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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데이터 식민주의’에 굴복하고 있는가?
당신은 ‘데이터 식민주의’에 굴복하고 있는가?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2.05 18:2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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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의성’과 ‘개인화’ 이름 아래 이뤄지는 인간생활의 식민화
천연자원으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이데올로기를 해부하는 책 ‘연결의 비용’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낯익은 비유는 데이터를 일종의 천연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이다. 온갖 개인정보들로부터 데이터를 추출해 가공 처리한다는 측면에서, 이렇게 가공 처리된 데이터가 기업들에 많은 수익을 보장한다는 측면에서 데이터를 천연자원으로 간주하는 것이다. 추출한 석유가 정제과정을 거쳐 가솔린으로 태어나면 원유보다 더 가치가 높아지는 것과 유사하다는 측면에서 이런 비유는 그럴 듯하게 들린다. 온 국민의 자산인 천연자원처럼, ‘석유로서의 데이터’는 데이터가 마치 온 국민의 자산처럼 취급될 수 있다는 분위기를 부추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다자기구에서도 ‘집단적인 국민자산’으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시각을 부추기고 있다. 지난 3월 이 기구는 2020년 회원국들에 내놓을 예정인 준비작업 성격의 보고서 ‘글로벌 경제에서의 법인 과세’에서 이런 식으로 분석했다.

하지만 ‘석유로서의 데이터’라는 비유는 틀렸다. 석유는 말을 못한다. 대신에 석유가 매장된 곳이 자신의 영토에 속하는 정부가 말을 한다. 그래서 석유는 온 국민의 자산이 된다. 정부가 석유 추출기업들에게 로얄티(사용료)를 매기는 권한을 행사하는 게 여기에 속한다. 반면 데이터경제에서 데이터는 말을 한다. 바로 데이터를 쏟아내는 개인이 그 주체(data subject)다. 바로 이런 측면에서 데이터는 개인에 속하는 일종의 노동력의 일부라는 속성을 지니는 것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라는 시각이다. 데이터경제에서 개인의 소비행위는 더 이상 소비하는 상품으로부터 만족을 얻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 자체가 데이터를 제공함과 동시에 가치창출에 기여하는 행위라는 적극적인 의미를 지닌다. 소비행위가 바로 노동력 지출의 성격을 갖는다는 얘기다.”

(http://www.economy21.co.kr/news/articleView.html?idxno=1006688)

빅데이터 시대에 이렇게 개인정보 데이터를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역사적 식민주의’에 비교하는 흥미로운 책이 최근 출간됐다. ‘연결의 비용 - 데이터는 인간생활을 어떻게 식민화하고 자본주의를 위해 전유하는가?’(The Costs of Connection: How Data is Colonizing Human Life and Appropriating It for Capitalism)라는 책이다. 저자는 런던정치경제대학(LSE) 미디어․소통학부 미디어․소통․사회이론 교수인 닉 콜드리, 뉴욕주립대학(SUNY) 소통연구부 조교수인 율리시스 알리 메지아스 등 2명이다.

저자들의 관점은 우리가 사는 빅데이터 시대가 새로운 형태의 자본주의나, 자본주의의 새로운 변경(frontier)으로 바라보는 관점을 거부한다. 식민주의와 자본주의, 양자의 계속이자 확장, 기존 자본주의의 불가피한 확장으로 바라본다. 데이터 식민주의 아래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은 지난 200년에 걸쳐 발전해온 것처럼 자본주의의 연장일 뿐이라는 얘기다. 저자들은 ‘최대의 가치를 추출하기 위한 생명의 조직, 이로부터 결과하는 소수의 개인으로의 부와 권력의 집중’으로 자본주의를 특징짓는다. 자본주의가 일을 통한 인간의 활동을 노동의 상품으로 전환한 것처럼, 데이터 식민주의는 인간생활을 데이터 상품으로 전환하고 있다는 게 저자들의 주장이다.

이를 위해 저자들은 ‘역사적 식민주의’와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개념의 유사성과 차이를 비유한다. 식민주의는 과거의 현상만이 아니다. 식민지의 토지와 신체, 천연자원을 전유한 역사적 식민주의는 오늘날의 널리 퍼져 있는 온갖 개인정보의 데이터화에 비추어져 있다. 앱, 플랫폼, 스마트 기기들이 우리의 생활을 데이터로 전환해 정보를 추출하고, 이 정보들이 이윤을 위해 기업들이 투여되고 이를 통해 다시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역사적 식민주의가 스스로를 합리화시킨 방식은 미지한 식민지를 깨운다는 ‘문명화’ 이데올로기, 피식민지들에 대한 식민주의자들의 우월성(인종적, 군사적), ‘천연자원’ 이용 필요성 등이다. 반면 데이터 식민주의가 동원하는 이데올로기는, 데이터는 소유자가 없고 기술기업들만이 동원할 수 있는 숙련과 자원이 가해져야 하는 ‘천연자원’(natural resources)이라는 것이다. ‘공동체 형성’에 봉사한다는 이데올로기도 동원되고, 개인들이 서로 ‘공유’하기 쉽도록 만들고, 디지털 서비스를 ‘개인화시키고’(맞춤형), 새로운 사회질서에 대한 참여를 ‘민주화시키는’ 이데올로기도 보태진다. 쉽게 말해, 데이터 식민주의는 개인들의 연결을 통해 서비스의 편의성을 높이고 맞춤형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게 하고 공동체 형성과 목소리를 낼 수 있는 균등한 기회를 제공한다는 이데올로기를 먹고 자란다는 것이다. 데이터 식민주의가 본질적으로 폭력에 의존해 구축되고 유지되지 않는다는 점에서 역사적 식민주의와 결정적으로 다르기는 하지만, 인간생활을 식민화시키는 이데올로기들을 전제한다는 점에서 역사적 식민주의와 마찬가지라는 게 저자들의 생각이다.

데이터 식민주의를 추동하는 것은 ‘사회적 양화 산업’(social quantification sector)이다. 사회적 데이터와 통계의 수집은 19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하지만 아마존, 애플, 페이스북, 구글, 마이크로소프트 등과 같은 ‘빅 파이브’(Big 5)는 사회적인 것의 양화를 새로운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이들 기업은 우리에 관한 데이터를 끊임없이 불투명하게 수집하는데, 우리의 세계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예측하기 위해서다. 특히 우리를 소비자로 교냥하기 위해서다. 이들 기업은 점점 더 정부와 밀접하게 연결돼 활동하고 전례가 없는 수준의 사회적 통제권을 행사한다.

일상생활에 참여하는 대가로 감시에 복종하도록 강제되는 대가로 개인들은 ‘자아’(self)라고 부를 수 있는 공간이 전혀 남아 있지 않게 되는 비용을 치른다. 자아를 추적하는 기기와 ‘양화한 자아’라는 외부 시스템이 우리보다 우리 자신을 더 잘 안다는 식의 관념이 확산된다. “내가 나를 모르는데/ 넌들 나를 알겠느냐”라는 어느 유향가 가사에 “그러나 외부시스템은 안다”라는 반전이 보태지는 격이다. 자율적인 자아가 박탈된다는 얘기다.

이런 데이터 식민주의에 저항하기 위해 저자들은 대안 플랫폼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디지털 시스템이 어떻게 작동하지를 이해하기 위한 미디어 리터러시가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천연자원으로 데이터를 바라보는 근저의 이데올로기에 도전해야 함을 지적한다. 진정한 다원주의, 새로운 형태의 사회관계, 연대와 진정한 연결을 위한 - 양화한 데이터 시스템 외부에 있는 - 새로운 공간을 허용하는 새로운 세계관이 필요하다고 주장한다.

대인치고는 꽤 추상적이다. 이보다는 좀 더 미시적이고 분석적인 접근이 필요해 보인다. 개인의 심리를 예측하고 타기팅하는 데이터 식민주의 시대에 사생활에 접근하는 각도를 근본적으로 바꿔주는 것이다. 누가 어떤 종류의 데이터를 수집하고, 이 데이터가 어떻게 이용되느냐는 문제를 넘어서야 한다는 것이다. 철학자 헬렌 니센바움이 ‘맥락적 통합성’ 개념으로 발전시킨 것처럼, 이용자가 애초 동의한 것과는 다른 목적의 맥락에서 데이터가 이용될 때 사생활은 침해된다는 방식으로 말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맥락이라는 얘기다. 개인 데이터가 어떻게 이용되고 있고, 무엇을 위해 이용되고 있는가가 핵심이다.

이렇게 접근하면 미시적이고 유용한 대안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글로벌 쟁점으로 부각한 것처럼 데이터를 이용한 심리 타기팅을 정치광고에 이용하는 것을 금지하는 것과 같은 직접규제다. 다른 하나는 데이터가 특정한 목적을 위해 이용되기를 원하지 않을 때 특정한 조건을 ‘옵아웃’(opt-out)하는 게 아니라, 이용자가 자신의 데이터가 이용되기를 원할 경우 ‘옵인’(opt-in)하는 방식을 이용자의 동의의 기본으로 만드는 것이다. 예를 들어 제3자에게 자신의 데이터를 제공하는 데 대한 동의가 서비스 이용의 기본이 되는 게 아니도록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디지털 기기로 “연결”하는 기회를 충족시키는 편의성이 결코 공짜가 아님을 ‘데이터 식민주의’라는 유용한 개념으로 포착한다. ‘내가 나를 모른다고 외부 시스템이 나를 더 잘 안다’는 식의 이데올로기에 빠지지 않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관련 산업 활성화를 위해 데이터3법을 일단 통과시켜야 한다고 주장하는 집권여당의 공세가 거센 현 상황을 좀 더 근본적으로 따져봐야 할 필요성을 제시하는 책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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