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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사기 막을 방법은…레포시장의 자동중지 면제가 방안될 수 있어
전세사기 막을 방법은…레포시장의 자동중지 면제가 방안될 수 있어
  • 양영빈 기자
  • 승인 2022.08.29 14:1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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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저당설정이 전입신고일보다 하루 더 빠르게 설정돼 문제
전세계약 당일 확인한 등기부등본으로는 우선 순위 파악 못해
근저당 설정은 신고일이 기준 반면 전입신고는 익일에 확정
전세계약 구조 미국의 환매조건부 채권과 매우 유사
세입자에게 최우선권 부여하는 자동중지 면제 같은 규정 필요

[이코노미21 양영빈] 최근 전세사기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수백여 채의 빌라를 소유한 소위 ‘빌라왕’들이 깡통전세, 갭투자, 바지 주인 등의 각종 편법 불법을 동원해 전세 세입자들의 전세보증금을 떼먹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주택도시보증공사(HUG) 등의 보증기관이 전세보증보험을 제공하고 있으나 전세사기꾼들의 기상천외한 사기 수법을 막기에는 역부족인 상태다.

전세계약 당일에 확인한 등기부등본 상에는 근저당 설정이 전혀 없는 깨끗한 물건이었기에 안심하고 전세금을 납부했지만 정작 계약이 체결된 후 확인해 보면 근저당 설정이 전입신고일보다 하루 더 빠르게 설정되는 경우가 있다. 전세 만기가 돌아와 전세금을 반환 받을 때 집주인의 사정으로 전세금을 받지 못하는 경우 세입자는 최후 수단으로 경매를 통해 전세금 보존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경매에서는 경매로 팔린 집의 대금을 우선 순위부터 지급하기 때문에 우선 순위가 제일 중요하다. 전세계약 당일에 확인한 등기부등본으로는 우선 순위를 정확히 파악할 수 없는데 이유는 대항력 익일 발효 규정 때문이다.

이 규정에 의하면 전세세입자는 전입신고를 한 익일에 전입신고일이 확정된다. 근저당 설정은 신고일이 기준이 되므로 전세세입자가 계약서를 쓰는 시점에서는 근저당 설정을 모르고 계약을 진행할 수 있는 허점이 있다. 어느 모로 보나 전세세입자에게 불리한 규정이라고 할 수 있지만 지금까지 국회에서 토론만 있었을뿐 아직은 개정되지 않는 규정이다. 사실상 전세사기를 원하는 악의적 의도를 가진 쪽이 얼마든지 써먹을 수 있는 규정이다.

전세는 계약 구조가 미국의 단기화폐시장의 환매조건부(레포, Repo) 채권과 매우 유사하다. 레포시장에서는 현금이 남아도는 MMF(머니마켓펀드)와 단기적으로 현금이 필요한 헤지펀드나 투자은행이 거래한다. MMF는 헤지펀드에 현금을 빌려주고 담보로 국채 같은 증권을 받는다. 약속한 만기가 되면 헤지펀드는 빌린 현금을 약간의 이자와 함께 갚고 MMF는 헤지펀드에 담보로 받은 증권을 되돌려준다.

 

1은 계약 초기, 2는 만기
1은 계약 초기, 2는 만기

이러한 거래가 성립하는 이유는 MMF는 여유 자금을 투자해서 작지만 이자 수익을 원하고 헤지펀드는 MMF에 소정의 이자를 지급해서 확보한 현금을 좀더 위험한 자산에 투자해 높은 이자 수익을 얻으려는 서로의 이해가 일치하기 때문이다. 레포 거래의 중요한 특징으로 헤지펀드는 현금을 빌려 국채 등의 증권을 매입하고 이를 또다시 담보로 활용해 레버리지를 일으킨다는 점이다. 헤지펀드에게는 자신의 자본금을 넘어서는 레버리지를 일으킬 수 있는 수단을 제공하고 MMF에게는 안전한 이자수익을 보증하는 거래가 레포거래이다.

우리나라의 독특한 전세제도는 Repo 거래와 유사한 점이 많다. MMF의 역할은 전세세입자(임차인)가 맡고, 헤지펀드의 역할은 집주인(임대인)이 맡는다. 현재는 전세계약의 만기가 2년이므로 전세계약을 하고 만기가 되면 전세세입자는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을 받고 살던 집을 돌려주게 된다. 레포 거래에서는 현금을 빌려준 쪽이 소정의 이자를 받지만 전세에서는 이자대신 해당 주택에서 살 권리를 받게 된다. 전세는 만기 2년짜리 레포 거래라고 할 수 있다.

2008년 9월 금융위기가 한참 진행되고 있었던 시점에 MMF 역시 손실을 피할 수 없었다. 리만브라더스 같은 투자은행이나 헤지펀드 등이 차입한 현금을 제대로 갚을 수 없었기 때문인데 이때 가장 큰 손해를 본 곳은 Reserve Primary Fund라는 MMF로 3%의 손실을 기록했다. MMF의 지상과제가 어떤 경우에도 최소한 순자산가치를 유지하는 것을 생각한다면 상대적으로 큰 손실이다. 그렇지만 금융위기 당시 리만브다더스, AIG처럼 파산으로 가지 않았던 것은 우리나라 전세제도에는 없는 레포제도의 독특한 특성으로부터 기인한다.

레포 거래에서 현금을 빌려준 쪽은 엄밀히 말하면 채권자가 아닌 특수관계에 있는 거래 행위자이다. 레포 거래에서 현금을 차입한 회사가 파산신청을 하게 되면 그 회사의 모든 자산은 즉시 법원에 의해 동결(자동중지제도, Automatic stay)되는데 현재 미국 레포 시장의 규정은 이 자동중지를 면제해 주고 있다. 현금 차입을 한 회사가 문제가 생겨 파산신청을 하더라도 레포 거래로 현금을 빌려주고 담보로 받은 채권은 자동중지로 동결되는 것이 아니라 현금을 빌려준 쪽의 몫으로 남게 된다.

이러한 면제는 1980년대 초 폴 볼커 연준의장의 제안으로 효력을 보게 된 규정이었다. 당시 폴 볼커 연준의장은 레포 거래에서 자동중지를 면제함으로써 위기 발생시 위기가 전체 금융 시스템으로 번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중요한 도구로 보았기 때문이다. 실제 이러한 규정은 2008년 금융위기시 연준의 통화정책의 최전선에 맞닿아 있는 MMF의 손실을 최소화하는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레버리지를 키운 헤지펀드에 대해서 시장이 하락할 때를 대비한 혜택은 없고 MMF에 대해서는 위기 발생시 손실을 최소화할 수 있는 혜택을 준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만 우리나라의 전세제도에는 문제가 생겼을 때 전세세입자에게 최우선권을 부여하는 미국 레포 시장의 자동중지제도 면제 같은 규정이 없다. 대신 대항력 익일 발효 규정이 있어 레포현금대출자(전세세입자)보다 레포현금차입자(집주인)에게 비대칭적인 법적 보장을 하고 있다. 악의적 임대인은 레버리지를 키워 주택 값 상승으로부터 수익을 극대화할 수 있음과 동시에 주택 값 하락에도 손실을 임차인에 떠넘길 수 있는 장치를 보유한 것이다.

사회적으로 약자인 전세세입자를 보호해 사회적 안정을 꾀하는 것이 최우선 과제라면 미국 레포 시장의 자동중지제도 면제를 우리나라 전세시장에 도입하는 것을 적극 고려하는 것도 한 방안이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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