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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베 정부에 한일관계는 평화헌법 개정의 종속변수②
아베 정부에 한일관계는 평화헌법 개정의 종속변수②
  • 조준상 선임기자
  • 승인 2020.01.31 16: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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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견제 위한 인도태평양 전략이 아베 정부의 나침반
역내 하위맹주 놓치지 않기 위한 필사의 몸부림

<특집3 – 동북아경제질서 재편 - 한일관계②>

이 기사는 월간지 ‘이코노미21’ 1월호에 게재된 글입니다. 기사량이 너무 많아 한번에 읽기에 부담된다는 독자들의 의견을 반영해 두 번에 걸쳐 게재합니다. 아베 정부에 한일관계는 평화헌법 개정의 종속변수①에 이어집니다. - 편집자 주

백색국가 제외 결정은 한국에 우방국 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것

[이코노미21 조준상 선임기자] 한일관계는 일본의 인도‧태평양 전략, 그 연장선에서 전후 헌법의 개정, 이를 통한 일본 사회의 재편이라는 맥락에 있다. 대통령은 지난 8월2일 일본의 백색국가 명단에서 한국을 제외한 일본 정부 결정에 대해 지난해 10월 징용공 관련 개인의 배상청구권을 인정한 대법원 판결에 대한 명백한 무역보복으로 성격을 규정했다. 이를 포함해 아베 정부는 양면전략을 취하고 있다고 보는 게 정확하다. 하나는 아베 정부는 증거가 있든 없든 일관되게 ‘한국의 허술한 물자관리'와 '우대에서 보통대우로 복귀’임을 주장해 왔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의 목표는 모두가 주지하듯이 ‘한국경제가 더 크지 못하도록 막겠다’는 것이다. 대통령도 진단했듯이 “우리 경제를 공격하고 우리 경제의 미래성장을 가로막아 타격을 가하겠다는 분명한 의도”가 있다.

다른 하나는 징용공 배상에 대한 불인정이다. 이 문제는 개인의 배상청구권이 봇물처럼 터지면 일본이 감당할 수 없을 것이라는 차원와 연결된다. 이 사안에 대해 한국과 ‘1+1’(일본기업+한국기업)이든 ‘1+1+1’(″+한국정부)이든 ‘1+1+1+1’(″+한국정부+일본정부)이든 어떤 형태로 귀결되든 한국 이외의 나라들과 재현될 가능성이 있다고 아베 정부가 보고 있다는 것이다. 곧 이 사안은 한국 정부를 넘어서는 문제다.

이들 두 사안은 지금은 섞여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엄연히 구분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게 맞다. 핵심은 우리가 징용공 문제에 대해 양보한다고 해도(양보할 수도 없지만) 일본이 백색국가 제외 결정을 원상복구한다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백색국가 제외 결정의 핵심은 한국에 우방국 대우를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따라서 지금까지 아베 정부 논리를 보면, 징용공 문제에 대해 한국이 양보하면 백색국가 제외 결정은 그거랑 상관없는 문제라는 식으로 나온다고 보는 게 맞다. 백색국가 제외 결정을 철회하면 한일군사정보호협정(지소미아) 종료 결정을 재고할 수 있다는 제안을 일축한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다만 관광업을 포함해 일본 경제에 대한 타격이 더 크다는 내부적인 불만이 커질 경우 한국이 세계무역기구 제소를 철회하면서 풀릴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 있다고 할 수 있다.

징용공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이라는 대전제에서 출발하는 게 맞다. 아베 정부가 이를 인정할 리 만무하다는 점에서 상당히 오랜 시간이 걸리는 문제다. 하지만 한일관계 재정립을 위해 피할 수도 없는 문제고, 대통령 말처럼 ‘언젠가 한 번 넘어야 할 산’이다. 인정을 전제로 징용공 문제는 ‘1+1+1’(일본기업+한국기업+한국정부) 또는 ‘1+1+1+1’(″+일본정부)로 풀어갈 수 있을 것이다.

일본의 ‘한국은 동맹의 약한 고리’ 선전에 적극 대응 필요

이와 함께, 한일관계의 외부환경을 조성하는 작업을 병행하는 게 필요하다. 아베 정부가 끊임없이 흘리는 노림수는 ‘한국이 동맹을 멀리하고 중국으로 쏠리고 있다’는 참주선동이다. 한국이 일종의 ‘동북아 안보의 약한 고리’라는 얘기다. 이런 식의 무책임한 주장을 꺼내지 못하게 만드는 내부적인 작업이 필요하다. 그 하나가 엘지유플러스 등 한국 통신기업들이 사용하는 화웨이 장비 보안에 대한 상징적인 작업을 취하는 것일 수 있다. 해당 업체들은 보안 우려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했다고 주장하지만, 중국과 기술전쟁을 벌이고 있는 미국이나 5G 네트워크 구축에서 화웨이 장비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한 일본은 이를 곧이곧대로 믿지 않는다.

이런 측면에서 필리핀 정부가 미국의 압력에도 화웨이 통신장비를 사용하기로 결정하며 취한 조처를 참고할 만하다. 필리핀 제3통신사인 ‘디토’는 차이나텔레콤이 40% 지분을 갖는 합작통신사인 민다나오이슬람텔레콤(미스라텔)를 설립했고, 이 합작통신사는 지난 9월11일 군부대와 군시설에 통신설비를 구축하는 내용의 양해각서를 필리핀군과 체결했다. 차이나텔레콤은 화웨이와 오랜 거래관계를 맺고 있기에 화웨이 통신장비가 사용됨은 물론이다. 보안 우려를 없애기 위해 필리핀 정부는 감청이나 데이터 탈취 등에 대비한 사이버 방첩 수단을 네트워크에 설치하기 위해 뉴욕에 소재한 미국 기업 ‘베린트 시스템’(Verint Systems Inc.)과 계약했다. 침입이나 데이터 전환이 있을 경우 필리핀 당국은 물론 베린트 시스템에도 경고가 들어가게 된다.

‘한국이 동맹의 약한 고리’라는 아베 정부의 작업을 무력화시키기 위해 이와 비슷한 사이버 보안 조처를 국내에서 취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군사안보 측면에서 미국과 동맹을 유지‧강화하면서 경제 안보 측면에서 특정국에 치우치지 않은 무역 다변화를 꾀하는 것은 한국이나 일본이나 유럽연합이나 마찬가지임을 지속적으로 강조하며 주의를 환기시킬 필요가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오사카 G20 정상회의 공식 환영식에서 아베 일본 총리와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정책브리핑

다른 하나는 동북아시아에 부는 국수주의적인 민족주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데 한국이 기여할 수 있는 ‘평화공존의 정치’를 가동해 보는 것이다. 식민지배의 불법성을 인정하라고 아베 정부에 요구하는 한편, 북한을 미수복 지역으로 간주하는 헌법의 영토조항을 수정해 국경을 맞대고 있는 이웃나라로 북한을 헌법적으로 인정하는 개헌 작업에 대한 공감대를 넓혀가는 것이다. 홍콩사태에서 보듯이 중국의 이른바 ‘일국양제’ 실험이 한계에 봉착한 상황에서, 한반도의 평화공존과 공동번영을 위해 민족주의 논리를 후순위로 물리면서 서로의 주권을 존중하는 다른 경로에 대한 모색을 본격화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내년 한‐러 수교 30주년, 일본보다 러시아와 교류협력 활성화할 듯

게다가 비핵화와 안전보장‧경제개발의 동시적‧병행적 추진을 위한 전체적인 로드맵 작성에 소극적인 북한의 태도나 최근 김정은 국무위원장의 금강산 관광지구 시설 철거 지시 등에 비춰볼 때 북한이 핵을 완전히 포기할 의지가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높아지고 있다. 북한의 10여 차례에 걸친 단‧중거리 탄두 미사일 실험에 대해 트럼프는 대륙간탄도탄이 아니라는 이유로 무신경한 태도를 보여 왔는데, 이것이 일본은 물론 한국에 불러온 안보상의 우려도 커지고 있다. 북한 핵문제는 무시할 수 없는 한일 두 나라의 공동현안이라는 것이고, 해결을 위해 협력할 여지가 많다는 것이다.

아베 정부의 상수는 전후 헌법의 개정이다. 이를 위해 ‘한국이 동맹의 약한 고리’라는 험담을 꾸준히 흘리고 있고, 백색국가 제외를 통해 한국에 우방국 대우를 하지 않겠다고 결정했고, 최근 일본 민족주의 우파 쪽에서 아예 ‘단교론’까지 나오고 있다. 최근 새로운 천황 즉위식을 계기로 국무총리가 전달한 문재인 대통령의 친서도 그다지 효과를 발휘할 것 같지는 않다. 한일관계의 새로운 정립을 위해 한국이 양보할 수 없는 지점은 식민지배의 불법성 인정이다. 이것이 전제된다면, 대화를 통한 징용공 문제의 해법 도출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렇지 않다면 장기표류는 불가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베 정부는 이것을 원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국에 우방국 대우를 하지 않은 채 이뤄지는 일본의 국방력 강화는 한국에 대한 안보위협이기도 하다는 사실이다.

동북아시아에서 그 어떤 나라보다 ‘자유주의적 민주주의’에 근접한 한국의 독특한 위상은 주변국과 교류협력 강화, 평화공존, 공동번영의 과정에서 지켜야 할 가치가 충분하다. 내년은 한‐러 수교 30주년이자 ‘한‐러 상호교류의 해’이기도 하다. 현재 상황으로는 일본보다는 러시아와 교류협력이 한층 활발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안타깝지만 당분간 감내해야 할 현실이지 않을까 싶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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