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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사회의 난제, 혁신적 지역화가 해답이다
한국 사회의 난제, 혁신적 지역화가 해답이다
  •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 승인 2021.05.31 1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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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21] [윤호창] 오늘날 한국 사회에서 가장 풀기 어려운 문제는 부동산과 교육이라고 볼 수 있다. 부동산과 교육은 시민 모두의 이해관계가 걸려 있기에 때문에 잘못 손을 대는 순간 정권을 날려버리는 핵폭탄이 되어 버린다. 지금의 부동산 문제가 그렇다. 지난 4월 서울·부산 보궐선거에서 정부여당이 국민의 준엄한 심판을 받은 것은 부동산 뇌관을 잘못 건드렸기 때문이다. 이 부동산 뇌관이 민주당 정권을 날려버릴지는 아직 알 수 없지만, 가장 뜨거운 것임에는 틀림이 없다. 교육은 별로 하는 일이 보이지 않은 채 지나가고 있지만 지방대학들은 벚꽃이 피는 순서대로 쓰러지고 있고, 미래 세대들은 새로운 희망을 발견하지 못한 채 교실에서 잠들어 있다.

비전이 잘 보이지 않는 문재인 정부

문재인 정부가 비교적 선방하는 영역도 있지만 균형발전·자치분권, 저출산·고령화, 교육, 주거 문제 등의 보다 장기적이고 근본적인 영역에서는 이렇다 할 진전이 없다. 수도권의 인구 집중은 사상 처음으로 지난해 50%를 넘어섰고, 출산율은 0.84명으로 세계 최저를 기록했다. 출산율 1.0명 이하 자체가 인류 역사상 유래가 없는 일이지만, 이마저도 해마다 우리의 최저 기록을 우리가 경신하고 있다. 시민생활에서 대한 가시적인 해결책을 내놓지 못하는 것 때문인지, 2012년 이후 UN 지속가능개발해법네트워크(SDSN)에서 조사하는 ‘세계 국가행복지수’에서 올해 62위를 기록했다. 단순 수치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이명박·박근혜 정부에서도 60위 밖으로는 떨어지지는 않았다.

문재인 정부 초기에 헌법 개정안을 내면서 헌법 제1조에 ‘지방분권국가를 지향’한다고 명시해서 ‘연방제에 준하는 국가’를 천명했다. 만약 문재인 정부가 시도했던 헌법 개정이 이뤄졌더라면 사정은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만, 역사에서 가정이란 무의미하다. 집권 세력이 국민행복의 복지국가 시대를 열 수 있는 ‘제대로 된 헌법 개정’을 이뤄낼 만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했고, 그만한 실력이 없었기 때문에 그 책임은 오롯이 집권 세력이 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윤호창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상임이사

한국 사회의 뜨거운 감자인 부동산 또한 균형발전과 자치분권을 제대로 이루어내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 있다. 만약 수도권 인구가 비수도권 지역으로 내려갈 만한 계기와 환경을 조성했더라면 돈이 넘쳐나는 유동성 과잉의 시대에도 서울 집값은 이렇게 폭등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5년간 균형발전 예산으로 175조 원을 사용하겠다고 천명하고, 매년 30조 원 가량의 균형발전 예산을 쓰고 있지만, 도대체 무엇을 어떻게 하는 데 사용되고 있는지 알 수 없다. 지난 4년 동안 수도권 집중은 더 심화됐고, 가까운 미래에 개선될 여지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므로 문재인 정부의 균형발전 계획은 실패했다고 결론내릴 수밖에 없다.

왜 문재인 정부의 국가균형발전은 실패했을까. 해방 이후 서울과 수도권 집중은 모든 정부에서 이뤄진 일이기에 문재인 정부만의 실패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을 것이지만, 촛불시민혁명의 성과를 바탕으로 만들어진 정부였기에 기대가 컸던 것만은 사실이다. 그래서 대다수의 양식 있는 시민들은 부동산 가격의 하락을 기대하고 주택 구매를 유보했다. 하지만 남은 것은 불안과 분노 혹은 ‘벼락거지’라는 결과뿐이다. 부동산 거품을 제거할 강한 의지가 문재인 정부에 없다는 것을 눈치 챈 이익에 발 빠른 투기꾼들은 부동산을 대량 구매해서 투기와 임대사업에 나섰고, 문재인 정부의 선한 의지를 믿었던 시민들은 회복하기 힘든 양극화의 희생양이 되고 말았다.

그러므로 보통사람들의 분노는 당연한 것이다. 문재인 정부 이전에는 그래도 노력하면 강남 3구를 제외한 서울에서 자기 집을 마련할 수 있는 희망을 가졌지만, 4년 동안 가격이 82%나 폭등한 지금, 서울에서 괜찮은 아파트를 구입한다는 것은 대부분의 보통사람들에게 불가능한 꿈이 되어버렸다. 미래의 희망이 보이지 않는 젊은 세대는 영혼까지 끌어 모아 부동산과 가상화폐로 몰려들었지만, 이 또한 얼마나 더 큰 좌절을 낳게 될 지 알 수 없다.

그 많은 175조 원은 누가 다 먹었을까?

문재인 정부에서 사용하겠다던 175조 원은 도대체 어디에 사용됐을까. 찾으려면 찾아볼 수도 있겠지만, 국민들이 요구하기 전에 정책 책임자들이 그 내용과 집행 과정을 국민들에게 보고하고 설명해야 하지 않을까? 적어도 민주정부라면 정책 실패의 원인과 분석을 스스로 내놔야 하지 않을까? 시민과 시민단체들이 추궁하고, 책임자들은 문제를 회피하는 지루한 반복을 언제까지 계속해야 한단 말인가. 국가균형발전 예산 175조 원을 보면, ‘그 많은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라는 故박완서 선생의 소설 제목이 생각난다.

우리나라에는 3,500개의 읍·면·동이 있다. 해마다 사용할 수 있는 균형발전 예산 35조 원이면 각각의 읍·면·동에 연간 100억 원씩 배당할 수 있다. 실험적으로 그 예산의 절반 정도로 각 읍·면·동 주민들이 해당 지역에서 가장 필요한 사업을 정하고, 자주적으로 관리·운영하는 혁신적인 실험을 했으면 어땠을까. 물론 중앙정부의 관료들은 안 되는 이유를 1백 가지도 더 이야기할 것이다. 주민들의 자치력이 낮아서 안 되고, 주민들에게 돈을 주면 갈등과 분쟁이 일어날 것이고 등등 말이다.

수 백 년 동안 강력한 중앙집권과 관료주의를 유지했던 국가주의 엘리트들은 주민들의 자치력을 별로 믿지 않고, 키울 생각도 하지 않는다. 기득권 세력과 중앙정부는 돈과 사람을 여전히 서울에 두려 하고, 지방정부 또한 주민들과 제대로 된 협치를 추진할 의지가 별로 없다. 권력을 나누고 협력적으로 통치하는 좋은 거버넌스를 경험해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주민들도 직접민주주의 정신으로 강하게 요구하고 대안을 만들어내야 하지만, ‘먹고사니즘’에 빠져 지역과 공동체를 돌아볼 여력이 거의 없다. 그래서 시지프의 신화처럼, 무한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 사회다.

중앙정부나 국회의 의지가 없는 것은 지방자치법 개정에서도 볼 수 있다. 지방자치법에서 기존의 관변화된 주민자치위원회를 주민자치회로 바꾸는 시범사업을 2015년부터 해오고 있지만, 이번 개정에서도 주민자치를 제도화하지 않음으로써 지역사회와 시민사회의 반발과 저항을 받고 있다. 지방자치와 주민자치의 중요성을 인식한 김영배 국회의원 등이 진일보한 입법을 발의했지만, 돈과 권력을 중앙에 계속 남기고자 하는 기득권의 반발을 국회가 넘을 수 있을지 알 수 없다.

귀족들이 말아먹고 민초들이 구하는 나라

한국 사회는 어떤 나라보다 풀뿌리 민초들의 역량과 의지가 뛰어나다. 임진란 당시에 왕족과 관병은 도망가기에 급급했지만, 전국 도처에서 의병과 민병이 일어나 왜병의 침략을 저지했다. 토요토미 히데요시가 전혀 생각하지 못한 변수였고, 여기에 막힌 토요토미 히데요시는 대륙 진출의 야심을 포기할 수밖에 없었다. 농민이나 선비들이 의병을 일으키고 참여한다는 것은 일본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기 때문이다.

국권을 빼앗긴 식민지 시절의 저항운동도 마찬가지였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안중근 의사나 윤봉길 의사가 자기 목숨을 던진 사실은 당시에 민족이나 국가의식이 부재했던 중국민들에게 정신적 충격이었고, 중국이 항일운동에 나서는 하나의 계기를 제공했다. 상해 홍코우 공원 한편에 매헌 윤봉길의 사당을 세우고, 그를 기리는 것을 보면 중국인들이 그를 얼마나 존중하는지 알 수 있다.

해방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민중들의 뜨거운 민주화 운동을 통해 적어도 아시아에서는 최고의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었다. 임진란 이후 고달팠던 역사를 보면,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가 약하고 개인적 출세주의 경향이 강했던 이 땅의 귀족들은 거의 무능과 무책임으로 일관했고, 민중들은 온몸으로 고통을 받으면서도 용감하고 또 슬기롭게 극복해왔다. 이런 민초를 신뢰하지 않는다면 도대체 누구를 믿을 수 있을까.

아시아 최고의 민주주의를 만든 우리 사회의 핵심 과제는 이제 풀뿌리 차원에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축하는 일이다. 그것은 국토를 골고루 발전시키는 일이며, 촛불시민혁명의 정신을 일상화하고 지역화하는 일이다. 이 과제에 집중할 때 난마처럼 얽힌 부동산과 교육 문제도 풀릴 것이며, 비인간적 경쟁과 살기 힘든 인구밀도를 지닌 서울도 사람 사는 곳으로 변할 수 있을 것이다.

이미 이런 흐름은 감지되고 있다. 30년의 지방자치를 경험하면서 제대로 된 지방자치의 필요성을 느끼는 이들이 주민들에게 실질적인 권한을 주자는 ‘주민자치기본법’ 제정 운동을 펼치고 있는 것이 그것이다. 또 5·16 박정희 쿠데타 이후에 빼앗겼던 읍·면·동장 선출 권한을 다시 주민들이 돌려받자는 움직임도 여기에 속한다. 대의정치와 기득권 정치의 한계를 지켜본 시민들은 직접민주주의와 마을·지역 단위의 자치공화국을 목표로 하는, 국회가 아닌 민회(Civil assembly)를 만들려는 움직임도 보인다.

내년 대선과 지방선거는 35년이나 된, 그래서 이제 몸에 잘 맞지 않는 헌법을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이며, 서울에 몰려있는 돈과 권력을 전국 곳곳으로 고르게 분산시킬 수 있는 다시 오지 않을 기회일 것이다. 상처받을 가능성이 높은 부동산과 가상화폐에 영끌 투자를 하기보다, 남은 1년 동안 시민정치와 풀뿌리 민주주의를 배우며 지역과 마을에서 시민들이 스스로 조직화하는 것이 행복한 삶을 위한 보다 합리적인 투자라 하겠다.

5월은 계절의 여왕이지만 근·현대사의 슬픈 비극도 많은 달이다. 80년 5월의 광주가 그렇고,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생각하며 故노무현 대통령이 스스로 목숨을 던진 달이기도 하다. 3%의 소금물이 바다를 썩지 않게 만드는 것처럼, 3%의 깨어있는 시민들이 지역사회를 중심으로 스스로를 건강하게 조직할 수 있다면 부동산과 교육 같은 난마도 풀릴 것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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