에 대해서 “장개석의 중화민국이 중국보다 먼저 배상권을 포기했는데 공산당의 아량이 그보다는 넓다는 것을 보여 주어야 한다”는 논리로 포기의 이유를 설명했다.

그러나 상인종, 중국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일본에게서 40년간 324억달러(3.5조엔)의 공적개발원조(ODA)자금을 지원받았다. 중국은 일본에 도덕적 우위를 확보한 다음 후속협상에서 천문학적 실리를 챙긴 것이다.

중국은 배상청구권 포기로 일본에 대해 미안하게 만들었고 일본을 부채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본은 배상청구권 포기에 대한 감사와 그리고 부상하는 중국시장을 놓칠 수 없어 미래에 대한 투자의 개념으로 한국에 대한 쥐꼬리 배상과는 규모가 비교도 안될 천문학적 자금을 경제원조, 차관 등의 명목으로 2018년까지 지원했다.

단칼에 승부내는 “잇본쇼부(一本勝負)”의 일본과 “우공이산((愚公移山)” 하는 중국의 승부에서 우공이산 측이 더 크게 챙겼다

대일 청구권문제에서 중국은 한국과 전략이 달랐다. 명분을 살리면서 거액의 실리를 챙긴 것이다. 중국은 일본에 대한 전쟁책임 추구에 관대함을 보임으로써 도덕적우위를 확보하고, 일본의 도덕적 부채의식을 활용해 “깊이 고려하고 멀리 까지 내다보는 심모원려(深謀遠慮)한 전략”으로 324억달러의 대규모 공적자금을 뜯어냈다.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외교전쟁의 기본이다

모택동은 “정치는 피를 흘리지 않는 전쟁이고, 전쟁은 피를 흘리는 정치”라고 했다. 국가 간의 갈등해소에 있어 외교는 가장 값싼 전쟁이다. 외교가 실패하면 군대가 국경을 넘는다. 그래서 가장 비싼 외교가 가장 싼 전쟁보다 낫다고 한다. 그래서 외교전쟁을 치를 외교전사, 외교인재의 육성이 중요하다.

미국의 트럼프는 취임하고 95세의 키신저 박사를 중국에 특사로 보냈다. 1971년 미중수교의 막후교섭의 주역이자 중국의 창업자 모택동 이후 5명의 국가지도자를 모두 만나본 산전수전 공중전을 모두 겪은 살아있는 미국외교의 전설인 키신저를 보낸 트럼프의 혜안이 무섭고, 95세의 초고령에도 국가의 부름에 흔쾌히 나서 대통령의 메신저의 역할을 하는 미국의 키신저가 대단하다.

중국의 대일 외교는 어떻게 하고 있을까?

지피지기(知彼知己)는 외교전쟁의 기본이고, 외교관의 상대국의 언어능력은 상대국가에 대한 예의다. 중국의 외교책임자를 보면 G1,G2였던 미국과 일본에 대한 중국의 지도자의 혜안과 외교 전략을 알 수 있다. 중국지도자는 외교책임자인 외무부장관은 철저하게 G1, G2국가에서 외교경험을 가진 외교전문가를 임명했다.

1998년이후 2019년까지 최근 21간 중국의 탕자쉬앤, 리자오싱, 양지에츠, 왕이 등 역대 외무부장관 4명을 보면 모두 G1,G2였던 미국대사관과 일본대사관 근무 경험이 있는 외교관을 외무부 장관으로 임명했고, 재임기간은 4~6년이다. 장관 부임 전 미국과 일본대사관 근무기간을 보면 3년~18년이나 된다.

대학전공을 보면 양지에츠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전공이 어학이고 탕자쉬엔과 왕이 외교부장은 일본어 전공이다. 4명의 장관중 3명이 석사이상 2명이 박사출신이다.

중국의 대일외교 인력은 어떨까?

최근 부임했던 주일대사 5명을 비교해 보면 한국과 극명하게 대조를 이룬다. 중국 외교관 5인의 평균 연령은 55세 한국은 65세다. 근무기간은 중국은 2년4개월~9년4개월인데 반해 한국은 1년1개월~1년10개월에 그친다.

직전 중국의 주일대사였던 청용화는 9년4개월을 근무했다. 청용화대사는 대학부터 일본 와꼬대학을 나온 일본통이다. 청용화 후임으로 부임한 공현우대사는 조선족으로 일본부임 직전까지 한반도문제 담당이었다.

중국의 주일대사 5명은 전원 학부전공이 어학이고 5명중 3명은 일본어가 전공이다. 모두 일본과아시아 그리고 아시아국 근무경험이 있고 전원 외교관 출신이다. 그리고 주일대사 역임 이후 5명중 1명은 외교부 차관, 2명은 외무부장관으로 승진하였다. 중국이 일본통을 얼마나 중시하는 가를 보여주는 대목이다.

한국의 최근 주일대사 5명을 보면 1명만 영문학과 출신이고 모두 법학과 외교학 전공이고 일어전공자는 전무했다. 한국은 5명중 2명만 전문 외교관 출신이고 3명은 국정원, 국회의원, 교수 출신으로 비외교관 출신이다. 외교관의 경우도 일본 근무경력은 1차례에 그쳤다. 귀임후에 장차관으로 승진한 경우는 전무하다.

중국은 일본통을 외교관으로 발탁하고, 외교부의 수장으로 쓴 반면, 한국은 일본통이라고 보기 어려운 비전문가를 정치적 이유로 발탁하고, 외교관의 경우도 외교부의 수장으로 쓴 적이 없었다. 중국이 일본으로부터 324억달러의 ODA자금을 끌어 다 쓴 것은 이유가 있다.

미국, 중국, 일본 같은 G1,G2,G3같은 대국은 살아보고, 공부해보고, 일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나라다. 결국 일본에 대한 정확한 전략과 관리는 얼마나 일본을 이해하고 공부한 이가 많으냐에 달려 있다.

2004년부터 2018년까지 14년간 일본의 외국유학생을 보면 248만명인데 이중 중국유학생이 131만명으로 53%를 차지한다. 한국은 2위로 25만명 10%선이다. 중국유학생비율은 2004년 66%에서 2018년에는 38%로 낮아졌지만 여전히 11.5만명으로 1위이고 3위인 한국의 1.7만명 대비 6배나 된다.

모욕은 지도자에게 하는 것, 민초에게 하는 것 아니다

중국은 대일본외교전략에 있어 국민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언급을 자제한다. 1972년 대일 창구청구권포기를 할 때 주은래 총리는 “전쟁책임은 일부 군국주의 세력에 있고 이는 일반국민들과는 구별해야 한다. 일반 일본국민들에게 부담을 지워서는 안되며 더욱이 다음세대에게 청구권의 고통을 부과하고 싶지 않다”고 배상청구 포기사유를 밝혔다. 실리는 다른 데서 챙겼지만 일본 국민들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자극을 삼가했다.

센카쿠열도 문제가 발생했을 때 중국에서 일본계기업에 대한 약탈이 일어났을 때도 중국정부 당국은 공식적인 언급을 자제했다. 대신 아베총리의 중국방문을 일언지하에 거절하고, 불가피한 국가간 정상외교장에서 만날 때도 표정외교를 확실히 했다.

시진핑 주석은 아베총리와 시선을 마주치지 않고 얼굴을 마주보지 않고 악수를 하는 등 일본의 지도자에 대한 홀대는 확실하게 했다. 중국 국민들은 주석의 표정과 악수의 각도를 보고 일본과의 관계개선여부를 간접적으로 확인하게 만들었다.

중국은 모욕을 지도자에게 함으로써 미디어를 통해 간접적으로 하지 민초들에게 모욕적 언사를 주어 반중감정을 자극하는 일은 자제한다.

역사는 미래의 스승으로 삼고, 복수의 칼은 보이지 않는 데서 가는 것이다

상하이에 관광 가면 반드시 필수코스로 들러 보는 곳이 푸동의 야경과 레이저쇼가 가장 잘 보이는 와이탄(外滩)이다. 와이탄의 빌딩을 보면 전형적인 유럽식빌딩이다. 서방열강의 조계지인 와이탄 거리 입구와 주변공원에는 이런 표식이 박혀 있었다. "개와 중국인은 출입금지(华人与狗不得入内)". 유럽인들은 중국인들을 개와 같은 급으로 취급했다.

와이탄의 건물들은 중국을 식민통치 했던 유럽이 지은 건물들인데 우리 같으면 일제의 잔재를 청산한다고 싹 쓸어 버렸을 텐데 중국은 그대로 보존하고 있다. 치욕적인 굴욕을 잊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런 사고는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가 보면 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중국은 85년 1만명의 유골이 발견된 만인갱(萬人坑) 위에 ‘난징대학살 기념관’을 건설했다. 기념관은 당시의 참상을 생생히 보여준다. 대학살의 현장이 바로 기념관인 것이다.

통상 중국의 유적지나 명승지에 가보면 안내판은 보통 중국어와 영어로 표기되어 있다. 그런데 난징대학살 기념관에 가보면 안내판에 중국어와 영어 그리고 일본어로도 표시해 두었다. 일본인들도 와서 똑똑히 읽어 보라는 것이다. 시끄럽고 큰 소리로 떠드는 것으로 유명한 중국인들도 난징대학살기념관에선 숨소리마저 죽인다.

1937년 12월 13일 난징을 점령한 일본군은 다음해 2월까지 12초마다 한 명씩, 무려 30만명을 살해했다. 7만3천㎡에 이르는 전시 면적 전체를 엄숙함이 압도한 가운데 12초마다 한번씩 울려 퍼지는 "똑…똑" 물방울 소리는 1937년12월13일 난징대학살이 시작되고 12초마다 한 명씩 일본군이 난징시민 30만명을 학살했다는 것을 상징한다.

난징대학살 추도식에는 중국의 시진핑을 비롯한 7명의 당 상무위원이 전원 참석한다. 문재인 대통령이 방중했을 때 북경에서 주중대사와 만두집을 방문하고 교민행사를 먼저 한 것도 중국의 최고지도자 7명이 전원 난징대학살 추도식에 참석해 북경을 비웠기 때문이다.

중국은 2015년12월 난징대학살기념관의 분관으로 '난징 리지샹(利濟巷) 위안부 유적지 진열관'을 개관했다. 일본군이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위안소로 운영했던 8개 건물 가운데 6곳을 개보수한 것으로, 3천㎡ 면적에 1600여점의 전시물을 전시하고 있고 당시의 참혹했던 위안부의 생활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보존하고 있다.

중국은 '반(反)인류 국가범죄'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한 국가 차원의 사죄와 법적 책임을 일본에 요구해왔다. 한국은 위안부할머니 소녀상 하나도 제대로 맘대로 못 세워 이리저리 돌리고 있고 소녀상에 모욕을 가한 일본인과 한국인의 처벌도 흐지부지하는 것과는 너무 대조된다.

“옛일을 기억하면 미래의 스승이 된다”는 주은래(周恩來·1898~1976) 전 중국 총리의 유훈처럼 중국인들은 아편전쟁의 아픈 기억인 와이탄을 보존하고, 난징대학살의 현장과 위안소를 기념관으로 만들어 똑똑히 보고 뼈에 새기는 것이다.

"용서는 하되 잊지 않는다(可以寬恕, 但不可以忘却)", "과거를 잊지 말고 미래의 스승으로 삼는다(前事不忘, 后事之師)"는 것이다. 원수는 3대가 흘러도 기억하고 그때 갚아도 늦지 않다는 것이 중국인이다. 그래서 뒷끝 작렬하는 중국인들 무서운 사람들이다.

일본의 “한국 제조업 관절 꺾기”의 배경 제대로 알아야 한다

섬나라의 일본이 자랑하는 근성은 사무라이 정신이다. 대자연의 재해를 시시때때로 겪은 일본 섬나라는 단합하지 않으면 자연재해 극복이 어렵고, 일사불란한 작업이 결국 할복 같은 잔인한 상명하복, 약육강식의 사회문화를 만들었다.

일본은 역사이래 명치유신 이후의 짧은 시간을 제하고는 경제적으로 군사적으로 문화적으로 대국이었던 적이 없다. 소국이 미국과 유럽기술을 받아들여 얼떨결에 아시아의 강자로 부상한 탓에 물질의 성숙에 못 따라 가는 정신의 미성숙이 2차대전을 불러 일으켰고, 주변국에 대한 소국 일본의 존재감의 부각과 정신적 불안감이 주변국에 천인공노할 악행과 만행을 저지른 배경이다

일본이 토를 다는 사과, 행동은 없고 말만 하는 사과는 그 배경이 있다. 잘못한 것 없다는 것을 기본적으로 깔고 하는 엉터리사과와 배상거부는 일본의 과거행태가 미래에도 재연될 수 있음을 시사한다.

그러나 잘못한 놈, 일본은 자기 스스로 이미 알고 있지만 이를 부인하는 것은 수긍하면 더 큰 손해가 올까 걱정하기 때문이다. 이렇게 보는 이유는 크게 두가지다.

첫째, 대일청구권보상에서 일본이 신경 쓰는 것은 한국이 아니라 북한이다. 한국에 대한 추가적인 보상은 북한의 배상청구권을 더 크게 만들 가능성이 있다. 중국에 준 것(324억달러) 보다 더 큰 원조나 보상, ODA자금을 요구할 가능성이 두려운 것이다.

둘째, 독도, 센카쿠열도 문제등 영토문제에 집착하고, 헌법개정에 악착같이 매달리는 이유는 한국과 중국이 최대로 무장하는 반면, 일본은 자주적으로 방어할 수단을 앞으로도 갖추지 않을 경우 큰 위험이 될 것에 대한 불안감을 떨쳐내지 못한 때문이다.

미국이 일본의 오만방자한 한국 제재행위를 방관하는 이유는

첫째, 북핵문제에 있어 북중러의 북방삼각에 대한 한미일 남방삼각의 축에서 미국과 엇박자 내는 남방삼각축의 구멍, 한국을 손 봐주라는 것이다.

둘째는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는 인도-태평양전략, 중국의 태평양진출-해양실크로드전략 저지에 소극적인 한국에 대한 불만이다.

셋째는 일본이 주도하는 CPTPP(미국 빠진 TPP)보다는 중국주도의 RCEP(역내 포괄적 경제 동반자 협정: Regional Comprehensive Economic Partnership) 에 관심 보이는 한국에 대한 불만이다.

한국, 일본통을 키우지 않고 일본에 이기겠다는 것은 넌센스다

한국, 극일(克日) 하고 싶으면 일본유학생을 제대로 키우고 관리하고 양성해야 극일 할 수 있다. 일본어 안되는 서희장군은 10만명이 있어도 도움이 안된다.

중국은 주한 중국대사관과 외교부가 중심이 되어 중국의 북경과 상해 4대명문대 졸업생들을 중심으로 모교방문활동을 지원하고, 모든 비용은 중국이 부담하고 행사에는 교육담당영사가 반드시 참석한다. 중국대사관은 칭화대 한국동문회의 정기포럼을 지원하고, 주한 중국대사가 참석한다.

한국의 주중대사관과 역대 주중대사들은 이런 행사를 한번이라도 한 적이 있는가?

우리 역사를 돌아보면 조선시대 최고의 대일 외교관 신숙주를 본받을 필요가 있다. 이미 550년 전에 일본의 속내를 간파하고 그들을 효과적으로 제압하고 다루는 방법을 제시한 인물이 바로 신숙주다. 신숙주는 사육신을 버린 변절자라고 욕을 먹기도 했지만 조선 시대 최고의 대일 외교 전문가였다(신숙주 자료 출처:GS 칼텍스, 역사에서 배우다7_신숙주의 대일론(對日論))

신숙주는 외교와 국제정치에 통찰력을 가진 실력자였다. 그는 당시 평생에 한 번 가기도 어려운 중국을 열 세 번이나 다녀오며 중국의 학문과 15세기 동아시아 시대 변화를 읽는 눈을 길렀다. 세조 즉위 후 그는 예문관대제학에서 영의정까지 일사천리로 승진을 거듭했다. 영의정이 된 것이 1462년으로 겨우 45세였으니 40대에 정승의 반열에 오를 만큼 세조의 신임이 두터웠다

신숙주는 외국어에 능통해 명과 일본, 여진의 정세 변화를 깨우치고 있었다. 동아시아 선린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신숙주는 일본에 대한 외교정책을 정리해 성종에게 바쳤다. 이 명저가 바로 ‘해동제국기’다.

해동제국기는 일본을 가장 잘 이해한 책으로 현재도 일본 학자들에게 최고의 책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가 얼마나 일본을 해박하게 살폈던지 당시 신숙주가 일본을 방문했을 때 일본의 학자와 글을 읽을 줄 아는 모든 문사들이 앞 다투어 그에게 몰려왔다고 한다.

신숙주는 일본의 교토에 도착하여 막부장군을 만나고 돌아오는 길에 대마도 도주와 협정을 맺어 일본과의 교린의 길을 공식화하였을 만큼 일본어에 능통했고, 이미 그들의 속내를 읽어내고 있었다

신숙주의 탁월함은 그가 관직에 있으면서 일해 온 외교의 모든 노하우를 기록으로 남겨두었다는 점이다. 이 기록은 조선과 일본 무역의 중요성을 알리는 한편 일본의 핵심 지도층들이 권력이 나누어져 있으니 누구를 어떻게 상대하고 파악하라고 정리해 둔 일종의 “외교 비망록”이었다.

그의 주장은 일본은 바다를 사이에 두고 있어 그들이 조선에 오는 것은 무역상의 이익을 꾀하려는 것이므로 보내는 것을 후하게 하고 받는 것을 박하게 하면 회유할 수 있어 침입을 예방할 수 있다는 것이다. 특히 일본은 회유가 쉽지 않으므로 한 번이라도 경계를 게을리 하면 남쪽을 지키기 어렵다고 했다.

세조부터 성종까지 왕들은 그의 외교에 대한 충언을 깊이 받아들였으나 이후 일본에 대한 경계를 소홀히 하여 결국 임진왜란을 겪었으며 그 이후에도 구한말의 한일합방까지 초래하고 말았다.

신숙주는 15세기 동아시아의 형세를 읽는 눈이 있었고 일본어에 능통했고, 일본과의 외교를 기록으로 남겨 후세에 참고서로 사용하게 했다. 대세판단, 소통능력, 적의 본질을 파악하는 통찰력, 기록하여 잊지않는 정신을 가진 외교관이었다. 한국, 신숙주 같은 외교관을 키우지 않으면 지금과 같은 일본사태는 계속 반복될 수 밖에 없다.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7월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한-일 전략물자 수출 통제 제도 양자협의 결과’와 관련해 기자단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이호현 산업통상자원부 무역정책관이 7월 12일 정부서울청사 브리핑룸에서 ‘한-일 전략물자 수출 통제 제도 양자협의 결과’와 관련해 기자단에게 브리핑을 하고 있다. 사진=산업통상자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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