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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장기화되는 미·중 갈등, 끝이 안 보인다
[천지만리] 장기화되는 미·중 갈등, 끝이 안 보인다
  •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중국학
  • 승인 2019.08.29 10:5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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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강준영 한국외대 교수] 그야 말로 보복의 악순환이다. 무역 분쟁에서 기술 패권 갈등을 넘어 환율 전쟁으로 비화된 미·중 갈등의 파고가 더욱 거세지고 있다. 세계 경제의 시름도 따라서 깊어지고 있다. 모두가 미·중 분쟁의 탓은 아니지만 글로벌 ‘불확실성’이 이미 크게 증대됐고, 주요 경제권들은 ‘R의 공포’, 즉 경기침체(technical recession)의 공포에 시달리고 있다. 문제는 미·중 갈등이 일단 타협보다는 치열한 힘겨루기를 계속하고 있다는 데 있다.

미국은 9월 1일부터 3천억 달러 규모의 중국산 제품에 10%의 추가 관세 부과를 결정해 결국 5,500억 달러에 달하는 모든 중국산 수입품에 추가 관세를 부과했다. 중국도 미국의 환율조작국 지정에 대한 대응의 일환으로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졌던 달러 당 7위안을 깨는 포치(破七)를 용인하더니, 원유와 대두 등 750억 달러 규모의 나머지 대미 수입품에 10%와 5%의 관세를 추가 부과했다. 중국 역시 1,300억 달러에 달하는 대미 수입품 전체에 보복 관세를 부과하는 전면전으로 응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농산물에 대한 수입 중단이나 관세부과는 트럼프 대통령의 지지 기반인 미국 중서부 농업지대 팜 벨트를 직접 겨냥한 것이기도 하다.

작년 3월 22일, 트럼프 대통령이 행정조치 사인으로 촉발된 양국의 무역 분규는 9월, 워싱턴 13차 협상을 앞두고 있음에도 접점 모색은커녕 악화일로다. 미국은 여전히 중국의 지재권 도용과 기술 해킹 등에 대한 근본적인 해결을 요구하면서 가시적 무역적자 해소를 위한 중국 측의 농산물 구매 확대를 바라고 있다. 중국은 미국이 지나치게 자국 중심적인 ‘기울어진 합의’를 요구하고 무역 협상의 범위를 넘어서 주권침해를 시도하는 등 정치공세를 펼치고 있다면서 강력한 항전 의지를 천명하는 중이다. 게다가 분쟁 과정에서 트럼프 대통령이 시진핑 주석을 ‘좋은 친구’에서 ‘적(敵)’으로 폄훼하고, 중국을 무역질서를 해치는 ‘필요 없는 국가’로 간주하고, G7회의에서 홍콩문제를 거론하는 등 국가적 자존심에 상처를 입혔다며 분개하고 있다. 갈등이 확대·증폭되면서 양국 무역협상이 난항을 거듭할 가능성이 더욱 커진 상황이다.

중국도 경제의 불확실성이 증대되고, 중국 굴기의 상징인 전자·정보기술(IT) 등 주력 산업마저 대미 수출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최초의 역성장이 예상되는 악재에 봉착하고 있다. 기존 중국 주도의 부품 공급 사슬이 교란되고, 교역질서의 불확실성이 가중되면서 수출과 투자가 감소해 경제활동 전반이 위축되는 위기를 맞고 있는 것이다. 무역전쟁의 여파로 중국 내 일자리 약 200만개가 사라졌다는 통계도 있으며, 경제심리가 위축되어 발전 동력 확보가 쉽지 않아 보인다. 향후 경기를 예측하는 구매자 관리(PMI)지수도 50이하로 떨어져 경기 전망도 어둡다.

그럼에도 중국이 강력한 대미 대응과 장기전을 강조하는 데는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중국은 당초 미국의 공세가 중국의 ‘도전자적 지위 박탈’이라는 전략적 구조에서 추진되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낮은 수준의 협상이라도 조기에 타결해 대결 국면을 피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협상 과정에서 미국의 세부전략이 치밀하지 못하다는 것을 인지했고 미국의 강압적 공세도 버틸만하다는 자신감을 근거로 미국 대선까지 버티기 전략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자금 유출 등의 부작용이 우려되기는 하지만 환율도 달러 당 7.4위안으로 절하 하면 관세충격이 상쇄되고, 7.8위안이 되면 모든 추가 관세도 흡수할 수 있다는 인식도 작용하고 있다.

둘째는 중국은 미국이 중국 같은 대체 시장을 찾기 어려울 것이라는 자신감도 있어 보인다. 글로벌 부품 공급사슬의 붕괴하면 미국 기업의 중국 활동도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여기에 미국 경제 사정도 만만치 않다. 중국의 농산물 수입 규제나 중단으로 농민들의 불만이 커지고 있고, 무역전쟁의 여파로 세수가 줄면서 내년 연방정부 재정적자 규모가 사상 처음으로 1조 달러를 넘어설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중국이 전략적으로 희토류 수출 규제나 미국 국채 매각 카드를 거론하고, 중국에서 활동하는 페덱스나 대만에 무기를 판매하는 미국 군수업체에 대한 제재를 검토하면서 미국을 압박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또, 중국은 결정적으로 트럼프 대통령이 미·중 무역협상의 조기 타결을 시도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은 홍콩 사태가 무역협상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하면서 홍콩문제를 무역 분쟁과 연결시켰다. 이미 대만에 대한 무기 판매를 승인해 중국을 자극한 트럼프 대통령이 홍콩 문제 등 경제외적인 분야로 갈등 전선을 확대하고 있는 것은 미국이 무역협상 타결을 서둘지 않을 것임을 의미하는 것으로 판단하는 것 같다. 이는 이미 충분히 학습한 ‘트럼프 식 좌충우돌’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겠다는 의미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중국의 태도 변화는 시진핑 주석의 대내적 정치 입지와도 관계가 있다. 대미 무역협상의 지지부진함 속에서 홍콩 문제와 미국의 대 대만 무기 판매 등 악재가 겹치게 되면서 시진핑 체제의 안정성이 위협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세계적 강대국 중국을 지향하는 ‘중국의 꿈(中國夢)’이 세계 최강 미국에 의해 위협을 받고 있는 상황이다. 여기서 미국에 밀리는 인상을 주게 되면 시진핑 체제의 안정은 물론 중국의 사회 안정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중국이 미국과 아무런 협상 타결이 없는 ‘노딜’까지 거론하는 것도 미국의 압력에 굴복하면 내부적 권력 장악력도 떨어질 수 있다는 시진핑 체제의 정치적 고민도 숨어있다.

미·중간의 갈등은 그 파급력이 이미 양국의 범주를 넘어섰다. 사실 양국 갈등은 굳이 패권전쟁을 논하지 않더라도 구조적 변곡점을 맞고 있었다. 미국은 양적완화를 통한 소비 진작으로 경제를 지탱하는 모델이 한계에 왔고, 투자와 수출에 초점을 맞춘 중국의 발전전략도 보호무역추세에서는 성장모델로 기능하기 어려운 상황이기 때문이다. 이는 양국의 갈등이 구조적 차원에서 장기화 될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물론 경기 급랭이나 주가 폭락 등 위기상황 발생은 양국 협상을 적극적으로 추동하는 모색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협상 지속이 갈등의 종료를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보다 대외 의존성이 강한 한국이 미·중 갈등 장기화를 염두에 두고 생존 차원의 전략을 짜야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코노미21]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G20
일본 오사카에서 열린 G20 정상회의에서 각국 정상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G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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