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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영빈의 경제읽기] 핀테크 대표기업 그린실캐피탈은 왜 파산했나
[양영빈의 경제읽기] 핀테크 대표기업 그린실캐피탈은 왜 파산했나
  • 양영빈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 승인 2021.04.02 11:4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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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린실캐피탈 주요 업무는 공급망 금융
공급망 금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 등장한 핀테크 중 하나
공급망 금융은 ‘어음깡’의 핀테크 버전
그린실캐피탈이 파산한 이유는 과도한 레버리지와 당사자간 내부거래 때문

[이코노미21] [양영빈] 2019년 당시 100억달러에 달하는 기업가치를 자랑했던 핀테크 기업인 그린실캐피탈(Greensill Capital)이 지난 3월 초 파산신청을 한 일이 있었다. 이 기업은 영국의 그린실(Greensill)이라는 벤처기업가가 10년 전 창업했으며 이 기업의 주요 업무는 공급망 금융이었다.

공급망 금융(Supply Chain Finance)라는 표현을 처음 들으면 도대체 이 기업이 어떤 업무를 담당하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을 것이다. 최근 수많은 스타트업 기업들은 자기를 그럴 듯하게 포장하는 일에 과도하게 집중하는 경향이 있는데 금융과 IT기술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나타내는 핀테크(FinTech)라는 신조어 자체가 그러한 것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투자자들의 관심을 받고 사업모델이 그럴 듯하게 보여야 투자를 받을 수 있는 상황 속에서 기업들이 이렇게 자기 홍보에 열을 올리는 것은 당연한 현상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좀 과하다는 인상을 지울 수 없다.

새로운 신조어의 등장은 새로운 시장 또는 업계 생태계의 창출을 의미한다. 이러한 점에서 공급망 금융은 2008년 금융위기 이후 본격적으로 등장한 핀테크 중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공급자 금융의 의미

현대 사회의 거의 모든 대기업은 여러 개의 하청 기업을 가지고 있으며 하청(중소기업)이 주로 원청에게 중간재 등을 공급하는 방식으로 거래가 이루어 진다. 이때 일반적으로 원청은 하청이 공급한 중간재의 대가로 그 즉시 현금을 지급하지 않고 보통 외상의 형태로 대금을 지급한다. 이때 원청(대기업)이 발행하는 외상 증서를 흔히 어음 또는 외상매출채권이라고 부른다. 이러한 외상매출채권은 보통 만기가 30~90일 정도이다. 1~3개월후에 현금으로 갚겠다는 이야기이다.

만성적인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하청은 이 증서 또는 채권을 1~3개월을 기다렸다가 현금으로 받는 게 아니라 주로 은행에 할인한 가격으로 되팔아 현금을 마련하곤 한다. 이러한 관행은 우리나라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자본주의가 고도로 발전한 미국에서도 이러한 관행이 여전히 존재한다. 월스트리트 저널에 의하면 1000개의 미국 상장사의 자료를 본 결과 2017년 외상매출채권의 기한이 평균 56.7일이었다. 현금은 그 어떤 채권보다 유동성이 가장 높기 때문에 제 아무리 잘나가는 미국의 상위 상장사라 하더라도 꼭 쥐고 있고자 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업무를 시장의 언어로 이야기하면 ‘어음깡(어음할인)’이고 고상하게 이야기하면 외상매출채권 할인이며, 국제무역에 적용하면 신용장 업무가 된다. 이러한 업무는 전통적으로 큰 규모의 은행이 전담해왔는데 복잡다기한 서류 작업과 장시간의 기다림은 피할 수 없는 비용이었다.

이 업무는 은행으로서는 일종의 계륵 같은 존재였으며 2008년 금융위기는 이러한 업무 영역에 큰 변화를 주게 되는데 그것은 바로 새롭게 개정된 바젤3협약과 큰 관계가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은행의 안전성을 추구하기 위해 이전보다는 더 강력한 규제책을 내놓게 되는데 특히 은행의 자기자본비율(자기자본/자산)을 높이게 되면서 이른바 ‘어음깡’의 영역이 더 이상 매력적이지 않게 되었다. 은행은 자산을 보다 효율적으로 이용할 필요가 생겼고 이 공백을 비집고 들어온 새로운 경쟁자인 핀테크가 바로 공급망 금융이었다. 냉소적으로 말한다면 공급망 금융은 ‘어음깡’의 핀테크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사진=그린실 홈페이지 캡쳐
사진=그린실 홈페이지 캡쳐

그린실캐피탈의 혁신과 레버리지

그린실캐피탈의 모토는 “보다 공정한 금융”이었다. 만성적인 현금 부족에 시달리는 중소규모의 공급자(주로 하청)에게 이전의 전통적인 은행이 제공하던 ‘어음깡’ 업무를 기술혁신을 통해 온라인으로 간소하게 하여 부대비용과 시간을 획기적으로 줄이는 것에 성공했다.

그린실캐피탈의 보고에 의하면 2019년 총 1000만명의 고객을 대상으로 1430억달러의 금융을 제공했다고 한다. 같은 해 손정의가 주도하는 비전펀드로부터 15억달러의 투자(산정 기업가치 60억불)를 이끌어내는데 성공해 세간의 주목을 한 몸에 받기도 했다. 짧은 순간에 급속도로 성장하는데에는 기본적으로 레버리지가 필요하다. 그린실캐피탈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일반적인 핀테크 기업이 하는 행태와 매우 유사하다. 초기에는 혁신의 이미지를 강조하여 시장의 관심과 투자를 받는데 몰두한다. 초기 투자가 성공적으로 이루어 지면 이를 바탕으로 레버리지를 높이는데 치중하게 된다.

그린실캐피탈이 레버리지를 올리는 방법은 매우 간단한다. 증권화를 통해서 레버리지를 올리는 과정은 다음과 같다.

①공급자(하청)가 원청으로부터 받은 외상매출채권을 인수한다.

②여러 외상매출채권을 하나로 모아 새로운 증권(채권)을 통해 자산유동화증권을 만든다.

③자산유동화증권을 통해 새롭게 만든 증권(ABS)을 다른 투자자(크레딧스위스)에게 판매한다.

④ABS 판매대금을 이용하여 공급자(하청)의 또 다른 외상매출채권을 인수하여 처음부터 다시 이 과정을 꾸준히 반복한다.

이른바 그림자금융(shadow banking)의 전형적인 레버리지 확대 방식이다. 레버리지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③의 과정에서 제3의 투자자(여기서는 크레딧스위스)가 필요하다. 또한 자산증권화를 통해 새롭게 만든 증권(채권)의 안전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추가로 보험회사의 보증이 필요한데 이것은 보험을 구매하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다. 종합하면 그린실캐피탈의 수익모델은 하청으로부터 싸게 사서 크레딧스위스에게 비싸게 파는 것이다. 여기에 보험비용을 제외하면 순수익이 된다.

그린실캐피탈의 파산원인

핀테크를 이용한 그린실캐피탈의 비즈니스모델은 처음에는 획기적이었고 매력적이었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수익모델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되었다. 그 원인으로 첫째, 지속적인 제로금리정책을 들 수 있다. 금리가 매우 낮았기 때문에 공급자(하청)들이 다른 금융기관을 이용할 수도 있었으며 이들을 고객으로 묶어 두기 위해서는 외상매출채권을 비싸게 사는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둘째는 뜻하지 않은 코로나 위기를 들 수 있다. 코로나 위기로 인해 원청의 경영환경도 매우 악화되어 외상매출채권을 제때에 상환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부도상황에 대비하여 보험을 들었지만 작년 말에 보험회사들이 더 이상의 보험판매를 중단한 이후 이미 상당한 레버리지 수준으로 올라와 있는 상태에서 벌어지는 원청의 부도는 회사를 금방 자본잠식의 상황으로 만들어 버리게 된다. 어마어마한 레버리지와 함께 또 다른 혐의가 가는 곳은 그린실캐피탈의 비즈니스모델이 내부자거래의 성격을 진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다.

크레딧스위스는 펀드를 조성해서 고객으로부터 모은 자금을 그린실캐피탈의 자산유동화증권을 매입하는데 사용한다. 그런데 소프트뱅크의 비전펀드는 그린실캐피탈에 자본투자를 하는데 그치지 않고 크레딧스위스의 펀드를 매입한다. 또한 그린실캐피탈은 소프트뱅크가 소유한 오이오라는 호텔업을 하는 업체에 대출을 했음이 드러났다. 현재 형사소송이 진행중이므로 자세한 경위는 한참 뒤에나 알게 되겠지만 소프트뱅크, 오이오, 그린실캐피탈, 크레딧스위스가 내부거래를 했다는 의혹을 지우기 어렵게 한다.

과도한 레버리지와 당사자간 내부거래가 어우러져 한 때 혁신기업이라고 칭송받았던 기업이 무너지는 전형적인 경로라고 할 수 있다. 이번 사태를 보고 어떤 분석가들은 서브프라임 사태를 연상하기도 한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당사자간 내부거래의 성격이 강한 그린실캐피탈의 비즈니스모델이 경제 시스템 전체로 위험이 전파되는 것을 최소화했다고 볼 수 있다.당사자들이 심각한 소송을 당하는 것은 피할 수 없겠지만 위험이 경제 전체로 파급되지 않는 것은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할 수 있다.

핀테크라는 화려한 외면보다 비즈니스모델과 수익모델 잘 살펴봐야

자본주의 사회에서 금융의 핵심은 첫째, 서로 다른 만기를 가진 자금을 중개하는 것이다. 원청의 만기는 1~3개월이라면 하청이 원하는 만기는 당일이라고 할 수 있다. 이를 중개하는 것이 공급망 금융의 일차적인 업무이다. 이러한 업무를 성공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원청의 부도 위험을 제거해야 하는데 이것은 보험으로 해결할 수 있다. 즉, 자본주의 금융의 피할 수 없는 숙명인 만기 불일치와 신용 위험을 해결해야 하는데 이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는데에는 필연적으로 비용을 수반한다. 비용을 지불하고도 훌륭한 수익을 낼 수 있으려면 또한 필연적으로 레버리지를 높일 수밖에 없다. 레버리지를 높이는 행동은 무조건 나무랄 일은 아니다. 공급자 금융이 제대로 작동하여 수많은 중소기업(하청)들의 현금 부족을 해결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상이 예상한대로 작동한다면 핀테크는 수익을 얻고 공급자(하청)들은 제때에 현금을 공급받아 생산에 차질이 없게 된다. 그러나 좋은 때가 있으면 나쁜 때도 있기 마련이라 핀테크라는 화려한 외면에 현혹될 것이 아니라 비즈니스모델과 수익모델을 잘 살펴보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마윈의 앤트그룹 상장 실패는 중국공산당의 무소불위의 권력만이 작동한 것이 아니었다. 앤트그룹 역시 공급자 금융과 거의 유사한 비즈니스모델을 가지고 있었는데 중국당국의 조사에 의하면 레버리지가 100배에 달했다고 한다. 앤트그룹이 수많은 핀테크 기업이 걸어왔던 길을 답습한다면 그린실캐피탈처럼 그들 만의 문제로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중국 전체의 사회문제화 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했기 때문에 상장금지라는 초강수가 나온 것이라 할 수 있다.

핀테크는 우리에게도 이미 상당히 다가와 있는 분야이다. 무조건적인 규제도 아니고 사후 약방문식의 한발 늦은 대응도 아닌 규제 당국의 현명한(그렇게 하고 있을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지만) 정책 대응이 절실하다. [이코노미21]

양영빈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양영빈 델타익스체인지 이사

필자는 중국 금융 및 경제 전문가로 현재 상하이 델타익스체인지 이사로 일하고 있다. 저서로는 한국인 최초로 중국어로 발간한 <옵션실전매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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