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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부, 10월 소비세 인상 왜 강행하나?
아베 정부, 10월 소비세 인상 왜 강행하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8.28 11: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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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비세 인상 없이 국채 발행 더 늘어나면 외국인투자 비중․영향력 증가
일본은행 국채 50% 보유…막대한 정부부채 지속가능성 회의감 관리해야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아베 정부는 오는 10월 소비세를 8%에서 10%로 높이려 한다.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도 이 계획의 수정에 그다지 변수로 작용하지 않는다. 두 사건 모두 아베노믹스를 떠받쳐온 ‘약한 엔화’가 끝나가는 상황과 겹쳐 수출을 줄이고 경상수지 흑자를 쪼그라들게 하고 있다. 1989년 처음 3% 수준에서 소비세가 도입된 이후 그동안 두 차례 인상 과정에서 민간소비가 크게 감소하며 성장을 둔화시킨 경험도 예정된 인상 계획을 멈추지 못한다. 최근 여론조사에서 일본 국민들의 51.3%가 소비세 인상에 반대하는 상황은 이런 경험과 무관하지 않는다. 이미 두 차례나 연기한 소비세 인상을 이번에는 꼭 하겠다는 아베 정부의 의지는 이렇게 강하다. 일본의 ‘10월 위기설’이 나오는 것도 이런 배경에서다.

도쿄 일본은행 본부 건물. 사진: 위키피디아
도쿄 일본은행 본부 건물. 사진=위키피디아

과거의 소비세 인상과 ‘이번에는 다르다’고 아베 정부는 강조한다. 세수의 대부분을 국민들에 돌려주겠다며 민간소비가 줄어든 과거의 경험이 되풀이되는 것을 막고자 한다. 5조7천억엔(약 65조4천억원) 안팎의 세수는 저소득층에 대한 프리미엄 상품권(예를 들어 액면가 100원 쿠폰으로 120원 어치 살 수 있게 하는) 2조엔, 교육비 무상화 1조7천억엔, 사회보장비 1조1천억엔 등을 배정해 놓고 있다.

늦출 만도 한데 아베 정부가 소비세 인상에 집착하는 배경은 무엇일까? 그냥 흘려보낼 수 없는 흥미로운 일화가 지난 4월과 5월에 있었다. 구로다 하루히코 일본은행 총재는 올해 4월4일 의회에서 ‘현대통화이론’(MMT)의 일본 적용 가능성을 묻는 의원들의 물음에 “(이 이론은) 막대한 재정적자의 위험을 감안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수용될 수 없다”고 답변했다. 5월9일 의회에서도 마찬가지 답변을 내놨다.

아베 정부, 재정적자 축소에 헌신한다는 인상 줘야 하는 쪽으로 몰려

아베 신조 총리도 4월4일 ‘일본은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 비율을 지속적으로 낮추는 데 헌신하고 있다’며 “일본은 현대통화이론에 따라 재정정책을 수행하고 있지 않다”고 의회에서 주장했다. 그러면서 급속히 고령화하는 인구의 사회복지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일본은 소비세 인상을 진행해야 한다. 유연한 재정지출과 담대한 통화정책의 결합을 통해 성장을 달성하기를 희망한다”고 덧붙였다.

도대체 이 이론이 무엇이기에 총리와 중앙은행 총재까지 나서서 일본에 적용되지 않고 있다고 강력하게 부인하는 것일까? 현대통화이론은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중앙은행이 직접 인수하게 하는 방식으로 더 많은 돈을 창출할 수 있기 때문에 모든 정부지출에 충당하기 위한 세금 징수가 필요하지 않을 수 있다고 주장하는 이단적인 학설이다. 아베와 구로다의 부정에도 이 이론의 핵심이 일본 경제에 적용돼 왔다는 눈길은 사라지지 않고 있다. 충분히 이렇게 주장할 만한 사정이 있다.

중앙은행의 국채 매입은 2008년 대금융위기 이후 흔한 일이 됐다. 그때 미국 연방준비제도이사회나 유럽중앙은행은 파국을 막기 위해 제로 금리는 물론 이른바 ‘양적 완화’(QE)를 통해 자체 국채는 물론 민간의 자산담보부증권(ABS) 등 민간의 자산을 사들이는 방식으로 시중에 통화를 공급했다. 현대통화이론이 주창하는 내용과 비슷하다. 하지만 일본은행은 1990년대 초 부동산 거품의 초대형 폭발 이후 경제 활력 둔화가 일상화하면서 이런 식의 대응을 해왔다.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이 일본은행을 모방했다는 지적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일본은행의 ETF 매입, 중앙은행이 대신 자사주 매입해 주가 띄우는 격

문제는 일본은행의 대응이 시기적으로 앞섰다는 데 있는 게 아니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는 물론 민간기업 주식까지 상시적으로 대규모 매입하는 것을 일상화했다는 데 있다. 특히 2013년 3월 구로다 총재 취임 이후 훨씬 더 조직적으로 체계화했다. 특히 상장지수펀드(ETF)를 사들여 이 펀드에 포함돼 있는 민간기업의 주식을 대규모로 소유해 주가를 부양하고, 상승한 주가가 소비로 이어지는 '부(副)의 효과’(wealth effet)를 통해 민간소비를 높이려는 ‘구로다 바주카포’ 시리즈는 세계적으로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구로다 바주카포 1탄은 2013년 4월4일 매입 기한을 없애고 연간 1조엔(약 11조5천억원)씩 ETF 매입 결정, 2탄은 같은해 10월31일 연간 매입 규모를 3조원으로 확대, 3탄은 2016년 7월29일 연간 매입 규모 6조엔으로 확대 결정이다. 일본은행의 민간기업 주식 매입은 2010년 10월 시작됐는데 일본 증권시장의 양대 지수인 니혼게이자이신문이 발표하는 닛케이225지수, 우리나라의 유가증권시장(코스피)지수에 해당하는 도쿄주가지수(토픽스)에 연동한 ETF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졌다.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으로 대주주가 된 일본은행.
상장지수펀드(ETF) 매입으로 대주주가 된 일본은행.

그 결과 2019년 8월23일 기준으로 이코노미21이 일본은행이 홈페이지에 공개한 ETF 매입자료를 계산해보니 지금까지 사들인 잔액이 27조2849억엔(약 310조원)에 이른다. 일본은행은 도쿄증시에 상장된 기업 40%에서 열손가락 안에 드는 대주주가 됐다. 한‐일 경제전쟁 과정에서 불매운동의 직격탄을 맞은 유니클로의 지주회사인 ‘패스트 리테일링’도 여기에 속한다. 2019년 2월 말 기준으로 일본은행의 패스트 리테일링 보유 주식 비중은 1840만주로 발행주식의 18%, 유통주식의 거의 70%를 차지한다. 이런 식의 사실상 ‘국유화’가 상장된 소매유통업계 평균 주가 상승률보다 페스트 리테일링의 주가를 훨씬 더 높이는 왜곡을 낳았음은 물론이다. 미국이나 한국에서는 해당 기업들이 자사주 매입으로 주가를 부양하는 반면, 일본에서는 중앙은행이 해당 기업들을 대신해 자사주 매입에 나선 꼴이다.

국채시장에서 상황은 훨씬 더 심각하다. 일본은행의 국채 매입은 예금취급 금융기관이 보유하고 있는 일본 국채를 사들이는 방식으로 이뤄져 왔다. 이코노미21이 재무성의 ‘2019년 부채 관리 보고서’와 일본은행의 ‘자금순환표’를 분석한 결과, 2012년 말 예금취급 금융기관의 국채(재무성 어음 포함) 잔액은 408조9천억엔이었다. 2018년 말 186조엔으로 222조9천억엔 줄었다. 국채시장에서 보유 비중이 41.9%에서 16.7%로 감소한 것이다. 반면 같은 기간 동안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잔액은 127조9천억엔에서 477조6천억엔으로 349조7천억엔 증가했다. 비중으로 치면 13.1%에서 43.0%로 급증한 것이다.

일본은행, 신규 발행 국채의 70% 매입

문제는 일본 정부가 새로 발행하는 국채의 대부분을 일본은행이 직접 사들인다는 점이다. 2013~2018년 일본 정부의 신규발행 국채(재무성 어음 포함) 총액은 180조6천억엔(약 2천조7천억원)이다. 일본은행의 국채 보유 비중을 감안하면, 일본 정부 신규 국채발행액의 70%를 일본은행이 직접 사들였다는 얘기가 된다.

주체별 일본 국채 보유 추이(자료: 재무성)
주체별 일본 국채 보유 추이(자료: 재무성)

그럼 나머지는 누가 사들이냐는 문제가 남는다. 바로 이 지점이 아베 정부가 소비세 인상을 물리지 않는 배경을 이룬다. 일본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의 나머지를 인수하는 주체는 바로 외국인투자자들이다. 외국인투자자의 일본 국채 시장 비중은 2001년 3.8% 언저리에서 2009년 5.6%, 2012년 8.4%, 2018년 12.1%로 급증했다.

국채시장에서 이런 비중 급증은 주식시장과는 대조를 이룬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올해 3월 말 끝나는 2018회계연도 기준으로 일본 증시에서 31년 만에 최대 규모인 500억 달러(60조7천억원) 어치를 팔아치웠다. 지난 회계연도에 이어 2년 연속으로 대규모 순매도가 이뤄진 것이다. 외국인투자자가 팔아치우는 족족 일본은행은 ETF 매입을 통해 그만큼의 주식을 사들이며 주가를 떠받쳤다.

국채시장 외국인투자자 비중 급증과 ‘안전자산’으로서 엔화 지위 딜레마

하지만 국채 시장에서는 이런 논리가 작동하지 않는다. 엔화 표시 일본 국채는 미국 국채와 마찬가지로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꼽힌다. 20년이 넘도록 계속되는 일본 경제의 저금리 상황과 맞물려 달러화나 유로화, 금과 연동해 다양한 만기를 가진 엔화 표시 일본 국채에 대한 다양한 수요를 창출하고 풍부한 유동성을 자랑한다. 정부가 발행하는 국채를 일본은행이 몽땅 사들이고 싶어도 그럴 수 없다는 얘기다. 그럴 경우 외국인투자자의 접근이 제한받으면 엔화가‘안전자산’이라는 신뢰가 근본에서 흔들리게 되기 때문이다.

일본 정부와 일본은행으로서는 딜레마다. 국채시장에서 외국인투자자의 비중이 높아진다는 것은 그만큼 영향력이 커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러면 일본 국채시장은 외국인투자자의 심리에 민감해지고 휘발성도 커진다. 일본은행으로서는 국채 수익률을 0% 언저리에서 안정시킨다는 통화정책의 목표를 유지하기가 그만큼 버거워진다.

주요국 순정부부채 비중 추이(단위: 국내총생산 대비 %, 자료: 재무성)
주요국 순정부부채 비중 추이(단위: 국내총생산 대비 %, 자료=재무성)

이미 일본 경제는 국내총생산 대비 정부부채가 10년도 채 안 돼 100%포인트 높아지며 올해 1분기 238%로 세계에서 가장 높은 상황에 있다. 민간 국제신용평가회사들이 평가하는 일본의 국가신용등급은 우리나라보다 2단계나 낮다. 이런 상황에서도 엔화 표시 일본 국채가 ‘안전자산’의 대명사로 꼽히는 한 축은 경상수지 흑자를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경상수지 흑자는 일본 정부가 갖는 막대한 대외채권의 원천이다. 대외채권을 감안한 국내총생산 대비 순정부부채 비중은 올해 1분기 154%로 238%보다 84%포인트 낮다.

세수 늘려 ‘국채 발행액 추가 확대→외국인투자자 비중 증가’ 차단해야

문제는 미‐중 무역전쟁과 한‐일 경제전쟁 와중에서 무역흑자가 급감하며 일본의 경상수지 흑자가 크게 줄고 있다는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1~6월) 일본의 무역수지 흑자 규모는 2242억엔(약 2조5550억원)으로 1년 전보다 87.4%나 감소했다. 막대한 대외채권에서 비롯하는 소득수지 등이 상쇄했음에도 경상수지 흑자도 10조4676억엔(약 120조원)으로 4.2% 줄었다.

수출 감소에 따른 경상수지 흑자 감소는 아베 정부가 일본 국내적으로 내수를 부양할 필요성을 한층 더 강하게 만든다. 그러려면 정부지출을 늘려야 한다. 정부지출을 늘리려면 국채 발행액을 더 늘려야 한다. 하지만 국채 발행을 더 늘린다고 해도 일본은행이 몽땅 매입하면 좋겠지만 외국인투자자의 비중과 영향력이 높아지는 부작용이 불가피하게 따른다. 2018년 국내총생산의 3%에 이르는 재정적자는 더 커지고 240%에 육박하는 정부부채은 더 높아지고 진다. 그만큼 부채의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는 커지게 된다. ‘안전자산’으로서 엔화의 지위도 흔들리고 국채시장의 안정성도 위협을 받는다.

남는 방법은 국채 발행액을 더 늘리지 않는 것이다. 그러려면 세수를 증가시키는 이외에 다른 방법이 없다. 아베 정부가 10월 소비세 인상 계획을 그대로 밀고 가는 근본적인 이유는 바로 이것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상 일본 경제는 신규 국채발행액의 70%를 일본은행이 직접 인수하는 방식으로 시중에 통화를 공급하며 ‘현대통화이론’의 핵심 부분을 실천하고 있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현대통화이론은 막대한 재정적자의 위험성을 고려하지 않는 위험한 이론”이라며 일본 경제는 이를 적용하고 있지 않다고 극구 부인한다. 소비세 인상은 국민들로부터 거둬들였다가 다시 돌려주는 불필요한 과정을 거치는 일이다. 애초 올리지 않으면 되는 일이다. 하지만 아베 정부는 재정적자 관리에 헌신하고 있다는 인상을 대외적으로 주기 위해 올릴 수밖에 없다. 지속가능성에 대한 심각한 우려를 낳는 막대한 정부부채가 일본 경제를 짓누르는 모습은 이렇게 나타나고 있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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