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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은행 통화정책 무기력과 ‘노벨경제학상(스웨덴 중앙은행상)’의 향방?
중앙은행 통화정책 무기력과 ‘노벨경제학상(스웨덴 중앙은행상)’의 향방?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0.14 17:57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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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산한 물가안정목표제 배후의 ‘새 케인스주의’ 수상 가능하나
금융안정 해치는 ‘보험성 인하’보다 ‘헬리콥터 머니’가 더 나아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경제학 분야에서 알프레드 노벨을 기념해 주는 ‘스웨덴 중앙은행 상’(The Sveriges Riksbank Prize)인 노벨경제학상 수상자가 오늘 10월14일 오후 6시(한국 시각)를 조금 넘어 발표된다. 노벨의 유언에는 물리학, 화학, 생리학․의학, 문학, 평화 5개 분야만 언급돼 있었는데, 경제학 분야는 스웨덴 중앙은행 설립 300주년을 기념하여 1968년 제정됐고, 이듬해부터 첫 수상자가 나왔다.

‘스웨덴 중앙은행상’이라는 이 상의 애초 취지에 비춰볼 때, 50주년을 맞은 올해 경제학상 수상자 발표에 각별한 관심이 쏠린다. 글로벌 차원에서 실질금리가 마이너스로 떨어지고 양적완화(QE)를 비롯한 비통상적인 수단이 전면에 등장한 지 이미 오래인 상황에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의 무기력에 대한 우려, 물가안정목표제를 비롯해 그동안 통화정책을 이끌어온 근저의 경제이론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갈수록 커지고 있어서다. 그 이론은 1990년대 급속히 확산된 이른바 ‘새 케인스주의’(the New Keynesianism)로 알려진 것이다.

2017년 노벨상 시상식 장면. 사진: 노벨위원회
2017년 노벨상 시상식 장면. 사진: 노벨위원회

대금융위기 이후 회복 둔화, ‘명목금리 경직성’에서 찾는 새 케인스주의

이 경제이론은 총화량 통제가 경제안정의 핵심이라는 밀턴 프리드먼의 영향을 받았다. 여기서 시작해 중앙은행이 효과적으로 실제 할 수 있는 것은, 지급․결제․청산 시스템 안에서 은행 간 시장의 목표금리(콜금리) 설정을 통해 금리를 통제하는 것이라는 이해로 발전했다. 이 이론의 인도를 받아 중앙은행들은 완전고용이라는 전통적인 임무 대신에 통상적으로 2% 인플레이션 목표치를 선호하는 식으로 자신의 임무를 새로 설정했다.

이 이론은 특출한 한 개인이 아니라 영향력 있는 여러 개인들의 공동 창작의 성격이 강하다. 대표적으로는 국제통화기금 수석부총재, 미국 연준 부의장 출신의 스탠리 피셔, 하버드대 경제학 교수 그레고리 맨큐, 국제통화기금 수삭경제학자 출신의 올리비에 블랑샤르, 미국 연준 의장 출신의 재닛 옐런, 컬럼비아대 경제학 교수 데이비드 로머 등이 꼽힌다.

이들이 확립한 새 케인스주의의 핵심에는 중앙은행의 행위 바깥에서 결정되는 ‘실질 자연이자율’ 또는 ‘실질 중립이자율’이 있다. 관찰할 수 없는 실질 자연이자율 수준에서 자원의 최적 활용과 완전고용이 달성되는데, 이 수준은 경제 전반의 “생산성과 절약”의 힘들에 결정된다. 실질 중립이자율의 배후에는 이른바 ‘이자율의 대부자금설’(loanable-funds theory of interest)이라는 게 있다. 투자수요에 영향을 주는 생산성, 이용할 수 있는 저축의 공급에 영향을 주는 절약이 변하지 않는 한 실질 자연이자율은 안정적인 상태로 있다는 내용이다.

따라서 중앙은행의 역할은 실제 물가의 방향을 추적하며 관할하는 기준금리의 조정을 통해 실질 자연이자율을 안정적으로 유지하는 효과를 달성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중앙은행은 물가안정실업률(나이루; 물가의 가속적 상승을 낳지 않는 실업률), 임금안정실업률(나우루; 임금의 가속적 상승을 낳지 않는 실업률), 인구적 요인(노동력), 기술적 요인 등 오로지 공급 측면의 변수들을 기초로 고안한 또 다른 이론적 개념인 잠재산출(잠재 국내총생산)과 실제 산출(실제 국내총생산)을 견준다. 고안한 잠재산출 속에서 실제 성장률과 물가를 감안하며 금리를 조정하는 원리를 말하는 ‘테일러 준칙’에 따르면, 애초 실질 중립이자율 수준은 2%라고 암묵적으로 가정됐다.

새 케인스주의의 전통 교리와 어긋나는 최근 중앙은행들의 움직임

새 케인스주의가 가장 우려하는 문제는 경기순환 상에서 실질 자연이자율 수준으로 수렴하는 것을 방해하는 요인들이다. 예를 들어 2008년 대금융위기 이전에는 기업이 생산물 가격의 조정을 꺼리거나 더디게 한다는 것이었다. 특히 실질임금을 충분히 하락하지 못한다는 이른바 ‘명목임금의 경직성’이 가장 큰 불만이었다. 하지만 대금융위기 이후에는 이자율이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다는 이른바 ‘명목금리의 경직성’이 전면에 등장했다. 실질 자연이자율은 마이너스로 떨어졌는데, 0%가 상징하는 명목금리의 ‘제로이하한계’(ZLB; Zero Lower Bound)로 명목금리가 충분히 떨어지지 않는 게 대금융위기 이후 성장의 회복이 더딘 가장 중요한 이유라는 것이다. 정부의 적자지출 행위도 실질 자연이자율을 높이는 압력(적자국채 발행→정부의 자금조달→대부자금 시장에서 민간이 이용가능한 자금의 감소→실질 자연이자율 상승)으로 작용하는, 따라서 중앙은행의 명목금리 인상을 낳는 바람직스럽지 않은 행위이다.

물론 현실에서 중앙은행들의 최근 움직임새 케인스주의의 이런 교리와 어긋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명목금리 경직성’의 바닥을 뚫는 실험과 함께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당부하는 유럽중앙은행의 모습이 여기에 속한다. 굳이 따지자면 지난 7월 한 차례 ‘보험성 인하’ 차원에서 0.25%포인트를 내리면서 정부의 적극적인 재정정책을 강력히 주문하고 있는 한국은행의 최근 움직임도 여기에 포괄된다고 볼 수 있다.

이런 교리에서 벗어나는 움직임의 근거는 충분하다. 무엇보다 적극적인 적자지출을 한다고 해서 새 케인스주의에서 우려하는 실질 자연이자율이 상승하는 일 같은 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 글로벌 확실성과 대외수요 감소로 꼭 필요한 것을 빼곤 기업의 투자수요는 그리 크지 않다. 정부가 대규모 적자국채를 발행한다고 해서 이것이 민간이 이용할 가용자금을 줄여 금리 상승 압력을 낳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얘기다.

지금은 금리를 내린다고 해도 전통적인 통화정책의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다. ‘보험성 인하’라는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금리를 내린다고 기업들의 투자수요가 살아나거나 가계의 소비가 늘어나기는 어렵다. 한국의 경우 막대한 가계부채가 걸림돌로 작용한다. 금리 인하에 따른 이자 부담 감소분은 소비로 이어지기보다 저축의 형태로 다시 금융기관으로 환류하거나, 상대적으로 높은 수익성을 좇아 토지나 귀금속 광물, 에너지 등과 같은 재생산이 불가능한 자산(non‐reproduced asset)으로 흘러들어가 쉽다. 가계부채를 더 늘리는 효과로도 작용할 수 있다.

‘보험성 인하’보다 ‘헬리콥터 머니’ 등 실효성 있는 비통상적 방안 찾아야

이런 상황에서 ‘보험성 인하’ 카드는 나쁜 의미에서 ‘정치적’이다. 한국은행이 오는 10월16일 금융통화위원회에서 연준을 좇아 다시 ‘보험성 인하’에 나서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전망이 강하게 나오고 있다. ‘보험성 인하’는 손 놓고 있을 때보다 뭔가 한다는 시늉을 보여주는 것이기에 욕 들어먹을 가능성은 확 낮아진다. 하지만 지금은 효과가 불투명한 ‘보험성 인하’보다 욕 들을 각오하고 가계부채 등 금융안정에 더 신경을 써야 할 때다. 현 상황에서 금리 인하는 금융기관의 수익성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고 더 높은 수익성을 좇는 행위를 부추길 위험성이 더 높아서다.

고민해야 한다면, ‘보험성 인하’가 아니라 경기둔화가 불황으로 이어질 가능성에 대비해 한국은행이 동원할 수 있는 비통상적인 대응을 구상해 보는 것이다. 연준이나 유럽중앙은행, 일본은행이 한 비금융 기업을 대상으로 시행한 자산매입을 통한 양적완화(QE)가 아니라, 금융기관을 통해 가계를 대승으로 시행하는 양적완화(QE)가 바로 그것이다. 한국은행이 이자가 없는 영구적인 대부를 은행들에 해주고, 은행은 동일한 조건으로 이 돈을 가계에 전달하는 것이다. 물론 가계는 이를 상환할 필요가 없다. ‘헬리콥터 머니’다. 헬리콥터 머니를 위해 발행된 본원통화 발행액은 한국은행의 대차대조표에 가상의 자산으로 기록해 두면 된다. 굳이 정부가 국채를 발행하는 방식을 동원하지 않더라도 이런 방식으로 재정지출 증가의 효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본원통화 발행을 통한 헬리콥터 머니가 인플레이션을 낳을 것이라는 우려는 맞지 않다. 현재의 문제는 총수요의 부족이 문제이기 때문에 헬리콥터 머니로 인해 완만하게 물가가 오른다고 해서 결코 부정적이지 않다. 게다가 통화 발행 방식의 헬리콥터 머니는 새 케인스주의의 교리에 따른 현재의 각국 중앙은행들의 비통상적인 접근보다 부작용이 더 작을 수 있다. ‘명목금리 경직성’ 돌파를 위해 무리하게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하면서 금융기관의 수익성을 악화시키거나(유럽중앙은행), 신규 국채발행액의 70% 가까이를 인수하고 직접 나서 증시를 떠받치면서 시장을 왜곡하거나(일본은행), 한국은행처럼 ‘보험성 인하’에 주력하며 재정정책의 역할에 함구하고 있는(연준) 것보다는 이게 훨씬 더 책임있는 모습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우리나라에서 통화 발행을 통한 헬리콥터 머니를 시행한다면 그 규모가 얼마나 될까? 2018년 6월부터 올해 6월까지 가계신용(가계대출+판매신용) 순증 규모는 63조7천억원이다. 그 절반인 32조원 정도를 헬리콥터 머니로 보급한다고 하면, 1641만가구(2018년)에 동일하게 200만원을 지급한다고 하면 32조8천억원이다. 같은 기간 동안 한국은행의 본원통화 추가발행액은 15조1천억원 정도다. 1회에 한해 이를 45조원으로 세 배 늘리면 충당할 수 있다.

‘헬리콥터 머니’가 시행될 수 있으려면, 국회와 정부 그리고 중앙은행의 협조가 관건이다. 우리나라에서는 기대 난망이다. 야당은 소득주도성장이 실패하자 헬리콥터 머니까지 동원하겠다는 거냐고 난리를 쳐댈 것이고, 조금의 실패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여당은 내년 예산안을 더 늘려야 한다는 식으로 나올 것이다. 아마도 올해 예산이 흥청망청 대며 얼마나 실효성 있게 집행됐는지에 대한 고민은 뒷전일 것이다. 총선이라는 정치변수를 중립화시키면서, 경기 둔화가 불황으로 악화하는 것을 막는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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