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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둑 여제(女帝) 최정 9단 슬럼프인가, 내리막길인가?
바둑 여제(女帝) 최정 9단 슬럼프인가, 내리막길인가?
  • 이재식 기자
  • 승인 2022.10.25 13:45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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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오유진 9단에게 연속 패해
변화와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견 많아
전성기에서 내려가고 있다는 의견도 있어

[이코노미21 이재식] 작년 중반까지만 해도 최정 9단이 세계 최강 여자기사라는 것에 이견이 없었다. 도무지 질 것 같지 않고, 실제 잘 지지도 않고, 역전하기 불가능한 수준의 불리한 바둑도 자신의 인터넷 아이디인 괴동(怪童)처럼 괴력을 발휘해 역전승 하는 경우가 많았다.

여자기사 대상이긴 하지만 56연승이라는 상상하기 어려운 대기록을 달성(이창호의 최고 기록은 41연승이었다)하고 세계대회에서 중국의 최정상급 남자기사인 구쯔하오와 스웨까지 물리쳤을 때 바둑계는 열광했다.

비록 인터넷 친선대국이지만 아직까지 중국 랭킹 1위를 보유하고 있는 커제와 중국의 상위권 남자기사들도 최정에게 대마가 몰살당하고 지는 경우가 적지 않은 만큼, 최정은 루이나이웨이 9단 이후 남자기사들과 맞붙을 수 있는 유일한 여자기사로 평가 받았다. 

그러던 최정에게 작년 하반기부터 이상 신호가 켜지기 시작했다.

작년 연말 상대 전적에서 압도적 우위를 보이고 있던 국내 여자바둑 2인자 오유진 9단에게 여자국수전과 여자기성전의 결승에서 연거푸 패해 준우승에 머무르는 이변이 발생했다. 이때부터 사람들이 수군거리기 시작했다. 한 번이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으나 두 번은 다르니까, 그것도 결승전이니까 더 그랬다.

심지어 올해 여자 오청원배에서는 오유진과의 준결승에서 패해 결승 진출조차 하지 못했고, 여자 오청원배는 결승에서 중국의 왕천싱을 물리친 오유진에게 돌아갔다. 오유진이 분명히 잘 뒀지만, 이전에는 오유진이 잘 둬도 최정이 결국 역전승 하는 경우가 많았다.

최정 9단. 사진=한국기원 제공
최정 9단. 사진=한국기원 제공

“변화와 휴식이 필요해”

바둑계에서는 ‘에이징 커브’와 ‘변화나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견이 가장 많이 나왔다. 슬럼프인데 이 시기를 잘 극복하면 다시 부활할 실력이 충분하다는 의견과 어쩔 수 없는 내리막길이라는 의견이 맞섰다.

바둑계 한 관계자는 “최근 성적이 안 좋지만 올해 중국 을조 리그 성적이 나쁜 것도 아니고, 최근 중요한 시합에서 지기는 했으나 질 수도 있는 부분으로 보인다. 조훈현 국수나 서봉수 명인도 담배를 끊고 등산을 하거나 여행을 하며 슬럼프를 극복한 사례가 있듯이 뭔가 다른 계기를 찾아야 할 것 같다”라고 말했다.

“다시 일어설 마음조차 없어 보이는 게 문제”

그러나 일부에선 결이 사뭇 다른 의견도 있다. 최정을 가까이에서 지켜 본 다른 관계자는 최정이 안좋은 거 아니냐는 질문에 “자기도 안 좋다는 걸 느끼고, 옆 사람과 주위사람들도 다 느낀다면 안 좋은 거”라면서 “안 좋은지는 좀 된 거 같고, 다시 일어설 마음조차 없어 보이는 게 문제다. 주변의 기대가 큰 것도 부담이 됐을 거고… 오청원배에서도 바둑 내용이 안 좋았다” 말했다.

휴식이 필요하다는 의미냐는 질문에 그는 “휴직을 하는 것도 생각해 볼 수 있지만 최고의 흥행카드니까 한국기원에서 뜯어 말릴 거고, 무엇보다 휴직을 한다고 좋아진다는 보장이 없다는 게 문제다. 프로기사들마다 판단이 다를 수 있겠지만, 너무 지쳐 지금의 커리어가 길게 가지는 못할 것 같다. 휴식과 무관하게 전성기에서 내려가고 있다고 봐야 된다. 무엇보다 목표가 없는 것이 더 문제다. 예전에는 남녀통합 우승이나 남녀통합랭킹 10위 내에 들겠다, 이런 목표가 분명했는데 지금은 그런 것이 안 보인다. 졌을 때 어떻게 받아 들이냐는 것으로도 느껴지는 게 있는데, 예컨대 몹시 분하다거나 내 스스로 만족하지 못하거나 이런 게 있는 거다. 그런데 이번 호반배 대국 후에 일어서는 모습을 보니 아무 반응이 없었다. 그냥 ‘내려놓는구나.’ 이런 느낌이 들었다. 여자기사들도 레벨 차이가 많다. 워낙 실력 차이가 있다 보니 당분간 성적은 어느 정도 유지할 거다. 나는 부활이 가능한 시점을 연말로 보고, 연말 KB리그에서 최정이 발탁되면 달라질 수도 있다고 본다. 다만 KB리그에서도 안 느껴지면 진짜 내려가는 거”라고 답했다.

KB리그에 선발될 가능성에 대해서는 “선발전 전에 감독 권한으로 뽑는 3명 정도에 들면 선발전 없이 들어갈 수 있다.(KB리그는 남녀통합기전이라 선발전을 통과하기도 쉽지 않다.) 최근의 흐름과 최정의 대국 내용으로 보면 매력이 없어 선발되지 못할 수도 있지만, 워낙 흥행카드니까 아마 선발은 될 거라고 본다”고 했다.

한편 바둑계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매니지먼트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최정이 좀 쉬면서 뭔가 숨고르기를 해야 하는데, 한국기원은 당연히 말릴 수밖에 없다. 그러니 매니지먼트가 필요한 거다. 본인이 자신의 상태를 정확히 판단하기도 쉽지 않고, 쉬고 싶다고 한국기원에 직접 말하기도 어렵다. 돈 이야기를 하고 싶은 것은 아니라는 것을 전제하고 매니지먼트의 필요성을 단적으로 설명하자면, 이세돌이 알파고랑 대국 했을 때 매니지먼트가 있었으면 10배는 더 받았을 거다”

최정의 최종학력은 중졸이다. 고등학교에 진학했지만 바둑과 학업을 병행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고 판단해 고등학교를 중퇴했다. 10년 정도를 바둑만 보고 달려온 것이니 지칠 만도 하다. 다만 에이징커브 운운하는 최정은 1996년 10월 7일생 만26세며, 최정보다 조금 일찍 흔들리고 있는 중국 랭킹 1위 커제는 만25세다. 

프로기사의 전성기는 말도 안 되는 나이에 급격히 허물어진다. 지금은 현역으로 활동하지 않는 한 프로기사는 이렇게 덧붙였다. “그래도 2위 정도를 유지하면 잠시 제2의 전성기가 찾아오기도 한다. 다만 그건 성냥불처럼 아주 짧은 시간 제 몸을 태우고 사라지는 경우가 많다.” [이코노미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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