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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전시관으로 재생되어 만난 자연, 건축, 올림픽 예술
문화전시관으로 재생되어 만난 자연, 건축, 올림픽 예술
  • 이정미 동양미래대학교 건축과 교수
  • 승인 2019.07.03 16: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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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관 칼럼 – Healing Museum Road]
펜던티브돔 홀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간의 통합

이번 호에서는 사적 번호를 이름으로 가져온 ‘문화역서울284’를 만나보기로 한다.

수도 서울의 관문 역할을 하던 철도역,서울역으로 사용되던 이곳은 급격한 서울의 발전과 함께 수송량 증가를 감당하기 위해 2004년에 새로운 민자역사가 신축되면서,구 역사를 폐쇄했다가 2011년 8월 9일 원형복원 공사를 거쳐 ‘문화역서울284’라는 이름의 복합문화공간으로 개관된 곳이다. 서울시 중구 통일로 1번지에 자리한 문화전시공간이 된 이곳 이름의 284는 사적번호에서 가져온 것이다. ‘문화역서울284’는 1900년대 초 건축된 건축물 중 양식상 가치가 있고 근대건축사의 중요자료로 인정하여, 1981년 문화재명 ‘사적 제 284호 구 서울역사’로 지정하였다. 역사상 중대한 사건과 시설의 자취로서의 사적으로 지정되어 문화재보호법에 의해 국가의 보호를 받게 되었다.

개관 이래 다양한 전시 및 공연 등이 진행되었으며 현재 전시는 2018 평창 동계올림픽 및 동계패럴림픽 개최와 30년 전 88서울 올림픽과 관련하여, 올림픽이 우리사회에 가져다 준 인간의 존엄에 대한 각성과 화합의 의미를 되새겨 보는데 의미를 두고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전이 문화체육관광부 주최로 진행되고 있다.

문화역서울284 전경
문화역서울284 전경

서울역(구)은 대한제국시대인 1899년 경인선이 노량진까지 운행되었고, 1900년 한강철도가 놓이면서 경인선 철도가 완전히 개통될 때 10평규모의 목조건물로 시작되었다.

원래 위치는 염천교 근처로 서대문정거장이었다. 1910년 국권을 침탈한 일본은 1914년 경원선을 개통하면서 중국대륙침략의 발판으로써 새로운 역사의 필요성을 느껴 현재의 ‘문화역서울284’가 된 서울역사 건립이 시작된 것이다.

만주철도주식회사가 건립주최가 되고, 건축가 스카모토 야스시(嫁本靖)의 설계로 시미즈 건설에서 시공, 1922년 6월 1일부터 공사를 시작하여 1925년 9월 30일에 신축된다. 역사의 이름 또한 한일합병으로 수도 ‘한성’의 이름을 ‘경성부’로 바꾸고 경기도 밑에 두었기에 경성역으로 신축되었고 당시 일본은 경성역을 시작으로, 이 철도가 중국의 하얼빈을 거쳐, 러시아의 시베리아, 모스크바, 그리고 독일의 베를린까지 이어지기를 기대하여 최대한 과시적으로 지었다. 당시 7만여평의 대지에 서양에서 18세기 이래 유행한 절충주의 양식의 고풍스러운 붉은 벽돌을 이용하여 웅장한 느낌으로 지어져, 조선 총독부 건물(구 국립중앙박물관, 1995년 철거)과 함께 경성을 대표하는 건물이 되었다. 1947년에 서울역으로 개칭되어 사용된다. 대한민국 근대사를 고스란히 담고 있는 장소다. 동경대학 교수였던 건축가 스카모토 야스시는 조선호텔을 설계한 건축가로도 알려져 있다.

김소연의 ‘경성의 건축가들’에는 당시 건축계의 소회가 이렇게 담겨 있다. … 그러나 그들이 겪은 삶의 뚜껑을 열고 좀더 들여다 보면… 독립투사가 아닌 한, 투철한 신념이나 의식을 가지지 않는 한, 친일과 저항의 꼭지점이 아닌 그 사이의 무수한 회색지대를 살았던 사람들처럼 그 시대의 건축가도 타협과 저항, 동경과 콤플렉스 사이에서 갈등하고 싸우고 변화하고 좌절했다....

당시 한국인 건축가들의 현실을 살펴보면 최초의 서구식 근대건축교육을 받은 한국인 건축가로 건축가 박길룡을 들 수 있는데 그의 대표작 중 초기작으로 거론되는 김용수 주택이 1929년에 지어졌고 이후 1937년에 박길룡의 설계로 종로네거리에 화신 백화점이 들어서고 경성인구의 80%가 이 건물을 구경했다는 이야기가 있다.

인류역사상 가장 짧은 기간 동안 식민지와 전쟁의 역사를 딛고 발전한 21세기 대한민국의 젊은이들이 이 장소의 역사를 딛고, 세계로 확장되기를 바라는 염원을 담아본다. 현재 이 곳에서 진행 중인 ‘두 번의 올림픽, 두 개의 올림픽’전이 그러한 다의적 의미로 해석되기를 기원해 본다. 매력적인 문화 이벤트로써의 흡입력이 부족한 아쉬움을 해소시킬 방안에 대한 것은 숙제로 남는다.

서울역(구) 건축물은 벽돌, 철근콘크리트 슬레이트를 이음재료로 2,964m², 지하1층 지상 2층의 르네상스와 비잔틴풍 돔이 있는 절충식, 근대식건물로 계획안에서 규모는 훨씬 컸었으나 자금조달 문제로 축소되었다고 한다.

근대사에서 기차나 사진기술의 의미가 특별한 의미를 갖는 것은 사진기의 등장으로 사진이 회화를 대체하게 되면서 화가들은 시대의 변화에 대응하여 추상예술로의 혁신을 이루어 냈던 것처럼, 당시 사진기술은 예술로 인정되지 못했지만 라이프지의 카파가 이루어낸 피사체의 진실성이 감동으로 다가와 사진예술로의 발전이 있었듯,기차의 등장은 마차나 도보로 이동하던 그 시대 사람들에게 시간의 개념에 충격을 가져다 주게 된다. 이 경성역에서 제 시간에 맞춰 떠나고 도착하는 기차가 활발히 운행되면서, 사람들도 차츰 시간에 맞춰 생활하기 시작했고 서울역에 세워져 있던 시계탑이 상징하는 시간의 개념을 반나절, 한나절로 나뉘던 시간의 구분에 시간 단위나 분 단위로 바꾸어 생각하게 한 것이다.기술의 발전이 인간의 의식에 미친 영향은 역사와 함께 한다. 카카오미니와 같은 인공지능스피커에게 버스의 도착예정 시간을 묻고 몇 정거장 전에 와 있는지를 확인하고 엘리베이터로 달려가는 시대에 살고 있으니 다가올 근미래의 시간개념은 지금과는 또 다른 모습일 것이다.

서양에서 18세기 이래 유행한 절충주의 양식으로 분리되는 서양고전 건축물의 르네상스와 비잔틴풍 돔이 있는 절충식, 근대식 건축물인 ‘문화역서울284’는 현재 남아 있는 일제강점기 건축물 중 가장 뛰어난 외관을 갖고 있어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붉은 색 타일 마감에 흰색 석재의 수평띠선과 벽면 모서리에 귓돌을 설치하여 건축물에 변화를 이루는 수법이 적용되었다.

당시 서양 고전양식을 채용한 역사에 일반적 의장형식이다. 1914년에 준공된 도쿄역사의 4분의 1규모로 준공과 동시에 협소함이 인식되어 증축에 대한 고려가 필요했다.

동경역은 현재 역과 ‘도쿄스테이션 호텔’로 투숙객 이외에 출입을 통제하는 수준의 관리를 통해 역사적 건축물을 활용하고 있다. 동경역은 JR 동일본 건축사의 긴꼬 타쯔노의 설계로 오픈하여 1951년 돔양식을 보수하여 58개 객실의 호텔로 2006년까지 운영되다가 2006년 영국의 리치몬드 인터내셔널에서 6년간의 리뉴얼을 마치고 재개장하였다.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1923년 관동 대지진에도 살아난 일본에서 보존된 가장 오래된 건축물 중 하나다. 앤 여왕 스타일의 건축물과 어울리는 디자인을 목표로 영국업체를 선정하여 고증에 기반한 내부의 디자인이 진행되어 크림색 기조에 진한 색 목재를 적용하는 마감으로 가구들은 모두 영국산의 영국적인 가구만을 사용하였다. 많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것이 예술작품이라고 한다면 도쿄스테이션 호텔은 인류가 이루어낸 그 정신과 결과가 숭고해 보이는 예술작품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비잔틴 양식의 펜던티브 돔은 ‘문화역서울284’의 가장 큰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정사각형의 평면위에 원형평면의 돔을 설치하는 비잔틴양식의 독특한 기법의 펜던티브 돔이다.

팬던티브는 우선 정사각형평면 위의 외접하는 반구를 정사각형 4면에서 수직으로 절단한다. ‘문화역서울284’에서는 이 부분을 반원형 아치의 창이 된다. 반구는 사각형 4점의 꼭지점에 의해 지지된다. 다시 4개의 반원형 아치의 위쪽 정점을 연결하는 위치를 수평으로 절단하고 나면 결국 수평면상의 원과 수직면상의 4개의 아치에 의해 4개의 3각형 포물면이 형성되는데 이 삼각형 포물면의 부재를 펜덴티브라고 한다. 이러한 4개의 펜덴티브에 의해 지지되는 돔이 펜덴티브 돔이다.수평으로 절단한 위치 상부에 반구를 배치하여 완성된다.시공순서는 정방형 평면의 모서리에 4개의 기둥을 세우고 기둥을 연결하는 4개의 대형아치를 구축하고 아치위에 돔을 가설한 후 돔과 아치 사이의 삼각형 포물면을 채운다.

이렇게 형성된 내부는 12개의 석재 기둥과 돔이이루는 높고 웅장한 중앙 홀이 만들어지고 팬던티브 돔 4면의 아치를 이루는 창을 통해 채광과 아름다움이 전해지고 천정에는 스테인드 그라스가 매우 화려하게 자리하고 있다. 이 공간을 중심으로 주변공간들이 상호유기적으로 통합된다. 중앙홀에는 두 올림픽 기간 중에 활동한 2만 7천 여명의 볼런티어들의 인생의 전개를 보여주는 장으로 평창의 산들을 형상화한 구조물을 이용하여 인터뷰 영상들이 전시되어 있다. 평창동계올림픽 파크에서 한파추위를 따뜻하게 느끼게 하던 자원봉사자의 열정 어린 역할에 한번 더 경의를 보낸다.

문화역서울284 내부 모습
문화역서울284 내부 모습

중앙 홀 양측에 매표소로 사용되던 출찰실이 있다.

중앙홀 좌측은 1,2등 대합실로 사용되던 공간으로 세련된 분위기로 복원되어 2018 동계패럴림픽대회 예술포스터가 전시 중에 있다. 이 공간의 후면에는 당시 부인대기실도 마련되어 있었고 그 옆쪽에 위치한 귀빈실은 이승만대통령, 박정희 대통령시기 지방 출장시 이용했던 공간이 있으나 현재는 일반에 개방되고 있지 않다.

모서리와 핸드레일 그리고 조명기구까지 수준 있는 디자인의 계단실을 통해 연결되는 2층에는 이발소로 사용되던 곳에 구 서울역사를 원형 복원하면서 나온 부재들과 역사사료들을 전시한 복원전시실이 상설로 전시되고 2층 메인 홀은 대식당으로 사용되던 곳으로 이공간은 당시 서양 레스토랑을 상징하는 말로 통용되었을 정도로 ‘서울역 그릴’이 우리나라 최초의 양식당으로 있었던 공간이다. 현재 이 공간전시는 88 서울 올림픽 당시의 디자인 현황을 알 수 있는 예술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2층 우측의 구 회의실에는 1988년 당시의 정치, 사회, 문화 등을 내용으로 구성하였는데, 1988년대를 연상 할 수 있는 LP 턴테이블을 통해 ‘서울 서울 서울’ 등을 들으며 당시 불렸던 노래와 읽혔던 글과 책, 영상을 읽고 들을 수 있어 잠시 젊음의 한 때를 추억하게 될 것이다.

건물 좌우측에 있는 계단을 내려와 1층 외부에는 올림픽의 역사가 시대별 포스터로 전시되고 있다.

광장을 통해 외부에 공사가 완성된 ‘서울로’로 높이 고가를 오르면 서울 시가지를 내려다 보며 다양한 볼거리와 먹을 거리들이 있다.

봄이 오는 시절 서울역에 가셔서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껴보시는 건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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