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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기구(OAS) ‘정치적 개입’과 부정선거 낙인, 모랄레스의 과잉
미주기구(OAS) ‘정치적 개입’과 부정선거 낙인, 모랄레스의 과잉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1.13 16:0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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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리비아 사태 2제 - 이념 차이 떠나 생각해볼 문제
미주기구 월권과 정치적 개입이 부른 군부 ‘무혈 쿠데타’
그 빌미는 3선 금지를 지키지 않은 모랄레스가 제공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그동안 상대적으로 번영을 누려온 것으로 평가받아온 남미 볼리비아에서 대통령선거 개표과정과 결과를 둘러싸고 현직 대통령이 군부의 사퇴 권고를 받고 물러나며 멕시코로 망명하는 사태가 벌어졌다. 당사자는 최초의 원주민 출신 대통령인 에보 모랄레스이다. 지지자들에게 “어두운 세력들”과 맞서 싸울 것을 촉구하기도 했던 그는 11월12일 멕시코에 도착하며 “살아있는 한 정치를 계속하겠다. 살아있는 한 투쟁을 이어가겠다”고 말했다. 더 많은 “힘과 활력”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가겠다는 말도 덧붙였다.

군부의 사임 압력에 직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사진: 위키피디아
군부의 사임 압력에 직에서 물러나 멕시코로 망명한
에보 모랄레스 볼리비아 대통령. 사진: 위키피디아

그가 속한 정당은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 - 인민주권을 위한 정치수단’이다. 이름에서 보이듯 분명한 좌파 정당이다. 모랄레스가 존경하는 인물은 쿠바 국가평의회 의장 피델 카스트로, 좌파 성향의 베네수엘라 대통령 우고 차베스이다. 모랄레스가 대통령으로 재임하는 동안 차베스는 2013년, 카스트로는 2016년 타계했다.

사태의 발단이 된 지난 10월20일 치러진 대통령선거(총선과 함께 치러진다)는 모랄레스의 네 번째 도전이었다. 그는 2006년 1월부터 지난 11월10일 사임하기 전까지 2006~2009년, 2009~2014년, 2014~2019년까지 3번을 연임했다. 2008년에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면서는 2014년 대선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하기도 했다.

볼리비아의 빈곤 감축과 경제 개선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는 그가 망명까지 한 배경은 무엇인지 관심이 쏠린다. 사람에 따라 다르겠지만 기자의 눈에는 두 가지가 눈에 걸린다. 하나는 그의 네 번째 출마는 왕창 잘못된 ‘욕심’일 수 있다는 것, 다른 하나는 선거 감시에 나선 미주기구(OAS)의 월권과 미국의 개입, 이로 인해 벌어진 짙은 쿠데타 냄새다.

먼저 미주기구의 ‘월권’부터 살펴보자. 미주기구는 1948년 8월 헌장 채택과 함께 출범한 미주지역협렵기구로, 볼리비아를 포함해 현재 미주지역 35개국이 회원국으로 활동하고 있다. 베네수엘라는 2018년 6월 탈퇴 의사를 표명했고, 참여가 배제됐던 쿠바는 2015년 7월 제한적으로 복귀했다. 이 기구의 활동의 하나가 1962년 처음 시작된 선거참관단 파견과 선거감시 활동이다. 2016년 미국 대선에도 참관인단이 파견됐다.

이번 볼리비아 선거에도 미주기구 선거참관단이 왔다. 볼리비아의 공식 국가명칭은 ‘볼리비아 다민족 공화국’이다. 다민족 국가임을 대내․외에 천명하고 있는 셈이다. 5년마다 치러지는 볼리비아 선거는 대통령선거와 총선을 겸한다. 대통령 후보를 찍는 1표는 대통령 소속 정당에 대한 투표이기도 해서 대통령, 하원 비례, 상원 비례(지역구 없음)를 결정한다. 다른 1표는 하원 지역구 후보에 찍는다. 선거관리는 ‘다민족 선거기구’가 맡는다. 위원 7명으로 이뤄지는 최고선거위원회, 주선거위원회(9곳), 선거 심판관, 선거공증인 등으로 이뤄져 있다. 이번에 미주기구에서 파견한 선거참관인 92명이었고 이들은 9개 주선거위원회에 배치됐다. 이들 외에 선거 한 달 전 무작위로 뽑힌 20만7322명이 선거관리 교육을 받은 뒤 33만4500개에 이르는 투표소에 투표소당 6명씩 배치됐다.

볼리비아의 개표는 ‘표본 개표’(quick count)과 ‘공식 개표’(official count)로 나뉜다. 우리나라처럼 출구조사 같은 건 없다. 두 가지 모두 최고선거위원회가 발표한다. 투표자에게 누구를 찍었는지 물어보는 출구조사와 달리, 표본 개표는 투표소의 실제 투표결과를 표본으로 삼아 전체 선거결과를 예측하는 방식이다. 1986년 필리핀 대선에서 예상되는 대규모 선거부정을 견제하기 위해 시민단체들이 9만여개에 이르는 모든 투표소에서 실제 투표결과를 집계해 선거결과를 예측하려 한 게 선구적 시도였다. 공식 개표는 표본 개표보다 더 철저하고 정확하고, 집계에 시간도 더 많이 걸린다. 당연히 법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개표는 공식 개표다.

‘표본 개표’ 중단을 선거부정으로 둔갑시킨 미주기구의 ‘월권’과 정치적 개입

이런 배경 지식 아래 지난 10월20, 21일 볼리비아로 가보자. 10월20일 오후 7시40분(현지시간) 최고선거위원회는 표본 개표를 발표했다. 표본 개표는 투표자 83.0%를 포괄하는 예측이었다. 이후 최고선거위원회는 업데이트한 표본 개표 결과를 발표했다. 하지만 오후 8시10분 업데이트가 중단된다. 미주기구는 업데이트가 중단되자 “최고선거위원회가 업데이트를 중단한 이유를 설명하게 관건”이라고 스페인어로 트윗을 날렸다. 최고선거위원회 위원장 마리아 오이게니아 초케는 주선거위원회들이 (표본 개표가 아닌) 공식 개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중단했다며 “우리는 동시에 두 개의 결과를 가질 수 없다”고 밝혔다. 업데이트 중단 당시 표본 개표 결과는 투표자 83.85%를 포괄하면서 모랄레스 45.71%, 경쟁후보인 카를로스 메사 37.84%였다. 격차는 7.87%포인트로 결선투표를 시시하는 결과였다. 볼리비아 선거법은 40% 이상을 득표하면서 2위 후보와 10%포인트 이상 차이가 나지 않으면 결선투표를 하게 돼 있다. 전직 대통령인 메사는 볼리비아 백인 엘리트를 대변하는 정당인 ‘시민공동체’의 후보였다.

23시간이 흐른 10월21일 오후 7시께 표본 개표 업데이트가 재개됐다. 이후 모랄레스와 메사의 격차는 조금씩 벌어지기 시작했다. 10월22일 오전 10시30분 표본 개표는 투표자 95.63%(인증된 득표 기록지 3만4천여개)를 포괄하는 상황에서 모랄레스 46.86%, 메사 36.72%였다. 최고선거위원회가 발표한 최종 공식 개표 결과는 모랄레스 47.08%, 메사 36.51%로 표본 개표 결과와 거의 차이가 없었다.

문제는 표본 개표 업데이트가 재개된 뒤 미주기구가 10월21일 ‘볼리비아 미주기구 선거참관단의 성명’을 발표하면서 비롯했다. 미주기구는 “최고선거위원회가 애초 발표한 결과는 결선투표를 분명히 가리키고 있었다”며 “(하지만) 23시간 뒤 최고위는 선거 운명을 극적으로 바꾸고 선거과정에 대한 신뢰 상실을 낳는, 이해할 수 없는 추세의 변화를 담은 데이터를 제공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예비 결과에서 이 극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추세 변화에 깊은 유감과 놀라움을 표한다”고 했다. 뭔가 선거부정이 있었음을 강하게 암시한 것이다. 물론 아무런 증거도 대지 않았다.

‘무혈 쿠데타’ 배후에 어른거리는 미국의 그림자

게다가 모랄레스 집권 이후 대사급 외교관계가 중단된 미국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도 바쁘게 움직였다. 공화당 상원의원 마르코 루비오의 경우, 미주기구가 성명을 발표하기 몇 시간 전에, 그것도 표본 개표가 재개되기도 전에 자신의 트윗을 통해 “모든 신뢰할 만한 지표들은 에보 모랄레스가 결선투표를 실시하지 않는 데 필요한 격차를 확보하는 데 실패했다는 것”이라며 “이를 피하기 위해 모랄레스가 결과나 과정에 손댈 것이라는 우려”를 나타냈다. 역시 아무런 증거도 대지 않았다. 이후 국무부 서반구사무국 담당 차관보 대행 마이클 코작은 “개표를 지연시키고 선거의 신뢰성을 훼손하는 행위를 함으로써 볼리비아 민주주의를 전복시키려는 최고선거위원회의 시도를 거부한다”는 내용의 트윗을 날렸다. 역시 아무런 증거도 대지 않았다.

표본 개표 개시 이후 모랄레스의 득표 증가는, 지역별로 유권자 선호도 차이에 따라 그에 대한 지지도가 높은 선거구의 투표용지가 늦게 개봉된 데 따른 것으로 풀이할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미주기구 선거참관인단이나 집권여당을 제외한 나머지 야당 어느 곳에서도 선거에서 광범위하고 체계적인 불규칙성이 나타났다고 보고된 바가 없기 때문이다. 공식 개표 결과가 표본 개표 결과와 거의 차이가 나지 않는다는 점도 이를 뒷받침한다. 실제로 표본 개표는 업데이트가 중단됐다 재개됐으나, 법적으로 구속력 있는 공식 개표는 휴식시간 등을 제외하곤 중단된 바가 없다는 점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어떠한 증거도 제시하지 못한 채 “극적이고 설명하기 어려운 추세 변화”라며 선거 부정을 암시한 미주기구 선거참관인단의 ‘월권’에서 비롯한다. 표본 개표 업데이트의 중단이 마치 강한 선거부정이 있는 것처럼 단정해 버린 것이다. 이 과정에서 주선거위원회들이 공식 개표 결과를 발표하기 시작해 초고선거위의 표본 개표 결과와 공존하는 속에서 표본 개표 업데이트를 중단했다는 최고선거위원회의 설명운 완전히 무시됐다. 그러면서 아무런 증거도 없이 선거 부정을 강하게 시사했다.

이런 월권과 무책임한 개입이 미주기구의 평판에 어떤 영향을 줄지 우려를 나타내는 목소리가 익명을 요구한 채 미주기구 선거참관인단 안에서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엎질러진 물이다. 야당들은 미주기구의 성명이 나오자 일제히 ‘반칙’을 선언하며 거리로 쏟아져 나왔다. 군부는 대통령에게 사임을 요구하는 ‘무혈 쿠데타’를 시도했고, 결국 모랄레스의 사임과 함께 성공했다. 하지만 대선과 함께 치러진 총선에서 집권당인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은 의석수를 일부 상실하긴 했지만, 하원 의석 130석 중 68석을, 비례대표인 상원 의석 36석 중 21석을 차지해 모두 과반을 차지했다. 모랄레스의 지지자들이 국회 안팎에서 거센 투쟁을 벌일 것임은 분명하다. 볼리비아는 혼돈의 나락으로 떨어질 위험이 커진 것이다. 만약 미주기구의 무책임하고 증거도 없는 주장에 따라 이번 선거가 부정으로 얼룩진 것이라고 야당들이 주장한다면, 그래서 총선 결과마저 인정할 수 없다고 나온다면, 볼리비아는 아마도 준내전 상태에 들어갈지도 모른다.

거듭된 약속 위반 - 국민투표 부결에도 3선 강행, 그리고 시스템에 대한 신뢰의 상실

그럼에도 놓치지 말아야 할 지점이 있다. 그것은 모랄레스가 자신의 약속을 두 번이나 저버렸다는 것이다. 2008년 두 번째 대권에 도전하며 그는 2014년 대선에 도전하지 않겠다고 약속했지만 이를 어겼다. 지지자들의 요구에 따를 수밖에 없었다는 설명이 여기에 붙는다. 하지만 모랄레스는 야당과 협상의 산물로 태어난 2009년 헌법을 지키지도 않았다. 이 헌법 제168조는 대통령과 러닝 메이트로 출마하는 부통령의 3선 연임을 금지하고 있다. 이후 여당인 ‘사회주의를 향한 운동’은 이 조항의 개정을 시도했다. 하지만 상․하 양원을 통과한 개정안은 2016년 2월 국민투표에서 찬성 48.7% 대 반대 51.3%로 부결됐다.

이에 따라 모랄레스는 이번 선거에 출마하지 않는 게 맞았다. 하지만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017년 12월 볼리비아 헌법재판소는 3선을 금지한 헌법 제168조에 대해 위헌 결정을 내렸다. 근거로 삼은 논리는 미주인권협약 제23조(정부에 참여할 권리)이다. 제3항은 “모든 전반적으로 평등한 조건에서 나라의 공직에 참여하는 권리와 기회를 갖는다”고 하면서, 법률로 이 권리와 기회룰 제한할 수 있으되, 오직 “나이, 국적, 거주지, 언어, 교육, 문화․교육적 역량, 범죄재판에서 법원의 판결에 기초해서만” 가능하게 했다. 볼리비아 헌법재판소는 모랄레스가 여기에 해당하지 않으니 이번 선거에 출마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리고 이에 어긋나는 볼리비아의 모든 임기제한을 폐지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모랄레스에게 가해진 부당한 인권 제약이 없어진 것에 대한 환영이라고 본다면 크나큰 오판일 가능성이 높다. 국민투표를 통해 3선 연임을 금지한 결정이 존중되지 않는 모습을 보면서 많은 볼리비아 국민들이 시스템을 더 이상 신뢰하지 않게 됐다는 지적은 분명하다. 그만큼 볼리비아 정치의 양극화과 대립은 훨씬 더 심해졌고, 골은 더 깊이 패였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이번 선거에 대한 미주기구의 월권과 정치적 개입이 비집고 들어갈 틈도 결국 이 과정에서 만들어졌다고 봐도 지나치지 않을 듯하다.

미국의 1대 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2번의 임기가 끝난 뒤 한 번 더 대통령직을 수행해 달라는 국민들의 바람에도 스스로 불출마를 선언하고 고향인 버지니아주로 돌아갔다. 헌법에 없음에도 대통령 3선 제한이라는 전통은 이렇게 확립됐다. 이 전통이 무너진 것은 프랭클린 루스벨트가 4번이나 연임한 게 유일하다. 그리고 그 뒤 1951년 수정헌법 제22조가 통과돼 대통령 중임 조항에 헌법에 담겼다. 모랄레스의 선택은 워싱턴이어야 했을까, 루스벨트여야 했을까? 아마도 워싱턴이어야 했을 것이다. 그는 그 기회를 놓쳤고, 그가 조금씩 개선해오던 볼리비아는 다시 혼동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그는 “살아 있는 한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다짐하지만, 오히려 필요한 것은 성찰이지 않을까 싶다. 볼리비아에 남아 유혈사태를 부르지 않고 멕시코로 망명을 선택할 만큼, 그토록 사랑하는 볼리비아가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는 혼돈으로 빠져드는 책임을 미주기구의 월권과 정치적 개입, 그리고 미국에만 돌리지 많은 성찰 말이다. 후계자를 키우는 데 인색한, 과반의 지지자들만 있으면 장기집권도 상관없다는 식의 태도에 ‘프롤레타리아 독재’라는 낡은 망령이 어슬렁거렸던 것은 아닌지 말이다. 1973년 9월 군부쿠데타에 맞서 대통령궁에서 기관총을 잡았던 칠레 대통령 살바도르 아옌데는 에보 모랄레스에게 무슨 말을 해줄까? 스치듯 궁금해진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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