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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호구(虎口)되지 않으려면
방위비 분담금 협상에서 호구(虎口)되지 않으려면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8.08 13:0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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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개입 조항 신설에서 주한미군 용병론까지, 지를 건 질러야 한다!

마크 에스퍼 미국 국방장관이 8월8일 오늘 한국에 온다. 정경두 국방장관과는 9일 회견한다. 트럼프는 에스퍼의 방한을 앞두고 일찌감치 외곽을 때리기 시작했다. 7일 트위터에서 “한국의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위한 대화가 시작됐다”며 “한국은 북한으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기 위해 미국에 훨씬 더 많은 돈을 지불하기로 동의했다”고 ‘가짜뉴스’를 퍼뜨렸다. 시작도 하지 않은 협상에서 기선 제압에 들어간 것이다. 재선을 겨냥해 지지율을 높이기 위한 장사꾼의 ‘애드립’이라 해도 이쯤 되면 중증이라고 할 법하다.

50억달러 청구서 확인도장 찍어 에스퍼가 온다!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사진: 위키피디아
마크 에스퍼 국방장관. 사진: 위키피디아

이런 정황에 비춰보면, 국방장관 취임 이후 처음으로 에스퍼가 한국에 오는 주요한 이유의 하나는 분명하다. 존 볼튼 국가안보좌관이 7월23~24일 방한해 내놓은, 8억9천만달러에서 50억달러로 거의 6배 올리라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 청구서에 한 번 더 도장을 찍는 게 그것이다.

이외에도 한‐미 국방장관 회담의 예상의제는 수두룩하다.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에 대한 의견 교환이 이뤄진다는 건 거의 확실하다고 봐야 한다. 교도통신이 전한 바로는, 에스퍼는 7일 이와야 다케시 일본 방위상과 면담에서 지소미아를 포함해 한·미·일 협력을 지속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함께 했다.

중거리핵전력(INF) 협정 탈퇴 이후 에스퍼가 아시아에 지대공 중거리 전술핵미사일 배치 가능성을 흘리고 있는 상황에서 이 문제도 거론될 수 있다. 이미 중국이 방방 뜨며 반대하고 있는 사안이다. 호르무즈해협 호위연합체에 한국군을 파병해 달라는 요청이 있을 수도 있다.

모두가 메가톤급 사안이다. 냉정하고 차분한 대응이 필요함은 물론이다. 하나씩 따져보자. 지소미아는 미국이 뭐라고 하든 폐기하는 게 맞다. ‘상호주의’ 원칙에 입각해서다. 한국과 일본은 ‘준’(quasi)동맹 관계에 있었다. 그런데 한국으로 수출이 자국 안보에 위협이 된다며 일본은 수출 통관절차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했다. 우방국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한 것이다. 사실상 ‘준’동맹 관계가 깨졌다고 보는 게 맞다. 그런데도 지소미아를 붙들고 있겠다는 건 난센스다. 국내적으로는 물론 국제적으로도 웃음거리가 되기 쉽다.

미국이 유지하라고 다그치기도 어렵다. 한일 갈등을 적극 중재할 생각이 없다고 미국은 일찌감치 선언했다. 방위비 분담금을 터무니없이 올리는 방식으로 한국과 일본 양쪽으로부터 벗겨먹으려는 데 미국은 치중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그러니 지소미아에 대해 ‘감 놔라 배 놔라’ 하는 건 미국의 갈짓자 행보다. 그런 얘기를 꺼내면 에스퍼한테 이렇게 말해야 한다. “Mr. Secretary, please walk in our shoes!” “에스퍼 장관, 제발 입장 바꿔 생각해 보세요. 당신이라면 유지할 수 있겠어요?”라고 말이다.

전술핵미사일 배치 타진은 북한 핵문제 해결과 연계해야

에스퍼가 지대공 중거리 전술핵미사일 배치를 타진하면 이건 메가톤급이다. 현실화하면 제2의 사드 사태가 터질 가능성이 높다. 이 사안에 접근하는 원칙은 분명해야 한다. 첫째, 지대공 전술핵미사일은 결코 허용하지 말아야 할 마지노선이다. 미국과 러시아 서로 파기한 중거리핵전력(INF) 협정의 대상은 500~5500㎞의 지상 기반 전술핵미사일이다. 지상 기반 전술핵미사일이 배치되면 주한미군은 한층 더 선제타격의 대상에 노출된다. 주한미군으로서도 그리 좋을 일이 아니다. 한국의 지상 기반 탄도미사일인 현무 시리즈에 대해 중국이 왕짜증을 내온 상황에 비춰보면, 지대공 전술핵미사일의 한반도 배치로 인해 중국과 전면적인 경제전쟁 현실화 가능성까지 있다. ‘한미동맹 속 경제적 다변화’라는 한국의 외교안보 노선이 송두리째 부정당한다는 얘기다.

둘째, 철저하게 북한 핵문제와 연결돼야 한다는 점이다. 북한의 대륙간탄도탄(ICBM)이 아닌 단거리탄도탄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북핵 문제 해결과 연계한다는 분명한 조건 아래 해상 또는 수중 기반 단거리 탄도탄의 배치 정도를 고민한다는 수준에 그쳐야 한다. 그런다 해도 중국은 경제보복에 나설지도 모른다. 사드 배치의 근본원인이 북한 핵문제에 있었음에도, 중국은 무차별한 경제보복을 가한 전례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의 이런 행위는 한국에서 중국의 고립을 가져왔다. 한국이 경제적으로 타격을 입으며 힘들었지만 중국은 외교적으로 한국에서 패배했다. 이제 중국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는 한국민은 거의 없다. 중국의 보복이 불가피하다면 다시 이런 상황이 오게끔 하는 게 국익에 유리하다.

‘호갱 노노’ 위해 지를 목록 준비해야

북한이 8월6일 공개한 신형유도탄 발사 장면.
북한이 8월6일 공개한 신형유도탄 발사 장면.

방위비 분담금 문제와 관련해 아직 ‘굿 캅’(좋은 경찰)은 없다. 볼튼도 트럼프도 에스퍼도 모두 ‘배드 캅’(나쁜 경찰)이다. 아직 협상도 시작하지 않은 데다, 볼튼이 ‘협상불가’(non‐negotiable)라는 말까지 뱉고 나간 상황이라고 하니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공법은 할 말은 하는 것이다. 할 말에는 몇 가지가 있다. 첫째, '창의적인' 방위비 분담금 계산방식을 공개하고, 여기에 인건비까지 포함됐으면 주한미군을 한국의 용병으로 간주해도 되느냐, 한국 밖으로 빼내지 않겠다는 뜻이냐 등을 추궁할 필요가 있다. 주한미군의 위상 조정 문제다. 둘째, 한미상호방위조약에서 미비사항을 개정하겠다는 의향을 내비칠 필요가 있다. 대표적으로는 자동개입 조항의 신설이다. 1953년 10월 체결 당시 미국의 자동개입조항이 빠진 것은, 이승만 당시 대통령의 북한 공격 등 남한 정부가 단독으로 저지를 수 있는 만약의 사태를 견제하기 위한 것이었다.

셋째는, 트럼프가 연출한 ‘굿 캅’ 코스프레에 대한 대비한 포석이다. 예상되는 코스프레는 괌 미군기지에서 한반도 상공으로 날아오는 전략자산 운용에 드는 비용을 한국이 분담하라고 요구하는 것이다. 이 부분에서 에스퍼가 흘리고 있는 전술핵미사일 배치와 연결될 고리가 있어 보인다. 멀리 괌에서 날아오는 게 아니라(그나마 기상이 나쁘면 안 뜬다!) 잠수함 기반 미국의 전술핵미사일을 한반도 주변 해역에 상시 대기시키는 쪽으로 운영하는 것을 배제하지 않는 것이다. 전략핵은 폐기하고 전술핵은 유지하고픈 북한의 유혹을 차단하려는 취지에서다. 물론 운용에 대한 통제권은 한국과 실질적으로 공유하고 북한 비핵화의 적절한 단계에서 폐기한다는 조건이 따라야 한다. 일정한 위험을 동반하는 구상이지만, 위험이 100% 없는 안보정책은 환상이다.

물론 이런 구상 자체가 불필요할 수도 있다. 북한에 대한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체제 안전 보장’(CVIG)와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비핵화’(CVID) 원칙에 합의하고, 이 원칙을 실현하기 위한 가급적 짧은 단계의 ‘동시적․병행적’ 이행 로드맵이 확립되는 경우다.

패권 다툼에 한창인 미국이나 중국의 글로벌 호구가 되지 않으려면 벙어리 냉가슴을 앓으면 안 된다. 체계적으로 시나리오를 짜고 요구 목록을 만들면서 지를 건 질러야 한다. 그래야 광고에 열심인 어느 인터넷 사이트 이름처럼 ‘호갱노노’가 된다. 주눅들 필요가 없음을 보여주는 한 가지 일화를 소개한다. 2000년 4월 김대중 대통령이 남북정상회담 합의 사실을 발표하자, 당시 미국 국방장관 윌리엄 코언은 난데없이 "주한미군은 계속 주둔한다"고 발표하는 일이 있었다. 미국 몰래 남북이 주한미군 철수에 합의하지 않을까 의심했다는 방증이다. 그만큼 주한미군은 미국의 '핵심 국익'이라는 뜻이다. 주한미군 주둔병력을 일부 줄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완전 철수는 불가능하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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