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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포스트 사드갈등, 한중 관계의 출구전략
[천지만리] 포스트 사드갈등, 한중 관계의 출구전략
  •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前 주선양 총영사
  • 승인 2019.09.16 11: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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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중거리미사일 주한미군 배치문제 ‘제2의 사드갈등’을 초래할 수 있어
‘국가이익’ 대원칙과 ‘전략적 유연성’ 관점에서 대응방향 설정 필요

[이코노미21]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사드(THAAD,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갈등은 한중 양국관계에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겼다. 1992년 한중수교 이래 세계 외교사에 유례가 없는 비약적인 발전을 이뤘다고 자평(自評)했던 한중관계는 2016년 7월 8일 주한미군 사드 배치 결정을 발표하면서 시작된 갈등으로 인해 급전직하의 냉각기를 겪었다. 수교 25년간 쌓아올린 ‘공든 탑’은 무너져 내렸다. 2017년 10월말 외교장관 회담으로 16개월 간의 제재 갈등이 임시 봉합되기는 했지만 언제라도 재발할 수 있는 상황이다.

포스트 사드갈등 시기의 한중관계는 그래서 불확실성이 크다. 출구전략은 더 더욱 까다롭고 제약이 많다. 잠복된 사드갈등의 원천적 해결 이외에도 새로운 중대 안보 이슈가 돌출될 수 있다. ‘화웨이’(華爲) 배제문제 대응, INF 파기에 따른 새로운 군비경쟁과 미국의 신형중거리미사일 지상 배치문제 등 어느 하나 민감하지 않은 것이 없다. 향후 새롭게 제기될 갈등요소에 대한 심중하고 사려 깊은 대처가 요구되는 시점이다.

한중관계의 3가지 새로운 안보 갈등 이슈

우선,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된 사드체계는 지난 2월 정식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 절차에 착수함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사드갈등 제2라운드’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한국으로서는 중국과 솔직한 ‘전략적 소통’이 필요한 부분이다. 북한의 비핵화 뿐만 아니라 탄도미사일 위협도 해소돼야 한다는 점에서 사드배치 철수는 쉽지 않은 문제다. 한중이 먼저 북핵문제 해결에 힘을 합친 이후에 중국의 사드 우려를 자연스럽게 해소해 나가는 방향으로 설득이 필요하다. 그리고 미국과는 북한 비핵화와 사드 철수의 연계 방안에 대한 합의 등 사전 치밀한 준비가 선행돼야 한다.

둘째는 미국의 ‘화웨이’ 배제 요구에 동참할 경우 중국으로부터 경제적, 외교적 압력을 받게 될 가능성이다. 중국 국무원은 지난 6월초 삼성, SK를 포함한 외국계 ICT기업을 불러 5G 관련 협조를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화웨이’ 배제는 사드 배치와는 성격이 다르다. 왜냐하면 한중 또는 한미 양자간 문제가 아니라 전세계 모든 국가가 관련된 다자간 이슈이기 때문이다. 중국이 특정 국가를 겨냥한 차별적 보복조치를 취하기는 쉽지 않다. 또한 영국, 독일 등 서방 동맹국도 화웨이 장비 사용을 제한적이지만 허용하는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거래 중단을 선언했던 호주도 다시 조건부 유예 방향으로 바뀌었다. 미국으로서도 동맹국에 화웨이 관련 개별적 불이익을 주기 어려울 것이다. 2015년 3월 영국이 중국 주도의 AIIB(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에 가입하자, 독일, 프랑스가 잇따라 동참한 적이 있다. 화웨이 배제에 동참 여부는 국제통상질서 차원의 문제이다. 5G 장비의 보안문제는 철저히 검증하되, 선택은 민간부문의 자율에 맡겨도 되는 부분이다.

셋째는 INF(중거리핵전력) 조약 파기에 따른 군비경쟁과 신형중거리미사일의 주한미군 배치문제이다. 아직 구체화된 것은 아니지만, ‘제2의 사드갈등’을 초래할 수 있는 가장 민감한 이슈다.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8월 2일 INF를 공식 탈퇴하자마자 중국을 아우르는 새로운 합의의 필요성을 거론했다. 2주일 후에는 캘리포니아에서 신형중거리미사일 시험을 했고, 미 국방부장관은 지상형 중거리미사일을 배치하기에 적절한 지역으로 일본과 한국을 꼽았다. 중국은 미사일을 배치하면 ‘총알받이’가 될 것이라며 격한 반응이다. 물론 미국의 '미사일 아시아 배치' 언급은 중국을 새로운 군축 협상 테이블로 끌어들이기 위한 압박이지만 막다른 선택의 시간은 다가오고 있다.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된 사드체계는 지난 2월 정식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 절차에 착수함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사드갈등 제2라운드’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드(THAAD) 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위키백과
성주 기지에 임시 배치된 사드체계는 지난 2월 정식 배치를 위한 ‘일반환경영향평가’ 절차에 착수함에 따라 내년 상반기에는 ‘사드갈등 제2라운드’가 표면화될 가능성이 있다. 사드(THAAD) 미사일 발사 장면. 사진=위키백과

한중관계 안보리스크 돌파를 위한 출구전략

그렇다면 이처럼 민감한 안보 이슈 속에서 한중 간 전략적 협력동반관계를 수호하면서 안보 리스크를 돌파하기 위한 출구전략은 과연 무엇이 있을까?

첫째, 한중이 과연 ‘전략적 협력’을 공유하며 ‘동반자’ 관계를 유지할 수 있는지에 대한 쓰라린 성찰이 무엇보다 우선 되어야 한다.

한중관계는 사드갈등을 분수령으로 그 프레임이 질적으로 변화되었다. 안보적 이해가 얽혀있는 이슈는 양자관계 노력만으로는 해결이 어렵다는 점도 확인되었다. 기존의 동북공정이나 서해 어업갈등과 같은 양자 갈등 이슈와는 차원이 다르다. 또한 안보 이슈는 미중관계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안보는 미국, 경제는 중국’(安美經中)이라는 전략이 먹혔던 이유는 미중관계가 ‘협력과 견제’의 보완적인 질서를 형성했기 때문이다. 이제 미중 간 신뢰가 깨지면서 편의적인 공간이 사라지고, 양자택일의 선택을 강요받는 상황이 되었다.

한국으로서는 미국을 선택하려면 ‘연루’(entrapment)의 리스크를, 중국을 선택하려면 ‘방기’(abandonment)의 위험을 감수해야 한다. 문제는 어떻게 양자택일의 딜레마에서 벗어나느냐 하는 것이다. 결국 미중 경쟁관계와 양립할 수 있는 ‘한국식’ 외교안보 개념을 제시하고, 새로운 동북아 안보구도를 찾아야 한다. 양보할 수 없는 ‘국가이익’의 대원칙과 ‘전략적 유연성’이라는 관점에서 대응방향을 설정할 필요가 있다. 그런 점에서 최대한 동맹국과 보조를 맞추되, 반대 진영과도 전략적 소통 및 내막적인 조정을 통해 섣부른 택일을 피하고, 궁극적인 생존공간을 넓혀나가는 전략적 고민이 필요하다.

중국, ‘경성외교’의 실효성에 대한 성찰과 교훈 새겨야

둘째, 중국도 사드 보복과 같은 ‘경성 외교’의 실효성에 대한 성찰과 교훈을 새길 필요가 있다.

중국의 사드 보복조치로 인해 한국은 156억 달러의 경제적 피해를 입었지만, 중국도 유형, 무형의 손실이 컸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중립지대’가 될 수 있던 한국을 미일 동맹 진영으로 떠밀어서 동북아의 전략적 균형을 잡아 줄 ‘레버리지’의 손실을 자초했다. 또한 동아시아 리더이자 G2 강국으로 부상하려던 국가 이미지를 깎아 먹는 치명적인 손실을 입었으며, 결국 미중 무역전쟁과 ‘화웨이’ 제재 국면에서 ‘국제고립’이라는 부메랑을 돌려 받았다. 결과적으로 사드 보복은 한국에 경제적으로 치명적인 타격을 입히지 못했고, 오히려 국제사회의 이미지 손상으로 주변국에게 중국에 대한 경계심을 갖게 만드는 ‘학습효과’를 불러왔을 뿐이다.

특히 사드 보복이 한국 국민정서에 입힌 무형의 상처는 돌이키기 어려울 만큼 아픈 부분이다. 설문조사에 따르면, 2015년 61%에 달하던 한국인의 중국에 대한 호감도가 2017년 24.1%로 떨어지고, 2018년에는 15%까지 곤두박질 쳤다.

중국으로서는 또한 과도한 애국 정서가 표출되는 신(新)민족주의 성향에 대한 절제가 필요하다. 이는 동북아 지역협력에도 장애가 된다. 정치적 갈등을 경제로 해결하는 것은 득보다 실이 크다. 중화민족주의는 배외(排外)적 애국주의가 아닌 글로벌 리더국가로서의 포용적 가치를 지향해야 한다. ‘평화와 공동번영’이라는 자유주의 가치에 근거한 협력질서 부활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확고한 외교원칙 바탕 위에서 사안별, 이슈별 신중한 가치판단

셋째, 한국에게 전략적 유연성이 중요한 만큼, 중국도 한국의 전략적 가치를 올바로 평가해야 한다.

미중경쟁 격화에 따른 한국의 외교적 딜레마는 분명 중대한 리스크 요인이지만 동시에 기회를 제공하는 측면도 있다. 미중의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경쟁이 비핵화 해결과 북미관계 정상화로 이어질 경우, 한중관계는 외교적 자율성이 증대하고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공간이 넓어질 수 있다.

중국으로서도 한반도 전략적 가치의 유의미한 변화를 주목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북미 실무협상이 9월말 재개될 움직임이다.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북한에 안전보장 제공 의사를 밝혔고, 비건 대표는 미시간대 연설에서 ‘모든 문제에 진전이 있을 때’라는 조건을 달기는 했지만 주한미군 주둔 문제가 ‘전략적 재검토’에 포함될 수 있을 것임을 언급했다.

전략적 유연성은 전략적 모호성과 다르다. 박근혜 정부는 지난 사드 배치계획 발표 직전까지 ‘3No’(未요청, 未협의, 未결정)라는 ‘모호성’으로 대응하다가 미중 양쪽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던 실패 경험이 있다. 전략적 유연성은 확고한 외교원칙의 바탕 위에서 사안별, 이슈별 가치판단에 따라 신중하게 전략적 결정을 할 수 있는 자세다. 과거에는 안보우선주의가 지배했지만 이제는 안보와 경제가 동전의 양면처럼 불가분의 관계다. 이는 오늘날 국제관계의 상식이다. 한중관계에도 다양성과 상호 보완성을 중시하는 개방적 입장에서 소통하는 정합(整合)의 과정이 중요하다.

자유무역질서 회복과 동북아 평화협력 환경의 공동 모색

넷째는 미래 공동 발전을 보장하기 위한 자유무역질서의 회복과 동북아 평화협력 환경의 공동 모색 필요성이다.

최근 동북아 협력에는 부정적 분위기가 팽배해 있다. 트럼프 정부의 WTO 무력화와 아베 정부의 동북아 글로벌공급망(GSC) 파괴의 그늘이 짙게 깔렸다. 일본의 대한국 수출규제는 ‘통상무역의 정치화’라는 나쁜 폐단을 드러냈다. 한중일 분업구조 가치사슬의 재편이 불가피하다. 자유무역질서를 수호하려는 국가를 중심으로 새로운 공동체 구성을 고려할 수 있을 것이다.

한중은 모두 자유무역의 수혜자다. 따라서 자유무역질서의 수호는 한중 공동이익에 부합된다. 미중무역전쟁과 한일 경제갈등의 장기화에 대비하여 한중 국제분업체제 유지 및 상호 보완관계의 협력이 지속되어야 한다. 호혜와 공영의 지역협력체 구축에 적극 동참함으로써, 다층적 지역주의 패러다임의 보강이 필요해 보인다.

한중 양국은 중국의 인류운명공동체와 한국의 동북아플러스 책임공동체의 공통분모를 활용, 일대일로와 신북방정책의 연계방안을 공동 모색할 필요가 있다. 누락된 일대일로의 동방 실크로드로서 중국-한반도 경제회랑 구축이 가능하다. 물론 동남아에서 해상실크로드와 신남방정책의 공동프로젝트 진출도 바람직하다. 남북중 간의협력 활성화도 좋은 방안이다. 이를 위해 북중 접경의 한중산업단지 등 북방경제협력거점 확보가 필요하다. 남북중 3각 비교우위 분업체계를 구축할 경우, 경제협력과 평화증진의 선순환구조 창출이 가능하고, 기존의 신의주-단둥 및 나선-훈춘지역초국경협력의 리모델링으로 확산될 수 있다.

자유주의 협력의 동력을 되살리고 미래 공동이익을 증진하는 것이 출구다

이상에서 살펴본 것처럼 현재 동북아에서는 자유주의 협력론이 힘을 얻지 못하고 있다. 물론 원인을 제공한 측은 자유주의 자신이다. 세계화의 역풍, 글로벌화에 대한 반란은 탈냉전 10년간 브레이크 없는 자유무역질서의 무한 질주 속에서 잉태됐다. 미 경제학자 조셉 스티글리츠(Joseph E. Stiglitz)가 말하는 신(新)자유주의의 ‘이익의 사유화, 손실의 사회화’ 폐단이 빈부격차와 불평등을 키운 것이다. 문제는 그렇다고 해서 현실주의 세력정치의 흐름에 역사를 내맡기고 방관할 수는 없는 일이다. ‘지정학의 귀환’과 ‘공격적 현실주의의 습격’을 얘기하지만, 이는 결과론일 뿐 해법은 될 수 없다. 이제라도 궤도를 바로잡아야 한다. 다각적인 측면에서 협력의 동력을 되살리고 양자적, 다층적인 연계장치를 확대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출구는 ‘상대적 이익’을 다투는 현실주의적 충돌에 있는 것이 아니라, 미래 공동이익의 확대재생산을 위한 자유주의에 있다. 그런 점에서 한중관계의 출구전략도 마찬가지다. 정상으로 복귀하는 것이 정도(正道)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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