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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회 지상중계] 정당정치의 몰락과 시민정치의 모색
[토론회 지상중계] 정당정치의 몰락과 시민정치의 모색
  • 이기호 한신대 교수
  • 승인 2022.10.08 1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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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의민주주의 실종과 시민에 의한 국가재건

본지 주관으로 28일 국회의원회관에서 개최된 '[제1회 목촌포럼] 새로운 정치를 위한 열린 토론회' 발표문을 지상중계합니다. 량이 많지만 내용을 정확하게 전달하기 위해 전문을게재합니다.

이기호 한신대 교수가 발표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이기호 한신대 교수가 발표을 하고 있다. 사진=이코노미21

1. ‘대의민주주의’라는 착각

윤석열정부가 임기를 마치는 2027년이면 1987년 민주화로부터 40년이 흐른다. 1948년분단정부수립 후 40년이 지난 1988년, 직선제 개헌을 쟁취하고 민주화와 더불어 서울 올림픽을 치렀던 시절과 비교하면 그 이후 40년의 정치과정에서 우리는 무엇을 이루어 왔는가에 대하여 반성하지 않을 수 없다. 첫번째 40년이 대의민주주의를 제대로 해보자는 것이 목표였다면 두번째 40년은 이를 바탕으로 지역분권이 자리잡고 남북간에 교류가 활성화되어 헌법 제 1조에 걸맞는 평화로운 ‘민주공화국’을 이루어가고 있어야 하지 않을까. 두번째 40년 동안 대의민주주의는 왜 무늬만 남고 퇴보했을까

문제는 결국 ‘정치’에 있다. ‘정당정치’의 후퇴와 더불어 이른바 ‘운동정치’의 퇴보가 함께 진행된 결과이기도 하다. 매우 거칠게 표현하자면 첫번째 40년이 ‘강한 국가’ 대 ‘강한 시민사회’의 충돌로 얻어낸 민주화라면 두번째 40년은 ‘국가의 실패’와 시민사회(운동)’의 실패를 모두 경험하고 있는 셈이다. 정당정치는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제도적 장치를 보호막으로 대권도전을 통해 집권세력이 되는 것에만 집중한 반면, 운동정치는 문제를 제기하는 캠페인 수준에 머물렀고 일부는 개별적으로 정치권 진입을 하면서 운동진영의 예봉을 둔각화시켰다. 정당정치와 운동정치의 괴리만큼 정당은 민심과 멀어지기 시작했고 운동정치는 독립적인 시민정치를 만들어내는데 한계를 보여왔다. ‘민주공화국’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법치과두정’으로 변질되어가게 된 이유이기도 하다.

두번째 40년의 시작이 첫번째 40년의 일단락인 1987년 민주화에서 시작되었고 그 마무리를 2017년의 박근혜대통령탄핵으로 새로운 10년을 맞이했으면 하는 기대는 최근 몇 년간의 정치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대의민주주의는 법치에 의하여 자리를 잡아가고 있었지만 정당정치는 이와 반대로 흘러갔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정당정치는 인물중심으로 움직여왔다. 그래서 정당은 항상 대선후보와 대권을 중심으로 끊임없이 이합집산을 거듭해왔다. 두번째 40년에서는 그러한 인물들이 정당안에서 스스로 만들어낼 동력도 상실하면서 정당정치는 이그러진 모습을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돌이켜보면 987년의 민주화는 당시 최대공약수인 직선제 개헌 쟁취에서 머물렀고 다시 모든 권력은 제도정치권으로 위임되었다. 그 제도권 정치란 다름 아닌 인물에 의해 언제든 이합집산하는 정당정치였고 그들만의 리그를 지금도 진행하고 있다. 그러는 사이 국민들 사이에서는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마음의 분단’이 심화되었고 젠더문제와 세대문제가 뒤엉키기 시작했다.

직접민주주의가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언제나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차선이라는 점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곧 대의민주주의는 그 자체가 주권자인 국민들의 의사가 온전하게 반영기 대단히 어려운 민주주의라는 점에서 불완정성을 속성으로 한다. 대의민주주의는 제도로 보완될 수 없는 부분들을 정치로 풀어내야 한다. 불완전 대의민주주의가 제대로 실행되려면 정당정치와 더불어 운동정치가 함께 해야한다는 점에서 대의민주주의는 시민정치에 뿌리를 두어야 한다.

실제로 정치개혁의 대안을 마련한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연동형비례대표제의 구상이 위성정당이라는 꼼수 앞에 무너졌듯이 제도개선만으로는 부족하기 때문이다. 본 발제는 이런 의미에서 적어도 현재의 상황이 얼마나 심각한가를 드러냄으로써 문제제기의 공감대를 갖는 것 자체가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는데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속에서 거칠게 현실을 반추해보고자 한다.

2. 정당정치의 몰락과 ‘정치’의 실종

(1) 대의 민주주의의 덫

대의민주주의는 의회민주주의와 거의 동의어로 사용된다. 의회는 정당활동을 바탕으로 하지만 정당이 국민의 뜻을 파악하고 반영하는 것보다는 정치권력을 획득하는 것을 우선 순위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민의는 왜곡되는 경향을 갖는다. 우리는 그것을 모두 다 잘 알지만 그래도 좋은 정치인을 선택하면 나아질 수 있다는 믿음 혹은 착각으로 열심히 선거에 참여한다. 선거라는 행위는 국민이 주권을 실현한 것처럼 생각하지만 실제로는 권력을 정당에 위임하는 주권위임의 절차만을 밟은 것이다. 한번 위임하고 나면 4년 혹은 5년동안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것이 대의민주주의이다.

대의민주주의는 운동정치를 무력하게 만든다. 운동정치의 임무를 감시 혹은 문제제기 수준에 머물게 하는 효과를 갖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향을 미치기는 대단히 어렵다. 그래서 운동정치에 핵심인사들은 여러 이유로 정치에 입문하기도 한다. 특히 경실련이나 참여연대와 같이 영향력이 있는 시민단체의 활동가들이나 지식인들이 그러한 경로를 많이 밟아오기도 했다. 이 자체는 적극적인 정치행위로 받아들일 수도 있고 긍정적인 요소들도 많다. 그러나 동시에 운동정치의 한계를 드러내고 동시에 시민정치 혹은 시민권력을 만들기 어렵게 하는 요소로도 작동했다.

대의 민주주의의 가장 커다란 함정은- 의회민주주의를 통해서 민의가 반영되고 있다는 기대와는 달리-선거를 통해 민의 정치참여를 근본적으로 배제하는 결과를 낳는데 있다는 점이다. 선거 기간에 원하는 후보를 세우기도 어렵지만 의회가 구성이 되고 나면 국민들의 입법청원권이 행사될 수 있는 가능성도 거의 없거니와 국민소환이나 주민소환도 할 수 없다.

(2) 5년 단임 도돌이표 대통령제

5년 단임의 대통령제가 전임 통치를 부정하고 모든 것을 새 임기에서 다시 시작하려고 하는 5년제 도돌이표 정치를 반복하고 있다. 정치가 백년대계는 커녕 10년짜리 계획도 일관성을 가지고 지속적으로 하기 어렵다. 정치가 5년이라는 시간 프레임에 갇혀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 한국정치는 새대통령의 성향에 따라 5년짜리 단기 계획 및 집행만 되풀이할 뿐 장기적 비전과 지속적이고 연속적인 정책을 집행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한 현실을 경험하고 있다.

무엇보다도 주권국가로서 가장 중요한 외교정책과 통일정책에 있어서 일관성을 유지하는 것이 쉬워 보이지 않는다. 남북관계와 미중간에 외교적 태도와 입장 그리고 한일관계 등은 무엇이 장기적인 전망인지 국민들도 헷갈린다.

대통령이 국가원수이지만 우리는 민주공화국이다. 주권은 국민에 있다. 선출된 권력보다 선출하는 권력이 더 중요함에도 집권여당은 대통령의 의중에만 주력하는 경향이 있다. 야당은 5년은 잃어버린 시간으로 간주하고 다음 권력창출만을 위해 예민하게 반응하고 행동한다.

(3) 정당정치의 몰락

예춘호선생께서 기대했던 ‘사무국 중심의 근대정당’은 1963년에도 이루어지지 않았지만 60년이 지난 2023년에도 이루어질 가능성은 거의 없다. 곧 87년 민주화가 정권교체와 대통령 임기에만 집중했을 뿐 ‘정당정치’가 실질적 민주화로 이행하는 제도적 기반이 될 수 있는 근간을 마련하지 못한 채로 35년을 보내왔다.

정당이 장기적인 안목과 전문성을 가지고 비전을 제시하고 정책을 만들어낼 수 있는 근대정당의 핵심기능을 여전히 갖추고 있지 못하다. ‘사무국’은 정책을 생산하고 유능한 후보를 발굴하며 민의를 살펴 다른 정당과의 소통을 끊임없이 하면서 ‘정치’를 하는 곳이어야지 ‘행정’을 도맡아 하는 곳이 아니다.

정당은 필요한 정치인과 정책을 스스로 생산하지 못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정당이 대선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대선후보를 중심으로 당명이 교체되고 당의 주류세력 또한 변화한다. 당이 후보를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라 대권(후보)가 당을 뒤흔들어내는 정치 곧 특정 개인에 의해서 좌우되는 정당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민주주의는 대의민주주의로 제도화되었지만 그 핵심인 정당정치가 제도화되지 못함으로써 우리의 대의제는 허울뿐인 민주주의에 그쳤으며 ‘내부자들’ 곧 ‘그들만의 리그’에 우리는 깜깜이다. 인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공천권 행사와 정책결정은 공화국의 정치가 아니라 과두정의 정치이다.

(4) 운동정치의 쇠퇴

시민사회에서 소중하게 만들어낸 정치 담론들은 선거철에 정치적 구호로 남용되어 의미가 퇴색해버렸지만 이에 대해 시민사회(지식인 사회)의 대응은 매우 무력했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민주화의 위기는 국가(정부)의 실패와 더불어 시민사회(시민운동과 지식인운동)의 실패가 동시에 벌어졌기에 이루어진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최종심급의 결정권이 정치에 있다고 생각했지만 87년이후 35년의 변화를 보면 정치는 비전과 동력을 모두 상실했다. 운동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정당정치와 더불어 대학사회(지식인사회)는 물론 민주화과정에서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종교, 노동의 영역도 목표와 비전을 상실한 채 자기 확장에만 노력해왔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권위있는 목소리가 사라졌다.

반면에 문화예술분야(K-culture)와 기술 및 자본의 비약적 성장(삼성, LG, 현대, SK 등 글로벌 기업으로 약진)은 자본의 논리를 더욱 정당화하고 사회적 가치를 ‘공정’이라는 룰만 지키면 정의가 이루어질 것이라는 인식을 강화시켜왔다. 정치, 지식, 종교, 노동의 퇴조와 달리 문화산업과 기술산업 등이 비대칭적으로 성장했다. 이른 바 ‘산업’의 경쟁체제와 효율성이 공정의 새로운 표준으로 자리잡기 시작했고 경쟁대신 철밥통으로 기득권을 유지하고 있는 다른 부문들은 비난과 무시의 영역으로 전락해가고 있다.

한국정치의 또다른 비극은 19세기 정치의 틀에서 벗어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앞서 한국의 문화산업과 기술산업 등이 글로벌 수준으로 놀라운 성장을 보여주었지만 의회중심의 정당정치는 여전히 시선이 국내에만 머무르는 경향을 보여주고 있다. 한반도에 대한 비전과 이를 실현할 수 있는 전략과 프로세스에 대한 구체성이 보이지 않음은 물론, 한반도의 지정학적 성격 때문에 고려할 수 밖에 없는 동북아 다자외교에 대한 전략도 구상도 보이지 않는다.

(5) 권력이동과 팬덤정치 그리고 마음의 분단

민주화를 제도의 선진화로 이해하고 이를 법치로 등치하는 과정에서 권력은 군부에서 검부로 점차 이동했고 실제로는 자본(재벌)에 의존하는 기형적 민주화의 구조를 나타내고 있는 것이 35년 민주화의 참상이다. 게다가 이른바 86세대와 MZ세대로 대표되는 세대론은 세대의 특징을 정형화(일반화)하여 세대간의 갈등을 부추겼고 새로운 세대들에게 보이지 않는 장벽을 구축했다.

과거의 정당들이 지역, 계파, 이념 등에 의해 이합집산을 해왔고 아직도 이러한 행태는 남아 있으나 최근에는 이보다는 특정인물을 선호하는 팬덤 형식으로 진화(?)하여 좋은 의미와 나쁜 의미의 포퓰리즘을 모두 내포하는 형태를 보여주고 있다. 대의민주주의에서 일상적 정치참여가 쉽지 않은 한국정치의 퇴로로 여겨지기도 하는 팬덤정치는 때로는 대의제를 보완하는 포퓰리즘의 성격도 보여준 바 있다. 예컨대 2002년 대선 과정에서 형성된 친노세력은 계파정치를 무너뜨리는 데 기여한 바 있다. 그러나 그 뒤, 이른 바 친박, 친문, 친명 이라는 ‘친’과 특정인물을 엮어내는 팬덤정치는 대화를 통한 협치의 과정보다는 오직 승리의 결과를 향해 달려가는 배타적 정치문화를 만들어냈다. ‘친박’에서 ‘진박’으로, ‘친문’에서 ‘대깨문’으로 ‘친명’에서 ‘개딸’로의 변화는 과거의 지역감정과는 다른 양상의 배타적 파벌문화를 만들어오고 있다.

2016년 촛불이후 우리 사회에는 마음의 분단이 남북 분단 못지 않게 두드러지게 가시화되었다. 촛불과 태극기로 대표되는 마음의 분단은 때로는 지역간에, 때로는 남녀간에 그리고 세대간의 갈등과 중첩되면서 복잡한 마음의 분단을 그려내기 시작했다. 단순히 종북좌파와 친미우파의 대립이 아니라 다양한 분단선이 내면화되고 있다. 정치는 이러한 분단을 더욱 양극화시켜 표로 연결시켰고 정치팬덤은 여기에 부응하는 경향을 보여왔다.

한가지 여기서는 짧게 언급하겠지만 우리의 미디어 지형이 근본적으로 변화했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다. 단지 SNS와 유튜브로 대표되는 새로운 미디어의 출현만이 문제가 아니라 현실과는 또다른 디지털 미디어의 세계가 자리를 잡기 시작했고 팩트가 중요한 것이 무엇이 어떻게 유통됨으로써 사람들의 인식세계를 장악하고 있는가가 더 중요해졌다는 점이다. 프랑스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의 시뮬라크르(simulacre)가 현실공간과 현실적 힘으로 등장했다는 점에서 확장된 미디어의 공간 혹은 확장된 삶의 공간에 대한 고민도 함께 이루어져야 한다.

3. 시민정치에 의한 국가재건(reconstruction)

본 글은 한국 민주주의의 현주소를 성찰하고 구체적인 정책 제안보다는 그 방향에 관하여 논하는 것에 초점을 두기로 한다. 아울러 국가재건이란 박정희시대가 주도한 국가재건이 아니라 해방후 ‘우리가 꿈꾸는 나라’에 대한 기획의 초심으로 돌아가1950년대 한국전쟁이후 진행되어왔던 국가재건의 흐름 속에서 시민에 의한 재건을 기획해보자는 의미이다. 따라서 현재 시민정치에 의한 국가재건을 다시 강조하는 이유는 지금까지의 민주화의 성과를 바탕으로 지역분권과 남북관계를 포괄하는 앞으로 40년이라는 긴 호흡속에서 물론 동북아질서/세계질서를 주도면밀하게 읽어내고 미래를 포착해가며 국가의 골간을 다시 기획해야 할 때가 무르익었기 때문이다.

(1) 정당자체의 개편과 새로운 정치리더십의 육성

정당이 선거만을 위한 정당이 아니라 정책과 사람을 키우는 정당으로 재구성될 필요가 있다. 정당의 사무국이 근본적으로 개편되어야 한다. 정당의 연구소 또한 정치인의 필요에 응하는 심부름의 역할에만 머물 것이 아니라 정당의 철학과 비전에 걸맞는 정책을 생산하고 이를 통해서 정치인들과 공감대를 구성해갈 수 있는 선도적 역할을 해야한다. 이러한 전문성은 시대적 복합성을 담아낼 수 있도록 학제간 융합과 정책생산의 능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 곧 정당안에서 독립성과 지속성을 갖출 수 있는 전문인력으로 구성된 싱크탱크가 필요하다. 정당의 싱크탱크는 글로벌과 로칼을 오갈 수 있어야 하며 전문성을 정책언어와 대중언어로 풀어내는 능력을 갖추는 것도 중요하다.

정치리더십을 육성하는 것은 정당의 핵심 기능중의 하나이다. 정치를 하고 싶어하는 사람을 영입하기 보다는 정치를 잘 할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내고 설득하고 이들이 당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필요한 자원을 구성할 수 있어야 한다. 예춘호선생이 민주공화당 창당에 가입된 배경으로 설명했던 국가재건운동의 정치인 발굴과 정치학습은 다시 살펴보아야할 주요한 대목이다.

(2) 민의 반영을 위한 대의제(1): 다당제

양당제로는 국민들의 다양한 정치적 성향을 대표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다고 판단된다. 과거 정권교체가 민주화와 거의 동일시되던 시기에는 양당제가 민의의 반영이었다. 전두환정권 초기에 임의로 1.5당체제의 다당제를 구축해보려고 했지만 국민들은 강력한 야당을 만들어냄으로써 양당제를 지지했다. 그러나 민주화이후 다양한 스펙트럼을 가지게 된 민의는 양당제로 구현되기 어렵다.

현재의 양당제는 거대 정당이 대선에서의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기에 훨씬 도움이 된다. 소수 정당에게는 대단히 불리한 구조이다. 심지어 지난 준연동형비례대표제는 위성정당을 만들어냄으로써 소수정당에게는 치명적인 정치적 타격을 준 바 있다. 이미 선거제도는 연동형비례대표제와 결선투표제 등 다양한 제도가 검토된 바 있다. 문제는 의지이다.

(3) 민의 반영을 위한 대의제(2): 정치의 속도와 중간선거

최근 민심의 변화 속도가 빠르다. 4년이라는 임기가 매우 길게 느껴지는 이유이다. 역으로 4년 동안 선거에서 당선된 이들은 국민들의 뜻은 안중에 없고 겉도는 경향이 있다. 동물국회 혹은 내로남불로 비난 받았던 정치권의 행태로 국민들은 엄청난 정치적 기회비용을 지불할 수 밖에 없다. 선출하는 권력에게 주권을 주기 위해서는 2년에 한번 중간선거를 치를 필요가 있다. 비례대표를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것만으로 시대변화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미국의 중간선거처럼 임기를 4년으로 하되 의회 의원들의 반을 2년씩 엇갈리게 해서 중간선거를 하는 것이 훨씬 더 정치적 기회비용을 줄이는데 기여할 것으로 본다. 실제로 지방자치선거(지선)와 국회의원선거(총선)가 실제로 2년 격차를 두고 이루어지고 있기 때문에 유사한 효과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지만 국정과 지방정책은 다른 맥락에서 움직이기 때문에 의회가 시대 변화에 좀 더 귀 기울이고 발 맞추어 가기 위해서는 의원들의 반을 2년 간격으로 선출하는 것이 훨씬 민의와 시차를 줄이는 데 기여할 것으로 기대한다.

(4) 민의 반영을 위한 대의제(3): 정당법 개정과 지역정당(Local Party)

양원제가 민의와 시차를 줄이기 위한 것이라면 지역정당(local party)은 지역의 자율성을 회복하고 중앙정치의 브랜치로 전락하는 지방정치에서 독립성과 맥락성을 가질 수 있다. 현재의 전국정당 형식으로는 실질적으로 분권형 정치를 아래로부터의 방식으로 진행하기 어렵다. 정당공청권이 결국은 지방의회의원과 자치단체장의 후보선택에도 결정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이다. 지역주민들의 선택권을 보장하는 것이 곧 주권을 국민들에게 돌려주는 것이기도 하다. 지역의 상황을 잘 알고 지역의 자원을 잘 활용할 수 있는 지역에 특화된 지역정당의 합법화는 현재 시점에서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지역정당이 초기에는 난립할 수 있겠지만 마치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듯이 시민들에 의해 지역 정당 또한 어느 정도 시간이 흐르면 자리를 잡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1987년 민주화 이래 지금까지 모든 정권이 지역분권과 자치분권을 하겠다고 이야기했지만 실질적인 권력을 내주거나 양보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영호남에 의한 지역구분이 있었지만 지금은 수도권과 비수도권으로 나뉘고 있으며 수도권안에는 서울과 외곽 그리고 서울안에는 강남과 강북으로 또 나뉜다. 중앙과 지방의 권력이 훨씬 더 첨예하게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다.

장기적으로 남북관계 또한 남북연합과 같은 지역분권에 기초한 협력을 강화하는 방식으로 가는 것이 필요한 만큼 지역분권은 통일을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필요한 정치 제도이다.

지역정당이 실제로 힘을 받기 위해서는 실질적인 지역분권도 뒷받침되어야 한다. 지방의 재정과 예산권 그리고 자치 조례 및 지방법률에 대하여 자율권을 충분히 보장해주어야 한다. 서울(수도권)만이 대안이 아니라는 점을 중앙에서도 인정하고 지역 스스로가 증명해가는 과정을 통하여 지방소멸도 막고 지역활성화도 일으켜 지역간 상생하는 분권형 대한민국을 구상하고 실천해가는 것이 절실하다.

(5) 국가의 품격과 정치의 부활 : 개헌

5년단임의 도돌이표 정권이 아니라 장기적인 비전을 가질 수 있는 새로운 국가 청사진을 만들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과 중국에 끌려다니는 반도국가, 남북간 반복되는 교착상태, 한일(중)간의 역사 및 영토갈등 문제에서 벗어나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틀을 다시 기획할 필요가 있다.

1987년의 직선제 개헌을 목표로 했던 헌법은 이제 졸업할 때가 왔다. 졸속으로 개헌하지 말고 2045년 해방 100주년의 한반도는 어떤 한반도가 될 것인가에 대한 청사진이 그려져야 한다. 예컨대 남북관계는 어떠한 모습으로 이루어져 있을 수 있을까, 남북관계가 변화하기 위한 동북아질서는 무엇이고 남북관계로 만들어지는 동북아질서는 어떤 방향으로 갈 수 있는지를 구상해보고 이웃국가들을 설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무렵 우리는 탄소중립을 위하여 에너지의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갖고 갈 수 있을지 고민해야한다. 저출산고령화시대의 돌봄과 가족구성의 변화는 어떻게 예측하고 복지서비스를 구축할 것인지와 해외이주 및 노동인력의 유입 등 이주민 유입을 통한 다문화・다민족 정책이 포용적으로 이루어지기 위한 과정과 제도는 어떠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근본적인 철학과 정책을 만들어가야 한다.

개헌은 여야는 물론 시민사회와 함께 공동으로 성찰하고 소통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인들이 타협하는 것만으로 구성될 수 있는 단순한 법률이 아니다. 과연 우리는 민주공화국인지 민주공화국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통일을 지향하는 헌법으로서의 포용력과 위상을 가질 수 있는지에 대한 철학과 전략이 담겨야 한다.

새로운 헌법은 제도 이전에 남북기본합의에 부합하고 유엔의 인권헌장과 맥을 같이하며 반둥선언의 평화10원칙을 계승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함으로써 한반도의 특수성과 인류사의 보편성을 담아내는 헌법을 만들어내는 과정이 ‘국가’에 대한 근본적인 가치와 100년 대계를 꿈꾸는 한반도의 미래와 연결될 수 있어야 한다. 나아가 이러한 헌법 체계는 전쟁에 대한 반성없이 개헌을 꿈꾸는 일본의 헌법에도 영향을 주어 동북아 헌법의 새로운 DNA를 만들어낼 수 있기를 기대한다.

(6) 시민정치와 정치학습공동체

정치는 아마츄어리즘과 프로페셔널리즘간의 균형을 잡는 것이어야 한다. 정당의 싱크탱크에는 프로페셔널한 전문가가 있어야 하지만 정치인은 반드시 엘리트 그룹이 아니라 시대를 읽어내고 시대와 호흡할 수 있는 시민이라면 누구나 도전해 볼 수 있는 영역이어야 한다.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의민주주의가 엘리트 의존성을 보이고 선거를 통해 유권자들과 사실상 손절하는 방식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함께 숙고하는 방식이 되기 위해서는 정당정치가 운동정치와 호흡할 수 있는 시민정치로 전환 및 확대될 필요가 있다. 국회의원이 4선, 5선 등 다선의원으로 직업으로서 정치인이 되는 과정으로 고착화되어서는 곤란하다. 순환하지 않고 세습되거나 권력이 특정인들에 의해서 좌우되어서는 민주주의가 부패하기 마련이다. 영원한 직장이 되는 순간 여야를 떠나서 정치인들간에 만들어지는 권력의 카르텔이 민주주의를 경직시키기 때문이다.

정당이 좋은 사람들을 발굴하고 정치인으로 육성하는데 노력을 기울여야 하지만 일반 유권자들도 좋은 사람을 뽑을 수 있고 문제제기를 할 수 있으며 조직화된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운동정치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에 이들 또한 정치교육을 받는 것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정치학습공동체는 의원이 되는 사람에게만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민주주의사회의 시민이라면 누구나 받아야 하는 교육이기도 하다. 그래서 시민운동을 중심으로 하는 운동정치 혹은 정당을 중심으로 하는 정당정치 모두를 포괄하는 이들을 순환시키는 시민정치를 활성화시켜가는 것이 중요하다. 정치는 다양한 교육을 필요로 한다. 코스타리카에서는 초등학생들이 선거를 독려하는 캠페인을 하러 다닌다고 한다. 초중고에 걸맞는 정치교육이 필요하고 대학과 직장에서 필요한 정치학습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실은 교양교육이 시민교육이고 동시에 정치교육이기도 하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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