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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자본소득 모두 움켜쥔 ‘호모플루티아’, 리버럴 자본주의 위협!
노동․자본소득 모두 움켜쥔 ‘호모플루티아’, 리버럴 자본주의 위협!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1.19 16: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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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은 사회주의 아냐! 독재적 기술관료제+법치 부재의 ‘정치적 자본주의’
개발․불평등 경제학자 브랑코 밀라노비치, 신작 ‘자본주의 홀로’
호모플루티아 개념, 한국 ‘강남좌파’ 분석에도 시사점 적지 않아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중국은 사회주의가 아니다.’ 자신의 사회경제 시스템을 ‘사회주의 시장경제’라고 스스로 부르는 중국공산당은 반발할지 모르겠지만, 저명한 개발경제학자 겸 불평등 전문가인 브랑코 밀라노비치가 최근 펴낸 자신의 책 ‘자본주의 홀로 - 세계를 통치하는 시스템의 미래’(Capitalism, Alone - The Future of the System That Rules the World)에서 중국을 ‘정치적 자본주의’로 부르는 것을 막지는 못한다.

책은 몇 나라를 빼곤 지구 역사상 처음으로 자본주의가 세계에서 유일한 사회경제 시스템이 됐다고 말하면서 시작한다. 그가 사용한 자본주의 개념은 칼 마르크스와 막스 베버가 사용한 틀과 같다. “임금노동과 사적 소유가 대부분인 자본을 이용해 이윤을 위해 조직된 생산”이다. 지금의 21세기 세계에는 막스 베버가 말한 이넘형(ideal type)으로 두 가지 형태의 자본주의가 있다. 하나는 중국이 대표하는 ‘정치적 자본주의’(political capitalism)이고, 다른 하나는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liberal meritocratic capitalism)로 미국이 대표한다. 자본주의의 서로 다른 유형을 분류하면서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나 ‘주주 자본주의’로 나누는 것과는 구별되는 접근이다.

‘정치적 자본주의’는 독재적이고 기술적인 관료제가 자신의 지도적 역할과 선택적인 법치(rule of law)의 적용 또는 구속력 있는 법치의 부재를 정당화시키기 위해 높은 경제성장을 전달하는 임무를 갖는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이 시스템에 항상 내재하는 고유한 위험성은 정치 엘리트의 재량적 권력으로 인한 부패와 고유한 불평등이다. 특히 경제성장이 둔화할 때 많은 사람들이 이 부패와 불평등을 관용하지 않는다. 높은 성장과 폭넓은 소득 증가는 고유한 부패와 불평등 증가가 시스템의 파괴로 이어지지 않도록 하는 시스템의 필수불가결한 접착제다. 법치의 선택적 적용이나 법치의 부재도 필수적이다. 예외를 허용하지 않는 법치는 상이한 경제 엘리트 간 경쟁을 허용하고, 이는 결국 정치 엘리트의 권력 독점을 궁극적으로 전복할 수 있어서다.

‘정치적 자본주의’의 특징의 하나를 ‘독재적 기술관료제에 입각한 법치의 선택적 적용 또는 법치의 부재’로 꼽는 밀라노비치의 예리한 지적은 홍콩 시위와 관련해서도 번뜩인다, 실질적 자치와 자율성으로 ‘일국양제’를 보장하라는 홍콩 시민들의 시위에 대해 ‘일국양제에 도전하고 파괴하고 있다’는 자가당착 논법을 뻔뻔스럽게 내세우며 무자비한 진압을 지시하는 중국 공산당의 모습은 독재적 기술관료제의 적나라한 본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자본주의 개념을 적용할 수 있느냐?’는 중국공산당의 항변을 의식했는지는 모르지만, 밀라노비치는 제3장에서 고정투자와 산업생산에서 차지하는 사적 기업들의 비중이 얼마나 빠르게 중국 경제에서 증가했는지를 경험적으로 증명한다. 그러면서 20세기 중국 역사에서 “공산주의는 식민지 사회가 봉건주의를 철폐하고 내재적 자본주의를 건설할 수 있도록 했다”고 평가한다. 마치 우리나라에서 역설적이게도 한국전쟁을 거치며 농지개혁에도 일부 남아 있던 신분제 등의 봉건적 잔재가 완전히 없어지고 교육을 통한 신분상승이라는 열망이 자본주의 발전의 자양분이 됐던 것과 비슷한 일이 중국 공산주의 아래에서 벌어졌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책의 가장 큰 주제이자 문제의식은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가 점점 더 ‘정치적 자본주의’로 흘러나가는 경향이 있다는 데 있다. 이를 분석하기 위해 밀라노비치가 만든 신조어가 바로 ‘호모플루티아’(homoploutia)이다. 동일하다는 뜻의‘호모’, 부유하다는 의미의 플로토를 명사화시킨 ‘플루티아’를 합성한 말이다. ‘동일한 사람에 쏠리는 부’라는 정도로 옮길 수 있는데, 소득분배 상단에서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양쪽 모두에서 소득을 올리는 인구가 점점 더 늘어나고 있음을 가리키는 개념이다.

민주주의 파괴의 씨앗으로서 ‘호모플루티아’(=더 높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결합)

1980~2015년 미국 소득 상위 10%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상위 10% 자본가 비중(그 역도 동일) *자료: 자본주의 홀로
1980~2015년 미국 소득 상위 10% 노동자에서 차지하는
상위 10% 자본가 비중(그 역도 동일) *자료: 자본주의 홀로

이런 '호모플루티아'는 이전의 고전적 자본주의에서는 거의 찾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다. 그때 자본가는 소스타인 베블렌이 말한 ‘유한계급’처럼 자본으로부터 흘러나오는 소득만을 얻고, 노동자는 노동으로부터 나오는 소득만을 취하는 게 보통이었다. 이 과정에서 소득불평등은 확대된다. 하지만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에서 노동소득 분배의 상단에 있는 이들은 충분한 저축을 통해 “자본(자산)이 풍부해지고”, 이 풍부한 자산은 높은 수익을 끌어내며 상당한 자본소득을 당사자에게 안긴다. 미국을 예로 들면, 노동소득 상위 10% 가구에 속하는 노동자이면서 자본소득 상위 10% 속하는 자본가인 이런 ‘호모플루티아’ 비중은 1980년 15% 미만에서 2015년 이후 25%를 넘어 30%를 향해 치닫고 있다.

소득분배의 최상위에서 동일한 사람에게 높은 자본소득과 노동소득이 결합하는 모습에 대한 연구는 밀라노비치가 처음은 아니다. 그의 기발한 창의성은 ‘호모플루티아’ 개념을 시스템을 파괴하는 근저의 개념의 주춧돌로 삼는 데 있다. 호모플루티아가 점점 더 높아지면, 경제 엘리트가 사회로부터 점점 더 자율적이 되고, 이 과정에서 경제 엘리트와 정치 엘리트가 겹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거나(경제 엘리트가 정치 엘리트화하거나) 경제 엘리트의 정치 엘리트에 대한 영향력이 비대해지는 것을 가능하게 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 널리 쓰이는 용어로 하면 ‘정경유착’이 심화․확대된다는 얘기다.

밀라노비치는 리버럴 자본주의와 능력주의 자본주의를 개념상 구별하는 두 가지 특징으로 상속과세와 폭넓은 공공교육을 꼽는다. 지난 30년에 걸쳐 상속과세와 공공교육이 약화해오면서 사회민주주의 자본주의는 ‘더 능력주의적이고 덜 자유주의적인’ 자본주의 모델을 향해 움직여왔다. 이념형으로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는 그 귀결이다.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와 2차 세계대전 이후부터 1980년대 초까지 서유럽과 북미에서 지배적인 ‘사회민주주의 자본주의 사이’의 차이는 후자에서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자본소득 몫의 증가가 더 많은 정치권력의 획득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는 데 있다. 하지만 전자에서는 고전적 자본주의에서처럼 더 많은 정치권력의 획득으로 이어진다. 이를 가능하게 하는 게 비중이 점점 증가하는 ‘호모플루티아’이다.

20~35살 연령대에서 미국 노동소득 상위 10% 남성이 노동소득 상위 10% 여성, 하위 10% 여성과 결혼하는 비중 추이(1970~2017) *자료: 자본주의 홀로
20~35살 연령대에서 노동소득 상위 10% 남성의
노동소득 상위 10% 여성, 하위 10% 여성과
결혼비중 추이(미국, 1970~2017)
*자료: 자본주의 홀로

밀라노비치는 지난 10월17일 스페인 바르셀로나 대학에서 행한 책과 관련한 강연에서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를 점점 더 ‘정치적 자본주의’ 형태의 윤곽을 띠는 쪽으로 밀어붙이는 힘을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능력주의 자본주의의 위험성은 우리가 무감각하게 민주적 시스템으로부터 정치권력이 경제권력만큼이나 극도로 집중되는 시스템으로 이동하는 데 있다. 비록 선거, 자유언론 등이 있다고 할지라도 그 시스템은 더 이상 민주적이지 않을 것이다. 정치권력은 극도로 집중될 것이다 ……(부유층이) “점점 더 정치과정을 통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미국의 예는 극적이다 … 매우 비싼 학교에 자식을 다니게 하고 자신의 돈과 계약을 자녀들에게 이전할 수 있다 … (사회로부터 자율적으로) 스스로 유지될 수 있는 상층계급이 있다 … 모든 것이 민주주의를 참주정(plutocracy)으로 몰아가는 운동을 낳고 있다.”

소득불평등 속에서 호모플루티아 비중이 높아지는 배경의 하나로 밀라노비치가 소득분배에서 차지하는 개인의 위치와 결혼의 상관관계를 분석하는 것도 무척 흥미롭다. 그는 1950년대와 21세기 미국에서 결혼하는 쌍의 패턴을 비교하며 ‘사회민주주의 자본주의’와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의 차이를 찾는다. 2차 세계대전 이후 남자는 비슷한 지위의 여성과 결혼하는 경향이 있었지만, 남편이 부유할수록 부인이 일하면서 자신의 수입을 갖는 가능성은 낮았다. 오늘날에는 더 부유하고 더 교육을 받은 남자는 더 부유하고 더 교육을 받은 여자와 결혼하는 경향이 있다. 여성의 경제활동참가율이 높아지는 상황을 전제할 때,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에서 더 두드러지는 이런 식의 동형결혼(homogamy)은 소득 불평등을 더 벌리는 경향이 있다. 1950년 노동소득 상위 10%에 혹하는 남자가 노동소득 상위 10%에 속하는 여자, 하위 10%에 속하는 여자와 쌍을 이루는 비율은 각각 15.4%, 12.8%였다. 하지만 2015년 이 비율은 각각 28.7%, 10.7%였다. 동형결혼 양상이 거의 세 배 증가한 것이다.

‘강남좌파’ 분석에 주는 ‘호모플루티아’ 개념의 시사점

나라별 상위 10%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중복 현황(2015년) *자료: 자본주의 홀로
나라별 상위 10% 자본소득과 노동소득 중복 현황(2015년)
*자료: 자본주의 홀로

‘호모플루티아’ 개념은 한때 우리나라를 떠들썩하게 만든 이른바 ‘조국 사태’, 좀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전의 ‘강남좌파’ 논쟁을 약간 다른 각도에서 바라볼 수 있는 틀을 제공할 수 있다. 강남좌파는 높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이 결합하는 ‘호모플루티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얘기다. 교수, 변호사, 약사, 의사, 학원원장 등을 통한 높은 노동소득이나 사업소득을 통해서든, 아니면 상속을 통해서든 충분한 돈의 저축, 이렇게 풍부해진 자산 투자를 통한 높은 자본수익, 높은 노동소득과 자본소득의 결합을 통한 일정한 자율성 확보가 1980년대 학생운동원 일부와 결합해 이른바 ‘강남좌파’가 형성됐다고 분석해볼 수 있다. 조국 일가의 사모펀드를 통한 자본수익 추구 시도는 2015년 금융위원회의 규제 완화와 맞물린 사모펀드 창궐 과정의 상징적인 일화에 해당될 수 있다. 실제로, 밀라노비치의 책에서, 노동소득 상위 10% 가구에 속하는 노동자이면서 자본소득 상위 10% 속하는 자본가인 우리나라의 ‘호모플루티아’ 비중은 2015년 16%로 영국과 일본과 같은 수준이고, 브라질 8%, 멕시코 8%보다는 월등히 높다. 미국이 25%로 가장 높고, 독일 23%, 프랑스 20%, 스페인 19%, 그리스 18% 등의 순이다.

밀라노비치의 이 책은 옛 소련의 붕괴와 함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 승리와 그 지속을 선언한 프랜시스 후쿠야마의 ‘역사의 종언’에 대한 기발한 반기에 해당한다. ‘자유주의적 능력주의 자본주의’는 ‘호모플루티아’의 증가와 함께 참주정으로 타락하는 길로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의 ‘정치적 자본주의’가 대안일 수도 없다. 독재적 관료제와 정치권력을 독점한 채 법치의 선택적 적용을 통해 경제성장과 소득 증가를 이뤄내는, 재량적 권력은 필연적으로 부패와 소득불평등을 낳는, 일종의 참주정일 뿐이다. 이에 비춰볼 때, 프랑스 사회과학고등연구원 교수 토마 피케티 등이 지난 3월 전미경제학리뷰(AER)에 실은 논문 ‘미국을 닮아가는 급증하는 중국의 소득 불평등’에서 중국의 소득 불평등이 미국에 필적한다고 경험적으로 증명한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368). 미국이나 중국이나 대안이 아니라는 얘기다.

밀라노비치는 책의 제5장 ‘글로벌 자본주의의 미래’에서 ‘국민(인민) 자본주의’(People's Capitalism)를 향해 나아갈 것을 주창한다. ‘국민 자본주의’를 향한 하나의 방안으로 밀라노비치는 빈곤층과 중산층에 유리한 세제 도입으로 이들 계층의 부존 금융자원을 늘릴 것을 제안한다. 이를 통해 부의 집중이 호모플루티아 증가로 이어지는 위험을 막자는 것이다. 또한 우리나라와 관련성은 적지만, 세르비아 출신 미국 경제학자답게 이민자에 대한 ‘준시민권’ 부여를 통해 소득불평등 문제를 완화시키자는 제안도 내놓는다. 시민권과 비시민권의 이분법에 따라 복지혜택이 현저한 차이가 나는 것을 줄여보자는 것이다.

밀라노비치가 제안하는 ‘국민 자본주의’는 하버드대 경제학자 대니 로드릭이 말하는 ‘자유주의적 민주주의’(liberal democracy), 컬럼비아대 경제학자 조지프 스티글리츠가 말하는 ‘진보적 자본주의’와 상통한다. 로드릭의 ‘자유주의적 민주주의’는 세 가지 권리의 유기적 구성물이다. 첫째, 국가나 다른 집단의 침해로부터 자산 보유자와 투자자를 보호하는 재산권의 보장이다. 둘째, 자유롭고 공정한 선거경쟁의 보장과 경쟁의 승자가 다른 권리들이 확립하는 제약 속에서 정책을 결정하도록 허용하는 정치권의 보장이다. 셋째, 정의, 안전, 교육, 건강과 같은 공공재의 제공과 법 앞에서 평등을 뜻하는 시민권의 보장이다. 현실에서 이들 세 권리를 모두 제대로 보장․구현하는 나라를 찾기란 쉽지 않다. 그만큼 희소하는 얘기다. 스티글리츠의 ‘진보적 자본주의’는 △국가와 시장의 균형 회복을 통한 소득불평등 완화, 금융불안정 해소, 환경 악화 방지 △비생산적 지대추구 활동 제한 △시장 집중력 완화와 독점의 해소 △정경유착의 차단과 견제․균형 시스템 회복이다.

책에서 설명하지 않기는 했지만, ‘자본주의 홀로’에서 밀라노비치가 지향하는 대안은 결국 이 모두를 포괄하는 것에 가까워 보인다. 생산과 분배를 아우르며 소득불평등을 억제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차단하는 것이다. 정경유착의 고리 차단과 관련해 서구 사회민주주의정당의 엘리트 정당화를 비판하며 토마 피케티가 쓴 책인 ‘브라만(엘리트) 좌파와 상인 우파’의 문제의식과 밀라노비치의 호모플루티아 문제의식이 결합할 지점도 충분하다. 밀라노비치의 ‘호모플루티아’는 브라만과 상인이 결합하는 현상을 일컫는 것이기 때문이다. 실천적 함의는 ‘국민 자본주의’를 지향하는 정당의 저변은 ‘호모플루티아’나 엘리트층에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는 얘기일 것이다. 우리나라의 ‘강남좌파’ 담론에 주는 시사점도 이것이 아닐까 싶다.

현재 밀라노비치는 뉴욕시립대 졸업생센터 초빙 학장급 교수이고, 세계은행에서 경제학자로 20년 넘게 근무했다. 2016년 그의 책 ‘글로벌 불평등’은 그해 최고의 정치서적에 주는 브루노 크라이스티 상을 받았고, 12개국 말로 번역됐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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