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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국 지지세력의 과잉확신
조국 지지세력의 과잉확신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9.05 12:41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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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견 공개표출과 의견 ‘조작’의 경계에서

[이코노미21] 1932년 10월1일 미국 메이저리그 결승전인 월드시리즈 3차전. 뉴욕양키스의 베이브 루스는 타석에 들어서 야구장 센터필드 부분을 가리켰다. 공은 바로 그곳으로 날아가 꽂히는 홈런이 됐다. 센터필드를 가리킨 그의 몸짓의 정확한 의미를 두고 논란은 있지만, 병석에 있는 아이의 힘을 북돋워주기 위해 홈런을 약속한 것과 함께 이 일화는 그에 따라다니는 대표적인 ‘전설’이다. ‘예고 홈런’을 일컫는 ‘콜드 샷’(called shot)이라는 단어까지 태어났다.

‘콜드 샷’은 자신감과 능력의 상징이다. 최근 조국 지지세력(비속어로는 ‘문빠’로 불린다)이 ‘가짜언론 아웃’이라거나 ‘한국언론 사망’ 등과 같은 검색어를 1위로 올리겠다고 공개 선언하고 실제로 이것이 현실이 되는 일들이 벌어졌다. 행동을 예고하고 실제로 이를 실현한 데서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과 많이 닮았다.

사진=조국 트위터
사진=조국 트위터

하지만 표현하는 자신감과 능력이 누구에게 속한지를 따져보면 똑같이 견주기에는 뭔가 찜찜하다. 베이브 루스의 ‘예고 홈런’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능력에 대한 믿음의 발로에 해당한다. 후자는 마음에 들지 않거나 정확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언론보도들에 대한 공개적인 불만의 표출이 실체다. 근저에는 지지하는 사람에 대한 무한한 신뢰, 그의 자신감과 능력에 대한 믿음이 깔려 있다. 표현의 대상은 지지세력 개개인들이 아닌 제3자의 자신감과 능력에 대한 믿음과 애정이라는 얘기다.

그럴 수 있다. 지지자들이 보기에 작심하고 비틀어 왜곡하려는 언론보도들이 눈에 띄고, 이에 대해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출하려는 마음이 일고, 이를 행동으로 옮기려는 것은 민주공화국에서 얼마든지 허용되는 일이다. 불만이 있는 언론사의 홈페이지를 댓글을 통해 ‘융단폭격’해도 좋고, 언론사의 제보메일함이나 제보전화에 항의메일과 전화를 걸 수도 있다. 당하는 언론사야 괴롭겠지만 이를 뭐라 할 수는 없다.

하지만 ‘한국언론 사망’과 ‘가짜언론 아웃’이라는 검색어를 1위로 만드는 행위가 얼마나 정당성이 있는 행위인지는 매우 의아스럽다. ‘포털’과 인터넷 공간의 성격을 어떻게 규정할지에 대해 여전히 단일한 답은 없지만, 일종의 공론장, 광장의 성격이 강하다는 데는 별다른 이견이 없어 보인다. 이에 비춰보면 특정 검색어 1위 만들기 행동은 수많은 의견들이 뒤엉키는 여론의 광장에서 ‘조직된 행동’을 통해 가장 눈에 띄는 장소를 점거․유지하는 격이다. 과잉확신이 부른 ‘오만’에 가깝다. 이것이 못마땅한 이들은 똑같은 행동으로 맞서 이를 몰아내려는 유혹에 빠지게 된다. ‘팃포탯(tit‐for‐tat’(앙갚음)을 부른다는 얘기다. [이코노미21]

지지하는 당사자 본인의 ‘과잉확신’은 물론, 그에 대한 지지세력의 ‘과잉확신’에는 상당한 비용과 대가가 따른다는 것은 역사의 교훈이다. 현대 역사가들과 정치학자들은 1812년 나폴레옹의 운명적인 모스크바 진군, 1939년 히틀러의 폴란드 침공에서 시작된 야심과 팽창, 1988년 대처의 인두세 유지 고수, 1958년 마오쩌둥의 대약진운동 고수를 설명하는 데 ‘오만’과 함께 ‘과잉확신’을 꼽는다. 이로 인해 충고와 전조를 무시하고 자신이 선택한 길을 고수하며 몰락을 재촉했다는 것이다.

1980년 10월 보수당 전당대회에서 마거릿 대처는 노선 변경을 요구하는 당원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다. “숨죽이며 노선 변경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말은 하나밖에 없다. 원한다면 당신들이 선회하라. 나는 선회할 생각이 없다”(To those waiting with bated breath for the ‘U-turn’, I have only one thing to say: ‘You turn, if you want to. The lady’s not for turning.’)고 말이다. 영국 역사상 기록적인 200만명이 넘는 실업에 직면해서도 빳빳이 목을 쳐든 대처의 이 말은 ‘과잉확신’의 고전으로 남아 있다.

믿음의 옳고 그름을 떠나 지지받는 당사자 개인의 과잉확신, 그에 대한 지지세력의 과잉확신, 이런 과잉확신이 어떤 결과를 빚을지는 시간이 결정할 것이다. ‘작용’과 ‘행위’가 없다는데 부당한 결과가 빚어진 것에 대해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한다면, 이는 과잉확신을 보여주는 증거일 것이다. 그런 면에서 과잉확신과 토머스 페인이 경고한 ‘우중’은 그 거리가 그리 멀지 않다. 과잉확신하는 지지세력은 바뀌어야 할 것은 우리가 아니라 당신이라고 말할지 모른다. “원한다면 당신들이 선회하라. 우리는 선회할 생각이 없다”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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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2019-09-05 14:34:17
여러생각이 들게되는 기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