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3-29 17:18 (금)
거짓 정치광고도 OK, 테크기업의 이중성, 그리고 해법
거짓 정치광고도 OK, 테크기업의 이중성, 그리고 해법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0.30 16:3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마크 저커버그의 궤변 “정치광고 사실 확인 페이스북 역할 아냐!”
입맛에 따라 때론 ‘언론처럼’, 때론 ‘그저 중립적 플랫폼일 뿐’
이용자 데이터 소유권․교환 원칙 확립과 의사결정 참여로 거버넌스 재편해야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페이스북, 구글, 네이버, 다음 등 국내외 테크 기업들은 ‘이중적’이다. 이들 기업은 뉴스와 정보의 중립적 전달자로서 콘텐츠 모니터링에 반대해 왔다. 모든 의견을 동등한 것으로 취급했다. 이런 측면에서 민주주의를 촉진하는 것으로 초기에 각광받았다. 한국의 헌법재판소가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자 “표현 촉진적인 매체”(헌재 2002. 6.27. 99헌마480)로 인터넷을 규정한 것도 이런 맥락에 있다.

이런 밝음은 어둠과 공존한다.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용자들의 행위에서 공짜로 수집하는 데이터를 가공해 이들 기업은 광고와 게임, 소셜네트워크 서비스 등 다양한 사업영역에 진출해 인수합병 등을 거치며 몸집을 불렸다. 구글과 페이스북은 검색 서비스와 온라인 광고시장에서 글로벌 독과점 사업자가 됐고, 이들과 경쟁하며 네이버와 다음카카오 등은 국내에서 대규모 업체로 자랐고 일부 아시아 나라들에 진출까지 했다. “어떤 생각과 의견을 보이게 하고 공유하게 할지를 통제하는” 소수의 플랫폼들이 탄생한 것이다.

이와 함께 이들 기업의 소셜네트워크 서비스는 파괴적이고 반사회적인 집단들에 의해 증오 범죄를 부추기고, 정보와 뉴스에 대한 편식을 유도하고, 가짜뉴스를 양산하는 토양이 됐다. 심지어 이들 기업 자체가 광고수입 극대화를 위해 이용자를 부당하게 차별하고 있다는 문제제기도 전면에 등장했다. 영국의 컴퓨터 과학자 베르너스 리가 월드와이드웹(www)을 발명한 지 30주년이 되는 올해 인터넷 웹은, “누구나 정보를 공유하고 기회에 접근하고 지리적 경계를 넘어 협력하도록 허용하는 공개 플랫폼”의 창출이라는 그의 비전과 달리 무기화(weaponization)하고 있다. 소수의 플랫폼에 의한 통제, 가짜뉴스와 음모이론의 창궐, 외부세력에 의한 선거개입, 개인정보의 약탈 등이 그것이다.

월드와이드웹 발명 30주년과 웹의 무기화 추세

국내는 물론 미국과 유럽연합 등에서 테크 기업들에 대한 일정한 통제와 개입의 필요성이 떠오른 것은 바로 이런 배경에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이런 통제와 개입에 공통된 방향이 있다. 이들 기업에 부여해온 중립적 전달자 지위만을 강조하는 데서 벗어나 일종의 모니터링 의무를 부과한다는 것이다. 당연이 위험이 따른다. 이런 모니터링 의무가 광범위하면 언제든 사실상의 검열로 흐를 수 있다는 위험성이다. 그럼에도 나라마다 강조되는 맥락이 다르기는 하지만, 명예훼손이나 (소수자․약자에 대한) 증오를 부추기는 등 어떤 위험한 영역에 대한 모니터링은 불가피하게 됐다. 현재 테크 기업들의 사업모델이 기초하는 인터넷과 웹은 “가장 참여적인 시장”이자 “표현 촉진적 매체”에서 어떤 영역들에 대한 모니터링 의무가 부과된 표현 자유의 시․공간으로 바뀌었다.

최근 페이스북이 보이고 있는 행태는 국내외 테크 기업들의 ‘이중성’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지난 10월25일부터 페이스북은 미국 사용자 20만명을 대상으로 ‘뉴스탭’ 시범 서비스를 시작했다. 가짜뉴스 확산의 진원지라는 오명에서 벗어나려는 몸짓의 일환이다. 뉴스탭에 참여하기로 한 언론사는 월스트리트저널, 뉴욕타임스, 워싱턴포스트, 폭스뉴스, ABC뉴스, NBC뉴스, USA투데이, NPR, 로스앤젤레스타임스, 더 댈러스모닝 뉴스, 시카고 트리뷴, 더 보스턴 글로브, 비즈니스인사이더, 버즈피드 뉴스, 디 애틀랜틱, 등이다.

뉴스탭 시범은 그동안 페이스북이 줄곧 책임 회피를 위해 내세워온 ‘중립적 전달자’ 주장을 사실상 더 이상 하지 않겠다는 뜻이다. 가존에는 페이스북이 팔짱을 끼고 있으면 최선의 뉴스 소비는 이용자들 스스로가 창출한다는 것이었다. 대신에 뉴스탭은 제휴한 매체들의 기사를 페이스북의 편집팀이 거르고 배분한다. 이 작업을 하는 팀은 페이스북 경영진의 한 명인 앤 컴블럿이 이끈다. 그는 워싱턴포스트의 퓰리처상 수상자인 베테랑 언론인 출신이다. 페이스북은 제휴매채에 합당한 기사 사용료를 지급하고, 고용하는 편집팀에게도 급여를 지급한다. 뉴스를 직접 제작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빼곤, 페이스북이 신문과 방송과 같은 언론처럼 발행자(publisher)로서 행위한다는 것이다.

거짓 정치광고 사실확인은 페이스북의 역할이 아니라는 말하는 마크 저커버그. 사진: 위키피디아
거짓 정치광고 사실확인은
페이스북의 역할이 아니라는 말하는
마크 저커버그. 사진: 위키피디아

하지만 페이스북은 가장 중요한 수입원의 하나인 정치광고에 대해서는 언론처럼 행위하지 않는다. 정치광고가 실리는 곳은 ‘뉴스피드’다. 여기에는 시시콜콜한 신변잡기부터 사진 등 전 세계 20억명 넘는 페이스북 이용자가 무료로 보내는 거의 모든 콘텐츠가 게시된다. 여기에 실리는 정치인들의 정치광고는 사실 검증조차 하지 않겠다는 게 최고경영자인 마크 저커버그의 정책이다. 그는 지난 10월17일 조지타운대 강연에서 “진실이 침해되는 것에 대해 분명히 우려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테크 기업들이 100% 사실이라고 판단한 것만 게시할 수 있는 세계에서 살고 싶어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언론이 다루지 않을 수 있는 지역의 후보나 유망한 도전자 등이 목소리를 내는 중요한 부분”이라며 “정치광고 금지는 현직자와 언론이 다루기로 선택한 사람들에게 유리하다”는 말도 덧붙였다.

한 마디로 “선거에서 유권자들이 거짓말을 볼 수 없도록” 예방하는 것은 페이스북의 역할이 아니라는 얘기다. 뉴스탭에서는 발행자, 뉴스피드에서는, 그것도 여기에 게시되는 정치광고에 대해서는 중립자 전달자로서 플랫폼일 뿐이라는 것이다. 극명하고 저열한 ‘이중성’이다. 반발이 없을 리 없다. 페이스북 직원 250여명은 “(저커버그의) 정책은 정치인들이 콘텐츠를 신뢰할 수 있다고 믿는 이들을 표적으로 삼아 페이스북의 플랫폼을 무기화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것”이라며 반대서명을 벌였다.

‘뉴스탭에서는 발행자, 뉴스피드에서 정치광고에 대해서는 플랫폼’이라는, 이 이중성의 야누스를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손쉬운 방법이 따로 있지는 않다. 현재 미국에서 활발히 논의되고 있는 것처럼, 잠재적인 경쟁자를 인수․합병해 혁신을 저해하는 거대 테크기업들의 독과점은 해체를 포함한 경쟁활성화 조처가 필요하다.

데이터 소유권․교환 원칙 확립과 거버넌스 재편 위해 “이용자가 이빨 갈아야”

하지만 경쟁활성화 정책은 이용자들의 개인정보 데이터를 마치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으로 삼는 광고 기반의 사업모델에 내재한 ‘원죄’를 해결하지 못한다. 이 사업모델의 작동원리는 가능한 많은 데이터를 확보할수록 더 많은 돈을 버는 것이다. 설사 페이스북이나 구글이 해체된다고 해도 이 작동원리는 그대로 남는다. 해체 이후 독과점이 재연될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이는 테크 기업들의 거버넌스 개혁이 훨씬 더 중요한 이유이기도 하다.

거버넌스 개혁의 출발점은 데이터다. 테크 기업의 서비스를 무료나 유료로 이용하는 활동에서 나오는 이용자들에 관한 모든 데이터는 테크 기업들에 공짜로 건네주는 일종의 ‘통화’이다. 이 데이터가 테크 기업의 부가가치 창출에 기여한다는 측면에서 이용자와 분리할 수 없는 노동력이라는 성격을 갖는다. 당연히 이 데이터의 소유권은 이용자에게 있다. 데이터의 소유권과 교환을 통할하는 원칙을 확립하는 법과 규제를 확립해야 테크 기업들의 이중성을 통제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데이터 소유권과 교환의 원칙 확립에서 거버넌스 재편의 두 번째 경로도 확보된다. 이용자들의 데이터는 테크 기업의 서비스 고도화, 부가가치 창출에서 핵심 생산요소다. 그러니 이용자들은 테크 기업들의 중요한 결정에서 발언권을 보장받아야 한다. 생각해볼 수 있는 한 가지 방안은 이용자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이용자 대표들에게 중요한 정책(이를테면 사생활 보호, 데이터 수집․처리, 알고리즘 개발․운영 정책 등)에 대한 투표권을 부여하는 것이다. 테크 기업들의 중요한 의사결정은 이사회만이 아니라 이용자 대표들의 참여를 통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다.

이용자 의사결정 참여를 위해서는 테크 기업의 거버넌스에 이용자 대표기구가 도입될 필요가 있다. 이용자 위원회와 같은 이용자 대표기구의 상설화다. 이용자 대표의 무작위 선택, 관련 문제들에 관한 이사회와 이용자 대표기구의 협상, 이사회에 이용자 위원의 파견 등을 생각해 볼 수 있다.

거짓 정치광고를 옹호하는 마크 저커버그의 궤변이 상징하는 것처럼, 테크 기업들의 ‘이중성’은 이들 기업에게만 맡겨둬서는 온전히 해결될 수 있다. 가짜뉴스 방지 시스템 개발 등 이들 기업이 일정한 개선을 위해 노력하고는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회적 선의 극대화가 아니라 이윤 극대화를 위해 조직된 것”(베르너스 리)이다. 이용자의 데이터 소유권과 교환의 원칙 확립, 이에 입각한 이용자 참여의 거버넌스 재편이 필요한 이유이다. 월드와이드웹 30주년인 올해, 베르너스 리의 말처럼 “우리는 이빨을 갈아야 한다 … 웹이 멋진 세상으로 우리를 이끌 것이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겨서는 안 된다.” [이코노미21]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