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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락한 도매시장법인 독과점, 생산자․소비자 모두에게 마이너스
안락한 도매시장법인 독과점, 생산자․소비자 모두에게 마이너스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19.12.19 11:18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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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늬만 ‘공영’인 가락농산물종합도매시장
‘도농통합 도매인’(시장도매인) 활성화로 경쟁체제 도입해야

농산물이 각 가정의 소비자의 식탁에 오르는 경로는 매우 다양하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식탁에 오르는 게 아니라 소비자의 입으로 들어가는 경로라고 하는 게 맞다. 이전에는 농산물을 구입해 집에서 요리를 해서 먹는 비중이 압도적이었다. 1990년 전체 식료품 소비에서 이렇게 집에서 요리를 거쳐 식탁에 오르는 비중이 61.5%나 됐다. 하지만 1인가구가 거의 30%(585만가구)에 육박하고 고령화․저출산이 겹치면서 전체 식료품 소비에서 외식과 간편식의 비중이 급속히 커졌다. 1990년 각각 15.4%, 23.0%에서 2016년 17.8%, 49.4%로 증가했다. 대신에 집에서 요리를 거치는 식료품 비중은 32.8%로 쪼그라들었다.

수입농산물을 빼고 2018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품목 34개 생산량의 59.3%가 가락농산물시장을 포함해 전국 32개의 공영(公營)도매시장을 거치고 있다. 1, 2위인 가락농수산물종합도매시장과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은 거래량 기준으로 각각 32.3%, 8.3%로 전체의 41.1%를 차지한다. 거래금액 기준으로도 5조2670억원으로 전체의 43.8%에 이른다. 34개 품목에는 5대 채소(배추, 무, 마늘, 고추, 양파)와 6대 과일(사과, 배, 복숭아, 포도, 감귤, 단감)을 포함해 계란, 양배추, 파, 당근, 시금치, 상추, 호박, 가지, 오이, 버섯, 토마토, 고구마, 감자, 콩, 장미, 유자, 수박, 오렌지, 바나나, 참외, 메론, 자두 등이다. 사실상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접하는 거의 모든 농산물이 포함된다고 보면 된다. 우리 입으로 들어오는 주요 농산물 둘 중 하나는 이른바 ‘공영도매시장’을 거치고 있는 셈이다.

이렇게 중요한 위치에 자리하는 ‘공영도매시장’의 기능과 역할은 무엇일까? ‘공영’(公營)이라는 말까지 붙었으니, 공적 기능과 책임을 다하고 공공성(公共性)을 발휘하고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갖게 한다. 가락시장과 강서시장을 관리하는 기관인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는 “공영도매시장이란 농수축산물의 도매거래를 위해 중앙과 지방정부의 공공투자에 의해 지방자치단체가 개설한 시장”으로 정의한다. 근거는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농안법)’이다. 이 공영도매시장을 관리하는 공사의 책무는 농안법 제1조에 따라 “농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의 안정에 이바지함”이다. 이를 달성하는 핵심 수단은‘경매제’(auction)다.

요건으로만 보면, ‘공영’의 조건을 갖췄다. 어떤 제도가 ‘공영(공영)’이라고 하면, 이 제도를 구성하는 주체가 공적인 소유형태를 갖추면서 별도의 책무(accountability)를 수행하거나, 제도 자체가 시장이 낳는 부작용을 완화하거나 제어하는 공공성(公共性)을 발휘하거나 해야 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한국방송(KBS)이나 한국교육방송(EBS)을 ‘공영방송’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공사(公社) 형태를 띠고 방송법에 따른 국가기간방송 책무(KBS), 한국교육방송공사법에 따른 ‘학교교육 보완, 국민의 평생교육과 민주적 교육발전’이란 책무를 수행하기 때문이다(이런 활동을 위한 재원의 일부로 국민의 수신료를 지급한다).

결국 현재의 공영도매시장 체제의 핵심적인 공적 기능과 책무는 ‘농수산물 유통의 원활화와 수급조절을 통한 적정한 가격 유지’다. 이것이 돼야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 보호, 나아가 국민생활의 안정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문제는 1985년 공영도매시장 체제가 들어선 이후 이 공적 기능과 책무가 점점 더 잔여적인 범주로 전락하고 있다는 데 있다. 근저에 공적 기능과 책무를 달성하는 수단으로 도입된 경매제가 경매를 담당하는 도매시장법인들의 매출만을 편안하게 보장하는 안락한 ‘독과점 체제’로 변질돼 버린 사정이 크게 작용하고 있어서다. 생산자에 적정가격을 보장하지도, 수급조절 기능을 수행하지도 못하면서 경매를 통한 위탁수수료만을 도매시장법인들이 챙기고 있다는 얘기다.

생산자에 농산물 하역비용 떠넘기다 과징금 116억 철퇴

가락시장의 예를 통해 경매제에 기초한 안락한 ‘독과점 체제’에 따른 문제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서울 동남쪽 송파구에 자리한 가락시장은 543,451m2(약 16만 4천평) 규모다. 날마다 3300대의 차량이 들락거리고 일하는 사람은 2만명이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거래량이나 거래금액 기준으로 국내 부동의 1위다. 가락시장에는 5개의 도매시장법인이 있다. 이들이 우리가 매일 먹는 34개 품목의 채소와 과일을 독점 거래한다. 생산자단체나 포전거래(밭떼기)를 하는 산지유통인 등 생산자로부터 농산물을 수집하는 포집인들이 가락시장으로 농산물을 출하하고 도매시장법인에 의무적으로 경매를 위탁한다. 5개 도매시장법인들은 1곳당 40명 안팎의 경매사를 직접 고용해 이렇게 출하되는 농산물에 대한 경매를 진행한다.

경매 과정에서는 각종 비용과 수수료가 발생한다. 농산물 가격을 높이는 요인으로 자연스레 작용함은 물론이다. 경매를 통해 낙찰받는 이들은 도매상인에 해당하는 ‘중도매인’이다. 중도매인은 낙찰받은 농산물에 10~15%의 마진을 얹어 소매상(트럭상인, 소매점주 등)에게 넘긴다. 낙찰받은 농산물을 소매상에게 전달하기 위해 다시 트럭에 싣는 상차비용은 중도매인이 부담한다. 중도매인은 이 비용까지 감안해 마진율을 설정한다.

수입농산물을 빼고 2018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품목 34개 생산량의 59.3%가 가락농산물시장을 포함해 전국 32개의 공영(公營)도매시장을 거치고 있다. 사진=서울시농수산삭품공사
수입농산물을 빼고 2018년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농산물 품목 34개 생산량의 59.3%가 가락농산물시장을 포함해 전국 32개의 공영(公營)도매시장을 거치고 있다. 사진=서울시농수산삭품공사

도매시장법인은 낙찰 경매액의 4%를 위탁수수료 명목으로 뗀다. 지난해 이들 5개 법인의 매출액은 1668억원이었는데, 경매액 4조2200억원에 4%를 곱한 액수와 정확히 일치한다. 가락시장에 농산물을 출하할 때 발생하는 하차비용은 2000년 1월부터 출하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표준규격품은 도매시장법인들이 부담하는 방식으로 바뀌었다. 하지만 도매법인들은 담함을 통해 2002년 4월부터 위탁수수료에 포함시키는 방식으로 출하자에게 떠넘겨오다 지난해 6월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돼 과징금 116억원의 처분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7년 동안 도매시장법인이 경매금액에서 뗀 실제 위탁수수료는 4%가 아니라 5%에 육박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도매시장법인은 가락시장에 입주해 막대한 공간을 사용하면서도 임대료는 한 푼도 내지 않는 특혜를 받고 있다. 사용공간을 축소해 상업공간으로 활용할 여지가 있음에도,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의 이런 요구에는 모르쇠로 일관한다.

도매시장법인 영업이익률, 삼성전자 안 부럽다!

지난해 이들 가락시장 도매시장법인들의 매출액 영업이익률은 17.9%나 됐다. 2013~2017년까지 영업이익률은 16.7%였다. 지난해 상장사 영업이익률 8.32%를 훌쩍 웃돈다. 삼성전자 22.4%(2018년)를 빼곤 국내 기업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이렇게 높은 이익을 내기 위해 도매시장법인들이 특별한 노력을 기울이는 것도 아니다. 들어오는 상품만을 취급할 뿐이다. 산지의 작황이나 품질 등 수급동향을 파악할 별다른 유인이 없다. 대형마트와 같은 유통업체들은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을 찾으러 산지를 돌아다니며 구매하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지난해 직접 생산자인 농민의 생산량을 100이라고 치면 생산자단체들은 이 중 38.3을 수집했고, 생산자단체들이 수집한 것의 3분의 1을 대형 유통업체들이 구매했다. 생산자단체들을 직접 만나 품질을 따지고 가격을 협상하면서 양질의 농산물을 구매한 것이다.

쉽게 말하면, 가급적 양질의 농산물을 수집해 출하하는 것은 도매시장법인의 관심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런 측면에서 도매시장법인의 위탁수수료는 ‘경쟁력의 대가’라기보다는 법이 울타리를 쳐서 보장해주는 ‘지대’(rent)를 기본 성격으로 갖는다. 주변에 전철역이 들어서고 교통 인프라가 개선돼 올라간 땅값에 땅주인이 아무런 기여도 하지 않은 것과 같은 맥락이라고 볼 수 있다. 물론 중도매인의 경우 도매상인으로서 산지의 작황과 품질 동향, 생산자가 기대하는 가격 등에 일정한 이해관계를 가질 수 있다. 낙찰받는 농산물의 품질이 일단은 좋아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농산물의 수집과 분배가 엄격히 분리돼 있는 도매시장법인 체제 아래에서 중도매상이 산지와 긴밀히 소통하며 생산량과 품질 등을 꾸준히 추적하는 것은 가외의 일이다. 가락시장의 중도매인 1700여명 중 도매시장법인 한 곳과만 거래하는 전속거래 비중이 84%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안정적으로 일정한 물량을 할당받기에 전속거래가 그나마 가장 안전하다는 측면이 크다. 1994년 11월 중도매인이 여러 개의 도매시장법인의 경매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는 개선에도, 25년이 넘도록 사정은 달라지지 않고 있다.

줄어드는 생산자 몫, 증가 일로의 도매유통비용

소비자 측면에서 보면, 현재의 경매제에 기초한 도매시장법인 체제는 소비자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결과를 낳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에 발간하는 ‘주요 농산물 유통실태’를 보면, 소비자가 지급하는 가격을 100으로 놓고 볼 때, 생산자에게 돌아가는 생산자 수취몫은 2011년 58.2였다. 나머지가 단계별 유통비용인데 출하 10.0, 도매 8.6, 소매 23.2를 차지했다. 하지만 2017년 생산자 수취몫은 55.6으로 줄었고, 유통비용은 44.4로 증가했다. 문제는 유통비용 중 출하․소매 단계 비용은 각각 8.8, 22.7로 줄어든 반면, 도매 단계 유통비용만 12.9로 상승했다는 점이다. 지난 6년새 생산자 수취몫은 줄고 출하․소매 단계 유통비용은 줄면서 도매시장법인이 상장하는 도매 단계 유통비용만 크게 증가했다는 얘기다. 그만큼 소비자 부담이 커졌다는 뜻이다. 실제로 일부 중도매인들로부터도 “농민들이 산지에서 가격을 이미 정한 농산물도 경매를 통해 가격을 올린다”는 폭로가 나오는 실정이다.

여기서도 알 수 있듯이 경매제에 기초한 도매시장법인 체제는 농산물 제값받기를 통해 생산자의 이익에도 충분히 기여하고 있지 못하다. 가장 큰 불만은 가격변동성이다.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2017년 연구보고서 ‘농산물 유통체계의 국제비교분석과 유통정책 개선방향’을 보면, 생산자가 도매시장법인이 자리한 도매시장을 기피하고 다른 경로로 출하하려는 가장 큰 이유로 31.9%가 ‘가격 변동성으로 인한 위험부담 상승’을 꼽았다. 경매제는 품질에 의해 가격이 결정되는 구조가 아니라 그때그때 출하물량 등의 요인이 좌우하는 경우가 많아 동일한 품질의 농산물에 대해 크게 변동되는 가격이 설정되는 것에 대한 불만인 것이다.

대형 유통업체들이 도매시장을 기피하고 생산자단체들을 통해 구매 계약을 체결하려는 움직임을 강화하는 이유를 살펴보면, 들어오는 상품만을 취급하는 도매시장법인 체제의 약점을 엿볼 수 있다. 앞의 한국농촌경제연구원의 연구보고서에서 대형 유통업체들은 도매시장을 통한 농산물 구매를 꺼리는 최대 요인으로 품질 균일화 미흡(39.8%), 가격의 불안정성(15.3)을 꼽았다.

‘평균의 법칙’ 통한 안락한 매출증가…도매시장법인 사고팔기와 막대한 매각차익

문제는 도매시장법인들의 경우 생산자들의 이런 불만에 관심을 가질 이유가 없다는 점이다. 이들 법인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안정적인 매출, 즉 경매가격의 4%를 떼는 위탁수수료가 안정적인 매출을 보장하는 것이다. 동일한 품목에 경매가격이 크게 차이가 난다고 해도 이들 법인의 매출은 평균의 법칙을 따를 수 있다. 경매가격 평균 수준이 지난해와 같거나 아니면 높기만 하면 매출을 유지하거나 늘릴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각자가 다른 생산자들은 사정이 다르다. 오이 1킬로그램의 제값이 100원이라고 할 때 75원을 받은 생산자와 125원을 받은 생산자에게 평균의 법칙을 적용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는 유통의 원활화와 수급 조정의 실패, 적정한 가격 유지의 실패를 뜻하는 것일 뿐이다. 결국, 경매제에 기초한 도매시장법인 체제는 ‘농수산물 유통의 원활화와 수급조절을 통한 적정한 가격 유지’라는 공적 기능과 책무를 충분히 실현하고 있지 못하는 셈이 된다.

공적 기능과 책무의 수행이 주변화하면서 순수 사적 기업들로 이뤄진 도매시장법인들이 법으로 쳐준 울타리 안에서 지대를 획득하는 안락한 독과점을 매개로 벌이는 투자게임과 이익 추구 행태만이 도드라진다. 예를 들어 보자. 가락시장 5개 도매시장법인의 하나인 동화청과는 2010년 12월 동부한농이 280억원에 인수하여 2015년 4월 사모펀드 칸서스네오 1호에 양도차익 260억원을 남기고 매각했고, 이 사모펀드는 불과 1년만인 2016년 4월 한일시멘트 자회사인 서울랜드에 양도차액 47억원을 남기고 매각했다.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서울랜드는 올해 5월 184억원의 이익을 남기고 신라교역에 771억원에 팔아치웠다. 무, 배추 등 7개 품목만 취급하는 대아청과 역시 금년 9월에 호반건설에 564억원에 매각됐다.

나머지 4개 법인의 소유구조를 살펴봐도 마찬가지다. 중앙청과는 아모레퍼시픽 서경배 회장의 친형이자, 방우영 전 조선일보명예회장의 딸과 결혼한 서영배 태평양개발회장이 60%, 태평양개발이 40%를 소유하고 있다. 서울청과는 제강업을 전문으로 해온 고려제강이 100%를 가지고 있다. 동화청과는 신라교역이 99.86%, 한국청과는 더코리아홀딩스라는 사모펀드가 95.83%를 소유하고 있다. 대아청과는 호반프라퍼티와 호반건설이 100%소유하고 있다. 터 도매시장법인들이 농산물 유통과는 거리가 먼 대기업들과 자산투자회사들의 영리 추구의 무대가 된 셈이다. 이대로라면 이른바 ‘공영도매시장’의 사실상 유일한 플레이어인 도매시장법인이 사모펀드들의 놀이터가 될 날이 머지않았다는 얘기가 결코 빈말은 아니다.

이제 도농통합 도매인제 확대로 ‘메기’를 방출해야 할 때

생산자단체와 학계, 그리고 ‘공영도매시장’을 관리하는 서울특별시농수산식품공사를 중심으로 ‘메기’를 풀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는 배경이 바로 여기에 있다. 비록 이번에 통과되지는 못했지만 국회에 이런 내용을 담은 농안법 개정안이 상정되기도 했다. 핵심은 기존에 도입돼 있는 ‘시장도매인’ 제도를 활성화해 공영도매시장에 실질적인 경쟁체제를 구축하자는 것이다. 관건은 부동의 1위 공영도매시장인 가락시장에 도입하는 것을 시작으로 공영도매시장 전체로 넓히는 것이다. 농산물의 경우 지금은 2004년 6월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도입된 시장도매인 제도가 유일하다.

시장도매인제는 출하자로부터 상품을 직접 수탁해 대형매장이나 소매상 등에 판매하는 방식이다. 경매제를 통한 도매시장법인을 거치지 않고 농민과 도매상이 직접 연결된다는 얘기다. 그러려면 시장도매인은 산지의 생산자와 지속적인 관계 형성을 통해 작황과 품질 동향, 생산자의 기대가격 등을 추적하고 데이터와 정보를 구축해야 한다. 공급 과잉이 예상되면 출하시기를 늦추고, 공급이 부족하면 출하시기를 앞당기는 기능도 한층 수월해진다. 생산자에게는 가격변동의 위험을 줄여주고 적정한 가격을 보장할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소매유통단계가 그대로라고 해도 도매유통단계가 줄어드니 소비자의 입으로 가는 농산물의 가격이 낮아질 가능성이 생긴다. 아울러 그동안 지대에 안주하던 도매시장법인에게는 ‘메기’로서 채찍질을 하는 효과를 낳는다. 도매시장법인 내 중도매인들이 전속거래에서 벗어나 시장도매인으로 전환하는 상황도 예상해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시장도매인은 산지에서 이뤄지는 농산물의 수집과, 주로 도시에서 이뤄지는 농산물의 유통 기능에 차단막을 치는 현행 경매제와 견줘 ‘도농통합형 도매인’제도라는 평가도 가능하다.

시장도매인제 활성화에 반대하는 쪽에서는 1985년 공영도매시장 체제 도입 이전에 있는 위탁상 제도로 퇴행하는 것이라고 비판한다. 하지만 이는 상당히 무리하고 설득력이 없는 비난의 성격이 강하다. 예전의 위탁상은 농민들이 맡긴 농산물을 판매해 나중에 농민들에게 정산해주는 것이다. 그러나 생산자들이 판매가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 위탁상이 얼마에 팔았다고 말하면, 일단 믿고 봐야 하는 성경의 말씀이었다. 나중에 결제를 하다 보니 한 달 뒤 어음으로 주는 일도 비일비재했고, 돈을 떼이는 생산자들도 많았다. 1985년 경매제에 기초해 도입한 도매시장법인 체제는 대금의 정산, 기준가격 형성을 통해 거래의 불투명성을 개선하는 성과를 거뒀다. 여전히 가락시장의 도매시장 독과점 체제를 고수하며 경매제를 유지하자는 쪽에서 공적 기능과 공적 책무를 내세우는 근거를 여전히 여기서 찾는다. 하지만 이는 흘러간 유행가의 성격이 강하다.

가락시장 안에 있는 청과도매시장 모습. 사진=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가락시장 안에 있는 청과도매시장 모습. 사진=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시장도매인제, 출하자 선택권 높아지고 체류시간 대폭 단축…가격 등락 안정적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도입된 시장도매인은 예전의 위탁상과는 결이 매우 다르다. 무엇보다 가장 근본적으로는 공영도매시장 체제 안에 있는 하위제도라는 점이다. 생산자에 대한 대금 정산은 2016년 설립된 (사)한국시장도매인정산조합의 통합정산시스템을 통해 하루 이내에 이뤄진다. 정산에 걸리는 평균 시간은 0.33(입하일 기준 1.75일, 판매일 0.29일)일밖에 안 된다. 정산법인은 60개 시장도매인 법인들이 140억원을 모아 설립했다.

생산자에게서 사들이는 구매가격에 7% 안팎의 마진을 얹게 돼 있는 점도 무시할 수 없는 부분이다. 경매제의 유통비용(경매가격의 14~19%, 도매시장법인의 위탁수수료 4%, 중도매인의 마진율 10~15%)과 비교하면, 시장도매인제는 도매유통비용을 상당히 줄일 수 있는 여지를 구조적으로 갖는 것이다.

거래의 블투명성도 옛말에 가깝다. 2015년 8월부터는 시장도매인이 반입한 물량을 신고시점부터 실시간으로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홈페이지(www.garak.co.kr)에 공개되고 있다. 실시간 판매정보, 품목별 가격, 분석가격을 검색할 수 있다. 소비자로서는 시장도매인과 생산자가 짬짜미를 통해 제값보다 높게 설정하는 담합 가능성을 의심할 수 있지만, 그러기엔 60개에 이르는 시장도매인 법인 간 경쟁이 치열하다. 상품을 짬짜미를 통해 더 비싸게 구매하는 행위는 더 좋은 품질의 동일한 품목을 더 싸게 구매하는 사례가 언제든 발생할 수 있기에 시도하기가 어렵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의 사례를 보면, 시장도매인제는 생산자에게는 가격안정성을 보장하고 유통업체에는 균질한 품질의 상품을 제공하는 데서 경매 제도보다 훨씬 더 후한 점수를 받고 있다. 올해 6월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가 발간한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운영성과 분석과 발전전략’을 보면, 유통․가격 측면에서 물량기준 상위 11개 상장품목 18개 규격을 2015~2018년 비교했더니, 가격변동성이 가장 낮은 규격은 시장도매인제 10개·가락경매제 5개·강서경매제 3개로 나타났다. 출하자 수취가가 가장 높았던 규격은 시장도매인제 12개·가락경매제 6개·강서경매제 0개였다. 가격 변동성이 낮은 규격은 감귤(5㎏), 수박(8㎏), 사과(10㎏), 사과(15㎏), 복숭아(10㎏), 단감(10㎏) 등이다.

물류․기능 측면에서도 시장도매인제가 앞섰다. 출하자의 도매시장 체류 시간이 경매제는 3.5~9.5시간인 반면, 시장도매인제는 최대 2시간이었다. 교통체증과 차량 공회전 등으로 인한 비용을 빼더라도 가락·강서시장 경매제는 연간 710억원의 사회적 비용을 추가 발생시키고 있다고 연구보고서는 지적하고 있다. 상자 등으로 포장해 출하하는 것을 뜻하는 팰릿 출하율도 시장도매인제는 51.3%로 가락시장 경매제의 2배나 됐다. 팰릿 출하는 신속한 상․하차 등 물류를 개선하는 효과를 낳는다.

시장도매인를 통한 거래만족도도 높게 나타났다. 올해 5월2~31일 출하자 504명, 청과전문도소매업체와 재래시장, 중소형 마트 등 구매자 508명, 시장도매인 48명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설문조사에서, 거래만족도가 2015년 29.5%에서 74.2%로 급등한 것이다. 시장도매인제가 경매제에 대해 거래 선택권을 높이는 데 ‘기여하고 있다’고 응답한 출하자 비중도 47.9%에서 60.6%로 높아졌다. 시장도매인제 아래에서 가격 등락 정도가 안정적이다는 응답자도 출하자는 44.5%에서 76.7%로, 구매자는 48.8%에서 64.4%로 높아졌다.

강서농산물도매시장에 도입된 경쟁체제 속에 경매제를 통한 거래물량과 금액은 2005년 204t, 1920억원에서 2018년 262t, 3804억원으로 각각 28.4%, 98.1% 증가했다. 반면 시장도매인제를 통한 거래물량과 금액은 같은 기간 동안 265t, 2650억원에서 341t, 6620억원으로 28.7%, 149.8% 증가했다. 생산자와 구매자의 선택이 경매제를 훨씬 앞선 것이다.

공영도매시장 거래실적 추이

자료 :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운영성과 분석과 발전전략’
자료 : ‘강서농산물도매시장 시장도매인제 운영성과 분석과 발전전략’

도매시장 자체 더 쪼그라뜨리기 전 앙샹레짐 벗어던져야

시장도매인제를 예전의 위탁상에 빗대는 것은 ‘같은 강물에 발을 담글 수 있다’는 식의 비난에 가깝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물론, 시장도매인의 실시간 판매정보 공개내용을 다양화하고 공개하는 플랫폼을 확대하는 노력 등은 여전히 필요하다. 하지만 ‘위탁상으로 퇴행’이라는 식의 낙인을 찍는 논거로는 턱없이 모자란다. 경매제가 도입된 일본에서도 도매시장에서 경매 비중은 갈수록 떨어져 지금은 10% 남짓에 불과하다. 무늬만 ‘공영’인 국내 농산물도매시장에 공공성을 강화시키기 위한 메기가 필요하다. 도농통합형 도매인 제도인 시장도매인제 확대․활성화는 그 첫걸음이다. 가락시장에 시장도매인제를 도입하는 열쇠를 쥐고 있는 농식품부는 도매시장법인과 중도매인 사이의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도입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농안법 제1조 “농수산물의 유통을 원활하게 하고 적정한 가격을 유지하게 함으로써 생산자와 소비자의 이익을 보호하고 국민생활의 안정에 이바지함”은 ‘장롱 운전면허’가 아니다. 모든 제도는 생성, 변화, 발전하기 마련이다. 변화․발전하지 못하면 기득권을 지키는 ‘앙샹레짐’(구체제)으로 전락한다는 역사적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아무리 행정적 오만으로 틀어막으려 해도 생산자와 소비자가 외면하는 ‘공영도매시장’은 도매시장 규모 자체를 쪼그라뜨리는 역효과만을 부를 것이라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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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거리 2019-12-20 13:25:08
합리적이고 빼어난 기사입니다. 공판업무를 부여한 후 무조건 공기관 취급하는 것은 독점부여에 다름아닙니다. 정체성에서 업자라면, 경쟁촉진이 답입니다. 독점적 지위의 경매회사 밑으로 즉, 고비용구조의 조건 하에 중소상인을 묶어 놓는 것은 넌센스입니다. 더우기 그들과 합의해 오라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