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PDATED. 2024-06-19 17:38 (수)
스리랑카 위기와 네덜란드 시위의 공통점
스리랑카 위기와 네덜란드 시위의 공통점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08.02 14:55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현실에 기반하지 않은 정책 밀고 나갈 때 심각한 역풍 직면
2021년 4월 화학비료의 수입과 사용 금지하는 법률 제정
급격한 변화의 결과는 참담…쌀생산량 6개월만 20% 감소
식량 자립국에서 수입국으로 전락…차 수출 4억달러 손실
네덜란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
농부들 EU 온실가스 감축 목표보다 가혹한 네덜란드 정책에 큰 불만

[이코노미21 양영빈] 인구 2천2백만에 1인당 GDP가 3700달러 수준의 스리랑카에서는 치솟는 물가와 생활고로 인한 시위가 벌어졌다. 급기야 현직 대통령이 사임했다.

세계경제(World Economics)에서 평가한 스리랑카의 전체 환경 점수는 100점 만점 기준 98점으로 전세계에서 가장 높은 나라 중 하나다. 참고로 한국은 89점, 미국은 58점이다. 스리랑카는 일찍이 2010년대부터 합성 비료를 사용하지 않는 생산성 높은 유기농을 농업정책의 핵심으로 삼았다. 노벨 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셉 스티글리츠는 2016년 스리랑카의 사례를 “화석연료에 의존하는 발전경로를 탈피해 기술적으로 진보한 고생산성의 유기농으로 바로 도약 가능한 국가”라고 극찬한 바 있다. 영국의 유명한 환경론자이자 역성장(Degrowth) 주창자인 제이슨 히켈 역시 2021년 1 gdp월 트위터에서 “만약 세계가 스리랑카처럼 한다면 전세계 기대 수명은 4.5년이 증가하고 자원 소비는 70%가 감소하며 전지구적 이산화탄소 배출은 80% 감소할 것이다”라고 한껏 스리랑카를 추켜 세운 바 있다.

환경중심주의적인 움직임은 최근 사임한 라자팍사 대통령의 2019년 대선 운동 기간의 주요 의제이기도 했다. 대통령에 당선된 후 라자팍사 대통령은 2021년 4월 화학비료의 수입과 사용을 금지하는 법률을 제정했으며 2백만명에 달하는 농부들을 순식간에 유기농으로 전환했다.

급격한 변화의 결과는 참담함 그 자체였다. 전통적인 농업과 비교해 어느 정도 안정된 생산을 할 것이라는 장미 빛 전망과는 달리 쌀생산량이 6개월만에 20% 감소해 전통적으로 식량 자급국이었던 스리랑카는 4억5천만달러의 쌀을 수입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스리랑카는 차(tea)를 수출해 외환을 벌어들였는데 차 수출 역시 4억2천5백만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산된다. 2021년 11월에 스리랑카 정부는 어쩔 수 없이 중요한 수출 품목인 차(tea), 고무, 코코넛 산업에 필요한 화학비료 수입에 대한 금지를 해제할 수밖에 없었다.

한편 인구 1740만에 1인당 GDP가 6만달러에 달하는 네덜란드는 연일 농부들의 트랙터 시위에 몸살을 앓고 있다. 네덜란드의 시위는 정부가 2030년까지 가축 사육에서 발생하는 온실가스(산화질소화합물, 암모니아)를 50% 감축하려는 정책을 추진하기 때문이다. 네덜란드는 좁은 국토를 보유했음에도 유럽과 전세계에서도 보기 드문 고밀도집중 농업 경영으로 미국 다음으로 많은 농산물을 수출하는 국가이다. 가축 사육 역시 좁은 땅에 될수록 많은 가축을 사육함으로써 발생하는 분뇨와 온실가스 처리가 심각한 문제로 대두됐다. 이전에 정부는 단백질 함유량이 적은 사료를 사용할 것을 요청하는 등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고밀도집중 농업 경영 앞에서는 큰 효과를 보지 못했다.

이번 시위에서 농부들은 EU 전체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보다 훨씬 가혹한 네덜란드 정부의 감축 목표에 대한 큰 불만을 터뜨렸다. 네덜란드의 수출에서 식량이 차지하는 비율은 2019년 950억 유로 규모(전체 수출의 11%)로 매우 높은 편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2030년까지 50% 온실가스 감축을 달성하면 가축사육농가의 30%가 사라질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가축사육 농부들은 정부가 보았을 때 자신들이 가장 다루기 쉬운 상대여서 항공산업, 건설교통 산업에 비해 불공평한 대우를 받고 있으며 정부의 온실가스 감축 청사진에서 자신들의 미래가 매우 불투명하다는 주장을 한다.

2019년 세계은행(World bank)에 따르면 스리랑카는 하위 중소득국에서 상위 중소득국으로 변모했는데 현재는 2천2백만 인구 중 50만이 빈곤층(하루 소득 기준 1.25달러)으로 전락했으며 아직도 진행 중인 위기는 스리랑카의 전망을 더욱 어둡게 한다. 에너지/원유 전문가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아나스 알하지(Anas Alhajji) 박사는 일찍이 기후변화 의제가 테러리즘 의제를 뛰어넘어 각 국가들이 환경 점수 순위로 서열이 정해지고 이 점수가 IMF, 세계은행, 아시아개발은행 등의 구제금융이나 긴급 대출에 큰 영향을 끼치는 상황을 예상했다. 이렇게 등장한 새로운 세계질서는 선진국보다는 후진국에 치명적이게 된다. 국제기구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나라들은 주로 후진국이기 때문이다. 아나스 알하지 박사는 스리랑카의 부채 위기로 IMF가 스리랑카의 부채를 재연장하거나 구제금융을 할 때 ESG에 기반한 산업구조 개편을 강하게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IMF의 요구대로 스리랑카는 ESG 점수가 매우 높은 훌륭한 국가가 되었지만 예상치 못한 위기가 도래했을 때 정작 국민의 삶은 매우 심각한 곤경에 처하게 됐다.

환경근본주의, 기술관료주의, 미래에 대한 환상 등이 코로나라는 누구도 예상 못한 사태와 얽혀 현재 상황까지 다다른 스리랑카의 모습은 후발개발도상국들에게 심각한 경고 메시지를 보내준다. 서구 지식인들이 전파하는 찬란한 미래에 취해 검증되지 않은 설익은 정책을 답습하면 가장 큰 피해는 일반 국민에게 돌아온다.

네덜란드의 고유한 낙농업 구조에서 비롯된 가축 분뇨 처리 문제는 이미 오래된 문제였지만 이를 해결하지 못하고 방치한 결과 갈 수록 거세지는 기후협약과 ESG의 압박 속에서 향후 전망이 매우 불투명해진 미래의 패자들이 트랙터를 몰고 거리로 나왔다. 선거에서 다수당이 되었다고 ESG 정책을 불도저처럼 밀고 갈 때 심각한 반발을 초래할 수 있다.

두 나라의 구체적인 상황은 매우 다르지만 자기의 구체적 현실에 기반한 정책이 아닌 교조(도그마)에 집착하는 정책을 밀고 나갈 때 심각한 역풍에 직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이코노미21]

사진=SBS 화면 캡쳐
사진=SBS 화면 캡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