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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 탄소세 생태배당 모델, 성공적 환경정책의 모범사례로 부상하다
스위스 탄소세 생태배당 모델, 성공적 환경정책의 모범사례로 부상하다
  • 조혜경 정치경제연구소 대안 연구위원
  • 승인 2019.10.31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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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조혜경 연구위원] 올 여름도 전 세계가 지구온난화로 인한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 세계 곳곳에서 유례없는 폭염으로 인한 사망자가 속출하고 온갖 종류의 악천후로 인한 피해도 점점 심각해지고 있다. 지난 5월 유럽의회 선거결과가 보여주듯이 환경위기가 정치권의 주요 이슈로 재부상하면서 정치지형의 변화를 예고하고 있다.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한 정책적 대응 중의 하나가 바로 환경세다. 환경오염 행위에 대해 세금을 부과하는 것인데 우리나라에도 명시적인 환경세가 있다. 교통에너지환경세법(1993년 제정)에 의해 휘발유와 경유에 대해서는 일명 교통세로 불리는 환경세가 부과된다. 우리가 언론을 통해 자주 접하는 유류세에 포함된 세금의 하나다. 유류세 인하는 우리나라 대통령 선거 때마다 단골로 등장하는 공약이다. 환경세가 대통령 선거공약이 될 만큼 정치적으로 민감한 이슈가 된 것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정치권은 유류세에 포함된 환경세를 서민의 경제적 부담을 높이고 서민경제의 숨통을 죄는 몹쓸 세금으로 간주한다. 즉, 우리나라의 환경세 이슈는 환경정책이 아니라 민생정책의 관점에서 논의되고 있다. 당연히 환경보다 민생을 챙기는 것이 민심을 얻는 데는 훨씬 효과적이다. 환경과 민생의 대결구도에서는 민생이 백전백승하기 마련이다.

환경보호의 가치와 민생보호의 가치가 서로 상충하는 것은 아니지만 환경세 인상으로 인한 경제적 부담이 서민들에게 집중되는 것이 사실이다. 서민의 소득 대비 환경세 부담이 부자에 비해 훨씬 높을 수밖에 없어 역진적이기 때문이다. 작년 말부터 올해 초까지 프랑스를 뒤흔들었던 노란조끼 시위가 마크롱 정부의 디젤 연료 환경세 인상 결정에 의해 촉발되었고, 노란조끼 시위대의 주축이 저임금 노동자들이었다는 것은 환경세가 가진 정치적 폭발력을 그대로 보여주었다. 이 글은 환경보호와 민생보호 사이의 딜레마를 해결하는 효과적인 방법의 하나로 최근 주목을 받고 있는 스위스의 탄소 부담금모델을 소개하고자 한다.

환경세 딜레마: 환경보호 vs 민생보호

환경을 생각하면 환경세를 올려야 하지만 팍팍한 서민의 살림살이를 생각하면 환경세를 내려야 하는 딜레마가 존재하고 그 사이에서 적절한 균형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더구나 프랑스 노란조끼 시위를 통해 환경세를 둘러싼 과거와는 다른 갈등양상이 드러났다. 지금까지는 환경보호의 가치와 산업계의 이익 갈등이 대립전선의 중심축이었다면 이제는 환경보호의 가치와 빈곤계층의 생존권의 충돌로 대립전선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는 환경오염의 주범인 산업계가 가장 강력한 환경세 반대세력이었다. 그런데 환경세에 대한 산업계의 반발은 크게 줄어들었고 오히려 환경세를 지지하는 분위기마저 형성되고 있다. 환경세를 포함한 친환경정책으로 인해 가장 큰 타격을 받아 소멸의 위기에 처한 유럽의 석탄산업계도 친환경가치가 사회의 대세로 자리 잡았고 이러한 추세를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처지다. 물론 산업계의 저항이 사라진 것은 아니지만 적어도 유럽에서는 산업계 전반이 친환경가치에 부합하는 경영전략과 미래비전을 필수라고 인식하고 있다. 이러한 변화를 반영하는 듯 환경세에 대한 정치권의 대응에서도 이제는 보수와 진보의 입장 차이도 점차 사라지고 있다.

친환경=진보의 등식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

환경세를 새롭게 도입하거나 세율을 인상하는 과정에서 산업계의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방안이 정치권의 핵심 관심사였다. 신종 과세든 세율 인상이든 산업계의 비용 증가가 산업경쟁력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해서는 안 된다는 것은 지금도 불문율과 같은 원칙으로 유지되고 있다. 불만을 제기하는 산업계에게 채찍만 있었던 것이 아니라 당근도 충분히 제공해왔던 것이다. 그 덕에 산업계의 저항을 성공적으로 관리할 수 있었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환경세에 대한 산업계의 수용성이 높아지는 것과는 반대로 서민들의 불만은 서서히 끓어오르고 있다. 환경보호 비용의 증가에 따른 피해가 빈곤층에 집중되어 환경불평등과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더욱 심화하는 결과를 초래하자 저소득계층의 인내심은 한계에 도달했고 반정부 투쟁으로 폭발하고 있다. 그동안 침묵해왔던 힘없는 소비자들이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것이다. 나라마다 저항의 정도와 형태는 다르지만 빈익빈 부익부의 불평등을 키우는 친환경정책에 대한 서민층의 반대여론을 정치권이 무시할 수 없는 상황이다. 환경세의 역설을 극복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 시급한 정치적 과제로 제기되고 있다.

녹색의 가치와 정치적 진보가 동일시되던 시대가 저물고 있다. 환경세 부담의 역진성이 초래한 빈익빈 부익부의 역설은 조세를 활용한 환경규제가 사회정의와 민주주의의 가치와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녹색정치=진보정치 등식의 해체는 기존의 친환경정책과 환경규제에 대한 비판적 재검토를 요구하고 있다. 생태적 가치가 부자들만의 전유물이 되어서는 안 된다. 정의로운 생태전환을 위해 민생보호와 환경보호가 균형을 이룰 수 있는 방법론을 찾아야 한다.

스위스의 탄소세 생태배당 모델

스위스는 환경보호법(1983년 제정) 제2조 오염자 비용부담의 원칙과 제6장 교정부담금(Lenkungsabgaben)에 의거하여 2008년 1월부터 난방용 화석연료에 이산화탄소 부담금(CO2 Abgabe)을 징수하고 있다. 난방용 연료에 대한 탄소 부담금은 정부가 책정한 연도별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치를 달성하지 못할 경우에 부과되며 목표 달성에 실패한 대가로 부담금 액수는 매년 인상된다. 2008년 도입 첫해는 CO2 1톤 당 12프랑이었는데 2018년 1월에는 1톤당 96프랑(약11만 5천 원)으로 올랐다. 난방기름 1리터당 25.4라펜, 가스난방 1kg당 25.5라펜으로, 한화로 약 300원이다.

부담금은 세금과 마찬가지로 국가가 국민을 상대로 강제로 징수하는 돈이다. 전기요금이 일상생활에서 전기세라고 불리는 것처럼 납부자의 입장에서는 세금과 부담금의 차이를 느끼지 못한다. 그러나 세금과 부담금은 엄밀히 다른 범주이다. 세금의 목적은 국가 운영에 필요한 재원 조달이며 법에서 정한 과세요건을 갖춘 일반국민으로부터 직접적인 반대급부를 제공하지 않고 국가가 강제징수하는 것이다. 반면 부담금은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행위를 유도하기 위한 교정적 목적을 추구하며 공익적 과제와 직접 관련이 있는 이해관계자로부터 강제징수한다. 법률에 정한 특정한 목적에 사용하기 위해 징수하는 목적세와 유사한 측면이 있으나 부담금은 경제주체의 행위를 사회적으로 올바른 방향으로 교정 또는 유도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기 때문에 조세의 범주에 포함되지는 않는다. 경제학에서는 환경세와 탄소 부담금을 구분하지 않고 경제주체의 바람직하지 못한 행위를 교정하기 위한 목적으로가 정부가 강제징수하는 피구세의 대표적 사례로 꼽는다. 부담금이 조세는 아니지만 세금처럼 강제성을 갖는다는 점에서 준조세로 불리기도 한다.

스위스탄소 부담금수입은 생태배당으로 환급한다

스위스의 탄소 부담금처럼 화석연료 소비에 세금을 부과하는 것 자체는 새롭지 않고 특별하지도 않다. 스위스모델이 흥미로운 것은 징수한 환경 부담금을 스위스 거주자 모두에게 1/n로 나누어 다시 되돌려 준다는 점이다. 스위스 환경보호법(제6장 교정 부담금)은 환경 부담금 수입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한다는 규정을 명시적으로 두고 있다. 생태배당의 균등배분이 적용되는 대상에는 휘발성환경오염물질(제35조a), 난방용 화석연료 및 자동차 휘발유 및 경유의 유황성분(제35조b)이 있다. 그에 따라 스위스는 탄소 생태배당제도를 도입하기 훨씬 이전인 2000년부터 휘발성유기화학물질(VOC)에 환경 부담금을 부과하고 그 수입금을 모든 국민에게 균등하게 배분하는 생태배당제도를 시행해왔다. 탄소 부담금 생태배당은 VOC 부담금 생태배당의 선행사례를 벤치마킹한 것이다. 현재 탄소 부담금 수입의 2/3가 생태배당으로 환급되고 있는데 탄소 부담금 납부자의 화석연료 소비량에 상관없이 스위스 거주자에게 동일한 금액을 지급한다. 나머지 1/3(금액한도 최대 4억5천만 프랑)은 건물과 주택의 에너지 절감 개량사업과 신재생에너지 사업에 지원하고 매년 2500만 프랑은 환경부가 관리하는 친환경기술보증기금에 출연한다.

납부자에게 다시 환급되는 생태배당의 지급대상에는 개인과 회사가 있다. 먼저 개인의 경우는 국적, 나이에 상관없이 스위스 기초건강보험가입자 모두가 생태배당 지급대상이다. 스위스의 기초건강보험의 가입은 스위스에 3개월 이상 거주하는 모든 사람에게 의무이며 가족보험제도가 없어 피부양자인 가정주부와 어린아이도 개별적으로 건강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환급시스템도 기초건강보험제도를 활용한다. 스위스 거주자가 개인별로 보유하고 있는 기초건강보험료계좌를 생태배당 지급채널로 사용하여 가입자가 건강보험료에서 생태배당 금액을 차감하는 방식으로 생태배당이 지급된다. 탄소세 납부자가 회사인 경우 환급금은 고용주에게 지급되는데, 연금보험계좌를 활용하여 연금보험료 중 고용주 부담분에서 차감하거나 그냥 현금으로 지급받을 수 있다. 기초건강보험제도와 연금보험제도를 지급채널로 활용함에 따라 생태배당 환급시스템을 별도로 구축할 필요가 없었을 뿐만 아니라 운영관리비용을 절감하여 행정비용을 최소화할 수 있었다.

총 환급금을 1/n로 나누어 개인에게 지급하는 생태배당 금액은 당연히 그해 탄소 부담금수입에 따라 달라진다. 스위스 연방환경청이 발표8한 2019년 이산화탄소 1톤당 96프랑의 탄소 부담금으로부터 예상되는 수입액은 약 12억 프랑(우리나라 돈으로 환산하면 약 1조 5천억 원)이다. 그 중 2/3에 해당하는 9억9400만 프랑이 환급되는데 개인 환급금은 전체 환급금의 55.7%로 총 5억5400만 프랑이며 기업 환급금은 총 4억4000만이다. 1인당 생태배당은 76.8프랑(1인당 9만 6천 원)으로 탄소 생태배당과 VOC 생태배당을 합한 금액이다.

생태배당과 연계한 탄소 부담금의 효과

교정적 부담금으로서 탄소 부담금은 낮은 수준에서 출발하여 점진적으로 인상되어 기업과 개인이 부담해야 하는 난방비를 올리게 된다. 난방을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와 난방을 적게 사용하는 소비자는 사용량에 비례하여 부담금을 납부하지만 사용량과 상관없이 모두가 동일한 금액의 생태배당을 환급받는다. 난방을 많이 사용하는 소비자는 많이 내고 적게 돌려받고 난방을 적게 사용하는 소비자는 적게 내고 많이 돌려받기 때문에 난방 과다소비자로부터 상대적으로 많은 부담금을 거두어 평균 소비량 이하로 난방을 절약하는 소비자에게 나눠주는 재분배 효과가 있다. 한편에서는 사용량에 비례하는 탄소 부담금으로 화석연료 난방비를 점진적으로 올려 난방에너지 과소비를 교정하고 다른 한편에서는 생태배당 보상체계를 통해 에너지 소비를 줄이는 인센티브를 제공하여 탄소배출이 적은 에너지 또는 친환경 난방시스템으로 대체를 유도하는 것이다. 그뿐만 아니라 탄소 부담금으로 인해 늘어나는 난방비를 생태배당으로 보전 받기 때문에 난방비 인상에 대한 소비자의 반발을 줄이는 또 다른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그림 1: 스위스 자동차 및 난방 화석연료 이산화탄소 배출량, 1990=100%.

출처=스위스 연방환경청 CO2 통계
출처=스위스 연방환경청 CO2 통계

스위스의 탄소 부담금이 해마다 지속적으로 올랐다는 것은 이산화탄소 감축 목표를 달성하지 못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탄소 부담금이 난방연료에만 부과되고 교통부문의 휘발유와 디젤연료에는 적용되지 않는데다가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하는 에너지과다소비 업체의 경우 자발적 탄소배출감축계획을 제출하면 부담금을 면제받고 탄소배출권 거래에 참여하는 기업도 탄소 부담금을 내지 않기 때문에 난방연료탄소 부담금만으로 전체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달성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그림 1이 보여주듯이 탄소 부담금 생태배당제도의 적용대상인 난방부문만 별도로 구분해서 보면 2008년 제도도입 이후 CO2 배출량이 빠른 속도로 감소하고 있다. 자동차 교통부문의 이산화탄소 배출량 추이와 비교하면 난방부문의 배출량 감축은 매우 성공적이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스위스 환경단체들은 자동차 연료에도 탄소 부담금 생태배당 제도를 적용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있다.

스위스모델, 탄소세 딜레마의 해법으로 주목 받다

환경오염물질에 부담금을 부과하여 거두어들인 수입을 다시 모든 국민에게 동일한 액수의 생태배당으로 환급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나라는 현재 스위스가 유일하다. 스위스의 탄소 부담금 생태배당 환급제도가 난방용 화석연료에만 적용되는 한계가 있으나 교정적 부담금의 생태배당이 이론이 아니라 현실에서 작동가능한 제도임을 검증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환급시스템 도입과 운영에 과도한 행정비용을 지출하는 비효율이 발생한다는 생태배당 반대론자의 주장과는 달리 행정비용의 문제는 기술적으로 얼마든지 해결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도 큰 의미가 있다. 지금까지 스위스의 생태배당 모델은 스위스 외부에서는 관심이 없었고 거의 알려지지도 않았다. 그런데 최근 들어 스위스 모델이 탄소세의 딜레마를 극복하는 대안으로 제시되면서 갑작스럽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고 미국과 독일에서는 스위스 모델을 벤치마킹한 탄소세 생태배당제도 논의가 한창이다.

미국의 탄소배당 법률안 발의

미국에서는 국제환경정책로비단체인 Citizens’ Climate Lobby가 <Energy Innovation and Carbon Dividend Act 에너지 혁신과 탄소배당 법률> 입법로비 활동을 벌인 결과 법률안이 2018년 12월 민주당 상원의원에 의해 상원의회에 제출된 데 이어 올해 1월에는 하원에 초당적 법안10으로 발의되어 현재 상임위에서 논의되고 있다. 주요 내용을 보면 2025년까지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2015년 대비 33%, 2050년까지는 2015년 대비 90%로 설정했다. 모든 화석연료에 부과되는 탄소 부담금(carbon fee)은 CO2 1톤당 15달러에서 출발하여 매년 10달러씩 인상된다. 탄소배출에 과세를 하지 않는 나라로부터의 수입물품에 대해서는 탄소관세를 부과한다. 탄소 부담금 수입은 전액 국민에게 1/n로 나누어 매월 생태배당으로 지급한다. 사회보장번호 또는 납세번호를 가진 모든 성인에게 동일한 지분으로 배분하고 미성년자에게는 성인 지분의 절반을 지급한다. 미국의 탄소배당 입법운동은 민주주의가 기후변화의 궁극적 해법이라고 규정하고 탄소배당제도를 대안으로 제시한다. 탄소배당제도가 환경재에 가격을 인위적으로 부여하고 오염자에게 환경오염 비용을 부담하도록 하는 시장친화적인 환경규제의 효율성과 환경오염 비용 부담의 형평성을 동시에 실현하는 최적의 수단이라고 주장한다. 이를 통해 민주주의적 녹색성장이 가능하다고 본다.

독일의 온실가스 감축목표 실패와 탄소세 신규 도입 계획

독일에서는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탄소세 도입을 예고했다. 2020년에 만료되는 교토의정서 체제에서 독일정부는 온실가스 감축 목표를 1990년 대비 40%로 설정했으나 2018년 실제 감축량은 목표치에 한참 못 미치는 32%에 불과했다. 2020년까지 약속한 의무감축량을 달성하지 못하면 독일정부는 2020년부터 2022년까지 매년 1억 유로씩 총 3억 유로(약 4천억 원)의 벌금을 물어야 한다. 마음이 다급해진 독일정부는 EU 탄소배출권거래 의무대상을 제외한 모든 부문에 대해 탄소세를 부과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난방 및 교통부문의 화석연료에 과세되는 탄소세뿐만 아니라 SUV 차량세, 육류세 논의도 다시 불이 불었다. SUV차량세, 육류세도 이산화탄소 배출에 직접 연계된 탄소세의 일종에 해당한다. 독일이 의무감축량 목표를 달성하려면 산업부문과 과세대상을 막론하고 포괄적인 탄소세처럼 보다 과감한 대책이 필요한 것이 사실이고 그 필요성에 광범위한 정치적 공감대가 형성되어 있다. 극우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과 자유당만 탄소세에 반대하고 있어 의회 통과에 아무 문제가 없다. 그로 인해 새로운 탄소세 도입은 기정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고 다만 구체적인 방식을 놓고 다양한 제안이 나오고 있다. 탄소세에 대한 독일 여론 동향을 보면 올해 상반기만 하더라도 반대가 압도적으로 많았으나(Handelsblatt, 2019.05.02) 최근에서 찬성 쪽으로 분위기가 반전했다. 가장 최근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환경세 강화의 필요성에 원칙적으로 동의한다는 입장이 반대 입장보다 우세하다. 생태위기의 심각성에 대한 독일사회의 인식이 최근 들어 크게 높아졌고 중산층과 빈곤층에게 더 큰 과세부담을 지워서는 안 된다는 조건부 찬성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독일 환경세 접근의 한계와 부작용

독일이 환경정책분야에서는 가장 선도적인 국가로 알려져 있는데 내막을 들여다보면 사정이 다르다. 원전 폐기 정책으로 전 세계의 주목을 받으면서 친환경국가의 이미지가 강하게 각인된 것은 사실이나 지금까지 독일의 환경정책은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일방적으로 편중되어 있다. 신재생에너지를 미래 성장동력 산업으로 규정하고 산업정책적 관점에서 접근하여 국가적 차원에서 전방적인 지원이 이루어졌다. 나머지 부문, 특히 교통부문에서는 별다른 정책을 내놓지 못했다. 자동차산업이 독일경제에서 차지하는 전략적 중요성이 매우 높은데다가 자동차세에 대한 관련 업계와 일반 국민들의 반대가 워낙 극심해 정치권에서 엄두를 못 내고 있다. 실제로 독일의 환경세 수준은 높은 편이 아니다. 독일정부가 징수하는 모든 종류의 환경세와 환경부담금을 합한 금액이 독일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17년 1.81%였다. 1995년 2.12%보다 낮아졌을 뿐만 아니라 EU 평균 2.4%보다도 낮은 수준이다. 또한 독일의 환경 관련 조세는 2000년부터 2018년까지 18년 동안 23.5% 증가했는데 같은 기간 전체 조세 증가율은 무려 66.1%로 거의 3배가 높았다. 그 결과 전체 세수에서 환경관련조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2018년 7.7%로 통계 집계를 시작한 1995년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통계만 놓고 보면 환경세 부담이 지나치다는 주장에 객관적 근거는 없고 정부는 환경세를 인상할 여지가 충분하다고 판단할 수 있다.

독일은 에너지세 형태의 환경세를 시행해오다가 적녹연정 시절인 1999년 <환경친화적 조세개혁도입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여 에너지세를 개편하여 일명 생태세를 도입했다. 교통부문의 에너지세에 환경오염에 대한 과세명목으로 정액의 소비세를 추가하고 전력세를 신규 도입하는 것이 독일 생태세의 주요 내용이다. 교통부문의 경우 휘발유 1리터당 정액의 15센트의 생태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전체 휘발유가격에서 생태세가 차지하는 비중은 10%를 약간 웃도는 낮은 수준이다. 1999년 새로 도입된 전력소비에 부과되는 전력세도 마찬가지로 정액의 소비세다. 2003년 이후 지금까지 l kWh당 2.05센트 전력세가 유지되고 되고 있으며 2018년 가정용 전기요금 1 kWh 당 29.42센트 중 전력세 비중은 약 7%에 불과하다. 금액이 고정되어 있는 독일의 생태세는 에너지가격의 변동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휘발유 가격이나 전력가격의 변동에 아무런 관련이 없으며 에너지 최종소비자가격에서 생태세가 차지하는 비중이 매우 낮아 가격상승에 미치는 효과가 제한적이다. 게다가 물가상승률을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세월이 지나면서 실제 생태세 부담은 오히려 크게 낮아졌다. 그 결과 적녹연정이 퇴진하고 대연정이 들어선 2005년 이후 환경관련세수가 거의 정체 수준을 보이고 있다.(그림 2 참조)

그림 2: 독일 환경세 추이, 1995-2018.

출처: Umweltbundesamt
출처: Umweltbundesamt

생태세가 에너지가격 인상과 별 관련이 없다면 무엇이 독일의 전기요금을 세계 최고 수준으로 끌어올린 것일까? 2019년 기준 가정용 전기요금을 달러화로 환산한 국제비교를 보면 독일의 전기요금은 1kWh 당 35센터로 세계에서 가장 비싸다. 우리나라의 전기요금이 10센트인데 그에 비해 3.5배가 높은 수준이다. 독일 전력가격 급등의 직접적 원인은 2000년 제정된 신재생에너지법에 따라 친환경에너지 보급에 지원되는 보조금 때문이다. 발전단가가 상대적으로 높은 태양광, 풍력 등 신재생에너지가 전력공급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질수록 친환경에너지 보조금도 늘어나게 된다. 현재 신재생에너지 보조금은 최종 전력가격의 24%로 전력가격 구성요소 중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발전무문에서 신재생에너지 확산에 치중한 독일정부의 환경정책이 독일을 세계에서 전력요금이 가장 비싼 나라로 만든 것이다.

만약 독일정부가 탄소세를 도입하면 자동차 휘발유와 경유 가격뿐만 아니라 전기요금도 지금보다 더 올라갈 수밖에 없다. 지금도 전기요금 부담이 만만치 않은데다가 전력가격이 더 오르고 교통부문과 난방부문에도 탄소세가 도입될 경우 서민들의 경제적 부담이 크게 늘어날 것이다. 아직 세부 방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독일 국민의 대다수는 탄소세 도입을 원칙적으로 지지하고 있으나 중산층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저소득층을 보호하는 대책 없이 전방위적으로 탄소세를 도입하는 것에는 유보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다. 독일 내에서도 환경세의 형평성에 대한 문제의식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스위스모델에서 대안을 찾다

이러한 상황에서 등장한 대안이 바로 스위스모델이다. 진보 보수를 막론하고 독일의 모든 언론들이 기존의 정책수단인 생태세와 탄소배출권거래제도와 비교할 때 스위스모델이 훨씬 효율적이며 효과적이라는 환경전문가들의 입장을 소개하고 있다.18 독일 국민들도 탄소세 수입을 시민과 기업에 다시 환원하는 스위스모델을 매우 신선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 스위스모델은 이미 2008년부터 시행되어 왔음에도 불구하고 왜 독일사회가 지금에 와서야 갑자기 관심을 보이는 것인지는 좀 의아하다. 아마도 에너지가격 상승이 저소득층에게 일방적으로 불리한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고 그로 인해 기존 생태세 모델의 개혁이 불가피하다는 문제의식에 모두가 공감을 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산업경쟁력을 중심에 두고 친환경에너지 보급에 치중해온 독일 환경정책의 부작용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고 성장에 방점을 둔 녹색성장론을 비판적으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독일의 탄소세 방안은 올해 안에 최종 결정이 내려질 것으로 보이는데 어떤 결론이 나올지 궁금하다. 프랑스처럼 폭력적 형태는 아니지만 독일의 탄소세 논의에서도 마찬가지로 환경보호의 가치가 저소득층의 경제적 고통을 가중시키고 고소득계층만이 누릴 수 있는 전유물로 왜곡되는 것을 막아야 하는 어려운 숙제가 던져졌다. 스위스모델이 환경오염에 대한 만병통치약은 될 수는 없으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만은 분명한 사실이다.

출처=정치경제연구소 대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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