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팍스 아시아나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할 것인가?
  • 박이택 편집기획위원
  • 승인 2020.01.07 12:1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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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중무역전쟁으로 위안화 가치 상승보다는 하락할 가능성이 더 높아
미국 일극 체계에서 아시아 다극(팍스 아시아나) 체계로

<특집1 - 동북아경제질서 재편 – 미중무역전쟁 이후 세계경제 어디로 가나 2>

1월 2일 게재된 '미중무역전쟁 이후'에 이어지는 기사입니다. 이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량이 너무 많아 한번에 읽기에 부담된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두 번에 걸쳐 게재합니다. - 편집자 주

2) 팍스 재패니카의 시대는 올 것인가?

1950년대 일본은 한국전쟁을 계기로 고도경제 성장의 시대에 돌입했으며, 이후 일본의 경제발전을 가능케 할 지역적 분업체계의 구축을 시도하였는데, 동아시아 안행형태적 성장 체계의 형성에는 이와 같은 일본의 국제관계 형성 정책도 영향을 주었다.

안행형 발전형태론은 1930년대에 아카마츠 카나메(赤松 要)가 일본의 경제 성장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만든 이론으로, 한 나라의 산업구조 변화를 무역이 동반하는 기술이전과 결합하여 설명한 것이다. 즉, 한 나라의 산업은 ‘외국으로부터의 신상품의 수입에 의한 국내 수요의 증가 국면’ -> ‘국내 수요의 증가에 따른 국내 생산의 형성 국면’ -> ‘국내 생산의 증가와 생산성 향상에 따른 수출산업으로의 발전 국면’ 등을 거치며 발전한다는 것을 보였다. 아카마츠의 안행이론은 무역이 초래하는 기술이전 및 생산 거점의 이동 효과를 무역이론에 합체시킴으로써, 무역을 매개로 한 산업구조의 동태적 변화와 지역적 분업 관련의 역사적 형성 및 변형을 파악할 수 있게 했는데, 특히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동아시아 NIEs, ASEAN 및 중국의 성장 과정을 분석하는 데 유용했다.

그러나 현재 동아시아의 성장 지형의 변화를 고찰하는데, 아카마츠의 안행이론은 적합하지 않다. 안행형 발전형태론은 산업국가의 발전 순위의 보존 즉 발전 지역의 위계적 편성의 안정성을 모형 내에 합체하고 있어, 한국과 중국이 일본을 급격하게 추급(추격?)하는 것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바로 이와 같은 이유로 아오키 마사히코(靑木昌彦)는 2011년에 RIETI(경제산업연구소) 창립 10주년을 기념하여 발간한 RIETI Highlight 특별호에서 안행형태 패러다임 Ver 2.0을 제시하였다.

아오키는 일본 경제의 역사적 성장 과정을 분석하여, 경제 성장에 5개의 단계가 있음을 공식화하였는데, M 단계 – G 단계 – K 단계 – C 단계 – PD 단계가 그것이다. M 단계는 멜서스적 정체의 단계 즉 경제 성장이 일어나지 않은 단계이고, G 단계는 정부가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제도와 인프라스트럭처를 형성하여 근대적 산업이 발흥하는 단계이고, K 단계는 전통적 산업에서 근대적 산업으로 노동력이 이동하여 발생하는 구조적 보너스와 이와 거의 동시에 진행되는 출산율 변천에 따라 발생하는 인구 보너스(population dividend)에 의해 고도경제 성장이 진행되는 쿠즈네츠적 성장 단계이고, C 단계는 농업의 구성비가 줄어들고, 인구변천도 일단락되어 구조적 보너스와 인구 보너스는 거의 소진되지만, 근대적 산업의 혁신적 기업에 의한 생산성 향상으로 경제 성장이 이루어지는 단계이고, 마지막 PD 단계는 인구변천 이후의 단계로 저출산-고령화가 심화하여 인구 오너스(population onus)가 발생하여 국내 시장에 의존해서는 경제가 쇠퇴할 수밖에 없는 단계이다. 일본이 경험한 이 5단계는 한국과 중국도 거칠 것으로 본다.

아오키의 모형에 의하면 고도경제 성장은 지속할 수 없으며, 구조적 보너스와 인구 보너스가 소멸하면, 혁신적 기업이 선도하는 생산성 향상의 효과와 인구 오너스의 효과의 상대적 크기 의해 성장의 추이가 결정된다고 본다. 고도경제 성장 단계와 이후 성장의 감속 및 쇠퇴 단계를 포함함으로써 일본이 중국의 GDP를 추월하고, 다시 중국이 일본의 GDP를 추월한 역사적 경험을 설명할 수 있게 되었다.

또한, 인구 오너스가 발생하는 5단계에서는 국내 시장은 감소하기 때문에, 내수 시장에만 의존한 성장은 가능하지 않으므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필요가 있음도 보여주고 있다. 따라서 5단계에 진입한 나라는 구조적 보너스와 인구 보너스를 기반으로 고도성장을 하는 지역과의 분업 관련을 심화시키는 성장 전략을 추구하여야 하는데, 일본이 인도 태평양 전략을 추진하는 데에는 이와 같은 경제적 요인도 작용하고 있다. 인도 태평양 전략은 상대적으로 일본과의 산업적 경합이 심화하고 있으며, 구조적 보너스와 인구 보너스가 소멸하여 내수 시장의 성장 잠재력이 거의 사라지고 있는 한국 및 중국 대신에, 동남아-인도-아프리카라는 앞으로 성장하는 지역과의 지역적 분업을 강화하여 이 나라들의 내수 시장을 일본의 성장 동력으로 삼고자 하는 전략으로, 일본은 이제 한국과 중국을 하위 파트너로 포섭할 수 있는 팍스 재패니카를 더는 추구할 수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기도 하다.

3) 팍스 시니카의 시대는 올 것인가?

현재 우리는 팍스 재패니카의 시대가 아니라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더 그럴듯한 미래라 생각한다. 과연 중국은 미국의 중국 때리기를 버티고 팍스 시니카의 시대를 열 수 있을 것인가? 중국이 앞으로 20여 년 동안 연평균 5~6%의 성장을 지속할 수 있다고 한다면 20여 년 후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열릴 것이다. 그러나 중국이 앞으로 20여 년 동안 연평균 5~6%의 성장을 유지하지 못할 것이라고 보는 사람들이 많다. 그 이유는 기존의 높은 성장률이 대부분 구조적 보너스와 인구 보너스에 의한 것으로 혁신적인 기업이 선도하는 생산성 향상의 체계가 잘 정착하지 못했고, 조만간 인구 오너스의 시대가 도래하여 미부선로(未富先老: 아직 충분히 풍요롭게 되기 전에 고령화가 진행되어 소득수준이 낮은 단계에서 성장이 멈추는 현상)의 덫에 빠질 가능성이 크다고 보기 때문이다.

물론 중국이 미부선로의 덫에 걸리지 않고 팍스 시니카의 시대를 열 수도 있는데, 이를 위해서는 두 가지가 실현되지 않으면 안 된다. 첫째, 혁신적인 기업이 선도하는 생산성 향상의 체계를 갖추지 않으면 안 된다. 이를 위해서는 국유기업이 높은 이윤을 얻도록 정부가 지대를 재배분하는 체계를 넘어설 필요가 있다. 둘째, 현재 중국은 화웨이와 레노버를 제외하면 대부분의 거대 중국기업들은 국내 시장을 바탕으로 성장하고 있는데, 국내 시장에 의존한 성장 체계는 중국의 빠른 노령화를 고려할 때 지속할 수 없으므로, 해외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할 수 있는 중국기업들을 키우지 않으면 안 된다.

팍스 시니카의 시대는 도래하지 않을 것이라 예견하는 견해도 많지만, 팍스 시니카 시대의 도래를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 현재 중국은 첨단산업에 관한 기술 축적에 많은 투자를 하여 인공지능, 5G, 우주항공 등의 몇 가지 산업에서는 놀라운 성취를 거두고 있으며, 일대일로로 표현되는 바 중국이 성장할 수 있는 국제적 기반을 확충하려는 노력이 추진되고 있어, 새로운 성장 체계로 도약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이 팍스 시니카의 시대를 열게 될지,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중국의 경착륙으로 연결되고, 경착륙된 중국이 미부선로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시대를 걷게 될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열린다 해도 그것은 상당히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사진=AIIB
중국이 팍스 시니카의 시대를 열게 될지, 미국의 중국 때리기가 중국의 경착륙으로 연결되고, 경착륙된 중국이 미부선로의 덫에서 헤어나오지 못하면서 잃어버린 20년의 시대를 걷게 될지 아직은 잘 알 수 없지만, 팍스 시니카의 시대가 열린다 해도 그것은 상당히 먼 미래의 이야기이다. 사진=AIIB

4) 다극 지배체제를 가진 팍스 아시아나 시대를 어떻게 만들 것인가?

현재까지는 팍스 재패니카도 팍스 시니카로 그럴듯한 가능성은 아니다. 현재 분명한 것은 팍스 아시아나의 시대가 도래한다는 것이다. 동남아시아와 인도의 성장세가 굳건하고, 중국이 장기정체로 빠질 것이라 예단하기도 어려우므로, 세계 경제의 무게 중심이 아시아 쪽으로 빠르게 이동할 것이라는 점은 부정할 수 없다.

팍스 아시아나 시대의 도래를 전제로 한다면, 팍스 재패니카와 팍스 시니카에 대한 논의는 팍스 아시아나 시대에 아시아 내부에서의 패권 구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한 논의로 볼 수 있다. 팍스 재패니카와 팍스 시니카는 아시아 내부에 일극 구조가 형성될 것을 전제한 것인데, 과연 아시아에 일극 구조가 형성될 것인가? 잃어버린 20년과 별로 역동적이지 못한 아베노믹스 그리고 더 심화할 노령화와 인구감소 등을 생각할 때 일본이 아시아의 유일한 패권 국가가 되는 것을 생각하기 어렵고, 국내 시장 중심의 국유기업 체계라는 한계점과 미부선로의 덫을 생각할 때 중국이 아시아의 유일한 패권 국가가 된다고 해도 그것은 상당히 먼 후의 일이다. 현재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현실적인 팍스 아시아나의 구조는 중국, 일본, 인도, 아세안 그리고 한국도 각각 한 극을 차지하는 다극 체계라 생각되며, 그와 같은 다극 체계를 잘 설계하면 아시아 각국의 공동 번영을 지지하는 바람직한 체제가 될 수도 있다.

현재 세계 경제 지형의 변화는 미국 일극 체계에 입각한 글로벌라이제이션의 체계를 대신하여 팍스 아시아나 체계가 등장하는 것으로 정리할 수 있다. 팍스 아시아나 체계가 어떤 형태를 띨지 불확실한 점이 많지만, 아시아 각국이 공동번영할 수 있는 다극 지배체제를 구축하는 것이 바람직해 보이며, 한국은 경제 규모나 무역 규모, 역동적이며 경쟁력 있는 한국의 글로벌 기업 등을 참작할 때 한 극을 차지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팍스 아시아나 체계에서 한국이 한 극을 차지할 가능성은 분명히 있지만, 그것이 현실이 되도록 하기 위해서는 세계 경제의 지형을 설계하고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는 국제적 감각과 능력을 배양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이 그러한 국제적 감각과 능력을 갖춘 나라로 될 수 있을까?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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