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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유회사 쉐브론 CEO, 바이든과 맞짱뜨다. 왜?
정유회사 쉐브론 CEO, 바이든과 맞짱뜨다. 왜?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06.23 14:4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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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든, 정유업계에 공급 늘려 가격 인하 요구
바이든 “정상수준 웃도는 정유업계 마진 가계에 전가돼”
워쓰 “2021년 쉐브론 창사 이래 최고 생산량 기록”
워쓰 “바이든 정유업계를 비판, 중상만 해왔을 뿐”
ESG처럼 현실과 동 떨어진 정책이 초래한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

[이코노미21 양영빈] 6월 14일 바이든 대통령은 정유업계에 공개서한을 보냈다. 가솔린, 디젤 가격이 폭등하고 있는 상황에서 정유업계가 공급을 늘려 가격을 내릴 것을 주문한 것이다. 6월에 발표된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CPI)는 8.6%(빨간색)로 과거 41년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가솔린의 가격은 아래 그림에서 보듯이 전년동기대비 무려 48.7%(보라색)나 올라 통화당국에 비상이 걸렸다. 연준은 해외 요인으로 상승한 원자재 가격을 제어할 힘이 없으므로 어쩔 수 없이 금리인상을 통한 수요억제로 대응할 수밖에 없는 곤경에 처했다.

가솔린 가격 변동률 추이. 출처=미국노동통계국
가솔린 가격 변동률 추이. 출처=미국노동통계국

바이든 대통령은 공개서한에서 정유회사가 최근의 위기를 악용하고 있으며 이는 인플레이션을 더욱 부추기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정상수준을 웃도는 정유업체 마진은 그대로 가계에 전가돼 가계가 받아들일 수 없는 수준에 달했다.”면서 “행정부는 모든 적절한 수단을 동원해 정유업계의 정유용량을 늘려 미국 모든 지역이 골고루 공급을 받을 수 있도록 할 것이다.” 고 강조했다.

이에 대해 쉐브론 CEO 마이크 워쓰는 6월 21일 공개서한으로 응수했는데 내용이 매우 비장하다. 그는 “현재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머리를 맞대고 지혜를 짜내야 한다. 정치적 수사로 그치지 말아야 한다”면서 “2021년에 쉐브론은 창사이래 최고 생산량을 기록했으며 2022년 1사분기에는 일평균 생산량이 작년보다 10만9000배럴 많은 120만 배럴을 생산했다.”고 말했다. 이어 “쉐브론은 온실가스를 감축과 탄소포집, 수소에너지 개발 등에 100억달러를 투자하고 있으며 2030년에는 재생에너지 연료를 일평균 10만 배럴까지 생산할 것이다.”면서 “이러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바이든 행정부는 정유업계를 비판, 중상만 해왔을 뿐이다.”고 꼬집었다. 또 “이번 주 에너지부 장관과의 면담에서 건설적인 대화를 위해 바이든 대통령의 수석고문(senior advisor)도 참가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마이크 워쓰의 항변은 이해할 만하다. 바이든 행정부가 정유용량을 늘리라고 주문했지만 미국 정유업계의 정유용량은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면 이미 평년 최고 수준을 뛰어 넘었기 때문이다.

그림의 회색 영역이 월별 최고/최저 수준이고 오렌지 색이 2022년의 정유용량을 나타내는데 1992년부터 2021년까지 월별 최고/최저 수준을 넘었거나 근접한 상태이다. 

출처=블룸버그, 하비어 블라스(@JavierBlas) 트윗에서 재인용
출처=블룸버그, 하비어 블라스(@JavierBlas) 트윗에서 재인용

마이크 워쓰의 서한은 미국내에서 어마어마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가 의욕적으로 추진한 탈탄소 정책에 대한 근본적인 비판을 담고 있으며 이번 주 예정된 면담에서 실질적인 권한을 가진 인사와 토론을 하고 싶다는 것을 피력했기 때문이다. 에너지부 장관 수준을 너머 시쳇말로 Biden 핵심관계자와 담판을 짓고 싶다는 것을 요구한 것이다. 매우 이례적인 요구를 한 셈이다

현재 “수석고문(senior advisor)”은 마이크 도니론(Mike Donilon)이다. 마이크 도니론은 운용자산 규모가 전세계 최대인 블랙록 자산운용사의 회장인 토마스 도니론(Thomas Donilon)의 동생이다. 블랙록 투자자문은 ESG 기반 펀드로 특히 바이든 행정부 시기에 투자자들 사이에 인기가 높았다. 바이든 정부의 적극적인 탈탄소 정책과 ESG 경영에 대한 지원의 뒷배경에 블랙록 관련 인사들이 얽혀 있었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ESG가 널리 알려진 것처럼 순수한 것만은 아니라는 의심이 들게 하는 대목이다.

블랙록 같은 대규모 자산운용사와 결합한 ESG는 세상을 이상적으로만 바라봤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부작용을 제대로 보여준다. 코로나 판데믹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같은 예측하기 어려운 사건들이 있었지만 쉐브론 CEO 마이크 워쓰의 불만이 근거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향후 기업 활동을 예상할 때 자금 조달이 어려우면 투자를 줄이는 방법밖에 없다. 예를 들어 기존 설비의 60% 만을 가동하고 나머지 40%는 가동 중지 상태에 들어가게 된다. 기업의 투자는 신규 투자도 있지만 감가상각 투자도 있다. 생산 설비가 생산 과정에서 마모되거나 고장이 나면 부품 교체 등을 통해 투자를 이어가야 하지만 자금 조달이 어려운 경우에는 유휴 설비(40%)의 부품을 빼내어 생산을 유지하게 된다. 이 결과 수요가 급증하는 때에 제대로 수요를 맞추기 힘든 상황이 생기곤 한다. 이러한 문제는 생산 기업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며 그 기업에 설비를 제공하는 기계 생산업체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일상적으로 이루어졌던 설비 투자 수요가 감소하면 그 기계를 생산하는 업체 역시 설비 투자를 줄이게 된다.

결과적으로 수요가 살아나더라도 생산에서 병목이 생겨 가격상승으로 이어진다. 탄소배출 문제는 이전에는 탄소세를 부과하는 것으로 해결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ESG가 유행하면서 탄소세를 넘어 투자 자체를 제한하거나 규제를 도입하는 방식이 널리 쓰이게 됐다. 탄소세는 개별 기업이 효율성 제고, 기술 개발 등으로 극복할 가능성이 있지만 전반적인 투자 제한은 그럴 여지가 없다. 산업 전체에 대한 투자제한은 당장 투자할 자금 부족도 큰 문제지만 장기적으로 해당 산업으로의 신규 인력 확보에 매우 불리하다. 신규 인력 확보가 안되면 산업 전체가 심각한 타격을 받는다.

이것은 마치 무역 분쟁이 대부분 처음엔 관세 인상을 통해 시작하는 것과 비슷하다. 관세 인상은 해당 기업의 생산성 제고나 국가의 지원으로 극복할 가능성이 있다. 그러나 관세 인상을 넘어 교역 자체를 금지하거나 스위프트 제재(sanction) 같은 외화결제를 금지하는 단계로 나가게 되면 그 결과는 항상 비극적이었음을 역사가 가르쳐 준다.

쉐브론 CEO의 이례적인 공개서한은 ESG처럼 선의에 기반했지만 현실과 동 떨어진 정책이 초래한 정책실패에 대한 비판이라고 볼 수 있다.

현재 재생에너지 분야 선두주자인 독일이 다시 석탄 발전을 한다는 발표를 했다. 네덜란드, 노르웨이 등의 유럽 국가들이 독일에 이어 석탄 발전 대열에 합류하고 있다. 살인적인 물가 앞에서 기후협약은 공수표가 된 셈이다. ESG로 대표되는 정책들이 과연 현재 인류, 국가, 사회의 수준에 맞게 추진되었는지 또는 의욕만 너무 앞서서 추진되었던 것은 아닌지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때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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