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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과 함께 하는 ‘과학기술문화’
시민과 함께 하는 ‘과학기술문화’
  •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 승인 2019.08.28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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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문화는 과학기술을 뒷받침…과학문화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
대중과 과학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 반드시 필요해

<스페셜② - ‘소통이 만드는 미래’ - 시민참여형 과학기술문화>

[이코노미21]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2019년 들면서 우리 정부의 연구개발비 예산은 20조원을 돌파했다. GDP(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중으로 봤을 때,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35개 회원국가 가운데 1위다. 정부는 과학기술기본법 등에 근거하여 R&D 예산 투자를 통해 과학기술 혁신과 국가경쟁력 강화, 국민 경제 발전과 함께 국민의 삶의 질 제고를 위해 노력하겠다는 강력한 의지를 표명하고 있다.

투자는 상위권, 과학문화는 하위권

과학기술 강대국을 향한 이 같은 의지와 노력은 과학기술 각 분야에서 한국을 무시하지 못할 국가로 부상시키는 원동력이다. 매년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와 한국과학기술평가원(KISTEP)이 조사하는 ‘국가 과학기술혁신역량평가(COSTII)’에 따르면, 2018년 평가결과 OCED 35개 회원국 중 한국은 종합순위 7위에 랭크돼 있다. 한국의 GDP 규모가 2018년 세계 12위인 점에 비추어 본다면 5단계나 높은 순위다.

세부적인 항목들을 살펴보면 R&D 투자 2위, 산‧학‧연 협력 2위, 물적 인프라 2위, 지식자원 6위, 연간 특허수 4위 등으로 상위권이다. 전체적으로 보면 연구개발 투자를 중심으로 하는 활동 부문은 전체 3위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그러나 과학기술환경 부문의 문화 항목들을 보면 상황이 달라진다. 세부항목 ‘새로운 문화에 대한 태도’는 새로운 문화와 외국 문화에 대한 개방성을 파악하는 지표로 혁신 환경 조성을 위해 중요한 항목이다. 새로운 문화에 대해 가장 개방적인 국가는 아일랜드로 조사됐는데, 2016~2018년 평균점수가 10점 만점에 8.77점이다. 이어 캐나다가 8.51점, 네덜란드가 8.35점, 포르투갈이 8.14점, 스웨덴이 8.02점으로 상위권이다. 반면 우리나라는 2016~2018년 평균이 5.84점이며 35개국 중 28위이다. 2018년의 결과는 2017년 조사 때보다 2단계 상승하긴 했지만 여전히 하위권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또 다른 항목 ‘학교에서 과학교육이 강조되는 정도’는 과학기술에 대해 청소년들이 얼마나 관심이 있는지를 평가해 미래 과학기술 발전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보여주는 지표다. 이 항목에서 1위는 스위스로 2016~2018년 평균이 8.07점이다. 우리나라는 스위스보다 2.67점이 낮은 5.40점이고 순위로는 24위다. 더구나 2017년 조사 때보다 3단계나 하락해 우려가 커지고 있다.

과학에 대한 관심도 높여야 할 때

국가경쟁력을 뒷받침하는 것이 과학기술이라는 사실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과학기술의 지속적인 발전을 뒷받침하는 것은 다름 아닌 과학문화임에 주목해야만 한다. 한 나라의 과학기술 수준을 평가하려면 그 나라의 과학관, 과학축제 등을 돌아보고, 그 나라 국민의 과학문화 수준을 살펴봐야 한다. 과학기술이 발전하는 데 과학문화가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다.

과학기술혁신역량 중 문화 항목에서 이처럼 순위가 낮은 것은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사회문화적 기반이 그렇게 튼튼하지 않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과학문화는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과학기술을 뒷받침하고 있으며, 과학문화에서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것은 국민의 관심이다. 새로운 과학적 사실이나 이슈 등에 대한 국민의 관심이 높다는 것은 곧 과학문화의 수준이 높다는 것을 뜻한다.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는 2000년부터 2년 단위로 과학기술국민이해도 조사를 실시해 발표하고 있다. 과학기술에 대한 국민의 관심과 이해, 태도 등을 파악하기 위해 성인 및 청소년을 대상으로 하는 정례적인 조사다. 2018년 조사 결과를 보면 ‘새로운 과학적 발견과 기술 활용에 대한 국민의 관심도’는 13~18세 청소년이 47.2점(100점 만점), 19~69세 성인의 경우는 39.2점으로 나타났다. 이는 국민 전체적으로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가 크게 높지는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학교를 졸업한 후 나이가 들수록 관심도가 낮아진다는 것 역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이런 현상은 특히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확연하게 나타난다. 미국 국민의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도는 2016년 63.7점으로 우리보다는 크게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은 청소년은 물론 성인에 이르기까지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편이다.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곧 과학문화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낮으면 과학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2018년 과학기술국민이해도 조사에서 과학에 대한 이해도는 성인은 27.3점, 청소년은 33.6점으로 나타났다. 관심도와 마찬가지로 선진국에 비하면 낮다.

과학대중화나 과학문화에 있어서 국민의 과학이해는 매우 중요하다. 영국왕립학회(Royal Society)는 대중의 과학이해(PUS)가 중요한 이유를 여섯 가지로 설명했다. 대중의 과학이해를 증진시켜야 첫째, 과학기술인력을 효과적으로 확보할 수 있고 둘째, 과학기술에 대한 지지를 강화할 수 있고 셋째, 사회적 이슈에 대한 의사결정을 원활히 할 수 있으며 넷째, 일상생활에서 과학적 소양을 활용할 수 있고 다섯째, 과학기술의 부작용에 적절히 대처할 수 있고 여섯째, 과학기술을 문화로 향수할 수 있다는 것이다. 대중의 과학이해를 기반으로 하는 과학문화가 왜 필요한지를 설득력 있게 설명해주고 있다. 대중의 과학이해를 증진하려면 대중이 과학에 관심을 갖게 해야 한다. 그러자면 무엇보다 과학소통이 사회 전반적으로 활성화돼야 한다. 교육계에서는 이른바 과포자(과학을 포기하는 사람), 수포자(수학을 포기하는 사람)가 심각한 사회적 이슈가 되고 있다. 과포자, 수포자가 많은 것은 결국 학생들이 과학에 대해 관심을 갖지 못하고 과학, 수학, 정보 등을 어렵게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러한 우리 현실에서 절실한 것은 대중과 과학을 즐겁게 이야기할 수 있는 소통의 장이다. 세계적인 명성을 얻고 있는 영국의 ‘크리스마스 과학강연’, 스코틀랜드의 ‘에든버러 사이언스 페스티벌’ 등은 대표적인 과학소통의 사례들이다. 매년 연초에 열리는 미국과학진흥회(AAAS)의 연례회의 역시 과학소통의 좋은 모델이다. 과학자, 연구자들이 직접 나서서 정책 입안자, 정치인, 여러 분야의 지식인 및 일반대중과 함께 과학기술 연구개발의 중요성과 성과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과학정책에 대한 의견도 교환하고 있다. 이런 소통을 통해 과학을 이해하는 것이 바로 과학문화다.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낮으면 과학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과학기술대토론회에서  “시민참여형 과학문화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과학에 대한 관심도가 낮으면 과학에 대한 이해도 역시 낮을 수밖에 없다.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이 과학기술대토론회에서 “시민참여형 과학문화 패러다임”이라는 주제로 기조발제를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과학 강대국으로 가는 길, ‘대중과의 소통’

최근 과학문화 전문가나 미래연구가들은 ‘STS’라는 키워드를 강조하고 있다. ‘사회 속의 과학기술(Science & Technology in Society)’, 혹은 ‘과학기술학(Science & Technology Studies)’을 말한다. 이 용어에는 과학기술이 사회와 무관하게 독립적으로 발전할 수 없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과학기술의 토대가 되는 과학문화, 즉 과학과 사회가 소통하는 문화가 없다면 과학기술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없다는 전제가 깔려 있는 것이다. 과학기술의 역할과 영향력이 급속하게 커지고 있는 상황에서 정책 관계자들은 과학기술로 인한 변화를 미리 예측하고, 또한 중요한 연구개발의 성과를 대중에게 알리면서 사회와 소통하는 일이 연구개발 만큼이나 중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STS’는 과학과 사회, 과학자와 국민 간의 소통이다. 과학소통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과학기술과 관련된 정책을 자연스럽게 확대‧발전시켜나갈 수 있으며, 21세기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갈 과학기술인력도 제대로 확보할 수 있을 것이다. 과학과 사회의 소통은 궁극적으로는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게 해줌으로써 과학문화를 조성하고 확산하는 데 있어서 토대가 될 것이다.

2000년대 이전까지 우리나라의 과학대중화는 주로 과학기술자가 대중들에게 어려운 과학을 전달하는 계몽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그러나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양상이 바뀌었다. 과학기술자들은 대중과 소통하는 자리로 직접 와서 대화를 갖기 시작했다. 과학자들이 자신의 연구 성과를 대중들에게 직접 설명하기 시작했고, 과학을 쉽고 재미있게 설명하는 과학교양서를 집필하기도 했다. 최근에는 과학소통을 전문적으로 하는 과학자들이 많아지고 있는데, 이들을 ‘과학커뮤니케이터’라고 부른다.

우리나라 유일의 과학문화전문기관인 한국과학창의재단은 과학문화의 변화 흐름에 맞춰 길거리 과학공연, SNS나 유튜브를 통한 과학소통 등 다양한 방식의 과학소통을 시도하고 있다. 그중 ‘페임랩 코리아’ 대회는 과학커뮤니케이터를 발굴하는 등용문으로 자리 잡았다, 페임랩(Fame Lab)은 3분 동안 발표 자료 없이 말이나 도구로 과학을 설명하는 과학 스피치 경진대회인데, 영국에서 처음 시작됐다. 우리나라에서는 2014년부터 한국과학창의재단이 영국문화원과 함께 페임랩 코리아 대회를 매년 개최하고 있다. 페임랩을 통해 선발된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은 학교를 찾아가 과학강연도 하고 길거리에서 과학 버스킹도 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또한 과학팟캐스트 ‘과장창(과학으로 장난치면 창피해?)’, 청소년들의 과학상황극대회 ‘톡신(TALK SCENE)’, 성인들을 위한 과학프로그램 ‘사이언스 나이트 라이브(SCIENCE NIHHT LIVE)’ 등도 인기를 모으고 있다. ‘과학동영상 공모전’, ‘과학웹툰 공모전’. ‘대한민국과학축제 시민참여 프로그램 공모전’ 등 과학공모전도 많아져 이제는 과학에 관심이 있으면 누구나 다양한 방식으로 과학에 참여하고 즐길 수 있다.

거리로 나선 ‘2019 대한민국 과학축제’

예전에는 과학 프로그램이 많지 않아서 관심 있는 국민이 과학 프로그램을 찾아다녔었다. 그러나 지금은 과학기술자, 과학커뮤니케이터 등 과학문화 전문가들이 대중을 찾아가는 시대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더 많은 대중을 만나고 더 많은 소통을 하는 과학문화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고 있다. 특히 올해 4월 과학의 달, 도심형 축제로 개최된 ‘대한민국 과학축제’는 그야말로 획기적인 시도였다. 4월 19일에는 경복궁 흥례문 광장에서 과학축제 전야제를 열었고, 4월 20일부터 23일까지 4일간은 서울마당, 청계천, 세운광장, DDP등 서울 도심 곳곳에서 과학축제를 개최해 큰 호응을 얻었다. 이전의 대한민국과학창의축전은 코엑스, 킨텍스, 부산 벡스코와 같은 대규모 컨벤션 공간에서 여름 방학기간 동안 개최되었는데, 올해에는 도심공간으로 찾아가 시민들을 만나는 도심문화축제로의 변신을 시도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시도된 도심형 과학축제였던 만큼 반응도 놀라왔다. 65개 기관, 연구소, 과학관이 참여해 155개 프로그램을 운영했는데, 다양한 계층의 시민, 관광객의 호응 속에서 5일간 참가자 수만 32만 여명에 달한 것으로 집계됐다. 특히 주말인 토요일과 일요일에는 참가자 수가 10만 명을 훨씬 넘었다. 특기할 점은 어린 자녀들과 함께 온 가족은 물론이고 연인, 직장인을 비롯해 노년층, 외국인에 이르기까지 참가자의 성별, 계층, 연령층이 매우 다양해졌다는 것이다. 이번축제는 과학이 대중을 찾아가는 도심축제가 대중으로부터 얼마나 뜨거운 호응을 얻을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과학창의재단은 이 축제를 영국 ‘에든버러 사이언스 페스티벌’처럼 대중적이고 국제적인 축제로 만들기 위해 더 많은 노력을 기울일 것이다.

성공을 위한 열쇠는 ‘시민참여’와 소통협력

과학문화가 처음 시작된 곳은 영국이다. 19세기의 영국은 산업혁명의 중심이었고, 산업화가 한창 진행되는 과정이었기에 대중의 과학에 대한 관심이 점점 커지고 있었다. 역사적으로 1825년에 개최된 대중과학강연 ‘크리스마스 강연’은 과학문화의 효시로 평가받고 있다. 이후 과학대중화는 이웃나라 프랑스, 독일로 확산되었고 바다 건너 미국 등에서 꽃을 피웠으며 지금은 동‧서양을 막론해 주요한 과학정책이슈가 되었다. 21세기 들어서는 과학강대국을 중심으로 더 대중적인 과학문화를 창달하기 위해 치열한 경쟁을 펼치고 있다. 우리나라 역시 우리 현실에 맞는 한국적 과학문화 풍토를 조성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과학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과학친화적인 사회문화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생활 속에서 자연스럽게 과학을 만날 수 있는 공간이 더 많아져야 하고, 모든 연령층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과학소통 프로그램이 운영되어야 하며, 층간소음 등의 사회문제나 국가적 이슈를 과학적 사고를 통해 풀어나갈 수 있는 과학커뮤니케이션이 활발히 이루어져야 한다. 정부나 공공기관을 비롯해 지자체, 문화단체, NGO, 교육기관 등과의 긴밀한 협력도 필요하다.

과학소통은 과학자들만의 영역이 아니다. 지금은 누구나 과학커뮤니케이터가 될 수 있으며, 과학적 이슈에 대해 참여하고 의사 결정도 내릴 수 있는 시대다. 정보통신기술이 발전하고 다양한 미디어들이 출현하면서 꼭 과학기술자가 아니더라도 누구나 과학을 이야기할 수 있고 즐길 수 있다. 가령 유럽에서 많이 운영되고 있는 ‘리빙 랩(Living Lab)’은 지역사회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개방형 플랫폼으로 시민, 연구자, 지방정부 등이 함께 참여해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고 사회를 혁신하는 시민참여형 모델이다.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이런 시대적 흐름에 발맞추어 모든 시민이 참여할 수 있는 다양한 과학문화 프로그램을 만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물론 의욕만 갖고 되는 일은 아니며 혼자만의 힘으로 이룰 수도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대중과의 소통과 시민 참여다.

과학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과학친화적인 사회문화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대토론회 과학문화 분과의 패널토론 모습. 사진=이코노미21
과학문화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과학친화적인 사회문화 환경 구축이 필요하다. 과학기술대토론회 과학문화 분과의 패널토론 모습. 사진=이코노미21

[이코노미21] [안성진 한국과학창의재단 이사장] [과학기술정책대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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