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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기력한 통화정책 그리고 재정정책의 시간
무기력한 통화정책 그리고 재정정책의 시간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09.20 13:3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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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듯 다른 연준(FED)과 유럽중앙은행(ECB)의 통화정책
FED, 보험성 금리 인하 통해 가계지출 둔화 방지
ECB, 마이너스 금리 추진하며 금융기관 수익성 악화 보완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미국, 유럽, 일본의 통화정책이 잇따라 발표됐다. ‘완화’ 방향은 공통되지만, 각자 놓여 있는 상황의 차이가 묻어난다. 일본은행(BOJ)과 함께 ‘제로금리 하한선(ZLB; zero lower bound)의 바닥을 뚫는 실험을 하고 있는 유럽중앙은행(ECB)은 그 부작용 완화와 확장적 재정정책 촉구에 방점이 찍혀 있다. 이미 극도의 통화 완화 기조를 유지해온 일본은행은 극히 좁은 운신의 폭을 드러냈다. 반면 성장세가 상대적으로 가장 견조한 미국 경제를 배경으로 연방준비제도이사회(FED)는 트럼프 대통령의 과감한 금리 인하 압박과 거리를 두며 ‘보험성’ 인하에 치중하며 민간소비 둔화 방지에 주력하는 모습이다.

연준, 트럼프 등쌀과 거리두며 ‘보험성’ 인하 통해 가계소비 둔화 방지 주력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뒤 9월18일 기자회견하는 연준 의장 제롬 파월. 사진: 폭스
기준금리를 0.25%포인트 내린 뒤 9월18일 기자회견하는
연준 의장 제롬 파월. 사진: 폭스

미국 연준은 지난 9월18일 기준금리를 1.75~2.0%로 0.25%p 내렸다. 지난 7월 0.25%포인트를 내리고 나서 두 달 만에 또 인하한 것이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인하 배경으로 지난 7월 떼와 마찬가지로 “낮은 인플레이션 압력과 글로벌 경제 전망 악화 등 불확실성”을 꼽으며 “보험성 인하”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가계지출이 증가했지만 기업 투자와 수출이 약화됐다”는 설명을 통해 자동차 할부구매와 주택매입 등에 대한 이자 부담 경감을 통한 가계소비 둔화 방지, 기업 투자 촉진, 수출에 유리한 환경 조성 등의 효과를 기대한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금리 인하가 약한 달러나 투자수요로 이어질 가능성이 매우 낮다는 점에서 강조점은 미국 경제의 견조한 성장세의 버팀목인 민간소비 둔화 방지에 찍혀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연준은 통화정책 방향을 연속 금리 인하로 가져갈지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며, 제로금리에 가까운 과감한 인하를 요구하는 트럼프 대통령의 압박에 대해서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과감한 연속 금리 인하는 향후 다가올 수 있는 불황에 대비해 실탄으로 남겨두겠다는 태도를 분명히 한 것이다. 대통령 재선에 ‘올인’하고 있는 트럼프 대통령이 트위터를 통해 “배짱도 비전도 없는 파월”이라는 비난을 퍼부었음은 물론이다.

지난 9월12일 이뤄진 유럽중앙은행의 통화정책 내용을 보면, 유로존이 놓여 있는 상황은 미국보다 훨씬 더 절박하지만 통화정책 운신의 폭이 연준보다 상대적으로 좁다는 점을 읽을 수 있다. 유럽중앙은행은 기준금리에 해당하는 재융자금리(refi)를 0%로 유지하고, 한계대출금리도 0.25%로 그대로 유지했다. “현행 수준이나 더 낮은 수준으로 최소한 내년 상반기까지 유지한다”는 문구를 삭제하고 “물가 전망이 목표 수준이 2%에 꾸준히 수렴하는 것을 확인할 때까지”라는 문구를 포함시켜 추가 완화의 의지를 밝히기는 했지만, 동결을 선택한 것이다.

유럽중앙은행, 금융기관 수익성 배려와 적극적 재정정책 촉구

대신에 눈에 띄는 점은 크게 두 가지다. 하나는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재가동하기로 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11월부터 매월 200억유로 규모의 국채, 회사채 등 자산을 금리 인상 전까지 사들이겠다고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 말 종료한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10개월 만에 부활시킨 것이다. 자산 매입의 전체 규모와 기간을 정하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실상 무제한 ‘양적완화’(QE)에 해당한다. 매입한 자산의 만기가 돌아오면 모두 재투자(차환)할 것이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유럽중앙은행은 유로존이 경기침체를 겪자 2015년 3월 자산매입프로그램을 시작해 지난해 말까지 2조6천억유로 어치의 자산을 사들여 시중에 유동성을 풀었다.

마리오 드라기(가운데) 총재를 포함한 유럽중앙은행 이사진이 9월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ECB
마리오 드라기(가운데) 총재를 포함한 유럽중앙은행 이사진이
9월12일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ECB

다른 하나는 유럽중앙은행에 제로금리 하한선(ZLB) 돌파 시도를 계속 추진하면서 금융기관 수익성 악화를 완화하는 보완장치를 도입한 점이다. 은행은 필요한 수요에 대비하기 위해 적립하는 필요 지급준비금 이외의 초과 지급준비금을 유럽중앙은행에 예치하는데, 유럽중앙은행은 이번에 여기에 적용되는 예금금리를 -0.4%에서 -0.5%로 더 내렸다. 1유로를 예치하면 유럽중앙은행에 내는 돈이 0.4유로에서 0.5유로로 늘어났다는 얘기다. 예치금에 대해 이자를 받기는커녕 거꾸로 이자를 물도록 한 이 정책은 유럽중앙은행이 제로금리 하한선을 뚫는 정책으로 2014년 -0.1% 금리로 도입했다. 초과 지급준비금을 쌓아두지 말고 적극적으로 기업이나 개인에게 대출해서 과잉 유동성을 줄이라는 채찍의 성격을 갖는다.

문제는 이게 계획대로 실현되면 좋지만 그렇지 않을 경우 큰 부작용만 남길 수 있다는 점이다. 금융기관 수익성 악화다. 이를 감안해 유럽중앙은행은 마이너스 예금금리를 물리는 대상을 전체 초과 지급준비금이 아니라 필요 지급준비금의 6배를 넘는 부분으로 좁혔다. 채찍의 크기는 키우는 대신에 휘두르는 횟수는 줄인 셈이다.

하지만 유럽중앙은행이 결정한 통화정책의 압권은 다른 데 있다. 발표한 성명의 끝 부분에서 각국 정부를 향해 성장 친화적인 방향으로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촉구한 것이다. 특히 10월 말 임기가 끝나는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 총재는 ‘평소 그가 강조해온 재정정책의 역할을 각국 정부가 지금 강화해야 할 때라고 보는가’라는 물음, ‘중앙은행이 사람들에게 직접 돈을 공급하는 헬리콥터 머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해 “첫 번째 물음은 대한 나의 답은 ‘그렇다’는 것이다 … (두 번째 물음은) 통화정책의 작동방식에 대한 커다란, 아주 커다란 변화다 … 그것은 향후 전략적 검토의 일부가 될 수 있지만, 현재 이사회에선 논의하지 않았다 … 그것이 어떤 형태이든 사람들에게 돈을 주는 것은 재정정책의 과제라는 점을 늘 기억하도록 하자. 그것은 통화정책의 과제가 아니다”고 설명했다.

이탈리아 출신의 드라기 총재가 독일이나 네덜란드와 같은 재정여력이 있는 국가들에게 적극적인 재정정책의 병행 필요성을 강력히 내보낸 것이다. 자산매입 프로그램을 통한 양적완화와 마이너스 예금금리 등 비통상적인 통화정책에 이어 ‘헬리콥터 머니’를 동원하라는 보고서까지 나오는 상황에서 재정정책이 손을 놓고 있었다는 강한 비판이 담긴 것이다.

이미 동원 가능한 거의 모든 수단 동원한 일본은행

일본은행은 각국 정부에 적극적인 재정정책 병행을 주문하는 유럽중앙은행의 모습이나, 향후 다가오는 불황에 대비해 금리 인하의 여지를 남겨두는 미국 연준의 모습이 부러운 실정이다. 일본은행은 9월19일 단기 정책금리를 -0.1%, 장기금리인 10년물 국채 금리를 제로로 유도하는 현행 대규모 금융완화 정책을 유지․동결했다. 국채 매입 보유잔고 증가액을 “연간 약 80조엔(약 888조원)을 목표로 하면서 탄력적인 매수를 실시한다”, 상장지수펀드(ETF)의 보유잔고를 연간 약 6조엔, 부동산투자신탁(REIT) 보유잔고를 연간 약 900억엔 늘린다는 기존 방침을 재확인한 것이다.

물가의 추가 하락 등이 예상될 경우 추가적인 금융완화 조치를 강구한다고 말했지만, 이미 동원할 수 있는 수단은 거의 동원한 상태라 마땅하지도 않다. 재정정책을 정부에 주문하기도 어렵다. 이미 일본은행이 신규 발행 국채의 70%를 직접 사들이고, 310조원이 넘는 상장지수펀드(ETF)를 매입해 증시를 부양하는 상황이다. 10월 소비세 인상을 그대로 추진하는 것은 일본 정부가 대외적으로 ‘부채 함정’에 걸려 있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908).

한국은행의 선택은? 지금은 확장적 재정정책의 시간임을 인정해야

다음달 금융통화위원회를 여는 한국은행의 상황 판단은 이들 중앙은행 중 어디와 가장 닮았을까? 연준과 유럽중앙은행의 판단을 버무려 놓은 쪽에 가깝지 않을까 싶다. 연준의 움직임은 한국은행에 가장 많은 영향을 준다. 이주열 한국은행 통재는 연준이 금리를 내린 뒤 언론에 “미국 연준이 금리를 낮춘 것은 다른 나라들의 통화정책 운용에서 부담을 덜어준 측면이 있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한국은행으로서도 금리 인하를 위한 운신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연준을 좇아 ‘보험성 인하’에 나선다고 해서 도움이 될지는 불확실하다. 향후 금리 인하는 국내 기준금리가 역대 최저치로 떨어진다는 것을 뜻한다. 2% 안팎의 성장을 하는 상황에서 역대 최저 기준금리라는 상황이 자연스럽다고 보기는 어렵다. 게다가 금리를 낮춘다고 기업들의 투자수요가 늘어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막대한 가계부채 상황을 보면 이자 부담 감소분이 소비로 이어지기보다는 저축의 형태로 다시 금융기관으로 환류하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좇아 토지나 귀금속 광물, 에너지 등과 같은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산(non‐reproduced asset)으로 흘러들어가 쉽다. 이자 부담이 적어졌다며 가계부채를 더 늘리는 효과로도 작용한다.

정부는 ‘정책 조합’을 강조하며 한국은행을 압박하고 있다. 현재의 기획재정부나 예전의 재정경제부나 정책조합을 강조하지 않은 적이 없고, 언제나 방향은 금리를 내리라는 식으로 통화정책을 압박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번 ‘정책조합’의 핵심에는 유럽중앙은행의 판단처럼 확장적 재정정책이 있다. 이걸 제대로 하느냐 못 하느냐가 핵심이다. 한국은행은 통화정책의 무기력을 인정하고, 정부는 이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7년째 2%를 밑도는 상황에서 물가안정목표제는 사실상 작동하지 않고 있다. 물가는 2% 위로 올라간 적이 없다. 물가 목표치를 위아래 넘나들지 않고 늘 밑도는 제도는 뭔가 상당한 결함이 있다는 얘기다. 통화정책의 무기력 인정도 바로 여기서 출발해야 할 것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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