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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샘통’보다 ‘동병상련’ 느껴지는 이유
[칼럼] ‘샘통’보다 ‘동병상련’ 느껴지는 이유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8.28 12:21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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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와 트럼프의 원칙적인 무역합의를 보며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닮았다. 그것도 아주 많이 닮았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 8월25일 서방선진7개국(G7) 정상회의에서 원칙적인 무역합의를 이루고 다음달 말 합의문에 서명할 것이라는 발표를 접하고서 든 생각이다.

대체적인 윤곽이 나온 합의에서 미국이 챙긴 목록은 이렇다. 80억달러(약 8조원) 규모의 미국산 옥수수 250만t 구입, 현행 38.5%인 미국산 쇠고기에 대한 수입관세율 2033년 4월까지 9%로 점진적 인하, 미국산 돼지고기 고가품에 대한 관세율 4.3%에서 무관세화-소시지 등 쓰이는 저가품 관세 ㎏당 482엔(약 5530원)에서 50엔(약 570원)으로 단계적 인하 등이다. 일본이 챙긴 목록은 일본산 쇠고기 3천t 무관세 수입, 자동차 이외 공산품에 대한 관세 인하폭 확대, 수입쇠고기 세이프가드(긴급수입제한조치) 발동 기준 완화 등이다.

얼핏 보기에도 합의의 균형이 미국 쪽으로 한참 기울어져 있다. 특히 일본산 자동차․부품 500억달러 어치에 대한 미국의 관세 2.5%의 무관세화하는커녕 트럼프의 25% 관세 부과 위협조차 없애지 못한 채 계속 협상의 영역으로 남은 것이 크게 작용했다. 일본 언론에서 중국에 팔지 못한 옥수수 250만t을 대신 떠안으며 ‘퍼주기’ 비판 잣대를 들이대고 있는 것도 바로 이 부분이다.

올해 6월 말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트럼프와 아베. 사진: G20
올해 6월 말 일본 오사카 G20 정상회의 만찬장에서 트럼프와 아베.
사진: G20

지난해 9월 서명․발효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개정 때도 그랬다. 미국은 철강 분야에서 이전 수출물량의 70% 쿼터를 설정했다. 철강은 한‐미 FTA와 무관하게 이미 장기 관세유예 품목이었는데 쿼터 설정으로 옥죈 것이다. 2022년부터 단계적으로 줄어들기로 돼 있던 픽업(소형트럭) 관세율 25%는 20년 더 연장됐다. 일본과 마찬가지로 한국산 자동차에 대한 25% 관세 부과 위협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다. 투자자‐국가분쟁해결(ISDS) 소송 남발을 제한하는 성과를 거뒀다는 게 한국 정부의 설명이었지만, 과대평가의 냄새가 짙다. 이전의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처럼 소송의 대상을 직접수용, 내국민 대우와 최혜국 대우 부여 위반으로 명확히 한정짓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혹자는 일본의 근거 없는 부당한 수출규제로 시작된 한‐일 경제전쟁이 한창인 가운데에서 트럼프와 아베의 원칙적인 무역합의를 보며, ‘샘통’이라는 생각이 먼저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다. 하지만 곧바로 그렇게만 바라볼 수 없고 ‘동병상련’을 느끼게 되는 게 현실이다. 조만간 한국에서 ‘동병상련’ 상황이 펼쳐질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기에 더욱 그렇다. 개발도상국 지위에 근거해 보호막을 쳐온 농산물 시장 개방을 추가로 열어젖히기 위해 트럼프가 한‐미 FTA 개정을 요구할 수 있기에 더욱 그렇다. 중국과 무역전쟁 와중에서 ‘애플은 관세가 부과되는데 삼성전자는 그렇지 않다’는 애플 최고경영자 팀 쿡의 얘기를 반영해 ‘도와주겠다’는 트럼프의 반응에서 한‐미 FTA 개정 요구 확률은 더 높아졌다는 생각마저 든다.

한 선배가 소개해준 ‘영속패전론’이라는 책이 있다. 시라이 사토시라는 좌파 성향의 학자가 쓴 이 책에는 “미국은 냉전 붕괴 이후 일본을 무조건적인 동맹자로 간주할 이유가 없어졌다, 미국 입장에서 볼 때 일본은 도와줘야 할 동맹자라기보다 수탈의 대상”이라는 구절이 있다. 온전히 동의하기는 어렵지만 무시하기 어려운 진실의 일단이 포함돼 있다. 재선에 올인하는 트럼프에게 일본과 한국은 ‘동맹국’ 성격보다는 지지층에게 실적을 보여주기 위해 벗겨먹어야 할 먹잇감이 아니냐는 것이다. 두 나라 정부에 들이민, 주일미군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을 각각 지금보다 6배 올리라는 트럼프의 청구서 앞에서 이런 물음은 결코 불순하게(?) 다가오지 않는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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