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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밀양’ 떠올리게 하는 시진핑의 ‘일국양제’
영화 ‘밀양’ 떠올리게 하는 시진핑의 ‘일국양제’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1.15 13: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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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추자의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와 노브레인의 ‘새빨간 거짓말’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국회의원들은 서로를 향해 말할 때 “존경하는 아무개 의원님”이라는 말을 습관적으로 사용한다. 실제로 존경하는지 안 하는지 상관이 없다. 북한에서 지도자 이름 앞에 “친애하고 경애하는~” 류의 수식어를 주절이주절이 다는 거랑 오십보백보다. 이 역시 실제로 친애하고 경애하는지 알 길이 없다. 일종의 추임새다. 이런 사례들까지 포함해 국내․외 외교는 온갖 미사여구의 성찬이다. 이렇게 외교에서 의례적으로 상대방을 추어올려주는 '입 발린 말’은 영어로도 아첨(flattery)이 아니다. ‘컴플리멘터리 스피치’(complimentary speech)로 ‘칭찬하는 말’이다. 외교에 동원되는 미사여구를 표현하는 말도 미사여구인 셈이다.

화염에 휩싸인 홍콩 중문대 캠퍼스. 껍데기만 남은 '일국양제'가 타서 재로 변하는 듯하다. 사진: PolyU Campus Radio
화염에 휩싸인 홍콩 중문대 캠퍼스.
껍데기만 남은 '일국양제'가 타서 재로 변하는 듯하다.
사진: PolyU Campus Radio

중국 국가주석 시진핑은 11월14일 브라질에서 열린 브릭스(BRICS) 제11차 정상회의에 참석한 자리에서 자치 보장을 요구하는 홍콩 시위에 대해 “일국양제(一國兩制)라는 기본 원칙을 심각하게 위반하고 있다”며 “법치주의와 사회질서를 짓밟았다”고 비난했다. 그러면서 “질서회복과 폭력 중단이 가장 시급한 과제”라고 덧붙였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그것도 외국 정상을 만난 자리에서 홍콩 문제를 직접 언급한 것은 처음이어서 중국군의 홍콩 개입이 임박한 게 아니냐는 얘기가 나오고 있다.

그의 발언은 지난 10월31일 제19기 중국공산당 중앙앙위원회 4차 전체회의(4중전회)에서 홍콩과 마카오에 대한 전면적 통제를 선언하는 결정을 내리고 나서 14일 만에 나온 것이다. 이 성명은 “중국 헌번과 (홍콩특별행정구 소헌법인) 기본법이 부여하는 모든 권한”을 이용해 홍콩과 마카오를 “통제하고 지배”하고, 홍콩과 마카오의 “국가안보 방어를 위해 법률 시스템과 집행 메커니즘을 구축하고 개선”하는 내용이다. 세부적으론 특별행정구 행정장관과 주요 관리의 임면에 중국공산당이 더 직접 개입하고, 기본법을 해석하는 전국인민대회 상무위원회의 권한을 강화시키고, 특별행정구 공무원과 청소년에 대한 국가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교육을 확대한다는 것이다.

이 모든 게 ‘한 나라, 두 체제’를 뜻하는 이른바 “일국양제”(一國兩制)의 이름 아래 벌이겠다는 일들이다. 사실상 전면 부정하겠다고 하면서도 일국양제를 내세우는 모습은, 실제로 존경하는지에 관계없이 실제로 경애하고 친애하는지에 관계없이 온갖 미사여구를 갖다 붙이는 앞서의 예들처럼, 일국양제가 한낱 미사여구로 전락한 셈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1997년 반환과 함께 향후 50년 동안 홍콩에 고도의 자치와 법치, 자유를 보장하겠다고 덩샤오핑이 대내․외에 천명한 ‘일국양제’는 이렇게 올해 10월31일 철저하게 시궁창에 처박혔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마치 1990년 독일 통일에 대한 옛 소련의 동의를 얻어내면서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는 동쪽으로 단 1인치도 확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약속을 미국과 독일이 옛 소련 몰락과 함께 헌신짝처럼 던진 모습을 닮았다.

그렇다고 해도 외교상의 미사여구는 ‘그러려니’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일국양제는 그런 미사여구가 될 수가 없다. 수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 어떻게 운영되는지에 관련된 문제이기 때문이다. 비유하자면, 한반도 남쪽에 사는 사람들을 북쪽에 가서 살라고 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니 일국양제는 단순한 미사여구가 아니라 입은 비뜰어져도 말은 바로 해야 성질의 문제다. 10월31일 4중전회 결정 이후 중국공산당이 내거는 ‘일국양제’는 거짓말이다. 영화 ‘밀양’에서 목사의 야외강연 도중 전도연이 큰 김추자의 유행곡 가사처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 거짓말이야~”다. 펑크록밴드 노브레인이 부른 노래제목처럼 ‘새빨간 거짓말’이다.

살인진압 규탄하는 10월14일 홍콩 시위 장면. 사진: 클라리 류
살인진압 규탄하는 10월14일 홍콩 시위 장면. 사진: 클라리 류

‘출호이반호이’(出乎爾反乎爾)라는 중국 고사가 있다. 자기에게서 나온 것이 자신에게로 되돌아온다는 뜻이다. 춘추전국시대 노나라와 싸움에서 크게 패한 추나라 왕이 지휘관이 33명이나 죽었는데 가만히 있던 백성들을 어떻게 하면 좋겠냐?’고 맹자에 물었다. 맹자는 ‘몇 해 전 흉년이 들었을 때 왕의 창고에 곡식과 보물이 가득했음에도 백성들을 굶어죽도록 내버려뒀다’고 일갈했다. 백성들이 지난날 당했던 것을 그렇게 갚은 것이라는 얘기다.

동쪽으로 단 1인치도 전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위반한 미국과 독일에게 ‘출호이반호이’는 어땠을까? 2008년 4월3일 나토 회원국 수반들은 ‘부다페스트 정상선언’을 발표한다. “나토는 우크라이나와 조지아의 나토 가입 열망을 환영한다. 우리는 두 나라가 나토 회원국이 되는 것에 오늘 동의했다. 두 나라는 나토의 활동에 가치 있는 기여를 해 왔다”고 했다. 러시아는 2008년 8월 조지아를 침략했고, 2014년 2월 우크라이나를 침략해 크리미아 반도를 합병했다.

홍콩의 자치와 자율을 짓밟고 만약의 하나라 천안문 때처럼 중국군이나 공인을 투입해 홍콩 시민을 진압․학살하는 일이 벌어지면, 그것이 부를 ‘출호이반호이’는 상상하기 어렵다. 미국이 손 놓고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중국 본토와 별개의 실체로서 경제와 무역에 관해 홍콩에 부여해온 특별한 지위를 철회될 것이라고 보는 게 정확하다. 역외 금융센터로 홍콩이 갖는 위상과 지위도 몰락할 것이다. 많은 홍콩 시민들이 미국과 이웃나라로 망명하는 일이 벌어질 것이고, 2003년 국가보안법 제정 시도나 2012년 역사교과서 개편 통한 애국심 교육 시도 때처럼 일국양제를 부정하는 행위들이 나올 때마다 저항이 터져나올 것이다. ‘민주공화주의’는 피를 먹고 자란다는 역사의 교훈은 홍콩이라고 예외는 아니라는 얘기다.

그 속에서 울려 퍼지는 중국공산당의 ‘일국양제’는 고장 난 레코드판이 돌아가는 소리에 그치기 쉬울 것이다. 이에 맞서 많은 홍콩시민들은 노브레인의 '새빨간 거짓말'을 부를지도 모르겠다.

“난 변하지 않는다 다 새빨간 거짓말/믿고 말았던 마음마저도 모두 거짓말/변치 않는 건 없다고 그 누가 말했나/나는 결코 변하지 않는다/당당히 고집했던 모든 게/시곗바늘에 밀려 사라져갔다.”

그렇게 덩샤오핑의 ‘일국양제’는 시진핑 체제 등장 이후 홍콩에서 시곗바늘에 밀려 사라져 왔고 소멸을 눈앞에 두고 있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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