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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다면 뭐가 올까? 스태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온다면 뭐가 올까? 스태그플레이션? 디플레이션?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9.11 17:10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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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1970년대처럼 전 세계적인 ‘스태그플레이션’(불황 속의 고물가)이 다시 올 것인가? 물음이 잘못된 듯하다. 아르헨티나 등 일부 국가를 빼곤 발전국과 발전도상국 경제 전반에 낮은 물가가 퍼져있다. 지난 8월 국내 소비자물가는 사상 처음으로 0%를 기록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태그플레이션이라니 터무니없는 소리처럼 들린다. ‘디플레이션(지속적인 물가 전반의 하락)이냐, 스태그플레이션이냐?’ 온다면 디플레이션이 당연할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미국과 중국의 갈등이 무역을 넘어 기술전쟁과 환율전쟁으로 비화하면서 스태그플레이션을 경고하는 목소리들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 대표적인 학자는 어둡고 비관적 경제 전망을 내놓아 ‘닥터 둠(Dr. Doom)’이란 별명이 붙은 누리엘 루비니 뉴욕대 교수다. 그의 일관된 논지는 세 가지 공급 충격이 2020년께 글로벌 불황을 촉발할 것이라는 주장이다. 2008년 대금융위기가 총수요 하락이라는 수요 측면의 충격의 성격을 지닌다면, 이번에는 공급 충격이라는 것이다.

1970년대 석유파동이 스태그플레이션이 낳은 미국 도로의 한 장면. 사진: 필라델피아 연준
1970년대 석유파동이 스태그플레이션이 낳은 미국 도로의 한 장면. 사진: 필라델피아 연준

탈글로벌화 과정에서 공급 충격을 통한 물가 상승 가능성

잠재적인 첫 번째 공급 충격은 미중 무역전쟁과 환율전쟁에서 비롯한다. 두 번째 충격은 기술을 둘러싸고 두 나라 사이에서 천천히 무르익는 냉전과 관련된다. 인공지능, 로봇공학, 5G 등 미래산업의 지배를 둘러싸고 미국과 중국 사이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이다. 세 번째는 석유가격 급등이다. 무역, 환율, 기술 전쟁이 촉발한 경기둔화로 에너지 수요가 하락하면서 석유가격이 떨어지고 있지만, 미국의 이란에 대한 대결이 군사적 충돌로 비화하면 글로벌 석유가격이 치솟고 침체를 초래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 가지 공급 충격은 글로벌 가치사슬의 균열로 수입 소비재, 투입 중간재, 기술부품, 에너지의 가격이 오르고 생산은 줄어든다. 미중 두 나라의 다방면에 걸친 갈등은 이미 폭넓은 탈글로벌화 과정에 군불을 지피고 있는 상황이다. 루비니는 “각 나라와 기업들이 통합된 가치사슬의 장기적인 안정성에 더 이상 의존할 수 없다. 상품, 서비스, 자본, 노동, 정보, 데이터, 기술의 거래는 점점 더 파편화하면서 글로벌 생산비용은 모든 산업에 걸쳐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본다.

기술혁신 등 낮은 물가 효과 사라지며 산업집중 등 상쇄효과 등장

루비니 교수처럼 공급 측면의 충격을 통해 향후 물가가 오를 것으로 보는 시각은, 오늘날의 낮은 물가가 지속되는 주요한 원인이 불충분한 총수요로 인한 성장 둔화보다는 공급 측면에서 이뤄진 기술혁신에 있다는 분석과 연결된다. 이른바 ‘아마존/구글/우버’ 효과로 불리는 이 기술혁신이 물가를 낮추는 쪽으로 작용하는 방식은 이렇다. 아마존 모델은 중간과정 우회를 통해 가격을 낮추고, 구글은 검색비용을 낮춰서 기업들의 가격설정 능력을 약화시키고, 우버는 놀고 있던 자산을 시장에 불러들여 기존 기업들의 가격설정 능력을 침해한다. 이런 효과는 글로벌화의 가속화에 따른 가치사슬 심화와 함께 물가 하락 과정에 날개를 달아줬고, 발전국 경제에서는 노동의 교섭력을 약화시켰다.

문제는 신기술 확산에 따른 물가 하락을 이끌었던 효과가 서서히 임계치에 이르면서 상쇄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징후가 도처에서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그 하나가 산업의 경제력 집중이다. 특히 구글, 페이스북, 아마존 등과 같은 글로벌 정보통신 공룡기업들이 상징하듯이, 이들 업종을 중심으로 소수 기업으로 시장력이 집중되면서 이들 기업의 가격설정 능력이 높아지고 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541). 실제로 생산비용 대비 판매가격 비율인 ‘마크업’(markup)이 높은 상위 10% 기업의 마크업 증가율은 2000년 이후 2015년까지 평균 30% 이상이었다. 마크업 증가율이 높다는 것은 생산비를 회수하고 남는 이윤폭을 늘리기 위해 그만큼 판매가격을 높였다는 뜻이다.

한국-고령화․가계부채, 일본 고령화․엔화 평가절상 등이 물가 하락 부추겨

현재의 물가 하락세에는 나라들마다 고유한 특성도 작용한다. 우리금융경영연구소가 지난 9월7일 발표한 ‘디플레이션 발생 가능성과 시사점’ 보고서를 보면, 국내의 근본적인 저물가 원인으로 고령화와 가계부채 증가, 소비채널의 변화 등을 꼽았다. 소비채널 변화가 앞서 말한 기술혁신과 글로벌 가치사슬에 포함된다고 보면, 남는 건 고령화와 가계부채 증가다. 고령 인구가 늘면서 소비성향이 낮아지면서 수요가 둔화해 물가 하락 압력을 낳는다는 얘기다.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예비적 저축을 늘리는 행태가 늘어난다는 얘기다. 보고서는 고령화로 인한 생산성 둔화, 이로 인한 성장 둔화를 꼽지만 고령화가 자동화와 결합할 경우 반드시 생산성 둔화로 이어진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수요 감소가 물가하락 압력의 핵심 요소로 보인다.

올해 1분기 158.1%에 이른 처분가능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은 덴마크, 네덜란드, 스위스와 스칸디나비아 3국을 제외하면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아무리 금리가 낮다고 해도 이런 식의 가계부채 증가세는 원리금 상환부담에 따라 소비여력이 줄면서 수요 둔화로 이어지고 물가 하락 압력을 낳는다. 문제는 물가가 하락하면 낮은 명목금리에도 실질금리는 높아지는 효과를 낳고, 실질적인 부채 상환 부담은 커지게 된다.

일본은 지난 20년 동안 11년이나 디플레이션과 물가 수준 하락을 경험해 왔다. 낮은 물가와 물가가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소비자들의 공고화한 기대는 고령화에 더해 엔화 평가절상 효과가 겹쳐 발생하는 성격이 강하다. 2001년 이후 일본 엔화는 미국 달러화에 대해 약 12% 평가절상 됐다. 1971년 자유변동환율제가 시작된 이후 거의 70% 평가절상 됐다. 아베노믹스를 통해 엔화 약세를 추진해 왔음에도 호흡을 길게 놓고 보면, 엔화는 달러화에 평가절상해 온 셈이다. 이런 장기 환율추세는 일본 국민의 저축‐소비 패턴과 자산의 할당에서 기존의 선호를 더 강화시킨다. 고령화 효과 속에서 일본 국민의 저축의 구매력을 유지시키면서 소비보다는 엔화표시 자산 매입에 대한 강력한 편향을 한층 더 부추긴다는 것이다. 이는 물가가 좀처럼 오르지 않는 근본 원인으로 작용한다.

미중 무역․환율․기술 전쟁이 낳고 있는 공급 측면 충격에 대비해야

자본주의가 자본주의인 한 경기순환에서 벗어날 수 없다. 다만 고점과 저점의 폭을 줄이면서 유지․관리하는 게 필수적이다. 문제는 루비니 교수의 지적처럼 수요 충격이 아니라 공급 충격, 그것도 미중 무역․환율․기술 전쟁과 같은 상당히 오랫동안 지속되는 공급 충격에서 비롯하는 불황의 경우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의 효과가 크게 반감된다는 데 있다.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 파동이 낳은 공급 충격에 대한 전통적인 통화․재정정책 대응은 결국 불황과 높은 물가, 물가가 계속 높아질 것이란 기대, 재정적자 누적, 공공부채 누적으로 귀결됐다. 이런 일이 향후 다가올 불황에서도 다시 벌어질 수 있다는 얘기다.

이런 식의 공급 충격은 어느 한 나라만의 노력만으로 해결하기 어렵다. 거의 모든 방면에서 펼쳐지는 미중 두 나라 간의 다툼, 이란과 군사적 충돌 등 예기치 않은 사건에 따른 에너지 가격 급등 등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 그리고 언제든 터질지도 모르게 도사리고 있는 현실이다. 트럼프가 볼튼을 경질했다는 소식이 갖는 또 다른 깊은 함의는 공급 충격을 부를 수 있는 한 요인을 약화시켰다는 데 있을 수 있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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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khk 2019-09-13 12:14:16
좋은 정리 감사합니다. 다른 경제지 인터뷰 보도보다도 훨씬 알찹니다. 공유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