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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만리] 김정은의 신(新)등거리외교 셈법과 ‘새로운 길’
[천지만리] 김정은의 신(新)등거리외교 셈법과 ‘새로운 길’
  • 신봉섭 한림대 객원교수, 前 주선양 총영사
  • 승인 2019.12.30 19:0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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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신봉섭 객원교수]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권력승계 이후 6년이란 은둔과 단절의 기간을 거쳐 2018년 국제정치 무대에 화려하게 데뷔했다. 북한 비핵화 거래 건을 놓고는 큰 장이 섰다. 김정은의 입장 변화가 내부 권력 안정의 자신감에서 비롯된 자발적 동기이든, 아니면 UN안보리 경제 제재의 굴레를 벗어나기 위한 고육지책(苦肉之策)이든 한반도 정세에 큰 획을 긋는 대전환을 가져왔던 것은 분명하다. 그리고 2년이 지난 현 시점에서 김 위원장은 배수의 진을 치고 미국과 마지막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하노이 노딜 회담 이후 북한의 입장은 더 강경해지고 미국은 뾰족한 카드를 내지 못하는 상황에서 바야흐로 북미 협상은 최종 결렬의 수순을 밟고 있고, 북한은 이미 새로운 길을 향해 굳히기에 들어간 모습이다.

그런데 지난 2년간 북한이 보여준 외교 행보를 돌이켜 볼 때, 그 저변을 관통하는 큰 흐름은 오랜 전통의 등거리외교에 의거한 균형 전략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분석이 타당하다. ‘줄타기 외교’, ‘시계추 외교’, ‘벼랑 끝 외교등의 수사가 있지만, 이는 전술적인 행보에 초점을 맞춘 단선적인 평가라는 지적을 면키 어렵다. 외교적 행동양식을 지배하는 안보 전략적 관점에서 보면 북한의 목표는 결코 즉흥적이지 않고 일관되며 분명하다. 국가 외교의 최고 분위 전략목표는 생존과 발전이다.

그런 점에서 최근 김정은의 신() 외교에 드러난 등거리외교의 셈법은 무엇이며, 그 배경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지, 그리고 어떤 그림의 새로운 길을 가려는 것인지 하는 문제는 우리의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먼저 북한의 전통적인 등거리외교의 뿌리는 무엇이고, 어떻게 활용되어 왔는가?

북한은 등거리외교의 고수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등거리외교’(Equidistant diplomacy)란 어느 한 나라에 치우치지 않고 중립과 균형을 지향하는 외교정책을 말한다. 김일성 주석의 시기에는 소련과 중국을 사이에 두고 등거리외교의 재미를 톡톡히 누렸다. 소련이 6·25전쟁 차입금을 50% 탕감하고 화력발전소와 정유공장을 지어주면, 중국은 뒤질세라 전쟁 차관 전액 감면에 복구 지원금(8억위안)을 추가하고 고무타이어공장까지 건설해 주는 식이었다. 북한은 일방과 밀착관계를 유지하면서도 다른 일방을 소외시키지 않는 교묘한 전략을 구사했던 것이다. 196176일 모스크바에서 소련과 상호원조조약을 체결한 김일성은 곧바로 베이징을 찾아 711일 중국과 거의 똑같은 우호원조조약을 맺었다. 이른바 북방 3각 동맹의 뿌리다. 안전보장 뿐만 아니라 최대의 경제이익을 돈 안들이고 취할 수 있었던 것은 분명 뛰어난 행보임에 틀림없다. 시기적으로는 중국 경사 기간이 길었지만, 질적인 측면에서는 소련과 밀착 기간에 협력이 더 강력했다고 할 수 있다.

등거리외교는 본래 대상국 사이의 반목과 갈등에 편승하여 이익을 취한다. 김일성의 등거리외교는 중-소 양국 간 이념 분쟁과 영토문제 갈등 때문에 가능했다. 1994년 권력을 승계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등거리외교를 펼 기회를 아예 갖지 못했다. 탈냉전과 함께 중국 및 러시아가 서방과 수교를 한 데다, 특히 중국이 미국과 전략적 제휴를 맺고 있었기 때문이다. 중국과 러시아를 번갈아 방문했던 김정일 위원장은 러시아로부터 얻을 것이 없음을 확인하고 결국 2012년 황금평과 나선지구 공동개발에 합의하는 등 중국 의존정책으로 회귀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런 점에서 김일성의 성과는 온전히 등거리외교를 잘해서 얻어낸 결과라기 보다는 냉전의 이데올로기 대립과 영향력 경쟁이라는 시대 환경 때문에 가능했다고 할 수 있다. 시대적 갈등구조를 잘 포착하여 편승한 점은 물론 뛰어난 외교적 선택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전략의 성공은 시대적 산물이다. 그 시대에 성공한 전략이 다른 상황에도 똑같이 적용되지는 않는다. 북한이 -소 양측의 경쟁을 유도하여 경제적군사적 지원을 이끌어 낼 수 있었지만, 그 때부터 본격화한 주체 노선은 오늘날 국제사회에서 고립의 길을 걷게 하는 뿌리가 되었음도 부인하기 어렵다.

둘째, 김정은 위원장의 국제무대 등장과정에서 북한이 보여준 전략 변화의 배경과 새로운 등거리외교의 행태는 어떤가?

김정은 시기에 들어와서 북한은 등거리외교 대상을 중국과 러시아가 아니라, 중국과 미국으로 바꿨다. -중 간 전략적 경쟁이 북한에게 편승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했다. 2018년 이후 북미 비핵화 협상은 곧 북한이 외교안보의 중심축을 교체하는 실험장인 셈이다. 경제무역 의존도가 90%를 넘는 중국으로부터의 영향권에서 벗어나 미국과의 관계 개선을 추진하려는 전략적 동인은 과거 중-소 사이에서 등거리외교를 구사했던 프레임에 비추어 충분한 이유와 타당성이 있다.

UN안보리 대북제재가 최고조에 이르렀던 2017년을 거치면서 북한은 안전보장을 중국에 의탁하여 트럼프 행정부의 군사적 압박을 견뎌 내기란 절대 불가능하다는 점을 깨달았을 것이다. 궁극적인 생존과 발전은 UN제재의 키를 쥐고 있는 미국으로부터 보장을 받아야 하는 현실도 느꼈을 것이다. 이 점이 북한을 미국과의 협상에 나서도록 만든 핵심 이유다. 실제로 미국은 북한이 비핵화 결단을 하기만 하면 번영을 약속해 주겠다고 강조한다. 미국 주도의 질서에 들어오라는 뜻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전부가 아니라는 데 있다. 미국 주도의 질서에 편입하려면 자유와 인권, 시장경제라고 하는 가치체계를 수용해야 한다. 북한이 체제 안전을 온전히 미국에 의탁하기 어려운 한계가 바로 여기에 있다.

북한의 입장에서는 중국의 도움도 꼭 필요하다. 비핵화 초기 단계와 상응조치가 합의될 때까지는 중국이 한반도 프로세스에 관여할 공간이 크지 않지만, 유엔 제재 해제와 체제안전 보장 부분에서는 중국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북미 정상회담 전후에 북한이 중국과 긴밀히 소통을 유지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남북관계와 북미협상에서 체제안전 보장에 대한 확신을 얻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과 미국 사이에서 새로운 등거리외교의 포맷을 선택한 것이다.

실제로 그동안 김정은의 외교 행보와 비핵화 협상 과정에서 선보인 전략은 () 등거리외교라고 할 만하다. 지난해 싱가포르 북-미 정상회담을 전후하여 3차례 방중은 물론, 금년 초에는 하노이 정상회담에 앞서 중국을 재차 방문하여 양국 간 긴밀한 우의와 중국의 변함없는 지지를 재확인했다. 미국과의 협상에서 중국을 지렛대로 삼아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의도이자, 후방인 중국의 지원을 확보하기 위한 안전망 구축 포석이다. 또한 금년 4 12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자력갱생 포스트 하노이노선으로 내세운 이후에는 반미 국가와 연대 움직임을 강화하고 있다. 미국에 일방적으로 끌려가지 않기 위해 외교 공간을 확보하고 장기전 대비하려는 움직임으로 해석된다. 10월초 스톨홀름 실무협상이 결렬된 이후에는 김정은식 외교가 다른 전환점으로 향하는 흐름이다.

하지만 김정은이 미-중 사이에서 줄타기를 할 수 있는 것은 미중 무역갈등과 패권경쟁의 점화라는 외풍이 작용한 결과라는 점도 인정해야 한다. 미중관계가 양호할 때는 북중관계가 소원해지는 반면, 미중 갈등이 높아지면 북중관계는 밀착되는 경향이 있다. 미중 갈등이 더욱 격화되면 등거리외교의 공간은 넓어지고 전략적 실익이 커질 수 있다. 그 반대의 경우도 물론 가능하다. 미중 갈등이 완화되면 북한의 입지는 줄어들 것이다.

셋째, 김정은식 등거리외교에 내장된 셈법과 그 효용성 내지 한계점은 무엇인가?

북한으로서는 미국과의 관계개선이 절실하다. 그래서 비핵화를 무기로 북-미 정상회담을 성사시키고 한반도 긴장 정세의 극적인 전환을 스스로 만들었다. 하지만 안전보장의 해법은 그리 간단하지 않다. dnjf과거 북한이 중-소 사이에서 펼치던 등거리외교는 미국으로부터의 안보위협에 대한 균형과 함께 어느 일방의 간섭으로부터 정권 안전을 지키려는 삼중의 목적이 있었지만, 현재는 미-중 패권경쟁 하에서 양측으로부터 최고지도자 개인에 대한 신변 안전과 체제의 안정을 보장받으려는 이중의 동인이 중첩되어 있는 상황이다.

물론 현재 북한은 과거 중-소 갈등을 등거리외교에 잘 이용했던 것처럼, 미국과 중국의 패권경쟁 상황을 매우 전략적으로 이용하고 있다. -미 정상회담을 통해 미국과의 관계 정상화를 모색하지만, 그 지렛대를 이용하여 중국 및 러시아와의 관계도 역시 새롭게 정립하는 효과를 노린다. 가령, 다롄(大連) 회담은 판문점 선언에 대한 중국의 우려를 달래주는 한편, 미국과의 교섭에 지렛대를 확보하려는 수순이다. 단순한 양다리 걸치기라기 보다는 선제적인 전략적 입지 확보 방책이다. 싱가포르 정상회담을 계기로 남··3자 종전선언 가능성이 거론되었을 때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쪽은 중국이었다.

또한 미국 입장에서도 북한과의 관계개선은 필요하다. 중국을 견제하는 포위전략 측면에서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재평가될 법하다. 역사적으로 미국은 세계전략 차원에서 필요하면 언제든지 적성국과도 손을 잡았고, 관계정상화를 시도했던 경험이 있다. 견제와 균형을 주조로 하는 등거리외교의 특성을 고려하면 북한은 중국의 완충국가(buffer country)이지만, 안보환경 변화에 따라 미국의 우방인 친미국가가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북한의 입장에서는 비핵화와 관계정상화의 교환으로 미국과 평화협정을 맺는다고 해도 완전하고 불가역적인 체제보장을 담보할 수 있다는 확신이 없기 때문에 체제 안전에 관한 한 중국측에 이중의 보험을 가입해 둘 수밖에 없다. 나아가 중국을 통해 경제발전을 위한 지원 획득도 기약할 수 있다. 이러한 양다리 걸치기대응은 당연한 것이며, 전략적 측면에서 볼 때 바로 전형적인 등거리외교의 행태이다.

넷째, 그렇다면 북한이 예고하고 있는 새로운 길은 과연 어떤 그림일까?

새로운 길이란 이미 2019년 김정은 신년사에서 공언한 대안의 길이다. 미국이 강요와 압박을 계속할 경우 부득불 나라의 자주권과 국가의 최고 이익을 수호하고 조선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이룩하기 위한 새로운 길을 모색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지난 412일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도 연말까지 협상시한을 제시하면서 미국이 새로운 셈법을 들고 나오지 않을 경우 새로운 길을 가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이제 그 길을 가지 않을 수 없는 막다른 시점이 되었고, 김정은 신년사에서 그 실체가 드러날 것이다.

흔히 새로운 길과 관련 북한이 비핵화 협상 중단과 함께 과거의 무력 도발로 긴장을 고조시키는 노선으로 복귀를 예견하곤 한다. 하지만 새로운 길은 최소한 2가지 전략목표를 충족하는 방향이 돼야 할 것 같다. 즉 인민의 경제수준 향상을 담보하면서도 1인 중심의 권위주의 체제의 안정을 유지하는 것이다. 북한의 핵개발 정책은 대외 안보 균형을 확보하기 위한 수단이지만, 대내적으로 주민들에 대해 체제 안정의 권위를 확보하는 수단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정권의 정책적 우선순위에서 최 정점을 차지하는 목표는 바로 최고지도자 개인의 정치적 생존에 있으며, 이에 동조하는 지배연합 즉 기득권 계층과의 공동이익 관계망이 온전하게 존속될지 여부가 정권의 최대 관심사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제 사실상의 핵보유국지위를 확보한 김정은 정권이 다음 단계인 <경제발전+체제안정>의 두 마리 토끼를 잡으려는 장정을 시작할 것이란 예상을 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그동안 양덕 온천문화휴양지와 원산 갈마반도 관광지구, 삼지연 시범지구 건설을 흔들림없이 마무리할 수 있었던 자신감을 바탕으로 훨씬 공격적인 경제건설에 나설 수 있다. 그리고 장마당을 중심으로 확산되는 시장경제 부문에 대해서도 통제와 관리가 가능하다는 경험을 얻었다. 기존의 경제 병진노선2018경제건설 총력집중노선에서 한 발 더 나가야 비로소 새로운 길이라 할 수 있다.

구체적으로 제시되는 전문가의 견해는 3가지 시나리오로 대별된다. 첫째는 북한이 문을 걸어 닫고 자력갱생의 독자노선을 걷겠다며 2018년 신년사 이전으로 다시 복귀하는 그림이다. ICBM 개발과 핵실험 재개를 상정하는 안보위기 시나리오다. 둘째는 일단 북-미 협상의 중단 선언에도 불구하고 재선을 목표로 하는 트럼프 대통령이 과감한 협상에 나설 가능성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당장 ICBM 발사와 같은 고강도 도발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란 전망이다. 셋째는 대미외교 중점 노선에서 탈피, -러와의 외교적 유대를 강화하여 체제안전의 보험을 들어놓고 미국과의 팽팽한 줄다리기를 계속하는 그림을 상정한다. 하지만 이들 시나리오는 북한의 단편적인 행동계획을 전망하는데 그칠 뿐, 정권의 총체적인 전략과 정책노선을 예견하는 데는 미흡하다.

현재로서 북한의 새로운 길결행은 기정사실이다. 총론적으로는 비핵화가 더 이상 협상의 대상이 아님을 선언하고 독립자주노선으로 회귀, ‘자력 부강-자력 발전의 경제 방침과 자위적 국방력강화, 그리고 등거리 균형외교를 결합하여 병진하는 그림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나? 현재로서는 한반도 비핵화가 북한과 미국의 양자 문제로 치부되고 있지만, 궁극적으로 한반도 평화프로세스는 미중 간 전략경쟁과 밀착되어 있다. 우리로서는 미중 무역갈등이 장기화되고 양국간 충돌이 제도, 이념, 체제 영역의 패권경쟁으로 확대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부른 대응과 선택 보다는 긴 호흡으로 전략적 유연성을 발휘할 필요성이 커진 것이다. 우리의 치밀하고 장기적인 대응전략이 필요한 부분이다. ‘새로운 길에 대한 막연한 우려와 비관적 전망 보다는 현실 친화적인 결정을 통해 북한을 국제사회와 조화롭게 지내는 정상국가로 유도하는 작업이 필요한 시점이 아닐까? 아무튼 김정은의 새로운 길’, 분명 2020년 한반도 안보정세 변화를 읽는 키워드가 될 전망이다. [이코노미21]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지난 4월 27일 문재인 대통령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만나 악수를 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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