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암호화폐 철학과 그 제도화의 이율배반
암호화폐 철학과 그 제도화의 이율배반
  • 장훈 기자
  • 승인 2022.03.15 15:0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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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 암호화폐를 가상자산으로 규정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해
가장 큰 이유는 화폐로써 기능 못하기 때문
제도화로 암호화폐가 가진 철학은 자리를 잃어
제도화 다루는 정부 철학적 사고 더욱 필요해

[이코노미21 장훈 기자] 지난해 가상자산 업계에 휘몰아쳤던 회오리는 잠시 숨을 골랐다. 20대 대선 탓이다. 이제 다시 엄청난 광풍이 몰려올 기세다.

지난 2020년, 특금법(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이 제정되고 2021년 9월 26일, 6개월의 유예를 거쳐 정식 발효되기까지 한국의 가상자산 시장은 그간의 시장 왜곡에서 벗어나기 위한 몸부림의 연속이었다. 가상자산 정책을 총지휘한 금융위원회는 예상과 달리 가상자산 제도화의 첫 단추를 잘 끼웠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가상자산 최강국 중국이 디지털화폐(CBDC) 정책을 강력하게 추진하고 암호화폐 거래소를 폐쇄하면서 한국은 한때 세계 최고 시장으로 부상했다. 그러나 2017년 말부터 박상기 법무부 장관의 거래소 폐쇄 발언 등 정부의 강경 기조로 시장은 급랭했다. ICO가 금지되고 김치 코인들의 해외발행이 시작됐다.

그렇지만 암호화폐 시장은 축소되지 않고 오히려 엉뚱한 방식으로 성장했다. 바로 다단계 코인과 거래소가 난립이다. 지난해 ‘V 글로벌’ 사태가 대표적이다. 끌어들인 자금 규모가 무려 3조에 육박한다.

금융위는 암호화폐를 화폐로 인정하지 않고 가상자산으로 규정했다. 즉 화폐 기능은 인정하지 않았으며 자산적 가치만 존재한다는 것이다. 적절하다는 평이 지배적이다. 그리고 우선 거래소를 정리했다. 지난해 인터넷진흥원을 통한 ISMS 승인 등 거래소 허가 관련 규정을 정비했다. 거래소에 대한 원화계좌 허가 여부는 은행에 일임했는데 기존에 은행과 원화계좌를 계약했던 네 군데 거래소만 허가를 받았다. 사실상 시장에 4개의 거래소만 남은 셈이다. 지난 2월, 고팍스 거래소가 전북은행을 통해 추가로 원화 거래시장에 진입했다. 이 과정에서 다단계 코인에 투자했던 많은 사람이 피해를 보고 시장에 충격이 있을 거란 예상은 사실 빗나간 셈이다. 금융위의 보수적 정책 기조는 변하지 않았고 일사불란했던 탓인지 거래소든 코인이든 모두 자구책을 찾은 듯하다.

가장 큰 수혜자는 금융위 허가를 득한 4개 거래소다.

업비트(Upbit)와 빗썸(Bithumb), 그리고 코인원(Coinone), 코빗(Corbit)이다. 올해 고팍스(Gopax)가 추가됐다.

특히 업비트는 사실상 시장을 과점했다. 점유율이 70%가 넘는다. 여기에 엄청나게 늘어난 가상자산 투자자가 대부분 업비트에 둥지를 틀었다.

올 초 시장을 소리 없이 달군 이슈가 있다. 바로 업비트가 우리은행 인수전에 뛰어든 것이다. 두나무 경영진은 언론사를 돌며 여론전까지 펼쳤지만, 지분 1% 인수에 그쳤다. 현금은 넘쳐났으니 돈은 문제가 아니다. 여론이 문제였다.

2021년 영업이익 순위는 삼성전자 약 52조, SK 하이닉스 약 12조, 포스코 약 9조 순이다. 금융기업 중 1위는 KB금융(전체 6위)으로 약 6조의 영업이익을 거뒀다. 업비트를 운영하는 두나무는 2021년 하반기 하루 100억원 이상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2022년 예상 영업이익만 약 4조원. 그런데 두나무의 직원 수는 200명대다. 규모와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단연 최고의 기업이라 할 수 있다.

업비트는 거래량 기준 세계 10위권 거래소다. 하루 약 20조원 가까이 거래되기도 했다. 국내 코스피와 코스닥 거래량을 합친 금액과 비슷한 금액으로 평소에도 코스닥 거래량을 훌쩍 넘긴다. 여기에 국내 2위 빗썸의 거래량은 1~3조 정도 거래된다. 세계 1위 바이낸스(Binance)의 하루 거래량은 한때 120조를 넘기도 했다. 더욱이 국내 거래소는 선물 등 파생상품 거래가 없다. 반면 해외거래소는 선물거래 등 다양한 파생 상품을 지원한다. 바이낸스의 매출과 수익은 얼마일까? 정확한 수치가 제공되고 있지 않다. 바이낸스는 세계 2위 DEX 팬케이크 스와프(Pancake swap), 거래소, 코인 통계 포털 코인마켓캡(Coin Market cap), 트러스트월렛(Trust Wallet) 등 업계 분야별 최고 회사들을 소유하고 있다. 그래서 수익은 삼성전자 등 내로라하는 세계적 기업들을 이미 능가할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암호화폐에 대한 부정적 시각은 여전하다. 가장 큰 이유는 화폐로써 기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난해 엘살바도르가 비트코인을 화폐로 인정하고 사용했지만, 암호화폐 중에서 화폐로 기능하는 것은 거의 없다. 있다고 해도 제한적이다. USDT 같은 스테이블 코인(Stable Coin)의 성장세는 놀랍지만 USDT 역시 거래소에서 법정화폐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최근엔 DeFi의 성장세도 놀랍다. 여전히 전통 금융 분야의 1%에도 못 미치지만, 이는 법률적 장벽이 높기 때문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가장 큰 이슈는 저성장이다. 제조업과 금융 모두가 저성장의 늪에 빠져 있다. 그렇지만 DeFi의 수익률은 매우 높다. 세계적인 가상자산 운용사 TKX 캐피탈의 연 운용 수익률은 50%가 넘는다. 펀드 수익률은 100%가 넘는다.

이미 전통 금융업계도 가상자산 시장을 넘본 지 오래다. 비트코인 시세와 전망은 전통 금융업계 분석서에 빠져선 안 되는 아이템이다.

이렇듯 장황하게 가상자산 시장의 성장을 설명한 것은 이미 존폐 논쟁이 무의미하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그리고 또 다른 이유는 가상자산 시장의 급격한 성장은 전통금융과 결합했기 때문이라는 점이다.

암호화폐와 블록체인 기술은 2008년 발표된 사토시 나가모토의 비트코인 논문에서 드러난다.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는 세계를 강타했다. 자본주의의 위기, 특히 금융자본의 위기와 부도덕은 세계적인 분노를 유발했다. 더욱이 미국 정부의 재정지원과 금융사들의 보너스 파티는 이들의 부도덕성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블록체인의 투명성과 암호화폐의 반정부적 성격은 이러한 흐름을 대변한다. 비트코인은 이미 은행 계좌조차 불가능한 세계 30% 이상의 빈민들을 향했다.

그러나 이러한 암호화폐 프로젝트가 세상에서 존재감을 확인한 것은 바로 암호화폐 거래소를 통해서다. 즉 블록체인과 암호화폐를 꿈꾼 이들은 무정부주의적 성향으로 자본주의 엘리트와 제도권에 저항했지만, 이들의 발명품이 빛을 발한 것은 제도 권한에서다. 법정화폐(Fiat)와의 교환성이 확보되면서다.

한국의 암호화폐, ‘가상자산’은 이제 제도권속으로 들어오고 있다. 암호화폐를 교환하고 저장하는 ‘지갑’은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다. 하지만 거래소는 KYC(신원 확인)를 요구한다. 그간 익명성과 법적 지위의 모호성 때문에 불법 자금거래와 자금세탁에 활용됐지만, 점점 어려워지고 있다.

물론 암호화폐를 사업으로 성장시키려 하는 사람들은 제도화를 반긴다. 그만큼 대접도 받고 제도화를 통한 사업확장을 꾀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론 암호화폐가 갖는 나름의 철학은 자리를 잃을 수밖에 없다.

어떠한 방향이 블록체인과 암호화폐의 진정한 발전 방향일까?

흔히 정부, 관료, 그리고 보수적 사고를 하는 사람들은 블록체인 기술은 선진적 기술인데 문제는 암호화폐라고 한다. 젊은 표를 의식한 정치권은 블록체인 기술과 암호화폐는 쌍(Pair)이라고 한다. 어느 쪽이 사실에 더 가깝든 암호화폐는 이제 세계 경제의 한 분야를 이미 형성했다. 제도화는 불가피하지만, 암호화폐의 역사를 보면 양날의 검이다. 금융위가 지금처럼 계속 일을 잘하리란 보장은 없다. 업계에선 금융위나 지난해 다단계 코인 혹은 거래소 수사를 담당했던 검찰조차도 무시한다. “현장을 너무 모른다.”라는 것이다.

암호화폐의 철학은 나름 진정성과 대안적 성격을 갖는다. 그렇지만 그 사업적 성공은 대안을 찾고자 했던 문제의 현재 속으로 다시 암호화폐를 끌어들이고 있다.

굳이 암호화폐의 제도화와 그 이율배반을 논하는 것은 이러한 역사 때문이다. 제도화를 다루는 정부는 더욱 철학적인 사고가 필요할 수 있다. 그래야 보다 잘 접근할 수 있고 저항이 아니라 진정한 발전을 위한 제도화가 가능할 수 있다.

유럽 근대국가의 보수주의는 진보적 사고를 끌어 안으면서 발전했다. 진보주의도 보수주의와 다투면서 현실적 대안으로 자리매김했다. [이코노미21]

사진=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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